글리프 이벤트

밴드를 붙였다.

글리프 주간 창작 챌린지 6월 2주차

by 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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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를 붙였다.

무릎이 쓰라렸다. 지독하게 넘어진 까닭이다.

한바탕 대자로 넘어졌다. 급하게 달려가다가 제대로 아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래엔 라바콘이 있었다. 누군가 가지 말라 둔 것이겠지.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어서 앞도 뒤도 옆도 아래도 보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뛰었다.

저 뒤에서 무언가 나를 쫓아왔다. 정말로 쫓아온 것이 맞나?

확인해 보지도 않은 허상에 매몰되어 주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뛰어 도망친다. 나는 무엇에 겁먹었나 쫓긴 것은 맞는가 굳이 뛰었어야 했나 길이 맞기는 했나. 겁을 먹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판단이 흐려진다. 그렇게 상처 입고 만다. 무릎이 아팠다. 무릎이 아팠어. 찍히고 갈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보지 않고 넘어진 채로 있었을 때에는 아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쪽팔리기만 하였는데 무릎을 바라보니 그때부터 아파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찔끔 흘렀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자신이 한심해 무릎에서 피가 흐르든 말든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아무에게도 이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상처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한 거란 건 알고 있어. 지레 겁먹어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을 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보 같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그냥 날 좀 내버려둬. 내가 겁먹지 않게 해줘. 도망치고 보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서랍장을 열어 구급상자를 꺼냈다. 식염수로 환부를 닦아내곤 소독약을 발랐다. 넘어져 피가 흐른 것보다 소독약이 더 쓰라린 듯했다. 다행히도 연고는 그렇게 쓰리지 않았다.

밴드를 붙였다.

숨이 좀 통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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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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