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의 끝

글리프 주간 챌린지 2주차

도토리 by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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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고작 싸움 하나때문에 우정으로 다져진 밴드를 해체하겠다고 학교 대문에 붙여놓는 꼴이라니. 사건의 발단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인생이 그러하듯 끝을 향해 갈 수록 문제에 문제가 더해져 밴드를 해체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내일 공연을 마치고 나면 이 밴드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현오는 고민에 빠졌다. 유독 현오가 있던 밴드를 좋아하던 옆자리의 백이에게 이 밴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해체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사라질 이 밴드가 백이의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하고 어리숙한 아이가 밴드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던 걸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밴드를 해체하지 말자고 할 수 없었다. 멍청한 것들과 다시는 함께 무대에 서고싶지 않았다. 현오가 그 밴드의 일원들과 성격이 맞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사적인 이야기를 끌고와 밴드에도 영향을 주는 꼴이 미덥지가 못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백이가 실망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죽어도 보기가 싫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따위 알 바가 아니라고 말하는 현오도, 사랑 앞에서는 호구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밴드 해체날은 당장 내일이고, 백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내일 있을 마지막 공연에 설레하고 있을 게 뻔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겨우 생각을 정리한 현오가 앉아있던 계단에서 일어나 백이의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가로등 몇 개의 불빛이 불나방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들려오는 발소리는 고작 하나인, 인기척조차 없는 조용한 골목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서면 익숙한 집이 보인다. 동생과 함께 사는 백이의 집. 자주 방문해본 건 아니지만 언젠가 찾아갈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 집의 외관을 외워두고 있었다. 띵동, 경쾌한 소리가 백이의 집 안에 울려퍼졌다. 곧 문이 열리고, 새하얀 머리가 촉촉하게 젖어들은 백이와 눈이 마주친다. 달큰한 코튼향이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현오는 가다듬은 마음이 다시금 뛰는 것을 느꼈다. 이 말을 꺼내면 백이가 무슨 반응을 보일 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망할지, 슬퍼할지, 덤덤하게 받아들일지… 입을 떼지 못하고 시선만을 움직이던 현오를 이상하게 생각한 백이가 현오의 어깨를 한 번 톡 건드렸다. 답지않게 놀란 현오가 버튼이 눌린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봇물 터지듯 뱉어냈다.

“ 내일 하는 공연은 우리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야. 멍청한 놈들이 자기들이 싸운 걸 가지고 밴드를 해체하겠대. 네게는 좋지 않은 생각인 거 알지만, 번복할 수 없어. 미안해. 하지만… 나, 나는 널 위해서라면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줄 수 있어. 네가 좋아한게 밴드가 아니라 내 노래였다면 난 기꺼이, 널 위해서… ”

계획에 어긋난 말이 나오자 현오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집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백이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현오는 알 수 있었다.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드러나는 감정이 느껴졌다. 실망도, 슬픔도, 서러움도 아닌… 순수한 기쁨.

밴드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현오의 등에는 여전히 기타 가방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옆자리의 친구에게 오늘도 들려줘야 할 노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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