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
글리프 주간 챌린지 3주차
지금까지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지금 둘이 있는 파티는 전멸할 위기에 처했다. 사건의 발단은 힐러의 죽음. 보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에 실력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의뢰를 수락해버린 듯 했다. 힐러가 쓰러졌다면 그 다음은 광범위한 공격을 피하지 못한 딜러였다. 하지만 하르헤레 게네크는 살 수 있었다. 같은 딜러라면, 당연히 슈가니르 만카드는 자신의 반려자를 살릴 사람이니까. 쓰러진 둘,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딜러 하나, 그리고 곧 쓰러질 탱커 하나. 아무리 버틴다고 한들 건브레이커는 훌륭한 자가 치유 기술이 없었다. 늑골이 부러지고, 버틸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도 슈가니르 만카드는 마지막까지 마물의 시선을 끌고 쓰러졌다. 그 덕에 하르헤레 게네크가 마물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마물을 처치한 일에 뿌듯함을 느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가 너무나도 처참했다. 마물의 피보다 우리가 흘린 피가 더 많았다.
하르헤레 게네크는 쌍검을 집어넣자마자 자신의 반려자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살아있다고 하기에도 뭐한 몰골이었다. 하얀 피부와 머리카락은 새빨간 피로 물든지 오래였고, 옷은 찢어지고 건블레이드는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지금 당장 힐러를 불러 소생 시키지 않으면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하르헤레 게네크는 답지 않게 후회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고작 가시밭길 밖에 되지 않아서, 지금 자신의 품에 있는 반려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게. 마물의 공격을 버텨낼 수도 없고, 공격을 받은 자를 치유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이 모든 순간이 자신의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일 같았다.
후회에 슬픔이 쌓이고, 곧 그 슬픔이 분노가 될 때 쯤, 근처 수풀에서 소리가 들렸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하르헤레 게네크가 빈사 상태인 반려자를 끌어안으며 쌍검 하나를 들고 경계했다. 허나 소리를 내며 다가온 사람의 정체를 알고 금방 쌍검을 내렸다. 마물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형의 링크펄을 받고 급히 달려온 영웅, 슈케 만카드였으니까. 비록 힐러로써의 자질은 크지 않지만 소생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마력을 사용하여 피를 잔뜩 흘린 슈가니르 만카드를 소생시키자, 품에서 눈에 띄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뜨는 반려자가 보였다. 하르헤레 게네크는 자신이 느꼈던 모든 감정은 다 제쳐버리고 반려자를 꽉 껴안았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가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너는 모든 길을 걸었던 사람을 데려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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