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생

미지

6월 3주차, 가지 않은 길

쉼터 by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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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알고 있었어. 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말이야.”

손에 들어온 하얀색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줄기의 뾰족한 가시는 미리 제거했는지 손에 닿는 것은 매끈했다. 이 정원에 있는 장미라고는 붉은, 페인트를 예쁘게 머금은 장미뿐이었지만, 어느 날 지나가듯이 말했던 나의 말 한마디로 정원 한구석에 남겨둔 귀한 흰 장미였다. 정원을 거닐면 그들이 얼마나 나를 생각해 주고 있는지, 생각만으로도 가슴 속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러니 담담하게 받아드릴 수 있었다.

비록 내 앞에 앉아 있는 두 남자아이는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에이스의 얼굴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있었고, 듀스는 눈 끝에 눈물을 머금고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 애써 참고 있었다. 그림은 이미 내 품에 들어와 잘게 몸을 떨었다. 들고 있던 장미를 내려두고 그림의 부드러운 털을 느리게 쓸어주자, 크게 떨던 그림의 몸이 점차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며칠 만 더 있으면 우리는 4학년이 돼. 삼 년 동안 내가 살던 곳에서 나는 실종 처리된 지 한참 지났겠지. 여기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실종된 지 오 년이 지나면 사망 처리가 되거든. 거기서 나는…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을 거야.”

“…….”

“삼 년이 지났어. 많은 게 변했을 거고, 여기서 생활한 나는 다시 돌아가더라도 삼 년의 공백을 채우기는 힘들 거야. 이미 내 친구들은 성인이 돼서 다들 각자의 길을 걸을 때, 나는 채우지 못한 빈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살포시 웃어 보이자, 뭐라 크게 말하고 싶었던 에이스는 신경질적으로 입을 벌리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세게 깨물어, 이러다가는 피를 볼 거 같아서 느린 손길로 그의 입술을 꾹 눌렀다. 상처가 생기니까. 그렇게 속삭이니 에이스는 천천히 입술에서 힘을 풀었다.

듀스는 이미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참는 소리만 냈다. 괜찮은데. …아니, 괜찮나?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내 상상 속에 있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려 나갔던 모습과 다를 바 없어서.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지.

나는 눈을 감았다. 몇 초가 흐른 줄 모르겠다. 그림이 품 안에서 꿈틀거리자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걱정스러운, 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 웃었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삼 년.

길다면 길 수 있는 삼 년.

내가 지나온 삼 년은 앞으로 나아갈 나를 위한 첫걸음이다.

“여전히 나는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여기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이 학원에서만 지냈으니 나를 구성하는 세상은 이 학원의 크기만 하겠지. 학원 밖의 현자의 섬도 나가본 적 없고, 거울을 통해서만 다른 지역을 다녔으니 알 턱이 있나. …그래, 앞으로 이곳에서 미래를 걸어갈 나에게는 미지의 길이 더 어울리겠다.”

“감독생.”

“원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을 나라면 가지 않았을 길이잖아. 그곳의 나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걸었을 거고, 누구나 생각해 보는 일을 했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는 달라. 여기까지 온 사람은 없고, 내 앞에 펼쳐진 길은 그 누구도 밟지 않은 길이지. 누가 생각이라도 해 봤을까? 이 세계에 덜렁 떨어져서 아는 것 하나 없이 미래를 꿈꾼다니 말이야.”

“…….”

“그래, 내 앞에 그려진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는 미지의 길이지. 그래서 더 두근거리지 않아? 길을 알고 있을 때와 달리 모르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은 잔뜩 해볼 수 있어. 물론 그 과정이 힘들고 벅차고, 어느 날은 그대로 주저앉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그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하고, 나 스스로 길을 개척해 갈 수 있으니까.“

“…….”

“0에서부터 스스로 쌓아 올릴 수 있는 경험을 그 누가 해볼 수 있겠어. 그러니까…….”

“…….”

“그러니까, 울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아. 정말이야.”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즐거운 모험 정신으로 포장해도 그 밑에 깔린 진심은 어쩔 수 없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은 알 수 없다. 미지의 길. 아니, 암흑이나 다름없는 내 앞길. 그 흔한 등불조차 없다. 내가 등불이 되어 가고자 하는 길을 위해 한 걸음 내밀어야 한다. 그 과정이 무척 힘들고, 고되고, 주저앉아서 울어버리고 싶을 테지만, 가만히 있겠다고 해서 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주어진 상황을 감내하자. 차라리 즐길 수 있도록 하자.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보자.

내가 선두가 되어, 이후 따라올 먼 미래의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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