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소문
글리프 주간 챌린지 1주차
소문은 입을 타고 무성하게 자라난다. 모험가 슈가니르 만카드가 술집 주인에게 들은 소문도 그러했다. 커르다스 서부고지의 깊은 얼음 동굴에서는 이따금씩 화려한 무지갯빛의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소문이었다. 뼛속까지 모험가의 기질이 넘쳐났던 그가 그 소문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반려인 하르헤레 게네크를 3일 밤낮을 걸쳐 설득해 결국 모험길을 나섰다.
뼈가 시리고 살이 얼어붙는 추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인 곳도 모험가에게는 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기동성이 좋은 방한복을 입은 채 둘은 손을 잡고 얼음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B급 마물도 손쉽게 처리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둘에게 얼음 동굴 안의 몬스터들은 요깃거리도 되지 않았을 테다. 칼날에 붙은 몬스터의 살점을 닦으며 안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 바깥에서 확인한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동굴이었다. 뽀득뽀득, 눈을 밟는 소리가 잦아들면 그 때부터 발이 미끄러워 심혈을 기울여 걸어야 했다.
그렇게 서로의 몸에 의지해 동굴의 안쪽까지 발자국을 남기면, 소문으로만 듣던 장소가 눈에 보였다. 넓게 깨져 방을 연상케 하고, 빛이라도 들어오는 것 같이 환한 동굴 안. 거기까지는 같았으나 소문의 중심이던 무지갯빛의 몬스터는 없었다. 슈가니르 만카드는 속상한 마음을 숨기고 언약자인 하르헤레 게네크를 품에 안은 채 동굴의 구석구석을 눈으로 살폈다. 하르헤레 게네크도 실망했지만, 소문자체에 대한 흥미는 적었으므로 슈가니르 만카드처럼 위로 받고 싶은 기분을 느끼진 못했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이 모험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파랗고 반짝이는 얼음 동굴 속에서 새하얗게 빛나며 자신을 껴안고 있는 언약자는 그의 눈에 아주 아름답게 비쳤기 때문에. 그렇게 한 사람은 상실을, 한 사람은 사랑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쩌적,
귀를 때리는 기이한 소리가 얼음 동굴을 채웠다. 육감이 좋은 둘이 그것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둘은 금방 무기를 꺼내들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계가 무색하게도 그저 차디찬 동굴임에도 빛에 녹아내려 곧 떨어질 준비를 하는 고드름일 뿐이었다. 허나 두려운 것은, 그것이 눈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게 올라간 천장의 고드름이라는 것. 심호흡을 하기도 전에 고드름은 같은 얼음을 밀어내며 매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중력의 영향을 받은 채 떨어지는 고드름을 막아낼 수는 없어, 슈가니르 만카드는 자신의 언약자가 파편이라도 맞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르헤레 게네크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크기에 걸맞게 고드름이 깨지는 소리는 굉장했다. 몸 전체가 종이 된 것처럼 울려퍼졌고, 넓은 얼음 동굴 탓에 소리가 울려 둘은 한참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드디어 조용해진 동굴 안에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올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슈가니르 만카드가 눈에 담은 것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빨간 눈으로 색을 반사했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빛을 반사하여 무지갯빛을 만들어냈다. 눈을 감고있는 하르헤레 게네크를 흔들어서라도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었다. 겨우 눈을 뜬 하르헤레 게네크가 제일 처음 본 것은 수많은 파편들 사이에서 빛나는 무지개를 보며 환희에 빠진 슈가니르 만카드였다. 아까까지 속상해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모험에 다시 한 번 빠져들어 아이처럼 기뻐하는 그였다. 하르헤레 게네크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얼음 동굴을 꽉 채운 무지개보다 그 웃음이 모험심을 자극했다. 드문 미소를 지어보인 하르헤레 게네크가 몸을 일으키고 입을 열었다.
“ 네가 들은 소문이 이거였나봐. 고드름이 깨지면서 생긴 파편이 빛을 반사한 순간을 어떤 모험가가 본 건가봐. 소문은 부풀려진다더니… 몬스터는 아니지만 엄청 예쁘긴 하네. 그렇지? ”
소문은 입을 타고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해 떠나는 것은 모험가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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