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KPota
간만에 탐정사무소의 책상 앞에 앉아 이 나간 마작패를 손 안에서 굴리던 샤라쿠 아키히코는 눈앞의 의뢰인을 바라보며 거 참 예술인의 정석 같은 모습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로 대충 묶은 길다란 갈색 머리칼이나 특이한 모양의 육각형 안경이나 민트색 양갈래 머리를 한 캐릭터의 티셔츠도 그렇지만. 정돈되지 않은 러프한 이미지와 달리 손톱은 짧게 잘랐다.
“꽤 험한 꼴을 봤군.” 사와다 코헤이는 그리 말하며 포장 상자를 열어 잘 포장된 케이크 세 조각을 꺼냈다. 좁은 부채꼴 모양의 조각 케이크 세 개가 차곡차곡 모여 있다. 사와다는 우선 딸기 쇼트 케이크를 병상의 탐정에게 내밀었다. 샤라쿠 아키히코는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포크를 들어 케이크의 말단을 잘라낸다. 자른 케이크를 찔러 입으로
“누군가 샤라쿠 군을 의태해서 영혼을 붙잡고 있군.” 간병인용 간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사쿠야 토무야가 중얼거렸다. “약에 취한 채로 격투를 벌이다가 4층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하기사 그 정도면 즉사하지 않은 게 용하지.” “약에 취한 채로요?” 늘상 머리카락으로 덮고 있던 왼눈을 훤하게
우노 마시로는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난 길쭉한 창문으로는 한낮이면 뙤약볕이 아슬아슬하게 기어들곤 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원치 않는지 암막 커튼을 친 상태였다. 하기사 6월의 볕이 가까스로 낮춰둔 서재의 온도를 올렸다가는 그의 심기가 아주 나빠질 것임이 분명했다. 이 안에서 허용된 열감은 담뱃불이 전부다. 창
손목에 밴드를 붙인 밴드맨이 있었다. 왼손으로 일렉기타의 목을 잡고 남은 오른손으로는 열심히 줄을 뜯는다. 그 손놀림이 여간 빠른 게 아니다. 줄 위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손가락을 유우정은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밴드 멤버를 보기 위해 시선을 돌린 순간 그것은 시야에 들어온다. 민트색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소녀가 그려진 반창고. 일렉기타의
나는 지독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막 기분 좋은 짓을 하려고 했는데 좀스러운 두통 따위에게 방해를 받으니 여간 화가 나는 게 아니다. 뇌내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성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되새기면서, 그건 제법 흥분되는 씬이었지, 하고 음흉하게 웃어대면서, 나는 오늘의 각성을 마쳤다. 침대에 걸터앉아 두통의 원인을 떠올렸다. 뻔하다. 어젯밤의 술판
가로 아홉 칸, 세로 아홉 칸의 쇼기판. 그 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두 진영의 말들. 누구도 쇼기판 위에 손을 얹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물은 이동한다. 피겨 선수가 빙상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매끄러운 움직임. 향이 보를 잡는다. 계가 향을 잡는다. 아직 경기 초반인지, 말이 많이 얽히지 않았다. 하지만 왕이 우세인지, 옥이 우세인지, 빤히 반상을 내려다 보는
登場人物 샤라쿠 아키히코写楽秋彦 탐정 사와다 코헤이沢田公平 부검의 모리시타 쿄이치로森下恭一郎 형사 하나야 케이花屋敬 프로파일러 사쿠야 하루咲夜春 서점 직원, 추리소설가 하나야 메이花屋芽衣 서점 점장, 해커 신도 쥬조眞堂十三 회사원 스즈키 노보루鈴木昇 회사원 이자요이 겐이치十六夜健一 쇼기 기사, 영세 야왕野王. 본명은 사쿠야 토무요咲夜十夢世 쿠보 카즈
간밤에 꾸었던 꿈을 되새긴다. 일어난 지 오 분도 되지 않았건만, 멀쩡하게 떠오르는 파편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얼굴만 아는 사람의 얼굴. 조금 웃긴 어구라고 생각했지만, 말 그대로 그의 얼굴 뿐이 뇌리에 부상했다. 그가 나와서 무슨 짓을 벌였더라...... 백그라운드도, 스토리도, 키워드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
시끄럽고 눅눅하며 어두침침한 폐쇄공간. 귓가에 흐르는 이 노래의 제목은 무얼까. 재미도 없고 특색도 없는 멜로디. 템포가 빠른 걸 보니 댄스곡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벽 너머 인간에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음량이면 그저 좋은 것이다. 양 무릎에 양 팔꿈치를 대어 깍지 낀 손. 구부정하게 휘어진 허리는 평소의 그와 어
눈이 시리도록 비린 향이 집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바닷내음의 비린내 따위와는 전혀 다른 향취였다. 만물의 창조주인 바다보다도 훨씬 살갗에 와닿는 것. 푸르름과 대조되는 붉음. 의식이 위태로이 흔들리는 꼴을 자각했다. 고작 이런, 값싼 텍스쳐 하나로, 공간이 이렇게나 다르게 보일 수 있다니. 당신이 들었다면 분명 웃었을 이야기였다. 카쿠核 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