なおと
『庭師は何を口遊む』의 스포일러 주의
나는 지독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막 기분 좋은 짓을 하려고 했는데 좀스러운 두통 따위에게 방해를 받으니 여간 화가 나는 게 아니다. 뇌내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성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되새기면서, 그건 제법 흥분되는 씬이었지, 하고 음흉하게 웃어대면서, 나는 오늘의 각성을 마쳤다.
침대에 걸터앉아 두통의 원인을 떠올렸다. 뻔하다. 어젯밤의 술판이 문제였던 거다.
어제는 무얼 했느냐 하면, 사립 탐정 일을 하는 나에게 의뢰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던 어제는 무얼 했느냐 하면, 길거리를 목적 없이 돌아다녔다.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시답잖은 녀석들에게 시비가 걸렸다. 이 새끼들, 대낮인데 참 혈기왕성하다. 아니, 인간은 보통 대낮에 혈기왕성하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강이를 걷어찼다. 콧날에 주먹을 내질렀다. 나보다 스무 살은 어려보이던 녀석들은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그 다음엔, 그래. 대충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서글서글한 얼굴의 식당 주인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에지마江島 씨, 요즘 자주 오네. 차슈 하나 더 얹어줄까? 의뢰가 들어오지 않은 궁핍한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 없는 제안이었다. 차슈 다섯 장이 들어간 돈코츠 라멘은 무척이나 기름지고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할 일도 없는데 집에 들어가서 잘까 고민하고 있으니 누군가에게 말을 걸렸다. 동업자라고 하기엔 애매한 수준의 지인이었다. 잡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그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말미마다 낄낄대는 웃음을 덧붙였는데, 아무래도 가벼운 수준의 약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곧이 곧대로 뭘 했냐고 물었고, 그는 곧이 곧대로 약물의 이름을 내뱉었다. 요즈음 이 거리에서 유행하는 녀석이었다. 그런 걸 하면 머리가 망가지는 기분이지 않냐고 물으니 그 기분이 좋아서 하는 거란다. 나는 맛대가리 없는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덩달아 낄낄 웃었다.
카페인의 힘으로 원기를 회복한 나는 다음으로 들를 장소를 모색했다. 이 거리에는 아는 사람이 많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많다. 그렇다면 들를 장소 역시 밤하늘의 별만치 많다. 약의 효과가 조금 가신 듯한 지인은 카페 옆 담벼락에서 담배를 세 대 정도 피우다가 사무소로 돌아갔다. 나는 손님을 한 명 잃은 담벼락 앞에서 네 대 째의 담배를 피우다가 목적지를 결정했다.
시간은 오후 세 시. 술집이 문을 열기엔 상당히 이른 시간. 더군다나 오늘은 주말도 아니다. 지금 거리로 나서봤자 조명을 켠 술집은 손에 꼽을 거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 거리의 대부분의 술집 오너와 안면이 있고, 그들이 가게로 출근하는 시간을 알고 있고, 그런 시간은 대체로 개점 시간보다 한두 시간이 이르기 마련이다.
알콜을 섭취할 생각에 조금 들뜬 나는 사장이 출근했을 법한 술집의 문을 두드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부재했다. 내가 이름을 불렀는데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들뜬 기분이 순식간에 꺾였다.
그 술집은 허름한 건물의 지하에 위치했다. 터덜터덜 걸음을 돌려 계단을 오르니 대낮의 햇살이 나를 반겨주었다.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엔 명백하게도 이르지만 햇살은 황당할 정도로 뜨겁다. 늘상 쓰고 다니는 선글라스를 콧등에 얹고 다닌 게 다행이었다. 한순간 내가 흡혈귀가 된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인간의 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는 전무하니 아직 인간으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옆옆 건물에 아는 사람의 서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나는 힘없는 걸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학가에 위치한, 자리 선정을 제법 괜찮게 한 서점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 남아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나운 인상의 점원이 나를 반겨줬다. 반겨줬다기엔 얼굴이 상당히 험악하여 어폐가 있지만, 어쨌거나 인사를 한 거라면 반겨준 게 아닌가. 나는 한쪽 손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단발머리의 점원은 나를 대놓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메이쨩은 출근 안 했어?"
점원은 당장이라도 근처 매대의 문고본을 집어들어 나에게 던질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올 때마다 마주치는 성격 나쁜 점원이다. 이젠 익숙할 지경이다.
"점장님이라면 직원실에 계세요."
그래도 이렇게 꼬박꼬박 대답해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감사의 인사 대신 윙크를 날려주니 점원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하여간 언제 보아도 귀염성 없는 녀석이다.
살풍경한 직원실에서 하나야 메이花屋芽衣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모니터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연결한, 간소한 구성이다. 나는 게임에 전혀 흥미가 없어서, 그녀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플레이어가 나쁜 녀석을 물리치는 게임인 건 확실하다.
하나야는 직원실로 들어오는 나를 한 번 흘기고 가벼운 인삿말을 내뱉었다.
"안녕, 아담アダム."
손에 든 게임 패드는 내려놓지 않은 채다.
"언제 봐도 게임을 하고 있네, 메이쨩."
"내 취미거든. 그쪽의 남색 취미보다야 건전하지."
"무슨 소리야. 메이쨩은 여색하지 않아? 피차일반이야."
동성애자 두 사람은 눈길을 교환하다가 피식 웃었다.
"오늘은 할 일이 없으신가 보지? 재미없는 서점까지 찾아온 걸 보아하니."
메이쨩이 적에게 크루시오라는 주문을 날리며 물었다.
"요즘은 무슨 책이 잘 나가?"
"에로 잡지."
"뭐야, 스테디셀러는 좀 제외해 봐."
"호모 잡지는 별로 안 팔리는 편이던데."
"그건 원래 마이너한 잡지잖아."
메이쨩이 드래곤을 소환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뻔하지. 개강 전에 교과서를 사는 대학생들의 공이 커. 온갖 재미없는 전공서를 사 가."
"원래 교과서는 재미없지 않아?"
"멀쩡하게 학교 나온 척을 하네."
"왜 그래, 나 의무교육까지는 받았어."
"중학교까진 나왔어? 장하네."
이후로 온갖 시시한 이야기를 했다. 일단은 멀쩡해 보이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메이쨩. 실상은 그녀가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온갖 잡무를 맡아 하고 있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날카로운 점원이지만, 메이쨩에게는 무척이나 상냥하고 헌신적인 직원인 듯하다. 이게 동성애의 저력인가. 사랑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아담의 일은 어때?"
하고 묻기에 적당히 밥벌어먹고 살 정도는 된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메이쨩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근처 술집이 아직 문을 안 열어서 나를 찾아 온 거지?"
정곡을 찔렸다. 나는 드래곤에서 내려와 적들을 박살내는 메이쨩을 보며, 기세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 아저씨, 최근에 사정이 좀 안 좋은가 봐. 생활 패턴이 한 시간 정도 느려진 것 같던데. 지금 가면 문 열었을 걸?"
"뭐야, 그걸 메이쨩이 어떻게 알아?"
"나도 자주 가거든. 우리 가게 알바생이랑."
역시 동성애의 힘이었구나.
"잠깐, 그럼 남자 역할은 누군데?"
구시대적인 질문을 하는 나의 얼굴에 게임 패드가 처박혔다. 메이쨩은 이런 점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콧등에 파고든 선글라스를 제대로 착용하면서, 나는 서점을 나섰다. 전혀 귀엽지 않은 점원은 끝내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시 아까의 술집으로 향했다. 전등이 켜지지 않아 어둑어둑한 계단을 감으로 밟고 내려간다. 아까와 다르게 어둠 저 너머에 인기척이 있다. 술집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오너인 줄만 알고 신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오늘은 출근이 좀 늦잖아. 무슨 일이야? 늙어서 잠이 많아졌어?"
그러자 전혀 모르는 남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누구십니까?"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눈앞의 신원미상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광량이 부족해서, 얼굴의 윤곽만이 겨우 인식되었다. 일단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저런 윤곽의 얼굴이 없다.
신원미상자는 덩달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둠 너머의 그 시선이 이상하게도 부담스러워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기나 했다.
"뭐야, 사장님이 아니라 손님이시구나?"
눈앞의 신원미상자는 나의 물음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안에 사장님 없어요?"
"모르겠습니다."
"왜요?"
"문이 닫혀있으니까요."
"......노크라도 해 보면 되잖아."
"그러려고 했습니다."
나는 답답한 손님을 옆으로 밀어내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노크를 하며 사장의 이름을 불렀다. 이내 가게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자물쇠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뒤에서 나타난 갸름한 얼굴의 사장은 나를 보고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에지마 씨, 오랜만이네요."
"응. 요새 좀 바빴거든."
그러더니 내 옆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다.
"아, 니카이도二階堂 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아무래도 신원미상자는 이 가게의 단골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사장의 환대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개점 이전의 싸늘한 공기가 바 안에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또다른 손님과 함께 카운터석에 앉았다. 이 시간에 손님이 오는 것도 드문 일인데, 손님을 둘이나 상대하기는 사장도 좀 힘들 것이었다.
니카이도라고 불린 손님은 싱겁게도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바까지 와서 맥주를 마시는 녀석과는 아무래도 친분을 쌓기 어렵다는 게 나의 견해다. 나는 그의 바로 옆 자리에서 러스티 네일을 주문했다.
"러스티 네일은 좀 달지 않습니까?"
니카이도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오른쪽 귓불에 귀걸이 자국이 남아 있다. 나는 잠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문앞에서 보았던, 그의 왼쪽 귓불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하지만 이내 납득했다. 한쪽에만 귀걸이를 하는 것엔 꽤나 유명한 함의가 있으니까.
"식전주로는 꽤 괜찮거든. 입맛을 돋구니까."
"그렇습니까?"
"응, 마셔본 적 있어? 러스티 네일."
"재료가 되는 리큐르가 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같이 술 먹는 친구가 있나 봐?"
"동료들과 가끔 마십니다."
"무슨 일을 하는데?"
"형사입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골랐다. 불법적인 일에 몸 담고 있는 사립 탐정으로서 무슨 말을 해야 법의 성긴 그물에 잡히지 않을지 고민했다.
그러자 니카이도는 나의 곤란한 얼굴을 보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형사가 아닙니다."
"응?"
"근신 중입니다."
나는 정곡을 찔린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근신 중이어도 형사는 형사인 거 아냐?"
"근신 중인 형사에게 수사권은 없습니다."
"으음, 그렇게 되나......"
"예, 그렇게 됩니다."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술집의 주인이 칵테일을 제조하고 있다. 내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말을 선별하고 있으니, 니카이도가 선수를 쳤다.
"이곳에 자주 오십니까?"
"엇, 그런 편이지. 여기 말고도, 이 근처 술집은 자주 다녀."
"저와는 방문하는 시간대가 다른 모양이군요."
"그야, 형사님은 늘 바쁘니까. 이런 대낮보단 저녁에 술을 드시겠지."
"네, 그렇습니다."
바텐더 옷을 입은 사장이 우리의 앞에 술잔을 내려주었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녀석의 사고회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금빛 음료 표면에 가지런하게 올라앉은 뽀얀 거품을 보고 있자니 참 맛있어 보인다. 니카이도 형사는 제 잔을 바라보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잔을 들어 맥주를 마셨다.
러스티 네일을 전부 입 안으로 털어넣은 후에도 새로운 손님은 오지 않았다. 옆 자리의 니카이도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침묵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뭐라도 말을 붙일까 생각하다가 사장을 불러 새로운 술을 주문했다. 진 마티니를 두 잔. 그러니 사장은 저녁도 되지 않았는데 술을 뭐 이리 많이 드시냐며 웃었다. 알코올이 얼마나 열량이 높은지 몰라? 이게 다 저녁밥이야, 저녁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적막을 쫓아냈다.
니카이도는 여전히 말이 없다. 오뚝한 콧대를 흘기니 옆으로 죽 찢어진 눈이 카운터 바로 위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카운터 안쪽에 TV가 달려있는 것도 아니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맥주는 쿼터도 남지 않은 상태. 조만간 추가 주문을 하거나 가게를 뜨거나 하겠다.
사장은 두 잔의 마티니를 내 앞에 내주었다. 역삼각형 잔에 잠긴 올리브 꼬챙이를 하나 빼먹으면서, 나는 나머지 한 잔을 니카이도에게 내밀었다. 입가의 점이 도드라지는 형사는 내 쪽을 보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저는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알아, 이쪽의 신사가 주문해드린 거야."
"신사?"
"나 말고 더 있어?"
줄창 걸치고 다녔던 새카만 선글라스를 올리며 대답했다. 니카이도는 비스듬하게 기울인 입술을 풀지도 않고 잔을 받아들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마셨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건 씁쓸한 진의 향. 그 뒤를 이어 미뢰에 파고드는 짭쪼롬한 올리브의 맛. 두 가지의 향취가 적절하게 섞여들어 지독하게 쓰지도 않고 끔찍하게 짜지도 않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이 가게의 마티니를 나는 좋아한다.
니카이도는 미간에 옅은 주름을 새기며 마티니를 목구멍으로 흘러넘기고 있었다. 알콜이 들어가 조금 흥이 난 나는 다시 사장을 불러 과일 안주를 주문했다. 나와 형사님 사이에 안주 그릇이 놓였고, 니카이도는 또 다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다시 또 그에게 과일 안주를 들이밀었다.
이십 여 분이 지난 후에, 나는 그가 이런 바에서 부러 맥주를 주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진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를 섞어 만드는 술. 와인인 베르무트야 도수가 그리 높지 않지만, 진은 진이다. 양주의 도수를 자랑한다는 말이다. 산술하자면 니카이도가 주문했던 맥주의 대략 여덟 배에서 열 배 정도. 물론 칵테일 잔의 용량은 맥주 잔의 이 할도 되지 않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맥주 한 잔 혹은 그 이상의 알코올이 칵테일 한 잔에 농축되어 있다는 게 된다.
얼굴이 발간 게 바의 어둑한 조명 아래서도 보였다.
근신 중인 형사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로 멍한 눈동자를 그저 이리저리 굴리고나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형사님."
사장이 서비스로 내어 준 미도리 사워는 좀 셨다. 그래서 서비스인 건가?
"인생의 무상감에 대해."
"술집까지 와선 철학적이네."
"철학?"
"형사님이면, 그래. 인생의 무상함 정도는 언제나 느끼지 않아?"
"몰라."
말이 짧아졌다.
"그런데 어쩌다가?"
"어머니가 죽었다."
무거운 주제를 대뜸 꺼내는 건 만취자의 특징이다. 뒷골목에서 탐정 일을 하다 보면 의외로 자주 맞닥뜨리는 시추에이션이다. 자연스러운 동조의 말을 고민하고 있으니, 니카이도는 테이블에 올려둔 교차한 양 팔에 고개를 묻었다. 오른쪽 눈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삼십 년 전에."
삼십 년 전에 죽은 가족의 일로 이렇게 침울해하면 세상을 대체 어떻게 살아나간단 말인가.
"형사님,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서른 일곱."
"일곱 살 때 일이 기억이 나?"
"동생이 사라졌다."
"동생?"
"여동생이 실종돼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뻔한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니카이도는 한참 어렸을 적에 여동생을 잃었다. 죽은 게 아니라, 잃어버렸다. 그의 부모님이 둘째 녀석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뛰어다녔지만 눈물겨운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웬만한 고통에 견줄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가 없는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아마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어쨌거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를 잃은 니카이도 가는 큰 슬픔에 잠겼다. 집안에 깊게 들어선 우울의 그림자에서 그의 어머니는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고, 이듬해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본 순간 니카이도 형사는 무언가의 강렬한 탈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온몸의 모공이 열려 자신의 체액이 몸 밖으로 밀려나는 듯한, 기분이 나쁘다 못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감각이 한순간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날부터 그는 비현실 속에서 살아갔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었다.
물론 가장 깊숙한 곳의 자아는 알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 맞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니카이도 형사는 비현실을 가장해야만 했다. 무언가의 붕괴를 막기 위한 최저한도의 눈속임을, 소학교 1학년의 니카이도 형사는 건설해냈다.
그렇다면 갑자기 비현실에 던져진 자신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선 무얼 하면 좋을까?
비현실에 던져진 트리거를 찾으면 된다.
어머니가 죽은 이유를 찾아내면 된다.
실종된 여동생의 행방을 알아내면 된다.
그것을 목표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니카이도 형사는 생각하고야 말았다.
"전부 헛소리야...... 알고 있어...... 하지만...... 사람은 알량해서......"
시간만 나면 정보 수집 기술을 익혔다. 동생의 마지막 발자취를 쫓았다. 민간인 신분으로는 탐색에 차질이 있었다. 그래서 경시청에 입사했다. 마음껏 온갖 사건의 데이터를 열람했다. 동생의 행방이 보일듯 말듯 하다가, 최근에서야 진전이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오컬트 교단. 그곳의 참고인. 기억이 묘연한 삼 년 전의 사건. 같은 팀 동료가 이상하게 증오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싫은 티를 냈다. 기억이 돌아왔다. 동생이 죽었다. 증오스러운 동료에게. 삼 년 전에 이미 죽어있었다. 이미 작고 단정한 유골이 되어 묻혀있었다.
꽃이 된 동생은 행복했을까? 나도 꽃이 될걸. 동료들의 열정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올곧게 정원을 향해 나아갈걸.
라는 마지막 말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꽃이 되었다니. 동생이 정원 아래에 묻혀있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주취자의 중얼거림을 끝까지 경청한 나는 네 번째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중간에, 니카이도 형사가 너무 힘들어 보여 한 잔을 더 시켜주긴 했다. 오늘의 술값을 걱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외상으로 달아둘까 생각하면서 벽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일곱 시가 넘어간다. 주변 테이블에도 손님이 들어왔다. 사장은 술과 안주를 제조하느라 나름 바빠 보인다. 일단 나를 상대할 여유는 없는 게 확실하다.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니카이도 형사를 데리고 바를 나섰다. 계산서 위에 맥주 한 잔 값을 더한 술값을 올려두는 건 잊지 않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갑에서 돈을 꺼냈던 기억은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훗날 주인이 메시지라도 남겨주겠지.
"형사님, 걸을 수 있어?"
"있어......"
"그쪽이야?"
"내 집은...... 반대쪽......"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오른쪽 귀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귀걸이, 한쪽에만 하고 다니지?"
"예......"
"그거, 호모라는 뜻이잖아."
"호모......?"
반응이 시원찮다. 아무래도 헛발질이 아닌가 싶다.
"......됐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2차라도 하러 가지. 내가 쏠게."
"2차......"
확실하다. 술을 마시면 앵무새가 되는 타입이다.
"당신 이야기가 조금 더 듣고 싶어졌어."
그리고 나는 니카이도 형사를 내 거처가 있는 방면으로 잡아끌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더라.
나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서 고민했다.
음, 아마 바로 밑의 술집에서 맥주를 실컷 마셨을 거다. 그 술집의 이색적인 배경음악이 귓가에 남아있다. 니카이도 형사는 무슨 말을 했더라. 귀걸이를 한쪽에만 끼면 동성애자냐고 물었던가.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맞다고 했다. 호모들의 전통적인 심볼이라고 지껄였다.
아, 그래서.
뭐가 아, 그래서야?
니카이도는 대답이 없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더라.
집에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엔 나만 타고 있지 않았다.
생각났다.
니카이도 형사의 집은 이곳에서 좀 떨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오늘 밤은 내 집에서 묵고 가라고.
이런, 미친.
왜 그런 제안을 했지?
상대는 형사야, 에지마. 그리고 이 나라는 총기 소유가 불법이란 말이다.
나는 쏜살같이 거실로 나갔다. 내 집에 손님을 재울만한 공간은 거실밖에 없다. 그리고 잡다한 불법적인 물건을 박스에 담아 보관하는 공간도 거실이다. 나의 소중한 리엔필드가 경찰 놈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허둥지둥 거실 구석으로 달려가 골판지 박스를 뒤졌다. 다행스럽게도 리엔필드는 박스 안쪽에 얌전히 숨어있었다.
한숨을 돌리고 거실을 몇 바퀴 빙빙 돌았다. 생각을 정리할 때 주로 취하는 모션이다. 여섯 바퀴 반 쯤 돌았을 때 거실 협탁에 붙은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 메모지. 내가 절대 쓰지 않는 색의 메모지.
지난 밤엔 즐거웠습니다.
식대 청구는 아래의 번호로 부탁드립니다.
二階堂七音
둥글둥글한 필체로 적힌 일본어가 세 줄. 그 아래에 전화번호로 추정되는 숫자가 한 줄.
현관 신발장을 확인했다. 내 소유의 신발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니카이도 형사는 완전히 이곳을 떠난 모양이다.
그보다, 이 이름은 어떻게 읽는 거지?
무난하게 나오토七音, 정도로 읽으면 되나.
휴대전화에 그의 전화번호를 기록해 두며 나는 생각했다.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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