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神

蛇神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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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아홉 칸, 세로 아홉 칸의 쇼기판. 그 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두 진영의 말들. 누구도 쇼기판 위에 손을 얹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물은 이동한다. 피겨 선수가 빙상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매끄러운 움직임. 향이 보를 잡는다. 계가 향을 잡는다. 아직 경기 초반인지, 말이 많이 얽히지 않았다. 하지만 왕이 우세인지, 옥이 우세인지, 빤히 반상을 내려다 보는 그는 알지 못한다. 체스는 조금 둘 줄 알지만 바둑이나 장기는 전혀 지식이 없다.

"초장부터 대단한 접전이지?"

숙였던 고개를 들어 반상 너머의 상대를 바라본다. 손목을 덮는 새하얀 하쿠에, 그와 대비되는 새빨간 하카마.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는 눈썹을 조금 가린다. 단정하게 기른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내린 채다.

"아, 그 표정을 보니 쇼기에는 문외한인 모양이구나."

사람 좋아 보이는 눈가를 살풋 접어 온화한 미소를 만들어낸다. 가벼이 올라간 입꼬리도, 고풍스러운 찻잔을 감싸쥔 새하얀 손가락도 이전 보았던 그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 우라도 겐지浦戸源氏는 마른침을 삼킨다.

───카미나가 류센神永龍泉.

우라도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가마쿠라의 한 신사를 지키는 무녀.

어머니의 뒤를 이어 무녀가 되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그런 혈통은 모계 유전인 모양이다.

생각지 못한 방문객, 예상치 못한 상황. 우라도는 급히 주위를 살핀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 다다미 위에, 두 사람은 쇼기판을 가운데에 두고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 외의 물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다미로 이루어진 망망대해다.

기물은 열심히 움직인다. 여전히 어느 쪽이 우세한지는 알 수 없다.

"......카미나가? 여긴, 뭐야?"

무녀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댄다. 천천히,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삼켜내고 나서야, 가느다란 입술을 움직인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너를 가두어 둘 호텔도 아니고, 산 제물을 바칠 제단도 아니니."

여긴 너와 나의 꿈 속이야. 카미나가는 그리 말하며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꿈?"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너의 꿈에 방문한 것이지."

"방문? 네가, 왜?"

"최근에, 이상한 일을 겪지 않았니?"

"이상한 일이라면......"

우라도는 잠시 입을 다문다.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댄다. 이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카미나가가 이상을 묻는다면, 그것은 상당히 좁은 바운더리를 가지기 때문에. 그가 고민하는 것은 최근의 범위였다.

"한둘이 아닌가 보구나."

"아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 전부 말해주지 않을래?"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카미나가."

"뭘?"

"내가 이상한 일을 겪은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카미나가는 웃는다. 내려 묶은 머리칼을 매만지더니, 그의 앞에 놓인 찻잔을 한 손으로 가리킨다.

우라도는 흠칫 몸을 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찻잔이다.

"네가 만난 그 사람이, 내 지인이기 때문이야."

"지인?"

"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니?"

생각을 정리한다. 카미나가의 지인일 사람이 누구일지 고민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꿈통조림의 면면들이었으나,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을 듯했다. 근거는 없다. 단순한 직감이다. 그리고 이런 괴상황에서는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의외로 성공률이 높다. 어떤 의미에서의 성공이냐고 묻는다면 그야, 목숨줄을 놓치지 않는 것에 성공한다는 것이지.

"이상한 힘을 쓰는 유카타 차림의 남자를 만났어."

우라도는 그 날의 일을 반추한다.

도쿄 어딘가에서 작가 모임이 있었다. 친목 도모의 목적도 있긴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추후 발간될 단편 앤솔로지에 대한 회의를 했다. 다들 지향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니 회의에 큰 트러블은 없었다. 모두가 정해진 규율에 대강 만족하였고, 그럼 어느 날 어느 시간에 같은 곳에서 다시 모입시다, 라는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작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로가데 주노는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모임 장소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닐 뿐더러, 이곳은 교통량이 살인적으로 많아 늘상 정체가 심각하므로. 게다가 주차할 장소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버스를 타고 오는 편이 간편하다. 자연스럽게 귀가길에도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사건은 그 버스에서 일어났다.

승객이 이상하리만치 없는 버스였다. 막 승차한 로가데를 포함해 딱 두 명이 있다. 평일 낮이니 그럴 법도 한가, 라는 생각은 했지만, 올 때도 이렇게까지 승객이 없지는 않았다.

다른 승객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버스 중간 즈음의 좌석에 앉아 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군청색의 유카타를 매우 단정치 못하게 입고 있어서, 설마 야쿠자가 아닌가, 하고 경계하며 통로를 걷는다. 날카로운 눈매가 슬쩍 그를 흘기다가 떠났다. 귓가에 치렁치렁 달린 피어스며 귀걸이가 그 추측에 더욱 힘을 싣는다.

로가데는 버스 뒷편에 앉았다. 이 정류장에서 탑승한 승객은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버스가 출발한다. 창 너머의 풍경이 슬슬 움직인다.

로가데는 일곱 정거장 후에 내린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에 따르면, 십 칠 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딱히 눈을 붙일 여유도 없다. 창 밖의 풍경이나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옳다. 그는 시선을 창 너머로 고정시킨다.

오 분 정도를 그러고 있었을까. 무언가의 이변을 눈치챘다.

다음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쌩하니 정류장을 지나쳐 간 것이다. 처음에는 버스 기사의 실수라고 생각하여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그 다음 정류장에서도 같은 일은 반복됐다.

정류장을 두 번 지나치고 나서야 로가데는 또 다른 기이한 점을 눈치채고 만다.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 누구도 이 버스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보통 버스가 접근하면 저것이 무슨 버스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이라도 한 번 돌리지 않나. 하지만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치 저 곳에는 어떤 버스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급하게 버스 내부를 살핀다. 버스 기사와 또 다른 승객의 등만이 보일 뿐이다. 버스는 경쾌하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이, 기사님!"

갑작스런 고성에 로가데는 일순 몸을 움츠린다. 유카타 차림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선 성큼성큼 기사석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여왔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버스가 손님을 태워야지. 레이스만 하면 되겠어?"

대답은 없다.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로가데는 슬금슬금 좌석을 벗어나 남자의 옆으로 접근한다. 가만히 있어 봤자 좋을 건 없어 보였으므로.

남자는 다시금 로가데를 흘기다가, 기사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버스가 몹시 흔들린다. 로가데는 근처의 봉을 꽉 잡았지만, 남자는 다리 힘만으로 버티고 서 있다.

창 너머로 정류장이 휙 스쳐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 버스에 관심이 없다.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저기, 지금 지나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는 그제야 로가데를 마주본다. 사납게 치켜올라간 두 눈을 테가 얇은, 둥그런 안경으로 가리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키도 크고 체격도 좋다. 일렁이는 억센 기운에 로가데는 약간 압도당한다.

"그럼?"

"정류장의 사람들, 아예 이 버스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선도 한번 주지 않아요."

"허!"

어이없다는 뜻을 내포한 탄식. 남자는 또다시 고개를 돌려 버스 기사를 바라본다. 한 걸음 더 그쪽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냅다 상대의 멱살을 잡는다. 로가데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차 세워."

대답은 없다. 아까와 같이, 반응이랄 것은 하나도 없다. 두 손은 꿋꿋하게 버스의 거대한 핸들을 부여잡고 있다.

"말로 해선 안 되겠네. 하여간 이런 새끼들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싣는다. 남자는 한번 숨을 흡, 하고 삼키더니, 버스 기사를 좌석에서 끌어내린다. 기사의 두 다리가 허공을 가르기에, 로가데는 놀란 눈으로 몇 걸음을 더 물러선다. 가속을 잃은 버스가 서서히 느려진다. 그럼에도 도로 위의 차들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건......

통로에 내던져진 기사는 잠시간 움직임이 없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얼굴이다. 괴력의 유카타남은 운전석으로 몸을 옮긴다.

"문 여는 버튼이 뭐지?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겼어?"

로가데는 주춤주춤 기사석으로 다가선다. 버스야 그 자신도 몰아보지 않았으니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발목에 노끈 같은 것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덫처럼 강하게 조여들어온다.

어라, 이건 아픈데......

로가데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척 보기에도 노끈이 아니다.

검은색의, 부피가 있는 탱탱한(아니, 흐물흐물한?) 촉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미끈하다)가 발목 한 쪽을 칭칭 감고 있다.

뒷목이 싸르르하니 오싹하다. 도무지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촉수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이것이 보통 우악스러운 힘으로 매여있는 것이 아니라, 로가데는 억눌린 신음을 잇새로 흘린다. 갈수록 점점 더 죄어온다. 아, 이런, 잘못하면 부러진다......

"아, 아악."

외마디 비명. 처음에는 운전석의 남자가 지른 것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앞이 핑글 도는 듯한 고통에, 로가데는 어금니를 악문다.

"저기, 당신! 빨리 뭐라도 좀."

"아이, 젠장맞을."

"왜......?!"

"문 여는 버튼을 작살을 내놨네. 이러니깐 못 찾지. 쯧!"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선, 느긋하게 창 너머를 한 번 훑다가, 뒤를 돌아 로가데를 향해 다가온다.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본 것은 같았지만, 기이하리만치 반응이 없다. 어쩌면 눈 앞의 이 남자도 이상한 생물인 것은 아닌가. 아아, 이런,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곳이 없어......

"되도록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는데. 하여간 차토구아의 아랫것들은 멍청해서 영 대화할 맛이 안 나는군."

차토구아?

머릿속의 사전을 급히 뒤적였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이 사람,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남자는 로가데를 지나친다. 잠시 시야에 들어왔던 옆 얼굴에는, 사람의 피부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다닥다닥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로가데는 가늘게 숨을 떤다. 

차라리 야쿠자였으면 마음이 편할 것을......

등 뒤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찰흙더미에 폭죽을 넣고 터뜨린 듯한 소리다.

으스러지기 직전이었던 발목이 가벼워졌다. 로가데는 순간 비틀대다가, 겨우 의자를 잡고 버틴다. 

남자가 유유히 로가데의 앞으로 돌아온다. 군청색 유카타가 우아하게 펄럭였다.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가만히 그를 내려다본다.

유카타로 가려지지 않은 피부는 온통, 비늘로 뒤덮여 있다.

"목적지가 어디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아, 아, 하는 신음뿐이 흘러나올 뿐이라.

"이런,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만. 잘생긴 남자한테는 특히."

남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매만진다.

헐렁한 유카타의 옷깃 안에서 뱀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나온다. 온 몸이 울긋불긋, 마치 꽃이 핀 듯한, 아름다운 자태.

이마에 하얀 초승달이 새겨져 있다.

"다, 다, 당신, 무슨......"

"에휴, 발광시킬 생각은 아니었어. 믿어 줘."

뱀이 로가데의 목을 감아온다. 꾸물꾸물, 꾸물꾸물하며, 코 앞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쉭쉭댄다.

"아아, 알았어 알았어. 내가 알아서 데려다 놓을 테니까, 잠깐만 자고 있자. 미안하게 됐어, 잘생긴 친구."

"......그러고 눈을 떠 보니 집 침대였지."

찻잔이 반쯤 비워졌다. 이야기를 하며 한 모금 두 모금 마셔댄 결과물이었다. 카미나가는 여전한 온화한 표정으로 우라도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종내에는 큭큭대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아냐, 그 분 답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 분?"

"응, 네가 마주쳤던 유카타 차림의 남자."

"......인간은 맞는 거야?"

반상의 기물은 어느샌가 멈춰 있다. 게임이 끝난 모양이다. 왕 편의 말이 현저하게 적은 것을 보니, 옥의 승리인 걸까.

"응, 아직은 명명백백한 인간."

"아직은?"

"맞아."

"그럼, 나중에는?"

"살아있는 신으로 모셔질 거야. 우리 신사에."

"살아있는 신......?"

"신이라기보단 토템에 가까울까?"

"미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설명해 줄까? 왜 그 분이 생신生神이 될 운명인지."

"......남의 이야기를 그렇게 막 해도 돼?"

카미나가는 다시 웃었다. 잠시 말들이 행진을 멈춘 반상을 내려다보다가, 얽히고 설킨 말들을 천천히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기물을 하나하나 주워든다.

"이건 그 분의 의뢰야."

"의뢰라니?"

"모르는 사람을 멋대로 겁주고 돌려보냈으니까. 아무래도 꺼림칙하셨던가봐. 우리 신사에 와서 털어놓으셨지. 그런데 어쩐지 인상착의가 너랑 비슷해서, 사진을 보여드리니 네가 맞는 것 같다고 그러셔서."

"아, 그래서...... 그럼 따로 약속을 잡지 그랬어."

"겐지, 결혼했잖아. 일과 중에 다른 여자 만나면 곤란하지 않아?"

왕 측이 나란하게 늘어섰다. 옥은 아직 카미나가의 손아귀 안에 있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꿈에서 만나는 게 더 편하지?"

"당황스럽긴 하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찰나 대화가 끊겼다. 카미나가는 조심스레 옥을 왕의 반대편에 내려둔다. 반상에 어지러이 펼쳐져 있던 나머지 기물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겨울의 밤은 기니까, 그 분 이야기를 좀 해 줄게."

"어디부터 시작하지?"

"옛날 옛적부터."

보가 움직였다. 반대 측 보도 움직인다. 금이 움직이고, 향이 움직인다. 싸움이 도통 끊이지 않는다.

옛날 옛적에, 어느 산골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외부와는 상당히 단절된 채로, 이따금 여러 마을을 순회하는 보부상이 마을에 들르는 것을 빼면 외부와의 교류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마을은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신님을 한 분 섬겼습니다. 검은 뱀의 모습을 한 신님은 마을을 굽어살피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신님은 그 대가로 마을 사람들의 감사를 받았습니다. 일 년에 한 가족 씩 돌아가며 신사를 관리하는 것이 그 감사의 형태였습니다. 겨우 그 정도의 감사로 신님은 마을을 잘 보살펴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이번 해에 신님을 모셔야 할 가족이 야반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사방이 빽빽한 숲으로 막힌 산골 생활에 질려 전 재산을 들고 도망친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노한 신님의 저주를 받은 가족은 얼마 가지 않아 불우하게 죽고 맙니다. 몇 십 년 전에 신을 모시지 않고 도망쳐버린 가족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까요.

신혼부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대책을 세웠습니다. 신님의 저주를 피할 대책을요. 그것이 무언가 하면, 다른 신님을 섬겨 그 신께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께 저희의 모든 것을 줄 테니 제발 저 산골짜기의 신이 저희 가족을 참혹하게 죽이지 못하게 해 주세요. 도시에 도착한 신혼부부는 새로운 신께 그렇게 빌었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신은 응답했습니다. 그 증거로 신성한 뱀을 항아리에 담아 하사했습니다. 이 뱀이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하지만 빛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나가려 들 테니, 뚜껑을 꼭 닫아 놓거라.

신혼부부는 새로운 신님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들은 신성한 뱀을 항아리에 모시고, 도시에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장자가 결혼하게 되자, 산골짜기의 신이 자식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한 부부는 장자에게 항아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절대로 뚜껑을 열면 안 된다는 전언과 함께. 장자는 부모의 말을 듣고, 항아리를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겨두게 됩니다.

그런 전언이 몇 대를 거쳤습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들은 그들은 무탈한 인생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전언은 깨지고 맙니다.

그 분에 의해서.

"잠깐, 질문이 하나 있어."

카미나가는 제 잔에 따뜻한 찻물을 붓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주전자는 역시, 바로 전까지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으음, 뭘까?"

"신혼부부는 그렇게 급하게 산골 마을을 떠나야 했어? 일 년 동안 신을 모시고, 그 다음 해에 떠나면 안 되었던 거야?"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구나."

새로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카미나가는 말을 잇는다.

"일 년 동안 신을 모셔도, 몇 년이 흐르면 다시 차례가 돌아오게 되잖아. 그 때 그 가족이 없으면 신은 노하게 돼."

"왜? 신은 가족이 마을을 떠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건가?"

"맞아. 거칠게 말하자면, 그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주박에 걸려 있어. 마을 밖으로 이주해서는 안 된다는 지독한 주박."

"이런......"

"일 년 동안 신사만 관리하면 되니 신을 모시는 것 치고는 난이도가 낮지. 어딘가의 누구는 산 제물을 원하기도 하는데 말야. 하지만 그건 눈속임. 마을 사람들을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서, 영원히 신 자신을 모시게 한다. 영원히 신앙을 잃지 않게 한다. 그게 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거였어."

"정말 지독하군."

"맞아, 지독해."

"지금도 그 마을은 실존해?"

"아아, 아마도......"

우라도는 고개를 저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그 신성한 뱀의 항아리를 열어버린 게, 그 분이라는 이야기야?"

"맞아. 그게 거의 삼십 년 전의 일."

"......그 분 연세가?"

"올해로 마흔 아홉."

"막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사달이......"

"맞아. 호기심에 항아리를 열고, 신성한 뱀을 몸에 들였어. 아주 고통스러웠을 거야. 별 것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 그런 생물을 몸에 들인다는 건 목숨을 거는 행위니까."

"그래서, 그 분은 스스로가 신성한 뱀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분도, 신성한 뱀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자각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하고, 어쩐지 정신도 오락가락하니, 스스로 우리 신사를 찾아오신 거고. 그 땐 우리 어머니가 그 분을 봐 주셨지."

"거기서 결론이 난 거야? 살아있는 신으로 모시자고?"

"음, 아니. 실은 신성한 뱀은 그 자체로는 별 효능이 없어. 신님은 단순히 보호의 증거로 신성한 뱀을 내려주신 거니까. 조금 잽싸고 공격력이 있긴 하지만 그건 평범한 뱀에 가까운 생물. 그래서 어머니께선, 이걸 뱉어내야 한다라고 하셨다가."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그의 가문을 뒷조사했다. 그런 신을 믿는 자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런 뱀까지 하사한 집안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하사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것이 가문의 보호를 의미하는 거라면 쉽사리 뱉어내게 할 수는 없다. 뱉어낸다면 신성한 뱀은 잽싸게 도망가고 말 테니까. 그건 가문의 쇠락과 동치다.

"......항아리를 대신해서 뱀을 몸에 품게 했다?"

카미나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은은한 미소가 입가에 배어있었지만, 눈만은 웃지 않았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했어. 본존을 모시는 불단을 거실에 두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본존이 생활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신앙의 효과가 떨어진다. 그런 의미인가. 신을 믿지 못하는 우라도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카미나가는 우라도의 얼굴을 살피다가, 어딘가 슬퍼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칠팔 년 전에, 모종의 사정으로 그 분이 한국에 가신 일이 있었어. 한 달 정도를 머무르셨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아?"

"......누가 죽었어?"

"동생의 아내가 폭발 사고에 휘말려서 죽었어."

우라도는 반쯤 열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카미나가를 바라본다.

"그 뒤로는 절대 도쿄를 벗어나시지 않아. 해외는 당연지사고."

다시금 짧은 침묵. 기물만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번에는 명백히 왕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말 수가 확연히 차이난다.

"그러니 그 분은 살아있는 신이 될 수 밖에 없지. 적어도 주변 사람이 전부 멀쩡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말이야, 먼저 죽어서는 안 돼. 계속 살아가며 검은 뱀신의 저주를 튕겨내야 하는 거야."

"마흔 아홉이면, 부모님은 먼저 돌아가실 테고. 그럼 동생보다만 오래 살면...... 앗......"

"동생의 아이는? 그 아이의 아이는? 비단 직계 뿐만이 아냐. 방계도, 직계보다는 약하지만 영향을 받아. 방계까지 센다면, 얼마나 많은 자손이 그 보호를 받고 살아갈 거라 생각해?"

"......평생을 살아있어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해?"

"겐지도 보았잖아, 그 비늘."

"......"

"신성한 뱀은 항아리 안에서 몇 백 년을 살았지."

"그렇다면, 이미 뱀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신에게 직접 부여받은 신성까지 제대로 흡수하고 마셨어......"

기물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번에는 결판이 생각보다 빠르게 났다. 왕장의 승리다.

"그 분, 이름은 어떻게 돼?"

"사쿠야 토무야, 라고 읽고, 이렇게 써."

어느 새 생겨난 화선지 위에, 카미나가는 검게 물든 붓을 천천히 칠한다.

咲夜十夢闇

"......이상한 이름이군."

"한자만 보면 어떻게 읽는지 잘 모르겠지?"

"쥬무안? 괴상한 이름으로 읽히네."

"이게 그 가문의 전통이야. 저주하기 위해 찾아온 뱀신이, 한자만 보고는 누가 누군지 찾아볼 수 없도록 하려고 했대. 집 안에서 토무야, 라고 불러도 한자와는 매치가 잘 안 되잖아? ......그게 정말 저주 회피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긴 꿈이었다. 어쩐지 올해 들어 꿈에 얽힌 일이 많다. 우라도는 침대에 멍하니 누워선 생각한다.

무심코 근처에 있던 스마트폰을 손에 든다. 카미나가가 이야기 해 주었던 그를 검색해 본다. 적은 양의 기사가 서치에 잡혔고, 짤막한 기사 몇 개를 훑은 후에야 그의 직업이 전통복 재단사임을 알게 되었다. 동생 사쿠야 토무요는 이자요이 겐이치라는 가명으로 쇼기 기사를 하고 있다.

이자요이十六夜. 아아, 잘 비틀면 토무요라고도 읽히는구나. 재미있는 언어유희다.

그는 제 형이 훗날 살아있는 신으로 섬겨질 것을 알까......

가까운 가족이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통복은 어른이 된 이후로는 입어본 적이 없다.

여름에는 도쿄에서도 마츠리가 열린다. 상당히 규모가 큰 불꽃놀이를 한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둘 다 평상복을 입었다. 유카타가 집에 없다는 이유였다.

전통복이라......

우라도는 따스한 아침 햇살 속에서 몇 번을 뒤척이다가, 부부 동반으로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남이 처한 상황과는 다르게 단순하고 낙관적이고, 또 포근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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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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