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4화

익명 by 시온
8
0
0


“내일은 잘 부탁드립니다요!”

“하하, 저야말로!”

두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더니 요란스럽게 웃어댔다. 그들 주위로 여성 둘 남자 둘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여섯 명의 청년들은 내일 있을 보스전에서 보스를 상대하게 될 C파티였다. 슈크림은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나 가슴 한켠으로는 걱정이 가득했다. 합병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저 붉은 머리랑 짧은 머리 남자 둘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연계 연습도 설렁설렁 넘겼다. 다들 슈크림보다는 게임을 잘 하는 걸로 보아 일단은 안심하려고 했지만….

“하아…….”

“휴…….”

두 개의 한숨소리. 슈크림은 깜짝 놀라 옆을 보았다. 붉은 머리의… 이름이 신속배달이라고 했던가. 그 남자 또한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더니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하하, 죄송합니다. 꼴사나운 모습을…….”

“아, 아니에요.”

그렇게 답하고는 여전히 먹자판인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금 올라오려는 한숨을 꾸욱 참았다.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신속배달의 질문에 슈크림은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될까, 고민하다가 이내 모두가 품고 있을 고민거리를 입에 담았다.

“내일 있을 보스전이 걱정되어서요.”

“아아, 저도 그래요. 지금 당장 경험치나 재료를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고 싶어요. 으윽,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답답함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네요.”

슈크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남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 초조함은 역시 보스전을 완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슈크림은 아직 아슬아슬하게 레벨이 9밖에 되지 않아 지금부터는 뭘 해도 레벨이 오르지 않겠지만.

“동감해요. 이렇게 긴장을 푸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쉬거나 조금 더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맞죠…. 아, 말 놓으셔도 되는데.”

“네? 그래도 되나요…?”

요즘 사람들은 진도가 빠르네.

“…그래도 1층을 클리어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겠어요. 뭐가 어찌 됐든 하겠다 결심했으면 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탱커는 저니까, 위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신속배달이 가슴팍을 팍팍 쳤다. 그 모습에 슈크림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메이스가 주무기인 슈크림은 탱커가 적의 공격을 받아내면 그 틈을 노려 공격하면 되므로 집중만 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어, 이열~ 거기 분위기 뭐냐?”

“야, 새끼, 새치기 하고 앉았네.”

혁과 왕주먹이 놀리듯 말했다. 슈크림은 웃음으로 무미하려 했으나 신속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 난 건가?

“…난 이만 갈게. 장비 점검도 해야 하니까.”

화라도 낼 줄 알았던 신속배달은 여관 밖으로 나갔다. 일순 조용해졌지만, 혁이 우렁차가 웃으며 “진지충 새끼 냅두고 더 마셔~!” 라고 말했다. 슈크림 또한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같이 있는 다른 여성 플레이어가 신경쓰여 그럴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길어질 것 같았다.


“헉, 허억…….”

시간은 어느덧 오후 11시를 가리켰다. 거짓된 밤하늘의 모습도 어느샌가 익숙해졌다. 모두가 잠들 그 시간에, 여전히 필드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림자가 둘 보였다.

“……측면 공격을 피할 땐 하체를 움직이지 마.”

스테노는 검을 역수로 쥔 채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스위치’ 연계를 배운다는 명목 하에 마지막으로 경험치를 벌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린은 스테노에게 2시간에 한 번 꼴로 충고했다. 솔직히 거의 내버려 둔 수준이었다. 마린은 알아서 몹을 잡았고, 스테노는 그 주변에서 똑같이 몹을 사냥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7시간이 지났다.

“응.”

그러나 스테노는 힘들단 소리 한 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자세를 잡자 아래로 내린 검신이 푸르게 빛났다. 짧은 기합성과 함께 우측 아래에서 대각선 위로 검을 베어 올렸다. 다가오던 몬스터는 괴성을 내지르며 풀밭에 쓰러지더니 사라졌다.

“헉, 후우…….”

한손검 단발베기 ‘슬랜트’는 스테노가 애용하는 소드 스킬 중 하나였다.

또 하나는 수평베기인 ‘호리전틀’ 둘 다 단순하고 묵직한 기술이었다. 주로 이 두 가지 기술로 스테노는 수 많은 몹을 쓰러트렸다. 질리지도 않고. 손에 쥔 검을 바라보았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아무래도 한계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스테노가 고개를 들자, 달빛을 받아 마린의 대낫이 번뜩였다. 그 모습이 소름이 돋으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했다.

스테노는 땀을 닦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마린. 더.”

“……겨우 서 있을 정도인데. 됐어, 나 혼자 할테니 돌아가.”

솔직히 스위치 로테이션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둘 뿐인 파티는 방해나 되지 않는 게 다행일 테지. 마린은 혼자서도 보스를 상태할 수 있지만, 스테노가 있는 이상 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보스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러나…… 보스의 가장 큰 문제는 피통이 크다는 것이다. 시스템상 혼자 잡는 건 100%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 레벨을 더 올릴 수 있다면 모를까.

“나, 많이 부족해.”

“…….”

“이래선 마린을 지킬 수 없어.”

“뭐?”

예상치 못한 발언에 마린이 굳었다. 지금 이 사람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거지?

“나 혼자선 보스 못 잡아. 모두를 지키는 것도 불가능해. 그러니 적어도, 곁에 있는 사람은 지켜야 해.”

스테노는 허리를 곧바로 폈다. 그러고는 새까만 눈으로 마린을 바라보았다. 마린의 눈이 보일 가능성은 낮았다. 후드로 얼굴을 거의 가렸으니까.

지키겠다고?

우리는 보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보스전에 참가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면, 본말 전도가 되지 않는가.

“그럴 필요는 없어. 넌 네가 살아남는 생각만 하면 돼.”

“그건 안돼.”

스테노의 목소리는 처음 봤을 때처럼 단호했다.

“마린도 살아.”

마린은 손에 쥔 낫의 막대 부분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살아남는다. 마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싸워 왔던 게 아니다. 그저 ‘게임’을 할 뿐이다. 이 세계가 데스 게임이 되었든 아니든, 레벨과 스탯을 올려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알고 있었을 텐데.

“…괜한 참견이네.”

마린은 몬스터의 씨가 말라버린 필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스전엔 총 서른 여덟 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하게 되었다. 여섯 명씩 묶은 파티가 여섯 개, 마린과 스테노의 파티가 하나. 총 일곱 개의 파티로 보스전에 도전하게 되었다. 모두가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상대한 몬스터는 겨우 인간 몸집, 그것보다 더 작은 체형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번에 쓰러트릴 ‘일팽 더 코볼트 로드’는 다르다.

“D조, 잡몹 나옵니다!”

“이미 견제 중이야!”

“돌진공격 옵니다! A, B팀!”

“알고 있다고~!”

신속배달이 방패를 들었음에도 혁이 돌진했다. “야, 뒤로 빠져!” 그렇게 소리를 쳐도 혁은 모르는 척, 보스의 다리를 검으로 베어냈다. 그 순간, 보스의 어그로가 C팀을 향해 갔다. 레이드 리더는 뒤로 빠지고 A팀이 보조에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개판이네.

답이 없다. 후방에서 지원을 맡은 마린이 욕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더이상 파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탱이 탱킹을 안하고, 미끼가 미끼 역할을 못 할 정도로 엉망인데, 마린이 나서지 말아야 할 법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저 혁이라는 남자가 제일 방해된다. 저 남자가 단독 행동만 하지 않았더라면.

“거기…….”

“비켜줘.”

스테노가 지면을 밟았다. 허점을 노린 코볼트의 졸개가 슈크림 쪽으로 달려왔다. 그 사이를 끼어든 스테노가 베어서 날려 버렸다. “악!” 갑작스럽게 끼어든 스테노 탓에 혁이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신속배달은 넘어진 혁 앞으로 뛰어가 방패를 세웠다.

“뭐해, 일어나!”

“닥쳐, 시발새끼야….”

가오가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욕을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C파티의 앞에 서게 된 스테노의 어깨를 턱 잡았다.

“끼어들지마, 씨발!”

레이드의 분위기는 개판이 났다. 다른 파티와의 연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어떻게든 엄호해주려는 스테노에게 열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니. 레이드 리더 한 명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자 그때, 마린이 낫을 세운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 건….”

마린이 발을 들었다. 그러고는 거칠게 혁의 등을 걷어 찼다.

“너야.”

또다시 바닥에 엎어진 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신속배달과 슈크림이 놀란 표정으로 마린을 쳐다보았다.

“C파티, 백업 좀 해줄래.”

“어, 어어.”

신속배달이 대방패를 들었다. 슈도 메이스를 고쳐 들었고, 어쩔 줄 몰라하던 다른 파티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노, 접근하는 졸개들은….”

“잡을게.”

스테노가 검을 뽑아들고는 넘어져 있는 혁을 지나쳐 달려나갔다. 코볼트의 졸개들이 스테노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것을 마치 가볍다는 듯이 검으로 쳐 내고는 다리 쪽을 베어 내었다.

슈크림은 스테노가 다리를 베자 곧바로 메이스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가격했고, 놈의 HP가 거의 줄자 신속이 방패로 돌진해 놈을 깔아 뭉겠다. 그렇게 한 마리는 잡았다.

그 사이에 마린은 보스가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갔고, 낫으로 코볼트의 다리를 크게 베어 냈다. 그렇게 파티는 재정비 되었다.남은 코볼트의 졸개는 총 여섯 마리였다. 남은 세 마리는 D,E팀이 맡고 있었으므로 나머지는 C팀이 상대하는 꼴이 되었다.

슈크림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 왔다.

“할 수 있어!”

곁에서 방패를 든 신속배달이 그렇게 말했다. 슈크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는 레이드의 리더가 속한 A,B팀이 담당하고 있다고는 한들, 좀처럼 피가 줄지 않고 있었다. 그떄 마침 가까워진 마린에게 칼단발을 한 여성이 다가왔다.

“우리를 지원해줄 수 있어?”

“……네.”

마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애초에 목적은 보스를 잡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 온 스테노도 앞머리를 흘날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보스 공략에 들어갔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