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색 연구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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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탐정사무소의 책상 앞에 앉아 이 나간 마작패를 손 안에서 굴리던 샤라쿠 아키히코는 눈앞의 의뢰인을 바라보며 거 참 예술인의 정석 같은 모습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로 대충 묶은 길다란 갈색 머리칼이나 특이한 모양의 육각형 안경이나 민트색 양갈래 머리를 한 캐릭터의 티셔츠도 그렇지만. 정돈되지 않은 러프한 이미지와 달리 손톱은 짧게 잘랐다.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일 것이다. 손가락에 잡힌 선 모양의 굳은살은 기타 줄을 잡을 때 생긴 것이고. 관자놀이 부근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눌려있다. 귀를 전부 덮는 귀마개나 헤드폰을 자주 썼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 특유의 거북목. 깨끗하게 유지된 아이폰의 충전구 근처에는 흉터가 많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의 충전구는 유선 이어폰의 단자가 되었다. 무선 이어폰이 널리 보급된 현재 유선 이어폰을 선호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 무선 이어폰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 그리고 유선 이어폰만이 줄 수 있는 고음질을 즐기는 사람. 기타 줄을 잡고 헤드폰을 쓰는 아이폰 유저가 무선 이어폰에 관심이 없을 리는 없으니 그는 후자의 인간에 속한다. 한편으로 팔을 당길 때 소매 안쪽으로 흘긋 보이는 주삿자국은 분명 비합법적인 약물을 투여한 흔적처럼 보였다. 당뇨 환자는 인슐린 주사를 손목에 놓지 않는다. 링거의 바늘은 저렇게 조밀한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손목에 주사기를 꽂을 일은 웬만해서는 마약뿐이다.

눈앞의 의뢰인은 어제 갑작스레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의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샤라쿠의 업무용 스마트폰에는 물론 그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이름을 먼저 물을까 고민하고 있으니 곧장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모릅니다. 샤라쿠는 그의 이름을 딱히 묻지 않고 내일 사무소로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사람을 찾기 위해 탐정에게 손을 뻗쳤다. 그런데 정작 그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조사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닌 ‘모르는 것’을 먼저 내놓았다. 보통 사람을 찾으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에 대해 아는 걸 털어놓는 법이다. 이름은 무엇이고 성별은 어떻고. 그러나 그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그 외의 것은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외의 것은 전부 알고 있는데 정작 이름을 몰라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름을 제한 모든 걸 보여주는 상대라. 어딘가의 클럽에서 자주 얼굴을 보다 친해진 사이라도 되나. 사무소에서 의뢰인을 기다리며 샤라쿠는 그리 짐작했다.

열두 시 좀 넘어 사무소의 차임벨이 울렸다. 문을 연 사람은 샤라쿠의 집사 겸 조수였다. 오랜만에 탐정사무소의 문을 연다고 하니 놀란 눈이 되어선 샤라쿠를 따라 나온 사사키는 능숙하게 의뢰인을 맞이했다. 사무소의 문을 가렸던 사사키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이동하자 그제서야 의뢰인의 얼굴이 보였다. 의외로, 구면인 얼굴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살아있는 게 버거운 것처럼 억지로 숨을 쉬는 남자를 샤라쿠는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지난 겨울, 대학병원의 정신과에서 약을 받아 나오다가 정문 근처의 벤치에서 마주친 남자였다. 벤치에 걸터앉아 끅끅대며 숨을 삼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 샤라쿠는 말을 붙였다. 남자는 산발이 된 갈색 머리칼을 부여잡으면서 대답했다. 베란다에서 친구를 밀어버렸는데 죽으면 어떡하죠.

그때와 똑같은 발성으로, 마치 목숨을 쥐어짜듯이 남자는 말했다.

“아담이 사, 사라졌어요.”

에지마 아다무는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졌다. (뭐야, 아무리 가명 같은 이름이라도 일단 이름을 알고 있기는 했잖아, 라고 샤라쿠는 생각했지만 주민등록절차가 철저한 한국인에게 가명이란 곧 이름을 아예 알지 못하는 것과 진배없을 것이었다)

그가 사라진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유우정은 알지 못한다. 에지마 아다무, 통칭 아담은 사립탐정 일을 하는 탓에 부정기적으로 연락이 끊긴다. 하지만 대개 일주일 안으로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 일주일 안으로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두 사람은 아무리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한 달 간은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의뢰인 유우정이 아담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지막 메시지가 5일 전으로 표시되었던 날 우정은 아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이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건조한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일주일 전으로 표시되었던 날에는 새로운 메시지를 보냈다. 읽음 표시는 지금도 뜨지 않았다. 14일 전으로 표시되었던 날에는 전화를 다시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건조한 안내멘트. 우정은 이를 박박 갈다가 한동안 그를 잊고 작곡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어제, 우정은 불현듯 아담을 봐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담에게서 연락이 끊긴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샤라쿠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우정은 콧김을 식식 뿜으며 아담의 집으로 달려갔다. 도쿄 뒷골목의 5층짜리 맨션. 4층의 가장 안쪽 집이었다. 유흥업소의 전단지가 다닥다닥 붙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아담은 나오지 않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우정은 충동적으로 현관문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열린 문 앞에서 우정은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집 안으로 발을 옮겼다.

그곳은 완전한 빈 집이었다. 거실에도, 방에도, 화장실에도 아담의 흔적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곳이 에지마 씨 댁이었던 건 확실합니까?”

가만히 우정의 이야기를 듣던 샤라쿠가 물었다. 말하는 것만 듣자면 우정은 격한 감정에 휩싸인 채 아담을 찾아간 것 같았다. 충분히 호수나 층을 착각하고 빈 집의 현관을 두드렸을 가능성도 있다. 허나 샤라쿠의 질문에 의뢰인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가 아담 집을 잊어먹을 리 없어요.”

“그 전에도 자주 가셨었나 봅니다. 그렇게 확신하시는 걸 보면.”

“자주 갔어요. 수, 술집이랑 가까이 있어서.”

“그런데 왜 한 달이나 지나서 에지마 씨 댁을 찾을 생각을 하신 겁니까? 갑자기 연락이 끊겼으면 바로 찾아갈 법도 한데요.”

우정은 위로 쭉 째진 눈을 한순간 둥그렇게 떴다. 영 잠을 자지 못했는지 실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정은 히스테릭하게 머리칼을 잡아쥐며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다, 다른 놈이랑 같이 있을까봐.”

“예?”

샤라쿠가 되묻자마자 우정은 책상에 묻었던 고개를 쳐들었다. 육각형의 안경이 창백한 코 위에 비뚤게 놓여있었다.

“아담은 다른 놈이랑도 자주 놀았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딱히 연인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니까요. 자주 얼굴을 보고 섹스를 하고 우리 집에서 묵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아담에게 고백한 적이 없고 아담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어요. (샤라쿠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사사키는 이 지점에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담은 내가 자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확정하지 않는다고요. 확정하는 순간 우리는 연인으로 묶이고 아담은 그런 무거운 관계라면 아주 질색을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런 애매하고 두루뭉실한 관계로라도 아담의 옆에 있고 싶어서, 아담이 자기 집에 다른 사람을 들여도 그건 내 앞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니 없는 일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살았단 말이에요. (우정의 새된 목소리에 샤라쿠는 귀가 조금 아팠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아담의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아담의 집에 누가 있을 줄 알고 누가 그 침대에 누워 있을 줄 알고.

“대충 알겠습니다. 그래서 정리해보자면. 한 달 동안 에지마 씨의 연락을 기다리던 유우정 씨는 그의 연락을 기다리다 못해 바로 어제 에지마 씨 댁으로 직접 찾아가셨다는 말이죠. 그런데 현관문을 열어 봤더니 에지마 씨는 커녕 가구 하나 없었다.”

한바탕 정념을 쏟아낸 우정은 피곤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발간 뺨에 눈물이 한 줄기 주르륵 흐르기에 샤라쿠는 손수 티슈를 내밀었다. 사사키가 준비한 녹차는 이미 완전히 식어 미지근하게 변해 있었다.

“최근에 에지마 씨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다거나?”

“특별한 일이요…….”

티슈로 눈가를 닦던 우정이 코를 훌쩍였다. 붉어진 눈을 꾹 감고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고개를 내젓는다.

“모르겠어요…….”

하기사 짚이는 게 있었다면 먼저 털어놨을 터였다.

“사립탐정이라고 하셨는데. 저같은 탐정이라기보단 야쿠자의 끄나풀 같은 일을 자주 맡지 않으셨습니까?”

에지마는 샤라쿠가 다니던 마장의 단골 손님이었다. 같은 작탁에서 내기마작을 치는 일도 빈번했다. 다른 사람이 버릴 패를 고르기 위해 고민하고 있으면 에지마는 뜬금없이 샤라쿠에게 말을 걸고는 했다. 말이 많고 사교성이 좋은 남자였다. 얼굴을 가린 선글라스는 그 어두침침한 마장에서도 벗는 일이 없었다. 샤라쿠는 이따금 에지마의 눈을 완전히 가린 선글라스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 뒤의 눈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

어둑한 실내에서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에지마에 대한 정보를 적지 않게 수집했다. 제 입으로는 사립탐정이라고 하지만, 실상 야쿠자들이 시키는 변변찮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협잡배에 지나지 않는 인간. 길가에서 싸움이 붙으면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다. 술과 담배와 사람을 좋아한다. 의외로 마약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친구가 갑자기 약을 하고 싶다고 해서 도와준 적은 있다. 약 놓고 섹스하니까 좋아 죽으려 하긴 하더라. 같은 작탁의 손님이 에지마를 보고 낄낄 웃었다. 에지마는 그를 마주보고 또 낄낄 웃었다. 질이 나쁜 인간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샤라쿠도, 질이 나쁜 인간인 건 다르지 않았다.

“…아, 아마도.”

“약 배달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시고요.”

우정은 어쩐지 겁에 질린 얼굴이 되어선 몸을 움츠렸다. 눈동자만 빙글 굴려 샤라쿠를 쳐다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숨겨 책상 아래로 내린다. 이 정도로 솔직한 사람도 얼마 없을 것이었다. 손목의 주삿자국을 화두로 꺼낼 생각은 딱히 없었던 고로 샤라쿠는 그저 빙긋 웃어보였다.

“뭐, 야쿠자한테 잘못 찍혀서 잠깐 도망다니고 계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잔뜩 긴장되어 있던 얼굴이 이제는 새파랗게 물드는 광경을 샤라쿠는 목도해야만 했다. 육각형 안경 뒤의 눈동자가 오그라드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 그래도 안심하라는 듯이 양손을 휘휘 젓는다.

“정말로 위험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면 집을 정리할 새도 없이 몸만 도망치셨겠죠. 유우정 씨가 보셨듯이, 짐을 다 빼고 아예 거처를 옮겨버린 건 그만큼의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는 방증도 됩니다.”

“그, 그런가요……?”

“혹시 집안에 가구나 짐이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가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택배나 옷가지 정리를 아예 안 하고……. 바, 박스 상자 같은 게 많았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요. 원래도 정리를 안 하던 분인데 거처 한번 옮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겠습니까.”

“그, 그런가…….”

우정은 눈을 내리깔고 수긍하는 듯 보였다. 긴장해서 목이 타는지 제 앞의 녹차잔으로 오른손을 옮긴다. 손끝이 지나치게 떨리고 있다. 영락없는 금단증상이군, 하고 샤라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탓할 의무가 의뢰 수임자인 샤라쿠에게는 없었다.

“에지마 씨 댁의 주소를 알려주시죠.”

사사키는 우정의 더듬거리는 말을 받아쓰는 데에 조금 애를 먹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유능한 조수다웠다……. 조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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