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
“누군가 샤라쿠 군을 의태해서 영혼을 붙잡고 있군.”
간병인용 간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사쿠야 토무야가 중얼거렸다.
“약에 취한 채로 격투를 벌이다가 4층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하기사 그 정도면 즉사하지 않은 게 용하지.”
“약에 취한 채로요?”
늘상 머리카락으로 덮고 있던 왼눈을 훤하게 보인 독고유진이 되물었다. 덩달아 눈을 뜬 사쿠야는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팔을 들어 뒷통수를 긁는다. 넓게 트인 청색 기모노의 옷깃이 어깨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샤라쿠 군이 즐겨 다니던 마장이 마약 유통 루트로 전락해서 말이지, 경찰이랑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었던 모양이더군. 그러다가 들통나서 야쿠자 놈들이랑 대치하던 도중에 마약을 투여당해서……. 아참, 토코 씨는 모르지? 샤라쿠 군은 사립탐정이야.”
“사립탐정이요…….”
“아무튼 간에.”
사쿠야는 구부정하던 등을 쭉 펴고 앉았다. 콧등을 미끄러져 내려간 둥근 안경을 쓱 밀어올리곤 혼수 상태에 빠진 샤라쿠 아키히코를 내려다 본다. 안락한 1인용 병실의 에어컨에서 불어오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샤라쿠의 갈색 머리칼을 나풀나풀 흔들었다. 미동 하나 없이 잠든 샤라쿠의 신체에서 보이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내 말은, 샤라쿠 군은 추락한 그 자리에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거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샤라쿠 군은 의식만 없을 뿐이지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
사쿠야는 그곳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 유진을 흘겨보았다. 길게 올라간 눈이 말없이 묻는다. 왼눈으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보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눈으로 방금 내가 본 것을 너도 보았냐고. 뱀을 꼭 닮은 시선을 유진은 가볍게 흘려넘겼다.
“…네, 사쿠야 씨가 말씀하신대로 같습니다. 인간의 목숨은 육체가 완전히 부서진 게 아닌 이상 살고자 하는 의지에 좌우되니까요. 살고자 하면 영혼은 육체에 끈적하게 스미고 그렇지 않고자 하면 영혼은 연기처럼 육체에서 빠져나온다. …그런 점에서 샤라쿠 씨의 영혼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다고, 저는 느낍니다만.”
“느낍니다만?”
유진은 괜히 왼눈가를 만지작대다가 말을 잇는다.
“그건 왠지 자의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역시 듭니다. 사쿠야 씨는 아까 의태라고 하셨죠? 저는 그것까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가 샤라쿠 씨를 의태하고 있는 겁니까? 그런 걸로 인간의 영혼을 잡아둘 수 있다는 말인가요?”
길게 늘어진 기모노의 옷깃이 스륵, 하고 움직였다. 웃음과 닮은 기척이 짧게 났다.
“괴물의 의태는 물론 단순한 모방과 다르지 않지. 토코 씨도 의태한 괴물이라면 많이들 만나 봤지? 그들은 인간, 혹은 그 외의 동물을 모방하는 것으로 인간 세계에 섞여들어 자신의 욕망을 비밀스럽게 채우고는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거고.”
“그렇습니다.”
유진은 무심코 작년 늦여름의 일을 생각했다. 대학생의 몸을 빌려 자신이 준비한 수수께끼를 남에게 포교했던 어떤 화신을 떠올렸다. 그 수수께끼는 인간이 결코 풀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고, 따라서 수수께끼에 골몰한 이들은 식음을 전폐한 채 밀실에서 죽어갔다…….
하지만 그 때의 화신은 대학생을 의태한 것이 아니었다. 의태하지 않고, 그저 원래부터 자신을 숭배하고 있었던 대학생의 몸을 강탈했을 뿐. 의태는 모방한 원본이 멀쩡하게 남지만 강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숭배하던 화신에게 몸을 빌려준 대학생은 결국 한 줌의 모래로 돌아갔다.
왜 그 아이를 살리지 않았냐고 묻고 싶은가 보구나, 유진아. 안된 말이지만, 그 아이의 몸에서 화신을 빼내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단다. 화신은 인간의 몸을 강탈한 순간부터 세포 하나하나에 마력을 불어넣지. 마력은 세포를 가사 상태로 만들고 세포를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닌 단순한 조각으로 격하시킨단다. 살아 숨쉬는 생명 활동의 장소가 아닌, 단순히 그 장소를 메우는 하나의 벽돌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이야. 마력은 그런 세포를 인위적으로 붙잡고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만든단다. 이런 상황에서 마력의 근원인 화신을 빼낸다는 건───가사 상태의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내는 거나 마찬가지야.
자신의 은사는 그런 말을 하며 좋지 않은 낯의 유진을 어루만졌다.
다리를 꼰 채 유진의 이야기를 듣던 사쿠야는 왠지 네 활약과 그 교수의 판단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유진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이렇게 입을 열었다.
“마력은 세포를 억지로 붙잡아서 생명을 이어나가게 만든다. 뭐, 알기 쉽게 설명했구만. 그 교수의 말을 잠깐 빌리자면, 여기 이 샤라쿠 군한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사쿠야는 길다란 손가락으로 병상의 사립탐정을 가리킨다.
“의태는 본래 원본을 모방하는 것. 하지만 샤라쿠 군을 의태한 어떤 덜떨어진 괴물은, 원본을 모방하는 형태로 의태하지 못했다.”
“…예?”
“원본을 모방하지 못하고, 원본에 어느 정도 기생하는 형태로 의태를 시도한 거지.”
“원본에 기생했다면 그건 더 이상 의태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생과 의태는 아예 방식이 다른데요. 기생은 함께하는 것이고 의태는 모방하는 것이니까요.”
“그래, 토코 씨의 말에 나도 동의해. 하지만 의태하고 있는 것도 명백해.”
사쿠야는 다시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고개를 작게 떨구었다가 이내 시선을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사고로 희미해져 가는 샤라쿠 군의 영혼을 붙잡은 괴물은, 샤라쿠 군의 외형 역시 모방해 샤라쿠 군의 흉내를 내고 있으니.”
“…죄송합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사쿠야 씨. 괴물이 사랴쿠 씨의 의식에 침입해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모방이라뇨? 어디서 어떻게 외형을 모방하고 있다는 겁니까? 샤라쿠 씨의 영혼을 남의 육체에 심어서 그 육체를 변형시켰다는 말씁이십니까?”
뱀 같은 눈동자가 유진을 빤히 응시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유진이 무어라 말을 고르고 있으니 사쿠야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샤라쿠 군의 영혼이 잔존한 꿈속에서 외형을 모방하고 있다는 말이야.”
샤라쿠 아키히코가 중상을 입고 큰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건 지난 주 월요일의 일이었다.
사쿠야 토무야는 자신이 운영하는 기모노 가게에서 단골 손님과 이번 여름 축제에 입을 유카타에 대해 상의하다가 가게 유리문 너머로 새파란 얼굴이 되어 걸어오고 있는 남동생을 발견했다. 타고나기를 심약한 동생이기는 하지만 저런 낯빛을 보이는 건 또 이상한 일이었다. 토무야는 단골 손님이 목을 축이는 사이 그의 응대를 직원에게 맡기고 가게를 나서버렸다.
가게 근처 찻집에서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사쿠야 토무요, 그보다 몇 살이 어린 남동생은, 여전히 등까지 오는 긴 머리를 묶지도 않은 채 안절부절하며 차갑게 식은 냉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입을 열었다.
“샤라쿠 군이 크게 다쳤대요, 형…….”
“샤라쿠? 그 탐정 집안 애?”
샤라쿠는 토무요의 아내에게서 한때 피아노를 배웠다. 탐정이라면 응당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가풍이 있었던가 본데, 토무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여간 그 일로 샤라쿠 가와 사쿠야 가는 인연을 맺었다. 여담으로 토무요의 아내는 몇 년 전 터널에서 있었던 대형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토무요는 사별남인 셈이다.
“예에. 샤라쿠 군, 최근에는 어쩐지 시무룩해 보이고 사건도 별로 받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요. 마장에서 어떤 일이…… 있어서. 그걸 조사하다가 큰일이 났던가 보더라고요.”
토무요는 이렇게 보여도 이름 깨나 있는 쇼기 기사다. 마작도 어느 정도는 해서 취미 레벨로 마장에 다니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샤라쿠와 자주 얼굴을 봤던 듯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아아, 네……. 잘은 모르겠어요. 사람들 말하는 것만 들으면, 야쿠자가 거기 마장을 마약 판매 루트로 삼아서 약을 팔고 있던 모양이더라고요. 아마 샤라쿠 군도 알고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샤라쿠 군이 어쩌다가 그렇게 크게 다친 건지는…….”
내막은 대충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
“저, 지금부터 병문안을 가려고 하는데…….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가려고 하는데요…….”
“수술은 잘 끝난 거야? 그럼 조만간 일어나겠네. 난 그 때 갈게.”
샤라쿠 군 정도의 재력이라면 분명 1인실을 쓰겠지만, 그래도 병실이 북적거리는 건 꺼려지지 않나. 토무야가 그렇게 말하니 남동생은 긴 머리를 잡고 돌돌 꼬아대다가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마셨습니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고 토무야는 회상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다. 토무야는 지난 주에 동생이 찾아왔었다는 일도, 샤라쿠 아키히코가 마장에서 무슨 약 파는 일에 휘말려 큰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았다는 일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바로 오늘, 금요일에,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독고유진이라는 남자는 외가가 무속의 핏줄이라 왼눈으로 보면 안 될 것을 자주 보는 듯했다. 귀신이라든가, 괴이라든가, 이따금은 다른 차원의 자아를, 다른 때에는 죽음의 기운을. 이런 능력 탓에 젊었을 때엔 꽤 고생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은사와 함께 한국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들을 처리하며 나름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유진의 은사는 토무야에게 빚을 지고 있다. 금전적인 빚은 아니고 목숨과 존재 존속이라는 어떤 애매모호한 개념에 관련된 빚이다. 뾰족하게 갚을 길도 없고 그렇다고 상환하라고 보챌 길도 없는 무형의 빚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주고 있다. 그런고로 그의 은사는 이번 여름 재단사인 토무야에게 마력을 차단하는 원단을 주문했다. 그 원단의 배달부 역할로 유진은 도쿄에 발을 딛은 것이다.
“오랜만이네, 토코 씨. 한국은 좀 어때?”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요즘은 이상 현상도 많이 줄었고요.”
“그건 좋은 일이네.”
그리 말하고 토무야는 유진에게 원단이 담긴 오동나무 함을 내밀었다. 함을 받은 유진은 살짝 숨을 들이마시면서 뚜껑을 열었다. 무색의, 아니 옅은 상아색을 띠는 원단이 곱게 접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함을 도로 닫는다.
그 사이 테이블에 대충 놓여있던 토무야의 스마트폰이 알림음을 내뱉었다. 메신저 알림음이다. 토무야는 별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토무요에게서 온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형, 샤라쿠 군 병문안은 가 보셨어요?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걸요. 상태는 수술 직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데 이상하게 눈을 뜨지 못하고 있대요. 주치의 분도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네요.
토무야에게는 의료 관련 지식이 없다. 대수술을 끝낸 환자가 평균적으로 언제 눈을 뜨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치의도 이상하게 보고 있다는 건, 평균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상황이라는 게 아닐까. 현실의 수치로는 재기 힘든 기이한 상황이라는 게 아닐까.
그런 상황이라면, 어쩌면 자신이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토무야는 생각했다. 토무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흠칫 놀라 자신을 올려다보던 유진을 턱짓해 덩달아 일으켜세웠다. 두 사람은 그대로 토무야의 자가용을 타고 샤라쿠가 입원한 병원으로 이동했다.
“토코 씨, 당신도 분명히 꿈속에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조카애처럼 말야.”
아내와 사별한 토무요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토무야에게는 조카가 된다. 제 아빠보다 삼촌인 자신을 훨 잘 따르는 말괄량이 여자애다. 어릴 때부터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가 싶더니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몇 년 전에는 아예 미스터리 소설을 써 작가로 데뷔했다.
그 조카가 재작년 즈음에 했던 말이, 호텔에 갇혀 글을 써야 하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만이라면 그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꿈은 언제나 이상한 광경을 비춰주니까. 조카가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 꿈이 무려 이 주 동안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예, 그렇죠.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요.”
“무슨 꿈이었지?”
“어떤 호텔에 갇혀서 창작물을 써 내라고 요구받았죠.”
“누구한테?”
“…호텔의 직원들한테요. 호텔리어라고 하던가요.”
“직원이라…….”
토무야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병상에 누운 샤라쿠의 영혼을 뒤따른다. 그 행적은 희미할지언정 아예 부재하지는 않다. 뒤따른다. 추적한다. 쫓는다. 한순간 빛이 번쩍인다. 흐리고 부옇게 왜곡된 꿈속의 심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깨끗하게 관리된 가게 안. 상품이 가득 진열된 매대. 이곳은 편의점인가? 나는 계산대 안쪽에 있다. 계산대 안쪽에 서서 손님을 기다린다. 낮에는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낮에는 호텔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여기고 있나? 분명 지루하다. 하지만 이곳을 오가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 아주 지루하지는 않다. 호텔에서는 사람이 죽었다. 처음으로 내가 죽었고 다음으로 손님 넷이 죽었으며 마지막으로 한 명의 손님이 더 죽었다.
토무야는 그곳에서 눈을 떴다.
마지막으로 손님 한 명이 더 죽었다, 라고.
토무요가 샤라쿠 군의 병문안을 가겠다며 찻집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있었던 것이 지난 주 월요일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다음 주 금요일. 얼추 이 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만일 꿈속의 시간이 여전히 이 주에 불과하다면. 우리 조카애와 토코 씨가 있었던 그 꿈과 같은 세계라면. 마지막으로 일어났다는 사건이 정말로 마지막이라면.
샤라쿠 군은 조만간 깨어날 것이다.
“…샤라쿠 군은 토코 씨가 말한 직원이 되어서 꿈속에 서 있어.”
그리 말하자 유진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원래였다면 샤라쿠 군을 이렇게까지 붙잡아 둘 이유는 없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꿈의 괴물은 능력이 상당히 덜떨어지는 듯하군. 원본을 하나하나 모방해야 하는 의태와 다르게 기생은 단지 원본에 달라붙으면 되니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러니 괴물은 샤라쿠 군의 영혼에 기생해 의태를 완료했다. 공을 들여 육신을 구성할 필요도 없어. 꿈속에서는 육체가 필요하지 않고 그저 영혼만이 필요하니까.”
“…그게 샤라쿠 씨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던 거군요.”
“그래. 샤라쿠 군은 원래였으면 그 자리에서 영혼이 흩어져서 죽었어. 하지만 타이밍 좋게 괴물이 샤라쿠 군의 영혼을 붙잡아서 불완전한 의태를 시도한 거지. 만약 괴물의 능력이 출중해서 샤라쿠 군의 영혼에 간섭하지 않고 완전한 모방… 의태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간섭받지 못한 샤라쿠 씨의 영혼은 그대로 사라졌겠죠.”
토무야는 슬쩍 미소지었다.
“내 말이 그거야.”
그리고 간병인용 간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하지만 영혼이 사라지기 전에 샤라쿠 군의 육체는 완벽하게 고쳐졌지. 이제 남은 건 꿈속으로 잡혀들어간 영혼이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뿐이야. 그러니 우리가 구태여 개입하지 않아도 조만간 샤라쿠 군은 깨어날 것 같은걸.”
“아, 혹시 쓰러지신 지…….”
“얼추 이 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어.”
토무야는 그리 말하곤 1인용 병실의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 가장 안쪽의 방이었다. 복도 저 건너편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습을, 토무야도 그를 뒤따른 유진도 발견했다. 단정한 셔츠 차림의 일본인과 서양인이었다. 두 사람은 토무야와 유진이 병실에서 나오는 걸 보고 왠지 미묘한 경계를 보였다.
“샤라쿠 아키히코의 가족?”
토무야가 옅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먼저 앞으로 나선 건 일본인이었다.
“그렇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아아, 난 샤라쿠 군의 지인이에요. 이자요이 겐이치의 친형이라고 하면 알까?”
쇼기 기사인 토무요는 이자요이 겐이치라는 기묘한 가명으로 쇼기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조카애가 지어준 이름이랬던가. 하여간 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녀석이다.
일본인은 이자요이 겐이치라는 이름을 듣고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그의 뒤에 서 있었던 서양인도 같았다. 이 보랏빛 눈의 서양인은 대체 누구지.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와 버렸네…….”
“아뇨, 아닙니다. 들어가서 말씀 나누실까요?”
“하하, 아뇨. 전 일이 있어서 가 보려고. 나중에 일어나면 한 번 더 오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토무야는 잠시 제 등에 가려지듯이 서 있는 유진의 눈치를 흘끔 보고는, 그럼 전 이만 하며 두 사람을 뒤로 했다. 자신이 샤라쿠의 지인이라는 건 참말이지만 유진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의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빠르게 자리를 뜨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안 그래도 일본인은 자신이 아닌 유진을 흘끔흘끔 살피고 있었다.
복도를 건너 엘리베이터릍 타고 병원 지하주차장까지 도달해 자가용의 핸들을 붙잡고 나서야 토무야는 입을 열었다.
“덜떨어진 능력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군.”
조수석의 유진은 안전벨트를 매다가 그를 돌아봤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묻는 것 같았다. 토무야는 굳이 그의 쪽으로 시선을 주지는 않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저녁이나 먹고 가지. 설마 그동안 토코 씨 앞마당으로 연결된 통로가 끊기거나 하진 않을 거 아냐. …끊긴다고? 그 교수 요즘 상태가 안 좋은가? 마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그런가? 나 참. 끊기면 내가 새로 열어줄 테니까 먹고 가. 토코 씨 앞마당 좌표 정도는 알고 있어. 왜 알고 있냐니. 내가 여태 살면서 나이를 헛으로 먹진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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