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은 후일담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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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럽고 눅눅하며 어두침침한 폐쇄공간. 귓가에 흐르는 이 노래의 제목은 무얼까. 재미도 없고 특색도 없는 멜로디. 템포가 빠른 걸 보니 댄스곡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벽 너머 인간에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음량이면 그저 좋은 것이다. 양 무릎에 양 팔꿈치를 대어 깍지 낀 손. 구부정하게 휘어진 허리는 평소의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제 바로 옆에 앉은 여자는 담배를 꼬나물었다. 실내 흡연이 가능한 곳으로 잡지. 그녀의 제안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편하다고는 하기 힘든 착석감의 의자. 그 등받이에 늘어지게 허리를 기대어선, 길고 북슬북슬한 머리칼을 북북 긁어댄다.

 "이 짓도 슬슬 그만 해야지, 씨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꽤 돈벌이가 되지 않나?"

 "새 돈줄이 생겼어."

 "약팔이보다 쏠쏠한 돈줄이 생겼다고?"

 "그래."

 흐릿한 담배 연기.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려선 깊게 숨을 내뱉는다. 제가 피우는 담배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꽤 독한 담배를 피우지 않았나. 그녀는 저보다 열 살 가량 어렸다.

 "취직이라도 했나."

 "취직? 내가? 존나 웃겨."

 진심으로 유쾌한 모양이었다. 얼마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꾹꾹 눌러 끄더니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웃는 얼굴을 잠시 뜯어보았는데, 다크서클이 옅어졌다는 감상 밖에 얻지 못했다.

 석재 테이블에 맥주캔이 두 개. 남자는 무심코 그 중 하나에 손을 뻗었다.

 "아니, 뭐...... 비슷한가? 응, 비슷하지? 썰 좀 들어볼래? 아저씨. 아 씨발, 진짜 웃긴 얘긴데."

 서늘한 맥주가 목구멍을 적셨다. 차를 끌고 나오긴 했지만, 맥주 한 캔으로 취하는 육체는 아니므로. 집으로 가는 길에 검문만 만나지 않는다면 되는 일이다. 남자는 으슥한 뒷골목 루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자는 이야기를 주절대기 시작했다. 타인의 인생은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차단하기는 어려웠으므로. 여기서 약을 한 대 놓을까, 까지 고민하다가. 딱히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반성하다가. 여자의 주절거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무튼 자신이 서점의 오너가 되었다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존나 웃기지 않냐고, 아저씨. 뭐 그런 병신같은 게 다 있지? 코드 한 탕 짜 주니까 가게 하나를 덜컥 넘긴 거야...... 내 명의로...... 병신......"

 "무슨 코드였길래."

 "몰라, 씨발. 그냥 시킨대로 쌌어."

 내용을 알려 줘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지만. 프로그래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코드라니,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서점이라니...... 당신, 책을 좋아하나?"

 "21세기에 책을 왜 읽는데?"

 미간을 팍 찌푸렸다. 어느새 그녀도 캔맥주를 손에 들고 있다. 이야기 도중에 집어 간 모양이었다.

 "그럼 어떻게 영업하려고."

 "직원 뽑아서 굴릴 거야. 벌써 하나는 뽑았고."

 "행동력이 좋군."

 "내가 말야, 백수새끼 하나 구제해주는 거라고......"

 신나선 킥킥 웃는다. 위로 치켜 올라간 눈꼬리는 그리 상냥해보이지 않았다.

 "응, 아저씨한테도 명함 하나 줄게. 책 살 일 있으면 여기로 와."

 "약도 판다면 들르지."

 "씨발, 이젠 안 판다니까!"

 명함을 건네는 손은 가늘고 긴 편이었다. 정리하지 않은 손톱은 거칠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의 손톱이 특히나 짧았는데, 그것 하나만 물어뜯는 듯 했다. 이전엔 열 손가락 전체를 잘근잘근 물어댔다. 너무 물어뜯으면 자판 칠 때 손가락이 존나 아파. 그런 불평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구나 잘 알 법한 프랜차이즈 서점. 도쿄 어딘가의 점. 점장 하나야 메이花家芽衣.

 하나야 메이는 속이 빈 맥주캔을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콧등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대충 바로잡다가 완전히 고철이 된 캔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었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몇 번 울리다가 멎었다.

 야쿠와 아토무는 남은 알코올을 입 안에 머금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한 대 맞고 잘까. 그렇다면 내일 아침은 꽤 상쾌한 축에 들 것이고, 입원한 그 아이를 찾아갈 채비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자기보호적인 생각을 흘리다가.

 제정신으로는 마주하기 어려운 금안을 떠올렸다.

 "내 얘기도 들어줄 수 있나?"

 "할 거면 맥주 더 사 줘."

 무뚝뚝한 얼굴의 점원이 문을 열었다. 그의 눈에 우리는 어떤 관계로 비칠까. 한 쪽이 나이가 월등하게 많으니, 어쩌면 내연 관계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어깨라도 껴안아 볼까...... 하다가. 그녀가 스킨십을 극도로 꺼린다는 사실을 되짚는다. 클럽의 밀회에서 습득한 정보였다.

 별 해프닝 없이 점원은 발을 돌렸다. 석조 테이블에 맥주가 한 캔.

 "홋카이도에서 사람 죽은 건 알고 있나?"

 "천문관?"

 하나야는 웃으며 탭에 손가락을 건다.

 "일곱 명 뒤진 그거?"

 "내가 죽였어."

 그다지 다이나믹한 반응은 없었다. 아저씨라면 언젠간 사람을 죽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 오히려 그런 대답을 얻었다. 이유를 들었어야 했는데, 제 상념에 빠져서 묻지 못했다. 시시한 잡담 이후에 그녀의 캔이 비자 자연스럽게 헤어졌고. 다음에는 좀 멀쩡한 방법을 찾길 바래. 조롱 조의 인사였다.

 팔 안 쪽에 주사를 놨다. 적정량보다 좀 적은 양을 주입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끊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브한 전망을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전기 자극을 받은 개구리 뒷다리마냥 파르르 떨리는 제 몸을 자각한다. 숨을 몇 번 헐떡이다가,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무거워지는 중력을 육체로 받아내다가. 아...... 이래서 끊기가 어려운 거야......

 점멸하는 엘리베이터의 표시등을 응시했다. 1층에서 더욱 내려가려 들었다. 지하에는 부검시설이 존재한다. 즉 부검의들은 지하에서 활동한다. 이 시간이면 그는 분명히 서늘한 부검실에 있을 것이므로. 붉은색 B1 램프. 지하 1층입니다. 상냥한 AI 안내원의 기계음.

 하나야 케이는 버들버들 떨리는 눈꼬리를 멈추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제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누나가 하나 있다. 빈 방이 있으면 좀 빌려달라고, 없으면 좀 만들어달라고 했다. 후안무치한 태도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누나의 부탁이었으므로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침 침실 옆 방을 하나 놀려두고 있던 참이라, 케이는 순순히 수락했다.

 그녀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였다. 빈 방에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하나씩 가져다 두곤, 케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단어를 타이핑하는 게 일과였다. 검은 창에 하얀 글씨가 지렁이처럼 흘러가다가 사라지다가를 반복했다.

 저렇게 골방에 처박혀있어도 밥벌이는 잘 하던 사람인데. 왜 내 집까지 기어들어왔을까...... 상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다만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좀 참아달라고 성질을 부렸을 뿐이다.

 마약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 일 년 전의 일이다.

 노크 없이 그녀의 방 문을 열어제꼈다. 청소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그 즈음 방에 매트리스 하나를 깔아 놓았는데, 그 위에서 담요를 덮고 자곤 했다. 그 매트리스 위에 축 늘어져있었다. 진회색 런닝을 걸친 채, 무릎 위에서 아랫배까지만 요를 덮고 낮잠을 청하는 누나.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청소기를 돌리며 멍하니 그 광경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매트리스 근처에 굴러다니는 재떨이는 담배꽁초로 가득하다. 도대체 마지막으로 비운 게 언제인 걸까. 청소기를 멈추곤 허리를 숙여 재떨이를 손에 든 순간. 

 축 늘어진 팔 안 쪽으로 주삿자국이 보였다. 그 주위로 흐리게 멍이 서려 있다.

 최근에 주사를 맞은 적이 있나? 라는 질문에서, 마약을 했나? 까지. 사고 도약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순순히 말해주었다. 인생이 심심해서 이런 건 맞아줘야 할 것 같았다면서. 누나, 우울증이야? 그렇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나를 신고할 거니? 케이, 마약초범은 그렇게 엄하게 다스리지 않아.

 애초에 너는 나를 신고할 수 없잖니. 우유부단함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말이었다. 프로파일러로 일하면 뭐 해. 누나가 필로폰 하는 것도 몰랐으면서. 이건 비난의 어조.

 맞는 말이었다. 결국엔 오늘 이 시간까지 묵인하고 있었다. 어떻게 친누나를 경찰에 넘길 수 있겠어. 어쨌든 누나는 누난데...... 

 그의 직장은 사쿠라다몬. 경찰 조직 내에서 이런 류의 상담을 해 줄 사람은 없었다. 일단 밝혀지면 집에 동료들이 처들어올 것이고, 누나는 수갑을 찬 채로 끌려갈 것이고...... 그런 꼴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당연한 일 아닌가.

 머리를 꽁꽁 싸매다 문득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업무 상 몇 번 얼굴을 마주했던 부검의의 이름이었다. 전체적으로 제 누나와 닮은 사나운 얼굴을 가진 부검의였는데, 사쿠라다몬의 부검의 중 독보적으로 실력이 뛰어나고...... 독보적으로 괴짜였다.

 일반적인 도덕관념은 그의 내부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그를 마주했을 때, 케이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철저하게 시신만 보고 살아온 인간의 눈은 기이할 정도로 검고 흐릿했다.

 그렇다면, 그라면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부검의이니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자세히 알고 있지 않을까. 가망 없는 기대를 품고야 말았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인데. 하나야 케이는 부검실 문 앞에서 손을 떨고 있다.

 "가족 얘기지?"

 "가족 얘기 아냐?"

 두 사람이 합창했다. 하나야 케이는 담담하게 유지하던 표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부검실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케이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불청객에 가까웠다.

 부검의, 사와다 코헤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방문객을 맞았고. 탐정, 샤라쿠 아키히코는 의외라는 얼굴로 대학동기를 맞았다.

 "아키? 아키가 왜 여기 있어?"

 "어어...... 놀러왔는데."

 탐정은 부검실에 놀러오는 직업인가.

 "재미없는 토픽으로 대화하려고 온 것 같더군."

 "재미없다뇨? 아까는 홋카이도에 불려갈 것 같다면서 좋아하셨잖아요."

 "그건 다른 이야기지."

 아무래도 두 사람은 꽤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케이는 부검의의 웃는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왜 왔나? 자네한테 넘길 부검결과는 없는 걸로 아는데."

 부검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본래 흑발이었는데, 흰머리가 잔뜩 섞여 이제는 회색 머리칼로 보인다.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게 처음으로 다 카포.

 "아니,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런 얼굴로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어?"

 이건 탐정의 말. 어쩐지 순하게 처진 눈매가 싸늘하게 빛난다.

 "그래서? 마약 근절 캠프에 나가지 않아도 필로폰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건가?"

 부검의에게 가족이라는 소재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예."

 "담배 끊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는데." 

 금연이랑 비슷하다고? 저도 모르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담배보단 훨씬 중독적이지 않은가. 깐깐한 얼굴의 부검의는 그 낯을 훑더니, 쯧, 하고 혀를 한 번 찬다.

 "뭐, 약물이라도 추천해 달라고 온 건가? 어이가 없군. 죽은 인간 해체하는 사람한테 약을 처방해달라고? 난 그런 거 못하네."

 "사와다 씨,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탐정이 빙글빙글 웃으며 그 옆에서 거들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사와다 씨 뿐이라."

 "그건 대체 어떤 의민가?"

 얼굴이 대단히 험상궂어졌다. 험상궂다, 라기 보단 죽일 듯이 노려본다는 표현이 올바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수신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터라.

 "......죄송합니다."

 부검의의 팔을 잡고 있는 탐정. 아키는 정말 발이 넓구나.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스쳤다.

 "케이, 천문관 사건 알아?"

 탐정은 돌연 다른 주제의 얘기를 꺼냈다. 부검의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체념한 듯 시선을 떨군다.

 "알지. 꽤 충격적이라 여기저기 물어도 봤고."

 "용의자였던 사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었지?"

 "그랬었지."

 "지금은 뭐 해? 감시는 하고 있어?"

 "글쎄. 외부인 소행으로 일단락 된 것 같던데. 그래서 감시까진 안 하고 있을걸?"

 "응...... 그래?"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건 왜?"

 "아니......"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가, 끝끝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아키가 관심을 가진다면 분명 뭔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다는 건데.

 결국 쓸모 있는 정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부검실을 나섰다. 마약을 끊는 방법도 얻지 못했고, 천문관에 대한 새로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사실 전자는 아무래도 좋았다.  담배 끊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제가 어떻게든 옆에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후자는 뒷맛이 찝찝하다.

 아키는 왜 갑자기 그 사람의 일을 물었을까? 감시라니, 감시까지 붙일 정도로 유력한 용의자라는 걸까? 이름이 꽤 특이한 편이었는데. 야쿠, 야쿠와...... 아토무. 그래, 이런 이름이었다.

 나이는 41세. 직업은 연구원. 전파천문학...... 전파와 천문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취미는 암벽 등반과 바이크. 때문에 체격도 꽤 좋은 편. 그를 서면으로만 접한 케이에게는 이 정도 정보 뿐이었다.

 이번 주말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아키한테 도움이나 줄 겸, 그 쪽이나 파고들어볼까......

 누나에게 찾을 수 없는 정보란 없다. 밥 사 준다고 살살 꼬드기면서 신상을 털어달라고 할까. 영 좋지 못한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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