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불속성효자
“장나민, 장나라.”
별로 큰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각자의 방에 있는 형제에게는 충분히 들릴만한 크기였다. 왜? 어머니의 부름에 먼저 반응한 것은 장나민이었다. 함께 3시간 동안 테니스를 치고 돌아온 장나라는 방에서 한 시간 째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언제나의 주말 풍경이었다. 나라 깨워. 방문 끄트머리에 이마가 부딪히지 않게 구부정하게 서 있는 장나민을 올려다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마트 가야 돼. 이어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나민은 장나라의 방으로 향했다.
키는 유전이라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장나민과 장나라 형제는 키가 비슷했다. 장나민 194cm, 장나라 189cm. 또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남성 평균을 훌쩍 넘는 형제의 키는 40대임에도 여전히 풍채가 상당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형제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알만한 사실이었다. 가령, 마트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들이라던가.
평범하게 작은 체구의 중년 여성이 평균 신장 190이 넘는 거구 둘과 함께 마트에 입성하자 근처를 지나던 이들의 이목이 쏠린다. 형제가 180이 넘어가던 중학생 시절부터 있던 일이었기에 어머니는 익숙한 듯 지갑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장나라에게 건넸다. 장나라, 카트 뽑아와. 장나라가 순식간에 뛰어가 줄지어 있던 카트 중 하나를 빼 왔다. 장나민, 메모 들어. 장나민이 어머니가 건넨 어머니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메모에 적힌 대로 마트를 순회하면 된다.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은 장나민의 손이 장나라가 미는 카트를 세제 코너로 잡아 돌렸다.
“너희들은 필요한 거 있어?”
“과자.”
늘 쓰는 세제를 찾던 장나민이 즉답했다. 난 젤리. 카트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장나라가 대답을 덧붙이자 어머니가 이마를 짚었다. 군것질 빼고, 얘들아. 어떻게 된 일인지 둘 다 고등학생이 되었음에도 형제는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춘기랍시고 다른 집 자식들처럼 까칠하게 굴지 않는 것은 복 받은 일이었으나, 덩치의 애교 같은 것은 20년째 보고 사는 남편만으로 충분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장나라, 저거 만두 먹어봤냐.”
“우리 학교 매점에는 없던데.”
“예고 별거 없네.”
“그냥 형네 학교 갈걸.”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영양가 없는 잡담을 나누면서도 형제는 목록에 적힌 것을 찾아내 착실히 카트에 옮겨 담고 있었다. 생필품들과 라면 한 박스를 채워 넣고 나니, 이제 식품 코너 차례였다. 과자 코너와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어머니가 형제의 주의를 환기하려고 할 때였다. 어머머, 나민 엄마! 맞은편에서 카트를 밀고 오던 누군가가 어머니에게 아는 척을 했다. 형제가 어머니의 머리 위로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오늘은 아들들이랑 왔네! 나민 아빠는?”
“당직. 우리 집 아저씨는 꼭 차 필요한 날 그러더라.”
“그래두 나민이랑 나라가 있으니 든든하겠어.”
“든든하기는 무슨!”
어유, 나민이랑 나라는 날이 갈수록 잘생겨지네. 한바탕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에야 돌아오는 관심에 형제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조금 전까지 비눗방울 총을 보며 요란을 떨던 것과는 딴판인 태도에 어머니가 어휴, 하고 한숨을 쉬었으나 형제는 꿋꿋했다. 우리 집에 딸만 있었어도 둘 중 하나는 사위 삼는 건데! 아주머니가 흐뭇한 듯 둘을 보며 웃었다.
스몰 토크를 빙자한 아주머니의 근황 캐기는 시식 코너를 다 돌고 온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재촉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정신없네. 익숙하지 않은 너스레에 장나라가 질린 듯 고개를 젓는 것과 달리 장나민은 태연한 얼굴로 쇼핑 목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 샀네. 장나민이 카트를 두어 번 툭툭 두들기자 장나라는 계산대를 향해 카트를 밀었다.
차례가 되자 계산대 위로 어마어마한 양의 상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4인 가족의, 그것도 한창때의 남고생 둘을 키우는 집이다 보니 무엇이든 양이 많았다. 장나라는 상품을 올려놓고 장나민은 계산된 상품을 박스에 담는 역할이었다. 아드님들이 야무지시네요. 밖에서만 이래요. 캐셔의 붙임성 있는 말에 어머니가 질렸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장나라. 동작 그만.”
장나라의 손에 들린 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말했다. 장나라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카트 밑바닥에 깔려있던 과자와 젤리가 줄줄이 계산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올라온 상품이었으므로 캐셔는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하… 어머니의 한숨 소리에 장나라가 허리를 굽혀 어머니의 어깨에 살포시 제 얼굴을 얹었다. 엄마아아.
“나 저거 못 먹어봤단 말야.”
“징그럽게 뭐해. 너 아직도 일곱 살인 줄 알아?”
“열일곱이니까, 일곱 살 맞지.”
난데없는 둘째 아들의 애교에 어머니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몸이야 거대해졌다고 해도 어찌 되었든 장나라는 2남 중 막내(비록 연년생일지라도.)였다. 어머니의 망설임을 알아챈 장나라가 웃었다. 어릴 적과 똑 닮은 비장의 미소였다. 결국, 어머니는 어깨에 붙은 장나라를 떼어내고 애교가 덜한 첫째, 장나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나민. 뭐 하고 있어.”
“과자 정리하는 중이지~”
정말로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장나민은 모르는 척 대답했다. 형제의 연계에 어머니가 헛웃음을 뱉었다. 몇 개만 넣고 나머지는 빼. 어머니의 말에 장나민이 고개를 들었다. 장나민 역시 어릴 때와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장나라처럼 어머니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귀여운 미소는 아니었다.
팡. 불안함을 느낀 것과 동시에 장나민의 손아귀에서 과자 봉지가 터졌다. 장나민은 이상한 데서 재주가 좋았기에 채워 넣은 질소가 빠져 소리만 요란하고 내용물이 흩어지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근처 계산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머나… 놀란 캐셔가 작게 중얼거렸다. 장나민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신이 났던 어릴 때처럼 웃고 있었다.
“이제 환불 못하겠다, 그치.”
…계산해주세요. 결국, 어머니가 이마를 짚으며 캐셔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형제가 눈을 맞추고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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