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형전제전

 

 

날이 추워질수록 뒷문 근처의 학생은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닫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열리는 문에, 맨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학생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 문틈으로 귀신같이 들이닥치는 냉기에 담요로 덮여있지 않은 발이 시리다. 야! 문 잘 닫고 다니랬잖아! 아, 미안해 친구야. 동급생들은 짜증에 사과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놀란 학생이 반쯤 튀어 오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상쾌한 사과의 주인공은 장나민이었다. 이 학교에 장나민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잘 닫을게~ 장나민이 웃으며 뒷문을 닫았다. 아니,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학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실의 동급생들도 동생인 장나라의 반이 아닌, 낯선 2학년 밖에 없는 반에 찾아온 장나민을 보며 수군거렸다.

 

 

 

의문이 담긴 수군거림이 들렸음이 분명한데도 장나민은 어떠한 양해의 말도 구하지 않은 채 교실에 앉아있는 후배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훑었다. 난데없는 등장에 어리둥절해 하는 후배들 틈에서 묘하게 반항적인 시선과 마주친다. 코웃음을 친 장나민은 그 책상으로 다가갔다.

 

 

 

“너구나.”

 

 

 

야, 장나민. 네 동생 삥 뜯겼다는데. 누군가 급하게 찾아와 장나민에게 전한 말이었다. 나라가? 소식을 처음 들은 장나민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장나라는 또래보다 훌쩍 키가 컸고, 무뚝뚝한 인상 덕에 상급생들도 장나라를 건드린 적이 없었다. 누구한테 빌려줬나 보네. 농담처럼 소식을 넘기는 장나민을 보며 그 친구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다.

 

 

 

2학년에 유명한 애들 있잖아.

걔들이, 나라를?

나라 이제 연습생이잖아. 괜히 휘말리기 싫어서 준 것 같다더라.

오.

 

 

 

기분 좆 같은데. 장나민의 가벼운 어조와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말이 튀어나갔다. 걔들 몇 반이래? 하품을 한 장나민이 물었다. 누군가 반을 알려주었다. 장나라의 반은 아니었다. 기지개를 켠 장나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돈 찾으러 가야지.

 

 

 

“친구야, 잠깐만 자리 좀.”

목표물의 옆에 앉아 있던 여학생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자, 사이에 끼어 있던 여학생은 잽싸게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미안, 금방 끝나. 그렇게 말한 장나민은 앉아 있는 후배를 내려다보았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무슨 짓을 하든 관심을 둔 적은 없었으나, 그 손길이 자신의 동생에게 뻗었을 땐 어떻게 되는지 주의를 시킬 필요가 있었다. 장나민이 남학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 하고 밀었다.

 

 

 

“나라가,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한가 봐.”

 

 

 

다시 한번 미는 손가락에 남학생은 버티려는 심산인지 목에 힘을 주었으나, 자신보다 두 뼘은 큰 장나민의 힘을 당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뒤로 밀리면서도 힘을 주느라 시뻘개진 얼굴을 보던 장나민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남학생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쪽 팔을 책상에 올리고 그 위에 턱을 괸 채 무감정하게 남학생을 쳐다보던 장나민이 말했다. 친구야,

 

 

 

“나도 갚을 테니까 돈 좀 빌리자.”

“돈 없는데요.”

 

 

 

누가 들어도 가시가 돋친 삐딱한 목소리였다. 장나민의 목소리는 달래듯 나긋나긋했다.

 

 

 

“왜 그래. 나도 갚는다니까.”

“없다고요, 씨발.”

 

 

 

선배를 향해 튀어나온 욕설에 다들 조용히 숨을 삼켰다. 그럼에도 장나민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 이상하네.”

 

 

 

장나민이 팔을 뻗어 풀어헤친 남학생의 와이셔츠 칼라 깃을 꽉 잡아 쥐었다. 순식간에 목을 조여드는 힘에 남학생이 짧은 기침을 토해냈으나 장나민은 조금 전과 다름없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친구야, 진짜로 없어?”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목에 어떻게든 손톱을 박아넣으려는 남학생의 몸짓을 보며 장나민은 결국 소리를 내어 웃었다. 와, 이 정도면 정말 없나 봐. 그럼 나라한테 직접 물어봐야겠다. 장나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학생은 그대로 힘에 끌려 강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꿈치가 살짝 떠 있었다. 배려 없이 잡아끄는 장나민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남학생은 의자에 무릎이며 정강이를 부딪쳤으나,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장나민의 손에 이끌려 겨우 걸었다.

 

 

 

“미안, 지나갈…”

“형!”

“오, 나라 왔다.”

 

 

 

남의 멱살을 쥔 채 태연하게 자신을 맞이하는 장나민의 모습에 장나라가 한숨을 쉬었다. 지갑에 든 것도 별로 없길래 적당히 어그로를 떨구기 위해 버린 돈이었다. 누군가 지나가며 장나민 선배가, 하는 말에 설마 싶어 찾아와보니 이 지경이었다. 형, 일단 그거 놔줘. 장나라의 말에 장나민은 별다른 대꾸도 없이 순순히 남학생을 놓아주었다. 셔츠에 매달려 있던 단추 두어개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뺏긴 거 아니고, 그냥 귀찮아서 적선해준 거야.”

“아직 11월이야, 나라야.”

 

 

 

따뜻한 마음은 다음 달에 나누자. 개소리는 본인이 하고 있었음에도 어이없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장나민의 얼굴에 장나라는 말없이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금 진짜 어이없는 게 누군데.

 

 

 

“알겠어. 다음부턴 걍 안 준다. 됐냐?”

“우리 나라, 연습생인데 벌써 이렇게 유명해지고.”

“아, 장나민 진짜 뭐래.”

 

 

 

뻔뻔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장나민을 보며 질색하던 장나라가 가만히 장나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다지 세지 않은 힘이었음에도 장나민은 순순히 장나라가 이끄는 대로 교실을 나섰다. 안녕, 친구들아. 나가면서도 산뜻한 인사는 잊지 않았다.

 

 

 

그렇게 장나민이 한바탕 휩쓸고 간 교실은 조용했다. 바닥에 내팽개치다시피 한 남학생은 주저앉아 씩씩거리며 장나민이 나간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장나민 저 새끼, 키만 믿고… 악에 받친 빈정거림은 다시 등장한 장나라에 의해 끊겼다.

 

 

 

“우리 형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유도해.”

“…”

“내가 엔간하면 참겠는데,”

 

 

 

장나라가 주저앉은 남학생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혀 쪼그리고 앉았다. 장나민과 비슷하지만 좀 더 싸늘한 인상인 얼굴이 가까워지자 남학생이 움찔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고작해야 자신에게 쫄 거면서, 왜 장나민 앞에서 뻗댔단 말인가. 장나라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나 연예인 안 해도 상관없거든.”

“…”

“적당히 좆 같이 굴란 소리야.”

 

 

 

어지간하면, 우리 형 눈에는 더 띄지 말고.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쉰 장나라가 남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그것을 받침대 삼아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장나민에게 멱살을 잡혔을 때보다 훨씬 더한 모욕감이 들었으나, 남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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