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기억한다는 건

양스클럽 by Ya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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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 이불 위로 따뜻한 온기가 누워있는 걸 본 순간 나는 앞으로 무엇이든 포기하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하나뿐인 이불이든 인형이든 사랑이든 그랬다. 저녁 마다 울음소리에 온 가족이 밤을 설칠 때, 배가 고파 일어난 척했다. 배가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분유를 타던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같이 울었다. 그러면 엄마는 분유를 두 개 탔다. 동생에게 분유를 먹이며 들려줬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너 어렸을 때는 분유를 안 먹으려고 해서 엄청 고생했지. 그때 못 먹은 걸 지금 찾는 걸까. 살며시 웃는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평생을 길러준 할머니 얼굴보다 그때 엄마의 얼굴이 더 오래 남는 건 왜일까. 엄마 말처럼 그때 못 받은 걸 지금 찾는 걸까. 학교에 입학하며 학교와 가깝다는 이유로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할머니에게 잡은 손을 넘기며 엄마는 살짝 울었던 것 같다. 동생은 이유도 모른 채 펑펑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맞잡은 손이 부드러운 손에서 거친 손으로 변했다는 그 감각에만 집중했다.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던데 엄마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잘 지내 한마디가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약속처럼 들렸다.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기엔 무척 어렸고 감정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 나를 버린 엄마보다 동생이 죽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입학 선물로 받은 스케치북에 동생 이름을 계속해서 썼다. 엄마가 생각날 때, 좁은 방이 생각날 때, 분유를 먹던 밤이 생각날 때마다 동생 이름을 썼다. 빨간색 색연필로 석 자를 거칠게 적었다. 빨간 색연필이 떨어지면 할머니 돈을 훔쳐 다시 샀다. 그리고 또 썼다. 색연필을 잡았던 손가락이 움푹 파일 때까지 쓰고 또 썼다. 4학년이 되었을 무렵 빨간색이 질렸다. 그때부터는 주황색으로 썼다. 빨간색만 없던 색연필 통에서 주황색이 사라지고 노란색이 사라지고 결국 보라색마저 사라졌을 때는 더 이상 졸업할 학교도 남지 않았다. 색연필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도 엄마는 오지 않았고 동생은 이제 내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이젠 적을 색도 없고 남은 원망도 없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에도 마음이 소모된다는 걸 다 커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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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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