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나더 시리즈

퀴어적 시각에서 슈나더 해석하기

퀴어는 단순 캐릭터 속성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세요~

연전 by 연전

시작하기 전에

단나더 시리즈는 원작 ㄷㄱㄹㅍ 시리즈의 동인 2차 창작 게임입니다. 원작이 있어 존재하는 2차 창작임을 기억해 주세요.

글 작성자는 원작 시리즈의 모든 게임을 구매 완료한 비청소년임을 먼저 밝힙니다. 구매 인증

게임 제작자님의 발언:

2차 창작은 어디까지나 2차 창작입니다. 원작이 없다면 2차 창작도 없습니다. 저 역시 단간론파 시리즈의 굉장한 팬이고, 제 작품보다 원작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가끔 제 작품을 원작과 비교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전 저처럼 원작을 즐기신 분들이 추가로 "이런 것도 있네~" 하면서 즐겨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2차 창작 게임을 만든 거지, 원작을 이겨먹으려 하거나 욕보이려고 게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원작이 훨씬 월등하고 재미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서로서로 얼굴 붉히거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건전하게 게임을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게임 제작자님의 블로그 게시글

* 유념해 주세요!

캐릭터를 퀴어로 해석한다고 캐릭터가 기존에 갖고 있던 특성이 변형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르 캐릭터에 퀴어 키워드를 적용함으로써 현실의 퀴어를 지울 생각 따위 추호도 없습니다. 퀴어는 단순 캐릭터 속성이 아닙니다.

저 또한 퀴어이나, 퀴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부디 귀띔해 주세요.

제 해석은 동인 해석의 한 갈래일 뿐 정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편하시다면 블락해 주세요.

본래 단나더 시리즈 관련 게시글은 본문의 수위와 관계 없이 연령 제한을 설정하고 있으나, ‘퀴어’라는 개념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전체 연령가로 발행합니다.

이하 본문 슈나더 에필로그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1. 서론

수도권에 살며 웬만하면 매년 서울 퀴퍼에 가려고 하는데, 올해는 개인 사정 때문에 못 갔다. 영 아쉽던 차에 내 장르로 퀴어 해석을 해 볼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글리프에서 챌린지 1주차 주제로 무지개를 던져 주는 것이 아닌가. 이건 다시 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성한다.

나는 원래 타 장르에서도 퀴어 해석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대표적으로 죠죠 5부를 보며 이 친구는 게이 저 친구는 팬섹슈얼 등등의 해석을 내 안의 오피셜로 땅땅 박았던 기억이 있다. 애초에 그 작품에서는 공식 게이도 나오고 말이다.

그래서 슈나더로 해석글을 적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 정리해 봤다. 이전부터 퀴어 해석을 하던 친구는 6명이었는데, 이번에 2명을 더해서 총 8명을 퀴어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소라, 하시모토 쇼바이, 카부야 요루코, 오오토리 테루야, 니지우에 이로하, 미츠메 코코로, 마고로비 엠마, 산노지 미카도.

이상의 8명이 그 구성원 되시겠다.

작 중에서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준 오토노코지 카나데에 대해서는… 언니를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긴 하지만 이걸 퀴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싶다. 이건 일종의… 이상 성욕이라고 생각한다. 카나데가 히비키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퀴어적인 시각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2. 본론

크레페 율무차 님(@kylyulmoo) 커미션 감사합니다!

모든 플래그의 이미지는 위키백과를 참고하고 있다.

(1) 앞에서부터 한 명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순서는 당연히 주인공인 소라.

범성애 플래그

소라는 범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평소 모습만 보면 양성애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에다 유우키 자유 행동 스크립트. 소라의 대사. 저 좋아해요? 저도 마에다 씨 좋아해요.

챕터2, 모노크루즈 발코니에 소라와 카부야가 함께 선 CG. 소라의 대사. 저… 안겨도 될까요? 방금 조금 두근♥ 해버렸어요.

작 중 일부만 꼽아 봤다. 이렇듯 소라는 성별 무관하게 플러팅을 잘 날리는 캐릭터다. 이성인지 동성인지, 상대의 성별에 대해 신경을 쓸 것 같은 이미지라 양성애자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소라를 범성애자로 해석한 데에는 이하의 이유가 작동한다.

챕터6, 이상향 속에서 마에다에게 고백을 받은 소라의 대사. 제가 이렇게 진지하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니……… ………기쁘네요.

소라의 이상향은 소라가 이상으로 여기는 세상, 소라가 원하는 것이 반영된 세계다. 이곳에서 소라는 ‘진지하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이 ‘누군가’라는 표현에는 성별의 의미가 포함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그것이 누구든 어떠한 특징은 상관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것이다.

양성애는 동성과 이성 모두를 좋아할 수 있는 성향으로, ‘동성과 이성’이라는 성별을 지정하고 있다. 반면 범성애는 좋아하는 이의 성별은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성향이다. 따라서 나는 이상향에서의 언행에 미루어 소라를 양성애자가 아닌 범성애자로 해석한다.

물론 로맨틱 성향과 섹슈얼 성향은 별개의 것이지만, 소라는 스킨십에 적극적이면 적극적이지, 피할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기에 두 성향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여담으로 소라의 원본이 된 타이라는 어릴 적 여러 학대를 당한 탓에 스킨십에 다소 부정적일 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부분은 소라와 차이점으로 볼 수 있겠다.

* 로맨틱 지향성과 성 지향성에 대한 간단 설명

로맨틱 지향성은 어떤 상대에게 감정적인 끌림을 느끼는지에 대한 성향이다. 사람에 따라 감정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성 지향성은 어떤 상대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지에 대한 성향이다. 사람에 따라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2) 다음으로 하시모토 쇼바이를 살펴보자. 이 놈에 대해서는 생각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본문 길이가 좀 길어도 양해를 부탁드린다.

데미섹슈얼 플래그

아마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겠다. 데미섹슈얼이란 ‘친밀한 이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성 지향성’이다. 데미로맨틱이기도 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개인 캐해 상 사랑하는 이에게는 스킨십을 요구할 것 같다는 들기 때문에 데미섹슈얼로 기재했다.

개적폐라고 까도 할 말 없다. 그냥 그런 해석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 달라. 아니면 블락을 하든가.

우선! 데미로맨틱 성향부터 알아보자.

하시모토 쇼바이 자유 행동 스크립트. 하시모토 쇼바이의 대사. …이봐, 아가씨. 이 섬에서 죽지 않는다면, 나중에 혹시 내 조수 할 생각 없어?
소라의 대사. 그렇게 저랑 얘기하길 거부하실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저한테 집착하시는 이유가 뭐죠?
이하 하시모토 쇼바이의 대사. 처음엔 나도 너에 대해서 잘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가씨는 좀 달라. 아가씨에게선 나랑 비슷한 어둠의 냄새가 난다고.

친근감을 느끼는 상대에게는 끌림을 느낀다. 물론 이 시점 하시모토는 소라에게 로맨틱 끌림을 느낀 건 아니다! 그러나 친근감을 느끼고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점에만 집중해 보자면, 이 부분은 데미로맨틱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친밀한 이에게 감정적인 끌림을 느끼는 로맨틱 지향성’이다.

자 이제 성 지향성을 다뤄 보자.

내 개인 캐해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하시모토 쇼바이의 성향은 무성애에 극히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탐라에서 우스갯소리로 “하시모토가 서양 캐릭터였다면 제법 문란한 생활을 했을 거 같음 그런데 한국산 일본인 캐릭터라 아닌 듯”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캐릭터 특성 상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설정이었을 거라 생각되는… 그런 느낌으로 발언한 거였는데. 하여튼.

하시모토 쇼바이 자유 행동 스크립트. 하시모토 쇼바이의 대사. 어떤 쓰레기 같은 녀석의 이야기인데…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풍경은, 동남아시아의 낯선 골목길이었어.
부모랑 같이 여행을 온 것 같다… 는게 그 녀석의 추측이긴 했는데, 부모는 어딨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지.
그리고 낯선 나라의 낯선 거리에서, 당장 해결할 의식주도 없는 채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을 시작했어.

어린 나이에 버려져 범죄의 길을 걸으며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성욕이 생존보다 앞서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분명 성적으로 얽힌 추잡한 꼴을 질리도록 봤을 거 같기도 하다. 하시모토 쇼바이는 이성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분명 그러한 모습들을 접하며 거부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성적인 욕구를 앞세우다가 자멸하는 꼴을 보고도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적어도 하시모토는 들지 않을 거다.

그런데 왜! 무성애자가 아니라 데미섹슈얼로 해석하느냐 하면.

하시모토 쇼바이 자유 행동 스크립트. 하시모토 쇼바이의 대사. 우선 돈이 필요했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닥치는 대로 뭐든 했어.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똥을 먹으라 하면 먹을 정도로.

생존을 위해서는 돈이라는 수단이 필요했다. 돈이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주고 받는 가치이며,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거래품이다. 돈만 있으면 생존이 보장되니, 이보다 ‘확실한’ 가치는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시모토 쇼바이가 살아남는 데에 있어 모든 것이었던 돈은 확실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하시모토 쇼바이가 애정을 갖는 사람이 생긴다면, 애정이라는 불확실한 감정을 확실히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지 않을까?

애정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일차원적으로 생각하자면 가장 보편적인 수단은 스킨십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스킨십을 주고 받을 거 같다는 이미지가 생겨, 내 안의 하시모토 쇼바이는 데미섹슈얼이 되었다.

(3) 세 번째 캐릭터는 카부야 요루코다.

레즈비언 플래그

사실 카부야가 레즈비언이라는 전제에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카부야는 작 중에서 던져진 떡밥이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카부야 요루코 자유 행동 스크립트. 소라의 대사. ……이 사진은?
카부야 요루코의 대사. 누군 것 같아?
이하 답변의 세 가지 선택지가 나열되어 있다. 여동생?/카부야 씨?/숨겨둔 애인?

카부야 요루코 자유 행동 스크립트. 카부야 요루코의 대사. 난 그 선배를 동경했어. 동시에 방금 네 말대로 상당히 기대고 있었지.
그런데 그 선배… 지금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이하 답변의 세 가지 선택지가 나열되어 있다. 죽었나요?/애인이 되었나요?/어떻게 됐나요?
소라의 대사. 애인이 된 건가요!?
카부야 요루코의 대사. 뭐어!? 아니야! 소라 너 은근히 자꾸 그런 쪽으로 얘기를… 뭐 아무래도 좋지만.
시스템 메시지. 카부야가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챕터5, 타이라 아카네로서 죄를 고백하는 소라를 상대로 한 카부야 요루코의 대사. 난 그래도 소라가 좋아.

내가 추가로 첨언할 것도 없지 않나…

카부야는 유독 여성 인물과의 상호 작용에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과거 이야기에서 언급하는 ‘선배’ 또한 여성이며, 이상향에서는 그 선배와 재회한 모습이 그려진다.

사교 선택지에서도 여성을 상대로 애인이냐는 물음이 계속 나오고… 심지어 선배와 애인이었느냐고 물으면 기뻐하기까지 하고… 메인 스토리에서도 소라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물론 카부야는 ‘상대는 여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와 같은 반응을 돌려 주기도 하는데… 디나이얼의 반응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 아니면 아웃팅을 경계하는 거든지…

어떻게 보나… 확신의 레즈비언이라는 생각만 드는 편이다.

(4) 다음으로 넘어가자. 오오토리 테루야와 니지우에 이로하는 동시에 작성하겠다.

프라이드 플래그

두 사람은 정확히는 퀴어 당사자는 아니고! 앨라이라고 본다. 앨라이Ally란, 퀴어 당사자가 아니지만 퀴어와 연대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챕터2, 아침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니지우에 이로하와 오오토리 테루야. 니지우에 이로하의 대사. 오오토리 씨, 얘기가 통하시네요! 맞아요. 사람들은 무지개라고 하면 그냥 일곱 색을 대충 칠한다고만 생각한다니까요!
오오토리 테루야의 대사. 맞는 말이야. 무지개라는 건 좀 더 심오하게 다뤄야 하는 건데, 그걸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말이지.
둘이서 무얼 하느냐는 소라의 물음에 니지우에 이로하의 대사. 무지개에 대한 고찰이요! 오오토리 씨도 무지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시더군요. 의기투합 해버려서…
오오토리 테루야의 대사. 설마 이런 데에서 『레인보위시스트』를 만나다니. 이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 정말 드물지.

이렇게까지 무지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무지개에 담긴 LGBTQ+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다! 뜻을 알고도 무지개를 좋아한다면, 그 뜻까지 좋아한다는 말이 되는 거 아닐까?

더불어 오오토리는 본인의 재능인 상인으로서 기른 처세술까지 합쳐져 무엇이든 오케이라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챕터2, 마쿠노우치 처형 후 모인 자리에서 카사이 신지의 대사. 마쿠노우치가 사실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건, 제 몸의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니지우에 이로하의 대사. 모, 몸!? 경험!?

니지우에 이로하의 자유 행동 스크립트. 소라의 대사. ………뭐죠? 웬 남자들끼리 알몸으로 키스……
니지우에 이로하의 대사. 이건 그………… 그냥 심심풀이삼아 한 낙선데 그 뭐냐 그거 있잖아요…… 그거에요…

니지우에는 사실 동인녀 속성을 갖기도 해서 어쩌면 조금 왜곡된 지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왜곡된 지식은 물론 유해하지만 적어도 포비아(혐오자)는 아닐 것이라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나는 오오토리가 퀴퍼 맨앞에서 신나게 무지개 플래그를 흔들 캐릭터라고 항상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커미션을 통하여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참 뿌듯하다.(커미션주 님 감사합니다!)

(5) 다음은 미츠메 코코로와 마고로비 엠마의 차례…지만, 이 두 사람과 관련해서는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는 관계로 마지막에 다루기로 하겠다. 고로 다섯 번째 순서는 산노지 미카도의 차례.

논바이너리 플래그

논바이너리란, 성별 이분법, 그러니까 여성과 남성의 구분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뜻한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당연히 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이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어느 쪽도 포함된다고 느끼거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거나… 등등의 경우가 모두 논바이너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산노지 미카도가 논바이너리라고 생각한다!

이하 문서에는 사람에 따라 불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러스트-산노지 미카도의 챕터6 스탠딩이 담겨 있다. 접은글 기능이 있다면 접어 두었을 텐데… 글의 공개 설정 상 장르판 바깥의 사람에게도 읽힐 가능성에 대비해 이미지를 다소 내려 두겠다. 진행하고 싶은 사람은 문서를 스크롤하자.

챕터6, 재판정에서 산노지 미카도의 대사. 인공지능에 불과………?
한낱 인간에 불과한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전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인간의 지혜를 아득히 초월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저보다 밑이에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은 천운을 가진 우츠로 님 외엔 없습니다.

산노지 미카도는 인간을 초월한 얼터 에고라고 스스로를 지칭한다. 그런 그가 과연 인간의 젠더를 신경이나 쓸까? 신경을 썼다면 이하와 같은 생각을 했을 리도 없다.

챕터6, 재판정에서 산노지 미카도의 대사. 뇌사 상태지만 신기하게도 몸은 건강 그 자체였고, 근육도 신경도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네, 마치 뇌라는 소프트웨어만 새 것으로 교체하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듯이 말이에요.

챕터6, 재판정에서 마에다 유우키의 대사. 타이라 아카네의 육체에 들어갈 인격은 우츠로가 아니라……
카부야 요루코의 대사. 산노지 자신이었던 거구나…!

산노지 미카도는 타이라 아카네의 신체 조건만을 보고 자신이 들어갈 육체로 결정했다. 타이라 아카네의 지정 성별(Sex)은 분명히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산노지 미카도가 타이라 아카네의 몸을 실제로 탈취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과연 디스포리아(지정 성별과 젠더의 불일치로 인한 불쾌감)를 느낄까?

배드 엔딩 CG, 타이라 아카네의 몸에 들어온 산노지 미카도.

나는 느끼지 않으리라 가히 확신한다. 산노지 미카도는 본인의 젠더 정체성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신경을 쓰는 경우가 생긴다면 자신의 유흥을 위해서 이용하는 상황에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바이너리임을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비교적 최근에야 깨닫고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6) 마지막으로 미뤄 두었던 미츠메 코코로와 마고로비 엠마를 알아보자.

무성애자 플래그

한 가지 먼저 말해 두겠다. 무성애는 단순히 스킨십을 하지 않거나, 사랑을 하지 않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무성애는 성욕을 느끼지 않는 성지향성을 뜻하는 단어다.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고 양철 나무꾼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정말 많이 곤란해진다. 혹시 단어를 오용하고 있었다면 부디 알아 주길 바란다. 무성애는 하나의 성향일 뿐이다.

그리고… 미츠메와 관련해서는 비윤리적인 실험, 마고로비와 관련해서는 가정 폭력에 대한 서술이 나올 예정이므로 주의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 마고로비 엠마와 관련해서, 이하부터는 마고라는 호칭으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현실 배우에 대한 예우로… 일종의 써방 개념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콘텐츠 및 트리거 주의로 글을 좀 내려 두겠다. 열람을 원하는 사람은 문서를 스크롤.

이 두 사람은 같은 성 지향성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하여 같이 묶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별개가 될 예정이다.

먼저 미츠메 코코로부터 살펴보자면, 미츠메는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마저도 인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병이라고 나온다. 그래서인지 미츠메의 태도는 대개 덤덤하고, 냉철해 보인다.

미츠메 코코로의 자유 행동 스크립트. 미츠메 코코로의 대사. 이 감정은… 오랜만에 느껴보는걸.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럽다』는 감정이네. 지금 나는 상당히 부끄러워.

다만 감정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감정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는 일어난다. 따라서 이 병만으로 미츠메의 성 지향성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츠메를 무성애자로 해석한 이유는 이하로 이어진다.

챕터0, 쿠로카와 코코로의 대사. 그래, 난 그 프로젝트를 위해 아이를 낳았어.
남의 아이를 구하는 것보다 그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거든. 보안성도 차원이 다르고.
실험실에서 아이를 낳고, 그 즉시 실험에 들어갔지. 이 파일들은 전부 당시 실험 때 저장된 것들이네.
연구자 그룹의 지인 중 전부터 내게 열렬히 구애하던 사람이 있었거든…… 수고를 덜었으니 마침 잘 됐지.

미츠메, 쿠로카와 코코로는 전작 쿠로카와 미카코의 친모로서 ‘원초적인 감정’을 연구하기 위하여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밀실에 가두고 성장시키기 위하여 직접 임신해 아이를 낳았노라고 미츠메는 고백한다. 이러한 임신·출산의 과정에 성행위란 그저 결과를 위해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타인의 애정을 이용하기만 할 뿐, 본인의 성향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성욕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언행에 미루어 나는 미츠메 코코로가 무성애자일 것이라고 본다.

마고 관련으로는…

마고의 자유 행동 스크립트. 마고의 대사. 사양하지 마. 돈의 힘이란게 무시할게 못 돼.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해줘.
그리고… 돈은 쓸 수 있을 때 써야 돼.

마고의 자유 행동 스크립트. 마고의 대사. 그런 사람이 당연히 제대로 직장 갖고 일할리도 없고, 어린 나보고 잡동사니라도 주워다 팔아 돈을 가져오라고 했어.
도망칠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살던 곳은 엄청난 빈민가라… 경찰도 잘 오지 않는 곳이었거든.
당시 내 처지는 둘 중 하나였어. 이대로 아버지에게 죽느냐, 도망치다 부랑자들에게 죽느냐.
………혐오해도 좋아. 솔직히 어린 시절의 난 살아남기 위해 절도나 무단침입도 서슴치 않았거든.

마고의 서사는 사실 앞서 이야기한 하시모토 쇼바이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범죄에 손을 대기까지 했던 환경.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빈민가 출신. 이러한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부분까지.

마고는 실제로 작 중에서 천운의 가호를 ‘재력’이라는 형태로 받았다고 서술된다.

게임 제작자님의 발언:

니지우에는 챕터 6에서 마고로비의 천운의 가호에 대해 "재력" 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피가 이어졌냐 이어지지 않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진짜 가족"이요. 천운에게 선택된 마고로비의 양부모가 단순히 부유했기 때문에 재력도 가졌을 뿐.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원문: 게임 제작자님의 블로그 게시글

그러나 나는 제작자님께서 설정 비화에서 하신 발언에 동의한다. 마고는 천운으로 재력이 아닌 가족을 받은 거라고.

마고의 현 가족에 대한 언급은 애정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듯 가족애가 넘치는 마고지만, 학대를 당한 과거를 떠올릴 때면 공황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 있다. 대개 학대라 함은 물리적인 폭력도 있지만… 경찰도 잘 오지 않는, 도움을 구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성적인 폭력에도 쉽게 노출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라를 이야기하면서 서술한 바 있다. 소라의 원본이 된 타이라는 어릴 적 여러 학대를 당한 탓에 스킨십에 다소 부정적일 거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마고 또한 비슷하리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시모토 쇼바이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환경이 폭력으로 다가오는 입장에서야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편 그와 비슷하다 계속 언급은 했지만 그와는 다른 점이, 보다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거부감 이상으로 싫어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따라서 나는 마고가 스킨십에 부정적인 무성애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츠메 코코로는 아동 학대 가해자, 마고는 아동 학대 피해자다. 성 지향성과 캐릭터들의 서사는 하등 무관계한 것이지만, 여기서까지 묶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3. 결론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생각이 차차 불어나서 현 시점에는 8명이나 퀴어로 해석하게 되어 매우 반갑고 기쁘다.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와는 별개로 말이다. 퀴어 캐릭터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이 글은 나의 개인 해석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음을 알아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기도 하니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만족할 수야 있겠지만… 이왕이면 뜻을 담아 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퀴어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를 존중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당연한 존재일 뿐이니 말이다.

혐오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힘내서 살아 보자.

무지개 깃발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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