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최량으로 '무지개'

자캐연성 by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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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량에게.

잘지내냐?

사실 너가 잘 살지 않았음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짓밟고서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안다면 내가 너무 분통이 터져 죽을 거 같거든. 그래서 너가 어떻게 사는지 일부러 눈과 귀를 막고 내 나름대로의 삶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의 소식은 틈새를 억지로 파고들어 배경음악 처럼 잔잔하게 들려오더라고.

그래, 너는 항상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 부터 항상 너란 존재는 혜성처럼 온갖 색을 가진 것처럼 반짝였고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엑스트라지. 만화였다면 너는 주인공이고 나는 색조차 없는 흑백의 인형이겠지. 그런데 아직도 궁금하다. 왜 그때 너는 나에게 손을 뻗었나? 겨우 내가 또래들의 대화 소리가 싫어 끼운 해드셋 때문에 자신과 같은 존재라 생각하고 말을 건 거였나? 참으로 단순한 이유였다면 너는 사람 볼 줄 아는 능력 좀 키워야겠다. 가뜩이나 사람 끌어들이는 놈이 그러니까 사기를… 아니다, 이쪽은 너가 더 잘 알겠다.

잠시 허황된 꿈을 꾼 거라 생각한다. 내 옆에 있을 리가 없을 사람이 있었고, 그 땐 세상이 나에게 고난을 주지만 그 만큼 결과를 줄 거라 믿었으니까. 한 때 너가 내 손을 잡고 들어간 밴드실에서 처음 악기를 만지고, 조율하나 안 된 소리에도 같이 눈을 빛내면서 웃으며 너와 같이 음악을 할 줄 알았다. 그 생각은 금방 무너졌지만. 너는 혜성같은 존재가 아니다. 한 순간 빛났다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무지개였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 손에 잡힐 거 같으면서 절대 그러지 않고 항상 앞에 존재했다. 따라잡은 거 같다 싶다가 너는 어느새 저 멀리서 제 능력을 펼치고 있었다. 난 너와 같이 갈 수 없단 걸 옛적부터 알았다. 주인공과 엑스트라, 무지개와 그를 잡을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년.

그 다음부턴 너도 잘 알다시피 너를 피했다.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연료로 쓰는 사람은 드물듯 나는 드물지 않고 흔한 사람이니까. 돈을 보내 모은 악기는 내 방에 두지 않고 음악실 구석에 두고 그대로 음악에 등을 돌려 도망쳤다. 다 너 때문이야. 아마 그 이후로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줬겠지. 그래서 너의 소식에 분노한다. 그렇게 포기하고 경찰이 된 너를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익명

익명에게.

너가 잘 지내리라 믿고 있어. 너 역시 달라진 점은 없는 거 같아. 나를 과대평가하지만 나 역시 무지개를 손에 잡으려는 소년에 불과했어. 그저 먼저 달려나가 영영 잡을 수 없단 걸 먼저 깨달은 사람이지. 그럼에도 그것밖에 없으니 달려갔을 뿐이야. 혜성처럼 천천히 빛나며 닳아가는, 그게 나였어.

너 말 대로 난 포기한게 맞아.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무언갈 해내는 와중에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니. 특히 서가 경찰대에 있을 때 숨이 막혔지. 시간만 가고 무지개의 한 끝도 잡을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도 의심이 들었고. 그래서 그 때 사기에 당했나? 눈 앞만 뵈는 사람이었을 때니 그랬을 수도 있겠지. 나는 무지개를 잡아도 행복했을까? 글쎄, 갖지 못해 신포도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 하지만 흔한 이야기 해 줄까? 항상 첫줄에서 나를 그 때와 같은 빛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너를 내가 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했어? 그 눈 안에서 나는 무지개를 보았어. 너가 나를 무지개로 보듯 나는 너와 같이 보냈던, 무지개를 잡기 위해 떠난 여정 또한 내가 가지고 싶은 무지개였지. 그래서 나는 다른 무지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야. 너도 그렇잖아? 이 답장은 보내지 않을 거야. 그냥 다시 너가 내 앞에 있을 때, 말하고 싶어.

-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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