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최량으로 '밴드'
“이 밴드는 망했어.”
시작한지 고작 5분도 안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도 말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라 아무도 반론하는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고작 들리는 소리는 선풍기가 내는 털털거리는 소리였다. 그 다음으론 말한 이의 한숨과 문을 열고 닫는 소리였다. 그 다음으로 소리를 낼 만한 이가 있을까. 그 생각이 스쳐지나가기 전에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첫 숱에 배부를 리가 있나아.”
특유의 가볍지만 부드러운 목소리. 최량이었다. 음. 정리하듯 뱉은 소리 역시 가벼워 보였지만 모두들 그를 보게 만들만큼 묵직했다. 아마 처음 우리들에게 밴드를 하자고 한 이니 당연하겠지만. 솔직히 그렇기 때문에 그를 보며 기대한다. 혹시나 이걸 대비해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나 아니면 그 답게 엉뚱하지만 기발한 탈출구를 찾았을지도.
“연습해야지!”
하지만 다음으로 나온 말은 모두의 기를 탁 풀리게 만들었다. 당연하지만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여서 다들 생각지도 않았을 터인데, 그런 마음도 모르고 최량은 실실 웃고 생글거린다. 다른 의미로 참 엉뚱하고 기발한 탈출구를 찾은거다. 처음 그가 손을 내밀고 음악을 좋아하니 당연히 연주하는 것도 좋아할 것이라 말하고선 같이 밴드를 해서 교내에 음악소리를 퍼트리자는 생뚱맞은 제안을 한 것부터 그 다웠긴 했다. 그리고 그걸 이상한 이의 허울좋은 헛소리로만 치부하고 거절하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의 말에 혹해 들어간 우리 역시 이상한 사람이긴 했지만 말이다.
첫 분위기의 싸하고 가라앉은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었다. 하나의 헤프닝으로 나중에 간식을 먹거나 모이면 웃음거리로 소비할 이야깃거리가 된 만큼 연습은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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