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밴드

- by 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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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눈을 뜨자 손목에 하얀 밴드가 매여 있었다. 아무 기억이 없건만 얕게 긁힌 긴 흔적 위를 어설프게 덮고 있었다. 손수건도 아니고 뭐지, 이게. 주변을 살펴볼 틈도 없이 숨가쁘게 의문을 늘어뜨리고 있자니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서늘한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낯선 미남자였다. 세상에, 심지어 은발이라니.

“안녕. 정신이 든 것 같아 다행이구나.”

아뇨. 안녕이고 뭐고……. 일단 누구시죠. 안녕을 따질 겨를도 없이 날아들어온 남자는 눈앞에 놓인 그 어떤 시공간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었다. 뒤늦게 둘러본 방 안은 온통 미색과 은색 따위로 덮여 무미했으며 병원이나 치료실 같았다. 의료 기기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그에 따른 작은 소음도 없었지만 특유의 건조함과 여백감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 멋대로 인사한 후 줄곧 나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만이, 보석처럼 기묘한 광채를 띠며 오색으로 빛났다.

“내가 누구인지는 곧 알게 될 거야. 중요한 건 내가 왜 여기 있는지니까.”

“왜 여기 있는데요?”

“너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지?”

지니세요? 로판 찍는 것도 아니고. 난 회귀도 빙의도 뭣도 한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이런 데 있을 이유가…….

“그런데 왜 손에 밴드 같은 걸 붙여 뒀을까?”

깨닫고 보니 너무나 이상했다. 링거조차 묶어두지 않은 손목에, 왜 밴드 따위를 붙여 둔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나 큰 밴드를……. 그걸로도 다 못 덮을 만큼 큰 이 상처는 뭐지? 조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더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머리 뒤편이 서늘해졌다.

“무지는 공포의 어머니라던가……. 뭐,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알려줄게.”

우선은 그 밴드 아래 있는 것부터 보여주지. 짐작하겠지만, 우리 계약의 증거를.

어느새 침대 위에 앉아, 내 손을 감싼 남자가 싱긋 웃었다. 속눈썹이 반짝, 빛나는 것 같더니 하얀 밴드가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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