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무제

어떤 무대

무제 by L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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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떤 의사는 예술에 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이었다.

 쉼 없이 달려 왔던 인생에 휴식을 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하지만, 글쎄. 그는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혹은 휴식이 들어찰 틈이 없을 만큼 바빴을지도. 찰나의 숨조차 돌릴 수 없었던 응급 상황을 겨우 수습한 뒤에 가운을 벗은 이가 긴 한숨을 내쉰다. 한 선생님, 지금 퇴근하시는 건가요? 네, 약속이 있어서요. 가벼운 사담을 흘린 이가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느라 답지 않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가운을 제 자리에 놓아 두는 것과, 업무 중의 이유로 인해 목에 걸려 있던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워 두는 일은 잊지 않았다. 익숙하게 겉옷을 뒤져 담배를 찾다가, 곧 있을 약속을 기억하고는 다음 기회로 미뤄 두었다.

 매표소에서 교환한 티켓은 제법 좋은 자리로 배정해달라 요청이 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 서야 무대가 한 눈에 전부 보이면서도 너무 가깝지는 않은 좌석에 앉을 수 없었겠지. 부러 검은 색의 후드를 걸쳐 특정되기 쉬운 머리카락을 가린 이가 천천히 주위를 살핀다. 사전 검색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밴드가 정확히 어떤 것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맨 처음 초대장을 받았을 때 섣불리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꺼내지 않았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

 

 연주가 시작된다. 병원의 로비를 지나가다 보면 늘 틀어져 있던 클래식과는 전혀 다른 연주, 경쾌한 음악이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밴드를 바라본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와 함께한 시간 보다는 저들과 함께한 시간이 많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타인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던 사람, 손길이 닿지도 않았는데 먼저 물러나 버리는 이. 한 걸음 다가가면 세 걸음 정도는 기본으로 물러나던…….

 연달아 다음 곡이 이어진다. 이번 곡은 조금 다른 곡인 것 같은데. 음악에 무지한 자라도 느린 템포로 이어지는 음악이 바로 이전 곡과 같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바로 전 들어온 탓에 곡의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는 간만 에 무지가 나쁘지마는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당신은 곡이 끝날 때 마다 수없이 들리는 박수와 환호 소리가 익숙할까. 저 사람들은 당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알고는 있을까. 기타를 연주하는 저 손가락의 굳은살이 비단 기타를 연주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의 합주자 들이 알고 있을까.

 그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은 채로 무대 위를 바라본다. 찰나에, 시선이 마주했던가? 속절없이 휘어지는 저 웃음은, 그래. 오로지 나를 위한 것. 아까부터 묘하게 거슬리던 감정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차오르는 만족감은 은은한 미소가 되어 무대 위의 이들을 향한 찬사가 되고, 어쩐지 누군 가를 위한 것만 같던 노래가 끝이 난다.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사람, 서로를 온전하게 신뢰할 수 있는 상대, 평생의 맹세를 나눈 사이, 그런 것이 다 무슨 상관인가? 지금 이 순간, 그는 한낱 연주자의 팬으로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좌석 밑에 놓아 둔 푸른 장미 꽃다발을 전해 주는 것은 집이 아니라 무대가 끝난 뒤어야 하겠지.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집에서 앵콜을 요청하는 것은 자신만의 특권이리라.

 그는 처음으로, 예술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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