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 오색
오늘따라 하늘빛이 유난히 희었다. 빗살은커녕 허연 빛살만 내비쳤다. 무지개가 뜬다더니. 또 흰소리였다. 오팔처럼 고운 눈 아래, 입술은 곱고 부드러웠지만 그가 내뱉는 말은 영 믿을만한 것이 못 되었다. 구는 양이 타고난 미모에 못내 미치지 못하여 아까운 사내였다.
"그다지도 나를 신뢰하다니 이것 참 영광인데."
"악마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조상님 지혜가 쓸만하긴 하네."
"인간의 전설에 비하다니 이 또한 영광이고."
"양반도 못 될 게."
방 안에 달아둔 주렴을 유난스레 밀치며 사내가 나타났다. 고개를 기울이자 가지런한 은발이 조로록 떨어져 얼굴을 보기 좋게 가렸다. 답지도 않은 아양을 부리는 것이 모로 보아도 제발 저린 듯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미모는 보기가 좋았지만, 저 입에서 나올 수작질을 생각하니 슬슬 열이 뻗쳤다.
"됐고, 오늘 비 온다며. 내내 말갛기만 한데 어찌 된 거야?"
"흠. 무지개가 뜬다고 했지 비가 온다곤 안 했는데?"
"또 말장난할 생각 마. 무지개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긴 해?"
"그대야말로 한두 번도 아닌데. 알잖아, 기다리면 알게 되는 걸."
"하……."
입이 바싹 말랐다. 하기야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열이 올랐다. 그야 인간도 아니니 별 상관 없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일임을 알면서도 저런 식이었다. 계약을 맺고 그를 이용할 기회를 얻었지만, 남은 생을 따지면 결코 풍족한 양이 아니었다. 사내의 말은 늘 짧고 모호했으며, 때로 교묘하여 농락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계약을 파하지 않은 건…….
"난 거짓말은 안 하니까."
부러 웃어보이는 눈매가 곱고 미웠다. 그가 말한 이상, 오늘 무지개는 뜬다. 언제 어디에 뜰지는 몰라도, 반드시. 저 눈동자처럼, 내가 보는 곳에서 오색으로 빛날 것이다.
"…오늘만 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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