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와 무지개

도롤 by 도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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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은 아침 해가 뜰 때쯤 암막 커튼을 치고 잠이 들고, 저녁 해가 기울 때쯤 암막 커튼을 걷으며 잠에서 깼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은 것만 같은 꿉꿉한 방 안 공기에 왠지 모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창문을 여는 것은 덤.

주변의 누군가가 말했다.

[제발 밖에 좀 돌아다녀.]

하지만 창밖의 세상은 언제나 어두웠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길을 어떻게 걷고, 걸어서 뭘 하라고?

오직 모니터 화면만이 유일한 불빛이었다. 어쩔 땐 모니터의 눈을 찌르는 LED 불빛마저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침대에 가만히 누워 머릿속에서 불을 켜곤 했다. 별빛이 쏟아지는 어느 사막의 밤, 친구와 함께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듯. 그에겐 그 정도 불빛이면 충분했다.

밤에도 영원과 함께해 주던 친구가 말했다. 이대로면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고.

아주 작은 불빛이면 충분한 영원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제서야 조금쯤 눈치챘다. 밤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는 걸. 모니터 화면은 그저 낮의 강렬한 햇빛을 직접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대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하루아침에 부엉이가 닭이 될 수는 없지.

침대에 누웠다. 일단 오전 07:00 알람을 맞췄다.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람이 울렸다. 잠을 자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아침에 일어난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친구에게 이 일을 전했다. 어이없어하는 눈치였지만 그가 말했다.

[어쨌거나 일어났으니 됐지.]

역시 영원의 친구답다.

해 질 녘이 아닌 동 틀 녘에 암막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눈꺼풀에 굵은 빗방울이 한 방울 튐과 동시에 무섭게 비가 들이쳤다. 영원은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창문 너머로 우르릉 소리도 들려 온다. 하필 소나기.

오랜만의 마주한 낮은 어쩐지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암막 커튼을 걷었는데도 어둑어둑해서 방의 등을 켜야만 했으니. 다른 점이라곤 좀 더 시끄럽다 정도?

‘비 맞는 건 싫은데.’

딱히 나갈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합리화 겸 위안을 해 보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엄지 발가락으로 본체 전원 버튼을 누르고, 게임 아이콘을 눌렀다. 다시 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엔 게임이 제격이었다.

암막 커튼을 젖혀 둔 덕이었을까? 영원은 로그인을 하려던 순간 창밖이 더 이상 어둡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비가 그쳤을까? 소나기였을까?

창문을 열었다가 비를 맞는 봉변-한 방울이지만-을 당했던지라 아주 조금, 비가 들이쳐도 문제 없을 만큼 조심스레 열었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과 비에 젖어 색이 진해진 건물, 도로만이 비가 왔음을 증명했다. 비는 오고 있지 않다.

창문을 활짝 열고 주변을 둘러보니 비가 아직 오는 줄 아는지 우산을 든 사람과 우산을 들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화창했다. 방금까지 비가 왔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하늘을 높이 올려다보니 희미한 무지개가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봤을까? 아마도 학창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강제로 낮에 밖을 걸어야 했으니.

영원은 홀린듯이 무지개를 찍었다.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쁘게 나오는지 전혀 모르지만 일단 찍었다. 사진 찍는 법을 몰라도 아무튼 무지개는 찍혔으니 된 거 아닐까.

그저 빛의 산란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토록 희귀한 자연 현상을 아침에 목격했다니! 이 희귀한 아름다운 것을 영원은 공유하고 싶어졌다. 곧 있으면 사라질 테니 아무나 얼른 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장 먼저 친구에게 보냈다. 나중에 보니 급한 마음에 사진만 딸랑 보냈더랬다.

한참 sns에 자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낮에는 언제든지 눈치 보지 않고 연락할 수 있구나.

sns는 시끌시끌해졌다. #무지개 태그가 종종 눈에 띄었다. 밤에는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소란이 활기로 느껴지는 건 무지개를 만든 햇빛의 마법이었을까?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오 나도 봄. 오늘 좋은 일 있을지도? 로또라도 사 봐]

로또는 어디서 팔지? 근처 슈퍼에서 같이 팔았던 것도 같다. 현금 없는데. 은행 ATM 찾으러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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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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