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능이백숙
장나라는 평범함을 누리기를 포기한 지 오래인 사람이었다. 열다섯의 나이로 연습생이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대형 소속사의 연습생이라는 자리는 정식 데뷔도 전부터 팬클럽이 생긴다는 것을 연습생이 되고서야 알았다. 데뷔한 뒤에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1군 아이돌로 자리매김을 한 장나라가 평범함을 입에 담는 순간, 그것은 기만이 되었다.
5년의 연습생 생활을 겪고 20살의 나이로 데뷔가 결정되었을 때, 장나라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예고에서 3년을 보냈다는 점을 살려 적당한 대학의 실용음악과나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학업까지 병행할 자신이 없던 장나라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장나라의 선택을 납득하고 존중해주는 주변과 달리 관련 없는 사람들이 아쉽다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물론 장나라도 20대 초반의, 정확히는 대학생의 생활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부러움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가 있었으나 그의 형 또한 대학생이었다.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대학 생활이 궁금하다고 가볍게 말한 적이 있었다. 가볍게 넘어갔던 그 날의 대화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장나라의 궁금증은 어느새 연예계 생활에 대한 회의로 비치게 됐다. 어쩐지 요새 무대 태도 봐라. 나라야,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럼 니가 걸치고 있는 명품부터 벗고 말해봐. 고졸인 니가 아이돌 말고 뭘 하게? 익명의 메시지가 수천 통씩 쏟아졌다. 물어뜯기는 흔한 레퍼토리였다. 몇억짜리 집을 부모님께 선물하고, 어린이 병동에 수천만 원을 기부하는 장나라는 그 뒤로 평범함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으세요? 2집 뮤비 촬영지였던 스페인이 좋았어요. 코스타 델 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얼마 전 생일이었던 멤버 XX 군의 생일엔 무엇을 하셨는지? 그 날은 보컬 트레이닝이 있어서 그거 받고 파티에 합류했어요. 제가 좀 늦었는데 XX이가 늦었다고 케이크를 던지더라구요. 어머!
얼마 전, 첫 단독 콘서트가 끝났는데, 휴식하는 동안 뭐하셨나요?
형이랑 테니스를 쳤어요.
…아아. 형님 분이랑 사이가 좋으시구나.
한국에 있을 땐 주말에 스케줄이 비면 대부분 형이랑 테니스를 치는 것 같아요.
그런 장나라에게 평범함이 허락되는 때는 형의 존재 옆에 있을 때뿐이었다. 사람들은 무대 뒤의 장나라가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동안에도 아이돌로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들과 다른 바 없는 사람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기괴한 요구였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나 장나라는 의외로 쉽게 답을 찾았다.
장나민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장나라는 어딜가나 주목을 받는 장나민의 그늘에서 자랐다. 그것에 열등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받았던 무례한 관심들은 피곤했고, 일방적으로 하려는 소통의 시도는 불쾌하기만 했다. 휘둘리기 쉬운 상황이었음에도 장나민은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장나라는 장나민의 페이스에 휘둘린 최초의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13개월짜리였던 형의 손에 덥석 볼이 잡힌, 사진으로만 남은 갓난쟁이 시절부터. 장나라는 장나민에게 휘둘리는 쪽이 익숙했다. 불쾌하진 않았다. 당황스럽다면 모를까.
스물셋. 인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숙취에 장나라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눌렀다. 울렁거리는 속에 앓는 소리가 튀어나오려다가 주변에 널브러져 잠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죽였다. 오랜 합숙이 만들어낸 습관이었다. 자신이 덮고있던 이불을 조심스레 치운 장나라가 살금살금 부엌으로 향했다. 내일이면 필요할 거라며 잔뜩 사왔던 이온 음료가 냉장고에 줄지어 보관되어 있었다. 페트병 하나를 통째로 꺼낸 장나라가 조용히 숙소를 나섰다. 초여름의 우거진 녹음 사이로 산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서울을 벗어났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장나라, 가평 가자. 시작은 장나민의 제안이었다. 형제는 내킬 때마다 갑작스럽게 제안하고 그것을 함께하고는 했다. 갈래.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기 전에, 왜 가려고 하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항상 그랬듯이 가벼운 드라이브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색한 얼굴로 자신을 환영하는 형의 친구들을 보며 장나라도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분위기를 맞췄다. 미친 장나민. 짐꾼 더 필요하다면서~ 장나라를 부른 장본인은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20대의 젊은이들이 가평에 모였다. 장나라의 생각은 수상 레저로 흘렀으나, 그들이 간 곳은 계곡이었다. 커다란 테이블에 여섯 명이 모여앉아 커다란 닭백숙 두 마리를 먹었다. 다행히, 주인아주머니는 장나라를 모르는 듯했다. 그저 나란히 앉은 형제를 보며 참 잘생겼네, 어머니가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라고 하며 일행에게 산삼주 한 잔씩을 돌렸다. 맥주 말고 처음 마셔보는 주종에 장나라는 얼굴을 찡그렸고 다들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댔다. 장나민의 웃음소리가 제일 컸다.
깊지 않은 곳에서(물론 장나라의 기준이었다.) 물놀이를 하다가, 근처에 잡아둔 펜션으로 돌아가 저녁을 겸한 2차를 했다. 대학 생활 별거 없다. 마시고 토하는 게 다야. 매니저 형의 말이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술을 강권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장나라는 어설프게 술게임을 따라가며 오랜만에 마음 놓고 술을 마셔보았다. 숙취와는 별개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뚜껑을 따고 마신 이온 음료는 벌써 반이나 줄어들어 있었다. 장나라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경사진 자갈길을 따라 내려가자 계곡 한가운데의 커다란 바위에 그만큼이나 커다란 사람이 걸터앉아있었다. 형? 장나라가 목소리를 높이자 장나민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빨리 일어났네.”
다른 사람이 보기 전에 모자라도 써야되는 거 아니냐, 너.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장나민이 푸석해진 얼굴로 다가오는 장나라를 보며 웃었다. 분명 비슷하게 마셨음에도 숙취라는 것을 모르는 얼굴을 한 장나민을 보던 장나라는 어이없다는 듯 물살을 헤치고 오던 발을 들어 수면을 찼다. 두 사람의 근처로 물방울이 흩뿌려진다. 장나라의 심술에도 장나민은 즐겁다는 듯 눈을 접고 환하게 웃었다.
“난 진짜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
“오. 고도의 돌려까기.”
앞머리에 묻은 물방울을 손으로 가볍게 턴 장나민이 자신의 옆자리를 턱짓했다. 장나라가 옆에 앉았다. 계곡물에 나란히 발을 담근 형제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숙취로 인해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낀 장나라는 다시금 이온 음료를 들이켠 뒤 그대로 바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눈을 향해 뛰어드는 햇빛에 장나라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말을 좀 해줘.”
“말하면 재미없으니까.”
“아니 형, 니는 재미가 더 중요하냐고.”
“즐거우면 좋잖니.”
말을 말자. 상냥하지만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형의 대답에 장나라가 투덜거렸다. 감은 눈꺼풀을 두드리던 빛이 약해진 기분이 든다. 장나라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장나민의 커다란 손이 장나라를 향하던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다음에도 또 올거잖아.”
미소짓는 장나민을 보며 장나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나라의 우상은 언제나 앞에 서서 그를 잡아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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