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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C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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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섬이 부유했다. 언젠가 제 입으로 내뱉었던 것처럼, 그는 하늘을 나는 것들이 싫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도, 땅 위에 것들에 초연해보이는 것들이 기분 나빴다. 괜한 화풀이라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었다. 그게 맞으니까. 화풀이,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망치고, 기회를 부수며, 곤란에 빠트리는 일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그리 물으면 역시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리고 자신을 변명하고픈 마음도 없다.

어느 자작의 막내아들이 죽어갔다. 스물 언저리의 청년이 자상을 얻었고, 이것에서 비롯된 염증으로 고열을 앓았다. 열은 내렸지만 고열이 남긴 후유증이 청년의 몸을 갉아먹었다. 자작은 끔찍이 아끼는 막내아들을 위해 의사와 마법사를 구했다. 의사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고, 그에게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고한 후 도망치듯 저택을 빠져나갔다. 이그나시아는 침통한 저택에 들어와 그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를 살릴 수 있다고, 완치는 어려워도 좀 더 버티게 도와줄 수 있다고 속삭였다. 다친 새 한 마리를 시험삼아 치료시키고 저택에 머물렀다. 신원불명의 마법사가 자작의 귀한 손님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백발의 푸른눈을 가진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너무 눈에 띄는, 기억에 남는 흉터는 가렸다. 기억에 남는 이름 대신 부르기 쉽고 흔한 이름을 썼다. 그게 누군가 애칭처럼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도련님.”

창백하고 피로한 청년이 눈을 깜빡였다. 이그나시아는 그의 머리맡에 앉아 책을 펼쳤다. 젊은 청년의 서재는 꽤 가치있는 서적들로 차있었다.

“내게도 읽어줄 생각이 아니라면 자네 이야기나 해주겠나.”

젊은 청년은 벌써 죽음을 받아들인 듯 초연했다. 그는 첫날에 물었다. 나는 살 수 있나? 이그나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자신이 노력하면, 치유하려 애쓰고, 관련된 서적을 구하며 좀 더 시간을 들이면 그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사실 공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해도 치료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악취미겠지만, 그는 저 위의 귀한 이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살아난다면 자신을 내려다볼 귀한 몸이, 거부권없이 뺨을 쓰다듬는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즐거웠다.

딱히 그 시기라고 얌전히 지낸 것은 아니었다. 집사의 주머니에 손을 대고, 자작가의 은접시 몇 개 정도는 녹아 작은 은반지가 되었다. 근처 마을에 보석상은 눈가림 마법에 속아 값싼 수정을 10배가 넘는 가격에 샀다. 사소한 소매치기, 거짓말, 헛소문과 협박들. 일상과 같은 일들이 특별할 것 없이 행해졌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내는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다. 이그나시아는 그가 죽는 것이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이그나시아는 직감한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냄새가 났다. 청년의 입에서 가쁜 숨이 새어나왔다. 그녀가 손을 내면 최소한 일주일은 더 버틸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한 달까지도 무사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그나시아는 웃었다. 마력의 흐름이 그녀의 손에 맴돌았다.

“작별인사를 할까요?”

청년의 포엣셔츠에 달린 황금 브로치를 떼어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이그나시아의 푸른색의 눈이 느릿하게 붉은색으로 변했다. 백색의 긴 머리는 아래서부터 물들어가는 것마냥 남색으로 덮혀갔다. 이번엔 플로브로 갈까. 그 쯤이라면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환자의 갈라진 입술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은 후 손을 거뒀다. 창문이 열렸고, 순식간에 방 안에는 한 명만이 남았다.

이그나시아는 아무도 돕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손해를 보고, 속아넘어가고, 누군가를 잃었으면 했다. 그러므로 그는 기다렸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늘이 추락하기를. 떨어져 산산히 부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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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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