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fin.
240224
눈을 감는다. 과거를 떠올리기 위해서.
졸업식, 다른 이들이 혼란 속에 남겨져 있을 때. 너는 가문의 입김으로 안전히 빠져나왔었다. 어떤 예술 활동도 하지 못했던 너는 요양 목적으로 한참을 친가에서 보냈다. 여유를 되찾은 뒤 너를 돌아보고 처음부터 시작했었다. 샤덴의 이름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불사조 기사단의 표적이 되어 테러의 대상이 되기 전까지. 그것은 너에게 또 하나의 전환기였고, 다른 길이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알 여유조차 없었던 일들에 대해 알게 되고 학창 시절의 너를 추스르기 바빠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날 이후 너는, 엘로이즈는 디어가 되었다. 샤덴을 버리고 피아레체가 되었다.
도피자의 말로.
어렸을 적의 소망.
모두의 소리를 들을래. 서로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내가 전해줄 수 있게.
이제는 빛바랜 소망.
간직하기에 그쳤다. 필요한 건 음악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발로 뛰고, 끝없이 주문을 외우며 정보를 모았다. 세상이 변하길 바랐으니까. 원하든 원치 않든 과거 친구였던 이들의 행적을 알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네 본래 직업인 작곡가는 잊히고 무형의 것을 사고파는 정보상만이 남았다. 룩스, 너는 어땠지?
의뢰인이 너에 대해 썼던 기사들을 떠올린다. 불안한 시대에 언론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기사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긴 글이라지만 사람들은 제멋대로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런 의미에서 네 의뢰인은 탁월한 작가였다. 대중이 피아니스트와 작가를 철저히 분리할 수 있게 도왔으니까. 네가 두 사람이 되어 서로를 헐뜯고 갈라선 것처럼 보이는 모호한 서술. 상상력의 기초가 되는 두루뭉술한 서술. 의뢰인 자신이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었으나 그건 재능이었다. 너는 그렇게 확신했다. 나는 네 글이 좋았으니까.
너는 책상에 앉는다. 다른 자료나 정보원, 정보 수집은 필요 없다. 이것은 네 이야기니까. 의뢰인의 글을 흉내 낸다. 모호한 서술, 두루뭉술한 이야기,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글. 너라면 분명 여기서 좋은 글을 써낼 테지. 너는 확신한다. 학창 시절 종종 의뢰인은 본인을 깎아내렸으나, 너는 그의 노력과 태도, 모든 것에 긍정했다. 그러니 이 정보는 그에 대한 신뢰의 증거인 셈이다. 눈치챌 수 있을지, 그건 그만의 문제이므로 너는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간다. 이아가 들어와서 홍차 한 잔을 우려서 네 옆에 두고 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이건 그에게 바치는 찬사.
고개를 든다.
편지를 쓴다.
잉크를 말린 뒤 말아 리본으로 묶는다.
부엉이에게 맡기고 창문을 열어 날려 보낸다.
정보가 준비되었으니 편할 때 방문해 주시길.
Dea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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