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
240222
그는 초조하게 원을 그리듯 빠른 걸음으로 실내를 걷는다.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이 그의 점차 빨라지는 걸음걸이 탓에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왜 안 와.
입으로는 차분하자며 수십 번 되뇌고 있지만 심장은 생각만큼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본다. 통조림이 가득 찬 선반이 하나, 물이 가득 들어있는 물통이 여러 개, 복도로 갈 수 있는 문 하나,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는 문 하나, 킹 사이즈 매트리스가 하나, 매트리스 위에는 간단한 침구. 그가 초조하게 맴돌고 있는 이곳은 지하의 가장 안쪽 방이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복도를 따라 끝까지 나가면 사다리가 있고,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면 바닥 타일로 위장된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그들의 집, 안식처 ‘였던’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집조차 안심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언제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피부는 썩어 문드러지고, 눈은 새하얗게 변했으며, 가까이 다가가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사람의 형태를 흉내 낸─모두가 그것과 자신이 동일시되지 않길 바랐기에─ ‘그것’이 처음 나타난 게. 처음에는 그것들을 감옥에 집어넣자는 의견이 전부였다. 말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처분을 망설였던 셈이다. 이 시기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회고한다. 차라리 그때 망설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
각설, 나타나는 족족 감옥에 가두어도 그들은 계속 나타났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어디서 나오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길거리 출근하는 사람들, 놀러 가는 사람들,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돌아다니는 걸 발견하고 신고하면 잡아 오는 게 전부였다. 일이 터진 건 몇 주 뒤였다. 그것이 사람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을 따라, 그것에게 물린 이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병원으로 향하는 단 5분, 짧은 시간에 물린 자는 그것과 똑같은 눈동자를 하고 구급대원을 물어뜯었다. 당황하여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구급대원도 그것과 똑같이 변했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해결책을 시도해 볼 시간도 없어 무조건 사살하고 불태우고 당장을 살아가기 바빴다.
그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걷는 대신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몇 분 뒤에는 침구 사이에 끼 있던 책을 꺼내 읽는다. 독서의 행위보다는 단순히 문자를 읽는다는 행위에 가까웠다지만, 그를 진정하게 만드는 것에는 분명히 도움이 된 듯했다. 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다시 눈을 감는다.
쾅.
복도 너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소리와 동시에 고개를 든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걸음으로 문 앞에 다가간다. 문을 열어야 하나?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하나? 이성은 가만히 있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문밖에 가 있다.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돌린다. 눈을 질끈 감고 한 걸음, 한 걸음 딛는다.
툭.
무언가 발에 채인다. 동시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 언어보다는 웅얼거림에 가깝다. 그는 눈을 뜬다. 그것과 눈을 마주친 순간 입을 틀어막는다. 그것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하고 있다. 입술을 달싹거린다. 그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입 모양을 읽는다. 그것의 눈가가 반짝거린다. 그것은 손을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너는 그제야 그것의 새하얀 눈동자에서 시선을 뗀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떨리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한 걸음씩 뒤로. 머릿속 가득 경고음이 울린다. 그것이 눈을 감고, 뜬다. 투명한 눈동자에 그의 얼굴이 비친다. 느릿하게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너를 마주 본다. 그리고 달려든다.
너는 그것─아마 이전에는 언니였던─의 입 모양을 회상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도망쳐.
나는 눈을 떴다.
이어지는 꿈을 꾼 지 며칠째다. 너무 생생해 이젠 좀비가 나타난 것이 현실인지 꿈속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헛웃음이 나온다. 고작 꿈에 휘둘려서, 하루의 시작이 심란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품하며 방문을 연다. 익숙하게 들려오던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다. 목이 탄다.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내는 발소리를 따라 내게로 고개를 돌리는 자의 백색의 눈동자와 마주한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