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화 [바스마르]

밀약 (密約)

: 남몰래 약속함. 또는 그렇게 한 약속.

  • 본래의 세계관에서 종전 이후를 가정하고 쓴 글입니다.


“정말로, 정말로, 바스티안 소브차크가 어디 있는지 몰라?” 

“내가 알리가 없지. 그와 가까웠다고 한들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잖아.” 

“그래, 그렇지.” 

그레타가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충분히 그럴만한 주제였기에 사랑하는 나의 동생에게서 의심을 받는 것에 대해서 기분 상하진 않았다. 가볍게 그레타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하자 나를 보며 애써 미소를 지으며 꼭 배신에 대한 죄와 나를 괴롭혔던 죄를 물을 거라고, 그러니 혹시 그의 행방을 알게 된다면 말해달라며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나고 안타리우스는 괴멸하고, 독일군은 패배했으며, 인식의 문에 대한 문제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독일군이었던 ‘바스티안 소브차크’는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는 능력을 사용해서 어디론가로 사라졌다고 다들 추측하고 있다.

··· ··· 내가 그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를 찾아 외딴 산자락 오두막에 가두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게 모든 창문을 막아버리고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곳에 그의 눈도 가려버리고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나의 체온만을 남긴 채 그 무엇도 주지 않았다. 

어떤 하루는 그 공허에서 그가 이유를 물었지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떤 하루는 그 심연에서 그가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떤 하루는 그 허무에서 그가 용서를 빌었지만 어떤 용서도 하지 않았다. 

어떤 하루는 그 나락에서 그가 사랑을 속삭였지만 어떤 감정도 담지 않았다. 

그렇게 깊은 어둠에서 손만을 잡은 채,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시달리고, 매달리고, 괴로워하며 의지하도록 세뇌를 걸어본다. 우리는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아래, 무구한 밀약을 나누었다. 

어느 날에는 나름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그를 오두막에 두고서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혼자 사는 것처럼 장을 보기도 하고, 혼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편지를 부치기도 했다. 

그리움? 내가 누굴 그리워하지? 

해가 지고 오두막으로 돌아가자 바스티안은 여전히 눈을 가린 채,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벽을 더듬어가며 겨우 바닥에 내려놓은 종이봉투가 발에 걸려 장을 봤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신경질 적으로 바닥에 앉아 물건들을 줍고 있으니 그가 일어나 바닥을 기어가며 굴러다니는 과일이나 물건들을 함께 줍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상태로는 주워도 다시 둘 곳을 찾지 못해서 바닥이 엉망이 될 거라는 생각과 이 어둠에서 웬만큼 길들인 그가 이제 와서 불을 켠다 한들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 하에 다시 바닥에 주웠던 물건을 쏟아버리고 일어나 벽을 짚고 손끝에 감각을 집중해서 더듬고, 또 더듬어 마침내 스위치를 찾아 올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안대를 하고 있어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몰랐기에 주운 물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주운 물건을 받아 들고 안대를 살폈다. 풀었던 흔적은 있지만 한 치 앞도 안 보였던 아까의 어둠에서는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는 발밑에도 까마득한 수렁이라는 어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둠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항상 밤을 싫어했고, 불빛 하나 없는 방을 기피했으며, 잠을 잘 때 보이는 흐리멍덩한 어둠이 싫어 굳이 자신을 구겨가며 자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 항상 답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두려움을 이용해 나는 그를 판결하고 죄를 물어 가장 큰 ‘형벌’을 내린 것이었다.


+

이제 그는 내가 알던 바스티안 슐츠의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에게 내렸던 형벌을 철회했지만 그는 오두막에서 절대적으로 나와선 안 된다는 규율을 걸었다. 

그리고 오늘도 알리바이를 위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레타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전쟁을 하고 있던 날과 다르게 단란했던 우리의 일상을 되찾은 하루였고 그대로 함께 거리를 걷고, 쇼핑을 하고, 행복한 자매의 모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조금 들떠있던 마음으로 오두막에 돌아왔으나 그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가라앉다 몸이 차게 식을 정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분명 내게 약속했다. 이 오두막을 나가지 않겠다고,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나는 또 이렇게 고쳐쓸 수 없는 인간을 믿어 배신당하고 마는 걸까? 

문을 박차고 나와 허허벌판에 가까운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이 오두막밖에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처참한 기분에 그대로 주저앉아 먼 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어 올라 그에게 달려가 뺨을 후려갈겼다. 

“밖으로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어제 그랬잖아, 마감한 기사를 오늘 꼭 신문사로 보내야 한다고. 그런데 책상에 남아있길래. 미안해. 용서해 줘, 마르티나.”

그는 싸늘한 내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맞은 뺨을 살짝 문지르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호의에 폭력으로 답한 것이 미안해질 즈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손을 잡고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말로 다신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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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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