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원작 기반

[케니시바] 혼자서 본 영화

3820자. 시바 없는 케니시바(CP).

그먼쌒 by 랒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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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ate Malinovskaya

물 가의 아이

극장 건물 위쪽에 걸린 포스터는, 과장을 보태자면 수 마일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했기에 처음 이 극장을 찾는 사람이라도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했다는 최신 영화의 초대형 포스터는 수많은 관람객을 아나폴리스 몰 가로 불러들였다. 말 그대로 파도처럼 넘실대는 인파 속에서 케니스 하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자 숨을 죽이며 부산히 발걸음을 옮겼다.

1910년대에 일어난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은 당연하게도 인간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고 영화 산업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업계를 선도하던 유럽이 전쟁의 여파로 주춤하던 사이, 미국은 자국의 자원을 아낌없이 영화 제작에 투자했다. 햇살이 가득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영화인들의 발길은 끊일 줄을 몰랐고, 미국이 업계의 선두를 꿰차기까지의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후 10여 년 간, 국내 영화의 수준이 높아지고 인기 또한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으나 오늘 케니스가 보러 온 영화는 프랑스의 것이었다. 자칭 영화광이라는 일부 미국인들이 국내 영화를 폄하함과 동시에 비교적 긴 역사를 가진 프랑스 영화를 찬양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케니스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학교 동기들의 권유에 몇 차례 함께 영화관에 온 경험이 전부였던 그는 영화라는 문화에 있어, 따져보면 문외한에 가까웠다. 오늘이 국내 유명 영화의 개봉일인 줄도 모르고 충동적으로 극장에 와서는 인파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문득 케니스는 아버지 멜츠 하트의 입버릇을 떠올렸다. 영화라는 매체의 인기는 한시적인 것이니 단순한 기록물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케니스가 이 나이가 되어서야 혼자 영화를 보러 오게 된 것도 저 이유였다. 이 극장만 봐도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어릴 때는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전망이 빗나간 게 고소해서 였을까. 절로 나오는 실소를 그는 참지 않았다.

애초에 오롯이 혼자서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것이 케니스에게는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껏 그가 홀로 대외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든 순간에도 하트 부부가 신임하는 수행원들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케니스를 따르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항상 물 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바라보고 대했다. 부모의 감시망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건 케니스가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한 시점이었다. 그들은 아이가 더 이상 뭍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안도했다. 케니스가 여전히 들어가 본 적도 없는 물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알지 못했다.

소리 없는 영화

조명이 꺼져 어두워진 상영관은 관람객의 시선을 스크린으로 집중시켰다. 배경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단의 반주가 곧 그를 돕기 시작했다. 보고 듣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생각의 연쇄를 멈추지 않는 버릇이 있는 케니스는 영화를 감상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항상 자신을 불안히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을 바꾸고 싶었다. 그 시선을 모르는 척 하기에는 너무 영특하고 정이 많아서, 피곤한 버릇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열일곱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살아왔었다.

여자가 여러 부분에서 "보통의" 여자들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자의 가족도 약혼자도 여자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여자가 점차 그들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케니스는 며칠 전의 자선 파티에서 한 인물을 마주했다. 누군가 그 순간의 그를 목격했다면 필시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 아나벨라 장 마리에의 아름다움에 홀린 것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케니스는 -아나벨라가 아닌 시바 포였던-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홀린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케니스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인지도와 사회적 입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 스스로의 능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본 경험이 전무했다. 자기에의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포의 자신만만하고도 아름다운 표정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다소 무례한 시선이라는 자각을 할 틈조차 없었다. 모든 생각이 멈춰버린 생경한 경험을 했다.

 약혼자가 여자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려 든다. 이게 다 사랑하는 당신이 걱정되어 그런 것이라는 달콤한 말 한마디도 빼놓지 않는다. 여자는 그런 약혼자의 사랑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 마냥 기껍지만은 않았는지, 그의 앞에서는 미소를 보이지만 그가 보지 않을 때면 답답한 마음을 참아내고자 한숨을 쉬거나 입술을 깨문다. 여자가 이유를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스크린 속의 배우가 포가 아닌 아나벨라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들이 같은 얼굴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아나벨라의 장면이 나오면 케니스는 무의식중에 다시금 생각이 멈춰버리곤 했다.

여자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약혼자의 다정하고도 가증스러운 손길을 거칠게 뿌리친다. 여자가 평소처럼 얌전히 굴지 않자 약혼자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여자가 분노로 거칠어진 호흡을 겨우 가다듬으며 그에게 소리친다.

"이게 나예요! 더 이상 나를 숨기고 싶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요. 난 이런 나를 사랑해요!"

음성 대사가 포함된 영화의 상영은 가까운 미래의 일이었다. 이 영화의 대사는 자막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케니스에게는 그날의 파티에서 멀리서나마 딱 한 번 들어 봤던, 그럼에도 자신을 향했던 것 마냥 귓바퀴를 몇 번이고 맴돌았던, 호소력 짙은 아나벨라의 목소리가 스크린 너머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운 것인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몸속에서 묵직하고 느릿한 파도가 쳐오는 듯한 착각을 잠재우려 케니스가 상체를 숙여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더 이상 나를 숨기고 싶지 않아요. 케니스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난 이런 나를 사랑해요! 항상 그래왔다.

상영관 문틈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에 놀란 관객들의 비명 소리에 케니스가 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수 초 후의 일이었다.

후속 보도

지난주 토요일 오후 7시경, 아나폴리스 몰 가에 위치한 한 대형 극장의 상수도관이 크게 파열되어 물난리가 나는 통에 관람객과 반주자들이 영화 상영 도중에 대피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극장 측은 사건이 일어난 상영관을 즉시 폐쇄하고 정밀 조사에 들어갔는데요. 파열된 수도관을 조사한 결과, 관 내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충격이 가해진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발표를 해 극장 측이 부실공사를 한 사실을 유야무야 숨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대중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해당 극장은 최근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는 미국의 영화 산업에 발맞춰 신축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극장으로, 국내 영화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외국 영화의 상영관도 상시 확보되어 있어 메릴랜드 영화 애호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곳이었는데요. 이번 사건으로 관람객의 발길이 끊겨 향후 극장 매출에 막대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큰 난리가 났었던 것치곤 부상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 이번 사건의 다행인 점이자 특이한 점인데요. 한 피해 관람객의 인터뷰로, 사건 당시 해당 상영관의 관람객 중 한 명이었던 케니스 하트 씨의 빠르고 침착한 대응 덕분에 관람객들의 옷가지가 물에 젖는 정도의 피해로 끝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트 씨는 메릴랜드를 대표하는 능력자 전문 제약 회사인 멜츠 제약의 후계자이자 해군사관학교의 역대 최연소 합격자로 유명하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짧은 답을 끝으로, 하트 씨는 모든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는데요. 미래에 조국을 대표할 촉망받는 인재답다, 자칫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젊은 청년의 기지가 대단하다는, 하트 씨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인 평가는 사건이 발생한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후략)


사담

220526에 포타에 올렸던 글 수정재업 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 파트는 너무 사족같아서,,,다른 케니시바 쓸때 써먹으려고 빼뒀다네요

(당시 후기) 풀었던 썰들을 기반으로 써봤습니다

케니스가 시바를 보고 충격받았다는 공식 묘사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꼭 써보고 싶었어요

평소에도 글을 술술 쓰는 편은 아니지만 고증 맞추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수정하느라 유독 오래 걸린 것 같아요 그치만 자료 찾아보는 과정도 즐거웠고 결과물도 일단은 만족스럽습니다 햅삐

젤 크게 수정한 게 저 시기엔 아직 발성영화가 없었다더라구요?

흑백인지 컬러였는지 찾아보다가 생각도 못 한 난관에 부딪혔네요 아나벨라의 호소력 있는 발성에 마음이 울린 케니스 << 이런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배우의 발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니

생각보다 발성영화의 역사가 짧아서 신기했네요

영화의 발전사를 잘 정리해주신 분이 있어서 많이 참고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아래쪽에 공유해봐요

함께 케니시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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