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재뉴멜빈] 휴학생과 재학생
2230자. 헨리 없는 헨리재뉴(CP) + 재뉴멜빈(NCP).
출처 | razvanlp
"있지, 내가 어디 인턴십을 간대도 너한테 떨어질 건 없거든? 애써 말 붙일 필요 없어."
어렵사리 붙인 말의 의도를 단숨에 파악당한 여학생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결국 어물거리던 문장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재뉴어리는 이 아이를 알고 있었다. 지난 학기에 같은 교양 수업을 들었던 동기의 친구 무리 중 한 명. 중견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부부의 무남독녀.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까워져서 나쁠 것도 없는 사이였다. 상대의 의견도 자신과 일치함을 알았으나, 재뉴어리는 여느 때 없이 그러한 기대에 응해주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두고 또 만들어갈 모든 관계가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가을 학기가 시작된 지 사흘 뒤인 오늘, 재뉴어리는 돌연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사유는 대외 활동에의 집중. 문서로 남는 것인 만큼 형식을 갖춰 성의껏 작성했으나, 어떤 황당한 사유를 댄다 한들 재뉴어리의 휴학은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를 아는 모두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고 납득했다.
'눈부셔.'
강렬한 태양빛에 눈살을 찌푸리던 재뉴어리가 손날로 안경 위에 지붕을 만들었다. 그래, 이것도 괜찮은 휴학 사유지. 더위에 약한 그가 학업을 쉬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로, 유난히 긴 올해 여름은 재뉴어리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학교를 벗어나 어딘가로 향하는 힘이 잔뜩 들어간 발걸음에는 확실한 목적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휴식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어쩐 일로 창문을 다 열어뒀대? 환기 좀 하라고 누가 시키든?"
"…."
제피 L의 보고로 재뉴어리의 방문을 인지한 멜빈이 곁눈질 한 번으로 인사를 끝마치곤 다시 모니터를 향해 등을 돌렸다. 재뉴어리와 멜빈이 알고 지낸 약 4년간, 서로가 서로의 공간에 방문한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뉴어리는 멜빈의 연구실에서 나는 쇠 냄새와 텁텁한 공기를 싫어했고, 멜빈은 그 연구실에서 스스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나 휴학했어."
멜빈은 면전에서 말을 곧잘 무시하는 것에 비해 자신이 만든 통신기를 통한 연락에는 간결하게나마 답신을 주곤 했다. 통신기의 훌륭한 성능과 더불어 그의 그런 성향이 재뉴어리의 연구실 방문 횟수를 줄이는데 크게 한몫을 해왔었다.
"이쯤에서 우리 계획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큰 변수가 생길 거란 걸 전혀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었거든? 이 부분에 있어 내가 안일하긴 했어, 인정해.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머릿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기억도 아닌 것을 읽어내는 데에는 10분의 1초도 걸리지 않았기에, 멜빈의 대답 여부가 재뉴어리에게 있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재뉴어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멜빈의 생각을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에게서 더 호라이즌의 비전에 대한 어떠한 의견을 바란 것이었다면 그 잘난 통신기를 사용했을 터였다.
"…넌 휴학 안 해?"
멜빈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적잖이 격양된 어조로 속사포 마냥 쏟아지던 연설 뒤의 침묵은 북풍처럼 싸늘했고, 영겁처럼 길었다.
"왜? 자신 있나 봐? 미래를 알려줄 정보원이 사라졌는데도. 아, 누구들이랑은 다르게 비능력자한테도 칭송받는 비상한 두뇌를 가져서 그런 거니? 직접 보고 오지 않아도 미래가 눈에 뻔히 보인다거나? 천재 답네. 아주 믿음직스러워. 앞으로는 멜빈 리히터 님의 선구안만 믿고 따라가면 되겠어."
"괜히 시비 걸지 마."
몇 주 만에 들어보는 멜빈의 목소리는 재뉴어리의 기억 속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미세한 흠집이 가득하고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그가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았음을 짐작게 했다.
"넌 지금 상실감으로 마음이 허한 걸 갖다가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뭐라는 거야? 내가 어디 틀린 말 했어? 예전이랑은 상황이 다른데 네가 속 편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만 있으니까 하는 말이잖아."
"사별 후엔 많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조절되지 않는 우울감과 분노. 충동성. 공황 장애, 집중력 장애, 기억 장애…. 휴학도 갑자기 결정했지?"
"나랑 하루 이틀 봤니? 난 원래 즉흥적이야. 그리고 학업보다 반전 활동이 더 중요한 게 당연하잖아? 누구는 안 그러신가 본데."
"평소에는 오류는 있을지언정 나름의 논리를 갖추곤 있었는데 지금은 말끝마다 나한테 화살만 겨누고 있어. 너도 알지?"
재뉴어리와 멜빈의 말싸움은 회의 따위의 공적인 자리에서도 빈번할 정도로 흔한 일상이었다. 조직의 어린 멤버들이 연장자들의 다툼에 어찌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것도 창단 초기의 옛 이야기로, 몇 년의 경험이 쌓인 아이들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말꼬리를 끝도 없이 물기 시작하면 그 행위를 멈출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등을 말없이 떠밀곤 했다. 그래, 이 정도로 토론인지 싸움인지 모를 것이 지속된다면 응당 끼어들어야 할 목소리가,
"…."
들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만든 침묵 속에서 재뉴어리는 머리에 몰려있던 열기가 발끝까지 천천히 가라앉는 감각을 느꼈다. 얼어붙은 입술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피곤해. 그만 가 줘."
쥐구멍처럼 어두컴컴한 연구실을 나서니 태양빛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가을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그날의 하늘도 이랬다. 빙판 위에 놓인 육각형의 관위로 눈이 끊임없이 녹아내리던 이질적인 장면은 그날로부터 몇 주가 지난 오늘까지도 눈에 선했다. 유난히 긴 올해 여름은 눈이 잠시나마 쌓여있을 틈조차도 주지 않았다. 기억 능력자인 재뉴어리는 그 순간을 누구보다도 선명히, 평생토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예견된 미래에 숨이 막혀온 재뉴어리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헨리 맥고윈이 죽었다. 그의 죽음이 재뉴어리에게 휴학의 계기가 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떠한 마음으로 학교를 쉴 선택을 했는지. 그 아이와 함께 한 다른 모든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데, 어째서 처음 손을 맞잡았던 순간의 얼굴만이 떠오르지 않는 건지. 재뉴어리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사담
미국은 9월에 학기 시작할텐데 재뉴어리 졸업시기를 보니까 휴학을 한번쯤 했을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입학이 늦었을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재뉴어리 살아온 묘사된거 보면 그냥 딱 정도를 걸어왔을것같아서
휴학을 언제 왜 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헨리의 사망<<
떠올리고보니 이거다 이거밖에 없다 싶었어요
재뉴어리랑 동갑내기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헨리의 친구였던 멜빈은 또 어떨까 상상하다보니 같이 써야겠더라구요 (딴얘긴데 멜빈은 지금쯤 대학원 진학했을것도 같음,,,)
서로가 그렇게 각별하진 않지만 각별했던 친구의 뜻을 잇기 위해 함께하는 두 친구들을,,,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둘이 말싸움하는 장면 쓰는게 젤 힘들었네요
지성이 느껴지는 대사를 쓰고싶은데 제가 지성이 없어서,,,진짜 쓰는데 젤 오래걸림
헨리재뉴멜빈 영원하자 헨리는 이미 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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