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원작 기반

[니콜라스 클레멘츠] 최초의 심판

8910자. 어린 시절의 니콜라스 클레멘츠.

그먼쌒 by 랒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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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해 묘사 有.

출처 | Dave Bezaire

니콜라스 클레멘츠는 평생을 살았던 집을 정리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여러 계절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사랑

니콜라스에게 어릴 적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가 가장 선명히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커다란 공구함을 들고서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조셉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조셉이 지은 가족의 집은 니콜라스가 태어난 지 몇 년이 지나고서도 완공되지 못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 떠오르면 조셉은 곧장 추가적인 공사에 들어가곤 했다. 아내가 농담 삼아 말했던 뒷마당의 작은 연못부터 햇살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한 커다란 창문까지, 집 안팎으로 조셉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일가는 것은 몇 개월에 걸쳐 만든 지하의 방공호였는데, 어린 니콜라스는 집안에 멋진 비밀기지가 생길 것을 기꺼워하며 방공호의 완공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지하실 계단 중턱에 멀찍이 앉아 매일같이 공사 현황을 지켜보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니콜라스의 관심사는 점차 방공호를 벗어나 조셉을 향하게 되었다.

“괜찮아, 니키. 아빠 하나도 안 힘들어. 너랑 네 엄마 생각하며 뭐 만드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니콜라스는 근육통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걱정에 작업 속도를 늦춘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닌 것 또한 알았다. 비지땀을 흘리며 무거운 쇠붙이를 다루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분명 힘들어 보였지만, 틀림없이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힘든 건 싫은데. 오랜 산책에 다리가 아파오자 냉큼 아버지의 등에 업혔던 며칠 전의 자신을 떠올린 니콜라스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행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멋지지? 이 방공호가 우리 가족을 지켜줄 거야.”

무언가를 만들어 주는 것도. 아버지의 손재주는 역시 훌륭했다.

곧 찾아온 알래스카의 짧은 여름, 니콜라스는 노란 꽃잎을 가진 야생화의 줄기를 엮어 만든 화관을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몰래 화관 만드는 연습을 할 것을 계획하며 잔뜩 꺾어온 꽃들이 무색하게도, 니콜라스는 단 두 차례만에 성에 차는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누가 뭐래도 손재주가 좋은 조셉의 아들이었다.

“고마워, 니키…. 너무 예쁘다. 엄마 정말 기뻐!”

아빠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어머니가 기뻐하니 자신도 기뻤고,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 또한 보고 싶어졌다. 니콜라스는 아버지의 기행을 마음 깊이 이해했다. 다음 선물은 자신의 방에 따사로운 햇살을 담뿍 선물해 준 아버지에게 주기로 결정한 아이는 다음엔 무얼 만들면 좋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에 깊이 빠져들었다.

아이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배웠다.

악몽

조셉이 유럽으로 파병을 간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는 주기적으로 가족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왔는데, 한창 글을 배우는 중인 니콜라스는 아버지의 편지를 직접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삼았다. 아버지의 소식도 반가웠고, 모르는 단어를 어머니에게 물어가며 배우는 과정도 즐거웠다. 직접 답장을 보내기 위해 미리 쓸 문장을 연습하느라 니콜라스의 연습장에는 삐뚤빼뚤한 글자가 매일같이 새로이 채워졌다. 그러나, 어느 날 집에 도착한 낯선 필체의 편지를 읽은 어머니의 표정을 본 니콜라스는 여느 때처럼 편지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할 수가 없었다.

“…니키, 할아버지 댁에 가자.”

창백해진 낯빛만큼이나 차갑게 식은 비비안의 가느다란 손이 얼어붙은 모양새는 마치 살얼음 같았다. 어머니의 손이 녹아 사라져버릴까 싶어, 그렇다고 놓아버리면 그대로 부스러질 것 같아서, 조심스레 힘을 줘 손을 잡는 것에 집중하며 니콜라스는 어머니와 함께 스콧의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구워준 팬케이크를 먹고,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다가, 아버지가 어릴 적에 쓰던 방에서 낮잠을 청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들지 못하지만 않았어도, 그날은 니콜라스에게 있어 언제나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되었을 터였다.

어머니의 기척이 방 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니콜라스가 잠든 체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켰다. 오래된 문고리가 자신이 돌아가고 있음을 바깥에 알리지 않길 바라며 천천히 문을 열자, 좁게 연 틈으로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콧은 침통한 표정으로 비비안에게서 전해 받은 편지를 붙잡고 있었고, 비비안은 식탁에 엎드린 채로 잠든 아들을 깨울까 봐 애써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끼고 있었다. 소리 없이 문을 여는 데 너무 시간을 쓴 탓에 대화는 이미 끝나버렸지만, 엿듣지 않고도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추론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아버지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비보를 알아차렸다.

“엄마, 이거 선물.”

“…고마워, 니키.”

어머니가 자신이 우는 모습을 숨기려 한다는 걸 알았기에, 니콜라스 또한 슬펐지만 울지 않았다. 어머니의 슬픔을 덜어 줄 방법을 고민하던 니콜라스는 자신이 만든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꽃반지에 꽃다발, 초상화까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매일 선물 공세를 이어갔다. 사라질 듯 희미한 미소였지만 비비안은 선물을 받은 순간에는 분명히 웃었다. 어린 니콜라스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기에 한동안 공작 활동에 매달렸다. 무엇보다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면 무심코 흘러나오는 눈물을 수월하게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예고 없이 찾아온 악몽은 니콜라스가 그동안 삼켜왔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게 만들었다.

“가지 마, 엄마! 아빠처럼 떠나지 말아 줘!”

유달리 선명했던 그날의 악몽에 니콜라스는 잠에서 깨어나고서도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항상 점잖았던 어린 아들이 숨이 넘어가도록 흐느끼며 옷자락을 부여잡는 모습에 비비안의 마음속을 단단히 뒤덮고 있던 암청색 빙하에 금이 갔다. 내게 남은 건 이제 이 아이뿐인데. 아들이 점잖았던 건 자신이 아들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조셉이 그립고 서로가 그리워서, 모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한동안은 애틋하게 서로를 보듬으며 지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곧 어머니에게서 어떠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손을 잡으려 하면 흠칫 놀라며 손을 빼거나, 사랑한다 말하며 껴안아 주면서도 온몸을 떨고는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에 없이 차가워졌다. 아니, 차가웠다기보다 그것에는, 마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본 것 마냥 거부감이 가득했다. 무서운 꿈 좀 꿨다고 안 그래도 힘든 엄마를 붙잡고 우는 게 아니었는데. 마음의 짐을 덜어 주지는 못 할망정 더 지어줬으니 어머니가 자신에게 질리는 것은 당연했다. 악몽은 계속되고 있었다.

거부의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은 아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졌다.

신앙

의외의 돌파구는 어느 날 어머니가 데려온 낯선 손님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며칠에 한 번씩 집으로 찾아와 비비안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아들을 옆에 앉혀두고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했고,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어른들의 대화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니콜라스는 그들이 강조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듣고 할아버지가 믿고 있다던 신을 떠올렸다. 스콧은 손자에게 자신의 신을 눈에 보이지도, 물음에 대답해주지도 않는 분이라 설명했다. 그런 존재를 어떻게 믿는 건지, 애초에 존재하는 게 맞는 건지. 니콜라스의 순수한 질문에 스콧은 자연히 깨닫게 되는 때가 온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았고, 와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니콜라스는 신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아가, 어머니와 함께 기도드리자꾸나.”

한 손님이 모자의 손에 묵주를 쥐여줬다. 동그란 구슬이 잔뜩 이어진 목걸이 가운데에는 기울어진 천칭이 달려 있었다.

“무엇을 빌면 되나요?”

“무엇이든. 네 바람을 신께 전해보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자신의 곁에서 어머니의 낯빛이 날이 갈수록 검푸르게 질려가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절망에만 빠져있기보다는 기도하는 쪽을 택했다. 비비안이 함께 있지 않은 때에도, 손님들이 방문하지 않는 날에도. 니콜라스는 자그마한 손을 바들거려가며 묵주를 세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존재조차 불분명한 절대자여. 보고 계신다면 부디 저를 가엾게 여기시어, 엄마가 더 이상 저를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어리석고 이기적인 아들의 마지막 발악은 애처로웠다.

“잘 잤니, 니키?”

꿈은 아닐까 싶어, 니콜라스는 며칠을 거듭하며 매일같이 어머니의 아침 인사를 곱씹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 때라는 것이 지금인 걸까? 눈을 피하지도, 손길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엄마가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있다. 어떻게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가 풀리는 것이 한편으론 허탈했지만, 이제는 니콜라스 또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신은 정말 존재하는구나. 안도감에 눈시울이 붉어지려 하면 겨울바람보다도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던 그때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눈꺼풀을 몇 차례 깜빡이면 나오려던 눈물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악몽이 끝난 지금의 니콜라스에게는 더 이상 울 이유가 없었다. 엄마는 이제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니콜라스의 신앙심은 나날로 깊어졌다. 어머니와 함께 매일같이 기도를 올렸다. 특별한 기도를 드리는 과정에서 한 손님에게 꽉 붙잡혔던 손목에 든 멍은 며칠이 지나고서도 아팠지만, 견딜 수 있었다.

아이는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포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이를 꺼내주세요! 아아, 니키!”

철문 너머에서 어머니가 악을 쓰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전기 설비가 차단된 방공호는 니콜라스에게 비밀 기지가 아닌 감옥으로 다가왔다. 어둡고 좁은 곳에 갇힌 아이의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 공간은 더더욱 좁아지는데도 문은 멀어지는 것 같은 착란에 빠져들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왜 이런 일을 겪게 된 걸까.

몰아치는 격정에 숨이 막혀온 니콜라스가 기도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을 뜯어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아빠를 떠나보낸 엄마에게 힘이 되어 줄 방법을 몰라 빌었다.

엄마가 여전히 나를 거부하면서도 인내하고 있음을, 그래서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엄마 없이 홀로된 내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진정으로 나를 미워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특별한 의식의 날을 위해 맞춘 넥타이부터 셔츠의 목 단추, 손님들에게서 받은 묵주까지. 니콜라스의 목에서 뜯겨 나온 것들이 방공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저들은 내가 가진 힘이 나와 엄마를 자신들에게 인도했고, 이 힘을 신을 위해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진정한 두려움을 마주하여 나의 힘을 깨달으라 했다.

“전 기댈 곳이 필요했어요. 그 앤 아주 무섭거든요, 아주, 아주 무서워요.”

나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다.

내 가장 큰 공포를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이런 일은 몇 번이고 참아낼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좁고 어두워 나를 나락으로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은 이런 공간이 아니라 엄마가 나로 인해,

심판관이 방공호의 문을 열었다. 니콜라스가 금발임을 알지 못했던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아이의 모습은 잿빛으로 바랜 머리카락이 아니라 피투성이가 된 목둘레와 손끝이었다. 심판관이 혀를 차며 자신의 어깨에 있던 검은 숄을 니콜라스에게 둘러 주었다.

엄마는,

어떠한 인과를 깨달은 아이의 발걸음은 부축하는 사람의 손이 무색하도록 무겁게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니키, 니키! 미안해, 이런,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무서워, 난 너무 무서워….”

엄마는 결국 나로 인해 죽을 것이다.

“…미안해, 엄마. 무섭게 해서 미안해.”

모든 것을 깨우친 아이는 비로소 어머니에게 사과를 건넬 수 있었다.

의문

니콜라스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능력을 다루지 못해 벌어졌던 모든 일을 깨달은 순간, 작은 심장에 꾸역꾸역 자리 잡고 있던 공포가 아이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상념도,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감정도. 심장으로부터 시작된 검고 거센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장 커다란 공포와 하나가 된 아이는 더 이상 두려움에 이성을 잃는 일이 없었다.

닳고 닳아 쇠약해진 비비안은 남은 시간을 남편이 어릴 적 쓰던 방에서 보내기로 했다. 영리한 니콜라스는 오래 지나지 않아 심판관으로부터 능력을 다루는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했고, 할아버지의 연락에 늦지 않게 집으로 와 어머니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겨울을 맞은 것 같구나.”

그날 이후로 몇 주가 지났지만, 니콜라스의 머리카락은 본래의 색이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를 닮은 금발을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그것을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해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스콧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조차 담담하게 구는 어린 손자를 안쓰럽게 생각해 아이의 작은 어깨를 연신 토닥이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모든 감정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니콜라스는 어머니와의 사별에 슬퍼할 수가 없었다. 아니,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관 뚜껑을 덮어 땅속에 완전히 파묻던 순간에도, 함께하는 발걸음이 줄어 허전함을 느꼈던 귀갓길에도. 니콜라스의 머릿속을 시종일관 맴돌았던 건 자신에게 축복을 건네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된 니콜라스는 그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인내하고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결 안정된 상태였지만, 병상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들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힘이 다 한 육신의 떨림은 안쓰러울 정도로 미약했지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니콜라스의 손에는 그 감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고해성사

“사실 저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간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심신을 수련한 니콜라스는 점차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제야 폭풍 같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행적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심판관은 과묵한 제자가 머릿속에서 한참을 다듬었을 게 분명한 기나긴 고백을 가만히 경청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지만, 곁에 남아있는 어머니가 저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괴롭게 했습니다. 언제든지 떠나버릴 사람처럼, 제가 애써 눈길을 돌리지 않으면 저 멀리 지평선 너머만 내다보곤 하셨죠. 이단들이 제게 물리적인 압력을 행사할 때도 무섭고, 아팠어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들을 데려오곤 자식에게 해를 가하는데 말리지도 않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기적인 것은 저였어요.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얼마나 상심했는지 알면서도 저를 떠날 것만을 생각하며 두려워했고, 어머니가 저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곁에 붙잡아 둘 궁리만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그렇게나 원망했던 것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믿지도 않는 신을 찾으며 매일같이 정성을 들여 기도를 올리고, 끝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비비안은 그 모든 순간 니콜라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이해하자 니콜라스는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했고, 그의 신실함에 크게 탄복했다. 나는 과연 그만큼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깎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머니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아둔한 자식이 너무 늦게 깨우치고 말았습니다.”

“그럼 이제라도 제대로 인사를 드리러 가보거라.”

비비안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봤던 심판관은 제자가 어머니와의 작별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훈련 계획에 차질이 생김에 곤란했던 것도 잠시, 며칠 내내 쉬지도 못하고 훈련을 봐주기도 지긋지긋하다며 자신을 쫓아내는 스승의 호통에서 니콜라스는 희미한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곧 심판관의 호의를 이해한 니콜라스가 감사의 인사를 표한 후 수도원 바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심판

몇 년 만에 찾아간 가족의 집은 스콧의 손에 잘 관리되어 있어, 니콜라스는 현관에 들어서지 않고도 집안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언제 그런 아비규환이 벌어졌었냐는 듯,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정리된 지하실에는 고요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왜 자신을 부르지 않고 혼자 고생하셨냐는 손자의 물음에 스콧은 어린아이의 손을 빌려야 할 만큼 녹슬지는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어색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더니 선반 한편에 있던 작은 상자를 니콜라스에게 건넸다. 비비안이 지하실에 떨어뜨렸던 묵주를 갈무리해둔 것이었다.

“…처분해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더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사랑하셨어요.”

스콧은 죽은 아들 내외를 그리워하며 마당의 잡초를 깔끔하게 뽑아내고,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손자의 트라우마를 염려해 피가 낭자하던 현장을 혼자서 정리하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또 그들에 대한 죄책감에 감히 유품을 정리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과 달리 눈치가 좋은 손자의 끈질긴 설득이 아니었다면, 스콧은 남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니, 니키?”

“그럼요, 할아버지. 전 괜찮아요.”

니콜라스는 가족의 집을 교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소년에게 남은 것은 난리통에 밟혀 망가진 묵주 하나와 이제는 작아진 낡은 공구함이 전부였다. 금속제의 천칭 장식은 아버지의 공구로 고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것의 균형을 바로잡는 행위는 니콜라스가 앞으로 걷게 될 길에 내딛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다.

“엄마가 못나고 약해서, 너까지 힘들게 만들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니키 덕분에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어. 네가 엄마의 균형을 잡아준 거야. 내 아이로 태어나줘서 고마웠어, 니콜라스.”

어두운 지하실을 나서자 강렬한 햇살이 니콜라스의 눈을 찌르듯이 비쳐왔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광활한 땅에 아름다운 야생화가 흐드러졌고, 더운 바람이 그리운 꽃향기를 비비안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니콜라스에게 실어다 줬다. 알래스카의 여름은 너무나도 짧았다.

‘어머니. 숨을 거두시는 순간까지 두려워하면서도 제 손을 잡던 그 모습은, 비록 잠시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라도 올바른 신앙의 행위였다 생각합니다.’

어린 심판관은 최초의 심판을 내렸다. 그것은 소년이 이단에게 베푼 처음이자 마지막 자비였다.


사담

간만에 쓰는 새로운 글입니다

근데 지금껏 쓴것중 최대분량이 되어버렸네요 댐~~~

이렇게 1명한테 비중?이 쏠린 글은 처음 써보는 것 같네요 2인 씨피거나 논씨피거나 아예 올캐러거나 그랬는데

니콜라스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스토리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가족관계가 너무 안타깝고 좋아서 몇번을 곱씹었는지 모르겠습니다(사별광인

여성노인심판관이 니콜라스의 스승이라는 사실도 넘 좋았구요

그래서 일단 이들과 니콜라스의 관계를 니콜라스 입장에서 좀 더 궁리해보고 싶었어요

쓰다보니 생각보다 많이 길어지고 세세해졌습니다 이게 아마 니콜캐해 최종본이 될듯하네요

이클립스는 아무래도 할아버지 시점이었다보니 니콜라스 입장은 과연 어땠을지 망붕하고 정리하는데 2달이 걸렸네요

곱씹고 주절거리기 1달+다듬고 글쓰기 1달

사실 겜하느라 바빴던것같기도 해요 니콜라스가 손에 잘 맞아서 ㅋㅋ

겜하랴 덕질하랴 바쁘다바빠 오타쿠의 삶

본편이랑 상관없는 TMI

니콜 출시 전에 씨피주식을 하나 잡고 있었는데

처참하게 망해버렸다네요,,,출시되고보니 생각하고 있던거랑 캐릭터도 많이 달라졌고

하지만 맛있으니 ㅇㅋ입니다 과거의 것은 다 내다버렸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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