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져릭] 들판에 핀 꽃.

스터디 7회차 주제 :: 꽃.

벨져와 임무를 위해 도착한 곳은 이미 황폐해졌다. 이곳은 내가 알기론 푸른 들판과 꽃이 무척 아름다워 봄날에 천국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관광지였다. 언젠간 여유가 다시 곁에 찾아온다면 가고 싶던 여행지 중 한 곳이었건만,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걸까? 지금이 봄을 알리는 듯이 활짝 만개한 꽃들은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살랑이는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이름 모를 눈처럼 작고 새하얀 꽃. 분명, 이 꽃에도 이름이 있을 텐데, 나는 꽃이라면, 꽃집 사장님처럼 달달 외우고 다니지 않아 이 꽃의 이름을 몰랐다. 손으로 찢은 종이처럼 불규칙적으로 잘려 나간 마른 나무에 기대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의 동행자 벨져에게도 꽃의 이름에 관해 물어보니, 아무런 말 없이 살며시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아쉬웠다. 이렇게 가녀리게 생겼어도 넓게 퍼져있는 작은 꽃들은 강인하다는 뜻이겠지? 새하얗고 가녀리지만 강인한 꽃이라…

“모든 풀과 나무가 전투의 흔적으로 상처 입거나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이 꽃은 남아있소. 가녀리지만, 강인한 꽃… 마치, 그대와 닮았소.”

“네 녀석이 생각한 나는 그러한가?”

“흐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벨져, 그대는 겉으로 보면 말이지- 그 누구에게도 절대 기죽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언제나 믿음직해서 틀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그대와 오랜 기간 어울리다 보니, 역시 그대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오.”

“네 녀석은 참, 재미있어. 꽃이라 하였기에 외모라 생각했건만, 너는 속을 말한 것이었군.”

역시 벨져는 자기 외모에 대해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벨져의 외모는 꽃처럼 아름다웠다. 아니, 그보다 더욱 아름답다. 또한 이 꽃과 달리 아주 커다랗고 환경이 알맞은 온실 속에 자라난 꽃이 아닐까? 싶지만, 내가 가진 벨져의 첫인상이 이 들판에 핀 꽃과 같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외모든 내면이든 벨져는 정말, 이 이름 모를 들판에 핀 꽃과 같았다.

“그래서, 네 녀석의 대답을 이제 듣고 싶다.”

“흠. 그대와 함께 이 전쟁 속을 동행하자는 제안 말이오?”

“그래.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릭 톰슨, 이제는 대답을 들어야겠다.”

지난 날, 어깨 부상으로 인해 나는 벨져의 도움으로 세상과 잠시 떨어져서 재활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물론, 재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벨져는 내게 특별한 제안 하나를 주었다. 그 제안을 받은 지도 어느 덧, 한달이 훌쩍 지났으니, 슬슬 벨져의 한계가 찾아온 것일까? 아님, 이제 정말 시간이 없는 것일까? 문득 궁금증이 피어올랐지만, 나는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그저 벨져가 이 전쟁을 끝내주리라 믿고, 그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달 전의 벨져의 제안 하나에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 벨져는 내게 생각할 시간도 준 것임이 틀림없었다. 액자를 놓친 것에 대해,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액자도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있단 소식 전달받았다. 나는 몰래 이곳에서 도망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 능력으로 결국 사람을 죽이는 데에 사용하였고, 세상에 알려졌다. 분명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해도 내가 있을 곳은 없겠지. 그렇다면, 나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동행해야 한다. 이것이 평범한 내가 생각하고 단정 지은 생각이었다.

“내 곁에 있어 주오. 나도 그대 곁에 있어 주겠소. 역시 내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내겐 그 누구보다도 그대가 필요하오.”

“그래, 네게 돌려주겠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을. 그러니 지금부터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내 곁에 있어. 릭.”

“알겠소. 전투가 끝나는 그날까지 함께 있어 주겠소. 벨져.”

나는 손을 뻗고 있는 벨져의 손을 잡았다. 거래 성립의 악수일까? 그렇게 나는 벨져의 여정에 끝까지 동행하기로 하였다. 앞으로의 펼쳐질 모든 일은 그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저 도련님에게 맡기고, 나는 앞으로 무사히 종전의 날에 둘이 함께 기쁨을 느끼는 그 순간만을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이 마음을 언젠간 기억하고 싶어진 나는 온전하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깔끔한 꽃 한 송이를 집어 늘 들고 다니던 작은 수첩을 펼쳐 중간 지점쯤에 보관하였다. 이 꽃이 마르는 그날이 나의 이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의 종착지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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