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져릭] Bouvardia.

  • 포타에 업로드한 연성 재업 입니다.

  • 약간 수정 작업을 진행 하였습니다.(스토리 수정x)


일개의 회사원에겐 여유는 사치인 12월이 찾아왔다. 자신도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작정 저질러버린 상사의 무책임한 행동에 11월 말부터 시작한 지옥 같은 야근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졌고, 덕분에 나는 연인이 된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에 제 연인, 벨져 홀든과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머리와 속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쌓여있는 일거리 속의 틈새로 보이는 얇아진 달력엔 애석하게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목도리를 사이좋게 나눠 쓴 행복한 모습의 연인의 그림이 아름답게 담겨져 있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나는 계속되는 야근에 졸음을 이기고자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벨져와 잠깐의 통화를 나누었다. 크리스마스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거 같다고… 내 아쉬운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벨져는 자신 또한 연말까지 집안의 일로 일정이 빼곡하니, 일에만 신경을 쓰라며 답해주었다. 나는 그 다운 대답에 서로가 여유가 생기면, 꼭 만나자고 새로이 약속을 잡고, 들려오는 상사의 목소리에 황급히 다시금 벨져에게 사과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문득 그때의 일이 생각이나, 괜스레 제 연인이 더욱더 보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도 저택으로 찾아갈까? 분명, 연말까지 저택에 머문다고 그랬지… 잠시 화장실 가는 척하고 얼굴만 보고 오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벨져를 잠시 만날 계획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무척 행복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망할 상사가 저 멀리 앉아 딴 생각 하지 말고 일하라며, 다그침에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 이후로 나는 상사의 계속되는 감시 때문에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화를 식히고자 서랍 속에서 초콜릿 한 움큼 꺼냄과 동시에 벨져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벨져… 나 그대가 너무 보고 싶소.'

제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서랍 속에 넣어둔 사진 속의 벨져는 살며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타이밍 한 번 끝내주게 찍었던 이 사진- 그 날의 일이 떠올라 나는 다시 한번 행복을 되찾았지만, 제 앞에 무심하게 새로 놓여진 서류 한 탑에 행복이 눈이 녹듯이 사그라졌다. 망할 회사. 나는 다시 한번 더 조용히 벨져의 사진을 바라본 후, 반드시 여유가 생기면 제일 먼저 벨져를 찾아가리라 다짐한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그 이후,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 또 지나갔다. 나는 줄곧 회사에서만 있었으니, 내 생일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 보내었다. 뭐, 이제 나에게 생일이란 파티를 열거나 하지 않아, 태어남의 의미로 주변인들에게 그저 축하만 받는 지극히 평범한 평일. 혹은 주말로서 보낸 지 오래라 그리 아쉬운 것이 전혀 없었지만, 내 어린 친구인 마틴 챌피... 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생일이 지났음을 깨닫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그였다. 지난밤의 나는 오랜만에 주어진 단 하루 뿐의 휴일에 1분 1초도 회사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사람이 없는 곳에서 게이트 열어, 빠르게 집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조금 앞둔 시간... 동시에 타이밍 좋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나는 수화기를 귓가에 대어보니,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봄처럼 따뜻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차디찬 목소리가 감미롭게 들려왔다. 짧은 인사를 나눈 이후 우리는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마틴 그는 현재, 재단의 여러가지 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뒤늦게 제 생일이 지났음이 생각이나, 전화를 했다고 말해주었다. 어쩜 그리 다정할까? 라고 생각한 나는 금세 들려오는 따뜻한 웃음소리에 짧게 웃음을 시작으로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갔다.

"생각이 전화 너머로도 들리는 것이오? 능력이란 신기하군-"
 "과연, 제 능력 때문일까요? 릭의 생각이 단순해서 일까요? 하지만, 다정하다는 그 말은 그리 싫지 않네요… 고마워요."

그렇게 우리는 그동안의 근황을 주고 받았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끝이 보일 무렵에 그는 늦었지만, 작은 생일 선물을 재단에서 내게 마련해둔 거처에 두고 갔으니, 시간이 되면 찾으러 오라고 말해주었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나의 집 주소 때문인지, 나름의 그의 센스가 그의 코드명처럼 매력적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고맙소. 그대는 정말 친절해."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는 덧붙여, 올해가 가기 전에 선물은 꼭 받아갔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의 통화는 끊어졌다. 통화를 마치니, 시간은 어느덧 내일을 맞이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차피 단 하루 뿐이지만 휴일이니, 오랜만에 트와일라잇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샤워를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삭막한 회사가 아닌 따뜻한 집에서 제대로 된 잠을 청한 나는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기분 좋게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가볍게 핫케이크와 소시지를 구워 늦은 아침을 먹고 난 이후에 나는 재단에서 마련해준 나의 또 다른 집 안에 게이트를 연결하였다. 열린 게이트를 넘어가던 찰나, 제 등 뒤로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곳에 날 찾아 올 이는 없을 터… 옆집의 초인종을 잘 못 누른 것이라 생각한 나는 게이트를 넘어갔다.

오랜만에 찾은 또 다른 나의 집안에는 오래 비운 것 치고는 먼지 하나 없이 무척 깨끗함에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재단에서 청소를 꾸준히 해준 것일까? 이곳이 미국에 있는 집보다도 훨씬 더 깨끗했다. 방안을 둘러봄과 동시에 두고 간 선물을 찾아보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나는 테이블 위에는 크고 작은 선물들이 놓여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하나가 아니었군. 어디 보자." 

테이블 위의 선물들을 확인해보니, 각자 다 다른 모습의 선물이 보기 좋게 놓여져 있었다. 마틴의 꼼꼼한 성격이 잘 담긴듯한 깔끔하게 포장된 선물과 옆에는 재단의 조선 아이의 다소 정신없이 포장된 선물, 트와일라잇에서 만든 인연들의 여러 선물. 그리고… 홀든에서 직접 준비한 듯한 고급스러운 선물까지. 홀든…

"벨져…"

나는 괜스레 벨져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도 찾아갈까? 아직 저택에 있을까? 아님 성격을 이기지 못해 저택을 뛰쳐나와, 아직 할일이 남아있어 소수만 남겨둔 기사단의 거처에? 그러나, 나는 곧바로 생각을 고쳤다. 서로가 여유로워 질 때 만나자고, 그와 약속했기에… 역시 참아야겠지. 나는 그를 잊고자 준비된 선물을 열어보았다. 우선은 제일 눈에 보이는 정신없이 포장된 선물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유리병 안에 다양한 초콜릿과 젤리, 마시멜로 같은 달콤한 간식들이 들어있었다. 또한 짧은 메모가 있었다. 자신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담았다고 자랑스럽게 써있었다. 뒤를 이어 나는 여러 선물들을 열었다. 재단 사람들 뿐만 아니라, 회사와 연합의 여러 사람들의 선물, 그리고 내게 생일을 깨닫게 해준 마틴의 선물은 다름 아닌 평소 즐겨 마시던 커피콩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장문의 편지는 너무나도 따뜻하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홀든에서 보내온 고운 실크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선물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홀든가의 대표로서 다이무스 홀든이 보내온 선물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찻잔 세트와 어울리는 홍차였다. 참으로 귀족 다운 선물이었다.

"하하- 이런 건 고이 모셔두고 있어야 할 거 같아."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것일까? 생각한 나는 선물을 다시 잘 포장을 한 후, 발걸음을 트와일라잇을 향해 움직였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내게 반가움의 인사를 연신 날려주었고, 또한 꼬마 아가씨와 도련님도 신나 하며, 반겨주었다. 먼저 나는 재단에 들려, 브루스씨와 안부 인사를 짧게 나눈 이후, 마틴과 잠시 티타임을 가졌다. 아쉽게도 하랑은 자신의 사부인 티엔과 함께 며칠 전, 수행을 떠났다는 말에 나는 재단을 빠져나왔다. 뒷골목에서 잠시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순간.

"어라? 형씨가 왜 여깄어? 오랜만~"
 "아, 오랜만이오. 이글... 잘 지냈소?"
 "뭐, 나야 그럭저럭이지~ 흐음- 그나저나 왜 여기 있는 거야? 바쁘다며?"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답해주겠소. 물론 오늘 내로 다시 돌아가야하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내심 벨져가 잘 지내고 있는 지, 궁금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벨져는 저택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이오?"
 "글쎄? 궁금하면, 직접 보러 오시던 가~"

그의 말에 담겨진 뜻을 나는 깨달았다. 게이트를 열어, 저택까지 같이 가자고. 이제는 벨져의 동생까지도 내 취급이 이렇게 변하다니... 조금은 속상했지만, 그래도 이참에 벨져의 얼굴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겠지라 생각한 나는 게이트를 홀든 저택으로 공간을 연결했다. 익숙한 듯이 열린 게이트를 먼저 넘어간 이글을 뒤를 쫓아 나는 홀든 저택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벨져는 일찍이 저택을 떠났다."

화가 무겁게 실려있지만, 차분하게 말하는 다이무스 옆에서 이글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죽거리며 웃으며, 작은 형은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얼굴 한번은 비추었으니, 이제 떠나겠다며 다시 집을 나간 지 오래전이라며, 내게 말해주었다. 이런, 젠장.

그렇게 나는 홀든가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대접한 식사와 티타임까지 한 이 후에 나는 재단에서 마련해준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미국의 제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심리적으로 지친 까닭일까? 지쳐버린 나는 여기서 잠깐 잠을 청한 후에 출근을 하자며 게이트를 작게 연 후, 우선적으로 선물들만 미국의 집으로 조심스레 먼저 보냈다. 정리는 나중에 돌아가서 해도 되겠지. 그렇게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알람 시계를 맞춘 후에 얕은 수면을 청하였다. 잠깐의 눈을 붙인 나는 꿈도 꾸지 않은 채,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눈곱만 겨우 떼고서 회사 근처로 게이트를 연결해 출근을 무사히 하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출근길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 나는 힘내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3일 동안 회사에 붙잡혀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회사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었다. 동시에 꿈만 같은 연이은 휴일을 얻음에 오늘은 해방된 기념으로 작은 파티를 열고자 나는 게이트를 열지 않고, 곧장 마트를 향해갔다.

우선적으로 나는 냉장고에 식품이 떨어진 것이 생각나 식품 코너로 갔다. 마치 연말을 즐기라며 한정판 패키지로 꾸며진 신상품은 도전적이지만, 실패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 나는 평소에 늘 즐겨 먹는 냉동 식품을 담았다. 그 다음엔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코너로 갔다. 받은 선물로 초콜릿과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한 난 분위기라도 내고 싶단 생각에 빵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케이크는 연말이라 그런지 눈에 띄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평범한 모양의 치즈 케이크가 홀로 남아있어 충동적으로 담았다. 그리고 옆에 쌓여있는 크리스마스 한정으로 장식이 된 도넛 한 박스도… 연휴 동안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생각으로, 나는 식품 위주로 장바구니 안을 한가득 채웠다. 계란과 소시지, 베이컨은 언제나 나의 든든한 아침 식사였고, 치즈와 마른 안주는 나의 술 친구였다. 마실 것까지 잔뜩 담아 무게가 꽤나 무거웠지만, 나에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하던 나는 갑자기 이 근처의 즐겨가던 카페의 디저트가 문득 생각이 났다.

"생각난 김에 사와야겠소."

인근의 회사들로 인해, 늦은 시간까지 열려있는 카페였기에 나는 우선, 게이트를 열어 구매한 상품들을 집안으로 조심히 밀어 넣고, 카페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거의 두 달만의 방문했음에도 카페 주인은 나를 친절히 반겨줘서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저 디저트만 간단히 구매 후에 돌아가려던 나를 새롭게 메뉴에 올릴 예정인 커피와 디저트를 무료로 시식해보라는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그의 바람대로 시식을 지원하였고, 또한 원하던 디저트들을 포장 주문한 후에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수많은 불빛과 함께 내리는 하얀 눈을 보고 있으니, 마치 이곳이 우주와도 같다고 생각한 나는 창밖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별이 쏟아 내리는 거 같아. 무척 아름답소."
 "아름답네요~ 역시 눈은 따뜻한 곳에서 보는 것이 최고죠."

제 말이 그에게도 들린 것인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향기가 일렁이는 커피 한잔과 초콜릿 코팅이 된 마들렌을 가져온 그가 커피에 대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 커피의 이름을 말해버렸다.

"아인슈페너! 달달하고 부드러워 매우 좋아하오~"
 "톰슨씨는 역시 커피에 대해 잘 아는 건가요?"
 "그저 시간이 되면, 여러 곳을 다녀보니까, 다양한 커피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뿐이오. 음, 역시 아인슈페너의 크림은 마치 눈길 같아서 아름답고 또 부드럽지."

그는 손님은 나 뿐인 가게를 한번 둘러보더니, 제 앞자리에 앉아 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새로운 메뉴가 난생 처음 만들어본 것이라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이 아인슈페너는 며칠 전, 홀든가에서 마시던 것과 다름없는 맛에 나는 그에게 최고의 바리스타임이 틀림없다고, 칭찬을 아낌없이 잔뜩 해주었다. 칭찬에 두 눈을 크게 반짝이며, 그런가요? 빈말은 아니죠?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요! 라고 말한 그는 얼굴을 붉히더니, 다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메뉴는 며칠 전에 카페로 찾아온 손님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에요."

꽤 흥미로운 주제가 내 귓가에 들려옴에 나는 이야기를 듣고자, 그가 말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가만히 기다렸고,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다시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며칠 전에 지금처럼 한가로운 시간대에 마치 눈처럼 아름다운 손님이 찾아와서 몸을 녹이고 있었고, 그는 처음 보는 손님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했었다고 한다. 그 손님은 그저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말만 간결하게 할 뿐이었으나 그는 손님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여러 시도 끝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무척 차가워 보이는 모습과 달리 품의 있는 행동과 품격이 느껴져 아름다운 외모를 더욱 빛을 내었기에 그는 매료되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으나, 손님도 그리 싫다고 내색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 그대 혹시- 그 손님에게 반한 것이오?"
 "하하- 뭐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무척 아름다웠거든요! 제가 예쁘고 멋진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분은 처음 봤어요! 저 내리는 눈송이가 마법에 걸려 사람이 된다면,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차가우면서도 의외로 따뜻하고, 또 하얗고 반짝였어요. 아아- 상상만해도 즐거워요! 또 만날 수만 있으면 좋겠다."

그는 마치 그때의 일을 상상을 하듯 얼굴을 붉혔다. 역시, 어린 청년의 사랑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에 나는 그를 부추겨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그 손님에 대한 묘사를 시작으로 아주 신이나서 꼬리치는 강아지 마냥 활발히 이야기를 하였지만, 어느 순간에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하지만, 그 손님… 애인이 있더라구요."
 "오, 이런."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아름다운 손님과 대화를 조금 더 나누고 있자, 이윽고 종소리와 함께 눈매가 사나운 눈부신 사내가 가게로 들어와, 아름다운 제 손님에게 다가오더니 제가 먼저 찾았다며, 입꼬리를 길게 올리더니 섬뜩한 분위기를 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탓에 애인이 있었음에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오래된 카페의 주인답게 능숙하게 손님을 대하였다고 한다. 상당히 멋진 애인이네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은 오랜만에 봅니다! 라고... 손님들에게 말한 그에게 아름다운 손님에게 크게 혼이 났으며, 눈매가 사나운 손님은 크게 웃더니, 애인 교체를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떠냐며 말하다가 결국 밖으로 매정하게 쫓겨났으며, 아름다운 손님은 제 애인은 저딴 파렴치한 놈이 아니라 미국인에 덜떨어졌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놈이라 말을 한 후에 떠났다고 한다.

"덜떨어지고 평범하다니… 어쩐지 너무한 발언이었지만, 조금은 부럽더라구요. 그 아름다운 손님의 애인이란 분."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이거… 설마? 나는 그에게 그 손님에 대한 정보가 더 없냐고 물어보니, 그는 남의 신상을 말하는 건 좀 그런데… 혹시, 말로만 듣고서 그 손님에게 매료된 건가요?라 물어보았고 나는 흥미가 생겨서 그렇다고 받아쳤다. 그는 단골의 의리라며, 내게 그 손님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그 손님의 이름, 나이는 모르나, 그저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것만 안다고 말하였다.

"오스트리아… 오, 세상에."

나는 그에게 빠르게 인사를 한 후에 정신없이 카페를 빠져나왔다. 벨져가 설마 날 찾아서 미국까지 온 것이야? 정말로? 나는 게이트를 열 생각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였다. 길이 눈으로 덮어있어 몇 번을 넘어졌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벨져 생각으로 가득 차, 그저 달리기 바빴다. 분명 외출하면 언제나 두 세 번 확인 후에 집을 나서기에 불빛이 없어야 할 제 집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정말로 벨져가 찾아왔어? 나는 황급히 문을 열었고, 그 안에는 내 예상대로…

"호오? 이제 게이트는 그저 짐덩이를 옮기는 용도로만 쓰는 건가? 재미있군."

문을 열자마자, 제 귓가에는 그리운 목소리가 살며시 들려왔다. 그저 집안 인테리어 용으로서 저렴하게 구매했던 작은 소파가 마치 값비싼 고급 소파가 된 것처럼, 고고하게 앉아있는 벨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놓여서 일까? 두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현관에 큰 소리를 내며, 털썩 주저앉아 밀려나오는 숨을 고르기 바빴다. 그리고, 조용히 내게 다가온 벨져는 내 머리 위에 내려앉은 새하얀 눈을 치워주고서, 한심하다며 말을 한 이후 제 턱을 잡고 고개를 올리더니, 짧은 입맞춤을 해주었다.

"벨져… 진짜 그대가 맞소?"
 "보고도 믿지 않은 것인가? 한심하긴."

나는 두 손을 뻗어 벨져의 뺨 위로 올려보았다. 그는 집안에서 따뜻하게 있던 모양인지, 두 뺨의 딱 좋은 온도가 차가운 제 손끝으로 잘 전달이 되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벨져는 다시 한번 나에게 한심하다고 말을 한 후에 팔을 뻗어 나를 일으켜주었다. 역시, 벨져는 귀족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마치 왕자에게 유리 구두를 받고 난 이후, 성으로 향할 마차에 오르는 신데렐라처럼 에스코트를 받은 듯한 분위기에 더 이상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는 평소와 다를 것도 없이, 퇴근 후의 일상처럼 편한 의상으로 갈아입고서 저녁을 준비하였다. 다른 건 단 하나 뿐이었다. 벨져가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몹쓸 상사 때문에 내내 야근을 했다… 이건가?"
 "맞아, 그래! 그 빌어먹을 상사! 일은 자신이 저질러 놓고서 화는 우리에게만 냈지."

늦은 식사를 끝내고, 나와 벨져는 마주 보고 앉아서 사온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물론, 케이크는 나만 먹었으며, 또한 대화도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회사에 대한 불평을 잔뜩 늘어놓았기에 나는 혹여 벨져가 싫어하지 않을 까? 걱정을 하였지만, 의외로 벨져는 장단을 맞춰주는 건가 싶었지만, 되려 내가 일을 빨리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공감성을 잔뜩 잃은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그게 되었다면, 나도 좋겠소. 내가 그대처럼 신체가 강화되는… 아, 미안하오."
 "왜 갑자기 사과를 하는 거지?"
 "능력이 사라졌잖소. 괜히 아픔을 또 찌른 것이 아닐까 싶어서."
 "그깟 능력… 있으나 없으나 달라진 건, 내겐 전혀 없다."

 

어느덧 종전도 2년이란 세월이 지나있었다. 그동안 커다랗게 쌓인 오해들을 풀어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차츰차츰 세상은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일부 능력자들에게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능력 퇴화, 능력 소멸과도 같은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소멸감을 크게 느껴, 힘들어하는 이가 있는 반면, 해방감에 기쁨을 만끽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벨져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벨져는 능력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던 어느 날, 그는 내게 찾아와 자신의 검은 이제 사용할 필요가 없기에 내가 좋아하는 우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나는 그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능력을 잃은 그가 조금 걱정이 되어, 괜찮냐 물어보니 벨져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만일, 내 능력이 전쟁 중에 사라졌다면, 나는 스스로 내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벨져에게 있어 그가 가졌었던 능력 또한, 그에게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사용하는 소모품에 불과한 것인가?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마음을 가진 그에게 내가 반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 뒤로 벨져는 내게 고백을 했다. 전쟁도 끝났고, 나와 벨져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는 벨져에게 반했다. 타이밍이 좋았던 걸까?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크게 달라진 것 없이,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종전 이후의 나는 재단을 도와, 트와일라잇을 정돈하는 일을 함께 도왔고, 벨져는 기사단의 일이 아직 남아있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아쉬울 건 없었다. 문득 벨져가 보고 싶어지면, 전화로 그의 위치를 물어보고 찾아갔으니… 그렇게 쉴 틈도 없이 1년은 금방 흘러갔고, 재단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시점에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 생활하며, 간간히 벨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러나, 벨져는 아직 기사단을 해체하지 않은 걸로 보아선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이겠지?

"흐음-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벨져는 그동안 뭐하고 지냈소?"
 "한동안 널 찾아다니느라 고생했지."
 "내게 말해줬다면, 곧장 데려왔을 것이오, 왜 말은 안 한 것이오."
 "단지, 네가 했던 것처럼 했을 뿐이다. 기분 나빴나?"
 "뭐, 나쁘지 않았지만… 아, 혹시 그대 동행한 이가 있었소?"
 "루드비히- 그 자를 말하는 건가?"
 "역시… 위험하게 왜 그런 자와 동행한 것이오."

벨져는 내 걱정과 달리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와 만남에서부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 그와는 내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한다고 전화를 했던 그 날, 그때의 벨져는 기사단의 일이 마무리가 되어 할 일이 없이, 괜스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루드비히 그는 언제부터 뒤를 따라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짜증이 났고, 거절하면 거절할 수록 더욱이 달라붙으니, 그저 지나가는 개라 생각하고 지냈을 뿐이라 하였다.

"그렇게 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곧장 저택으로 돌아가,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말하니까. 답답하게도 경호원 없이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며, 닦달하니. 그저 지나가는 놈을 잡아 데리고 돌아다닌 것 뿐이다. 여차하면, 내가 죽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몸은 조심하시오. 그 자는 여전히 찝찝하니까. 그래도 신기하네, 둘은 성격이 전혀 맞지 않아 상상이 잘 안되오. 둘 사이에 여행은 잘 되었소?"
 "여행이라 부르지 마라, 그저 그 녀석은 경호원이었을 뿐인데, 가는 곳곳마다 오해를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

나는 짧게 웃으며, 케이크를 조금 잘라 입안으로 넣었다. 하긴, 두 사람은 얼굴로만 본다면, 누구든 쉽게 연인으로 착각할 법했다. 나는 벨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반짝이며 아름답다면 아름답고, 멋있다면 멋있는 그의 외형은 누가 봐도 인정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외모 뒤에는 너무나도 독하디 독한 독설. 대부분 그의 독설로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많았지… 도대체 그 헌터는 벨져의 어디가 좋아서 계속 달라붙은 건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다. 벨져는 내가 생각하기도 알 수 없을 만큼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난 조금 우쭐해도 괜찮을 까?

"조금 흥미가 생겨서 그러는데, 여행- 아니아니, 여기까지 오는데, 이야기를 해주오. 설마 여기까지 걸어 온 건 아닐 테고…"
 "미국에 아는 능력자에게 차를 빌렸다. 그 헌터가 마침 운전을 할 수 있다고 해, 그에게 운전대를 맡겼지. 실력은 꽝이었지만…"
 "그렇군, 나도 운전이라도 배울까? 아무래도 능력이 사라지면 곤란하니."

벨져는 내 말에 공감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 앞에 놓인 찻잔에 손을 뻗어 입가에 가져가,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해주었다.


"네 말 따라 능력이 사라지니, 조금은 곤란했다. 어디인지 모를 벌판 한가운데에서 차가 고장이나, 그 녀석과 오래 한 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앞을 향해 걸었던 때가 생각나는 군. 능력을 잃은 탓일까, 어째서 하루도 못 걷는 거지? 겨우 열여덟 시간 걸으면 힘이 들더군, 평범한 인간은 이런 건가?"

"여, 열여덟 시간? 그대 결코 평범하지 않아."

능력이 사라졌음에도 벨져는 벨져이구나 싶었다. 그만큼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쭉 검사로서 잘 자라났단 증거겠지?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진 그에게 잘 만들어진 소모품이 맞았다. 그렇다면, 능력이 없어진 벨져와의 잠자리는 조금 잠잠해질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문득 능력을 잃은 그와 몸을 섞은 과거의 일이 떠올랐고,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는 건 없다. 나는 괜스레 억울함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 적어도 오늘 밤은 피하자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내 편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결국 그의 애정을 뿌리치기 어려웠고, 새벽까지 벨져의 황홀함에 감겨있다가 쓰러지듯이 잠이 들고 말았다.

"아파- 온몸이 아파… 진짜 너무하오. 벨져."
 "평소에 운동을 하도록."

우리는 아직,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거운 눈꺼풀을 어렵게 뜨자마자, 보이는 벨져의 얼굴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였고, 벨져 또한 나에게 짧은 입맞춤을 해준 이후로 아침 인사를 해주었다. 지난 밤부터 시작되어 새벽에 끝난 정사의 흔적과 따뜻한 온기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배고픔의 신호 때문에 나는 자리에 일어나고 싶었지만, 어느새 제 허리에 팔을 단단히 감고서 도통 놔주지 않은 벨져의 행동에 침대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물론, 나 또한 지금을 만끽하고 싶었다. 차가워 보이는 벨져는 의외로 따뜻하기에 나는 몸을 조금 더 벨져에게 파고들었다.

"벨져는 생긴 것과 다르게 참 따뜻하오."

그 뒤론 별 다른 말없이 침묵이 흘렀고, 우린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과거의 나는 벨져 홀든과의 연애를 조금이라도 상상 했을 까? 아마, 과거의 내 앞으로 미래에서 온 누군가가 미래의 내 연인이 네 눈앞에 있는 저 검사란다, 라고 말해준다면, 어땠을 까? 아마 그때의 나는 질색하며 그와 멀어지려고 했겠지... 미래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란 걸, 매번 깨닫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행복함을 잔뜩 느끼고 있다고 해서, 과연 시간이 조금 더 흘러도 우리 사이는 지금과도 같을까? 이런 생각은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찰 때마다 먼 미래보다 정말 가까운 미래로 보자고 다짐했다. 그래, 벨져와 나의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보니, 곧 한해가 사라지겠지만, 벨져와의 추억으로 가득 찰 새해가 찾아올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벨져, 새해가 오면 뭐할까? 짧게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그보다 오늘부터 챙겨라, 언제나 들떠있던 날이 아니였나."
 "…오늘?"

벨져는 손을 뻗어, 오늘 자 신문이라며 내게 건네주었다. 필히 날짜를 확인하란 신호겠지? 나는 신문을 받고서 제일 앞 면을 확인하였고, 이내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까? 어째서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걸까? 나는 아픔을 잊고서 순간적으로 놀라 자리에 일어났다. 물론 밀려오는 통증에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지만, 그래도 오늘이 크리스마스임은 틀림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벨져~"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는 벨져와 다시 만났다. 또한, 내가 원하던 대로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니, 마치 그동안 고생했다며, 하늘에서 주는 아주 큰 선물과도 같아, 기분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그 뒤로 나는 벨져의 품에 안겨, 욕실로 옮겨졌다. 따뜻한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있으니,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목욕을 끝낸 이후, 늦은 아침과 점심을 함께 끼니를 챙겼다.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무리라 생각해, 나는 벨져와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리 대단한 파티와 음식도 전혀 없었지만,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더 대단한 이가 옆에 있었기에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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