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져릭] 유치한 여유.

  • 재활 연성입니다.

  • 글리프는 처음 쓰는 거라 보기 불편 할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 점점 쓰다보면 고쳐지겠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거두니 달이 나를 반겨주었다. 역시 달은 바라볼 수 있어 나는 좋았다. 어린 시절은 내 이런 감정을 부정하였지- 달을 보면 무섭단 친구들을 따라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달이 무척이나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건 내 나이 삼십이 훌쩍 넘긴 이제서 였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나는 어깨 부상으로 인해, 허리가 아픔에도 계속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던 때에 내 마음은 상당히 복잡했었다. 그때의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그때의 나를 다시 돌이켜보면 별일 아니었는데, 그때의 난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저 평범했던 나의 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역시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계획된 만남 그 이후부터일까? 확실히 그 만남 이후로 나의 삶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졌다. 능력이 발현되었을 적에도 나는 평범함을 유지했다. 그건 당연했다. 나는 만나온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지극히 평범하게 자랐기에……. 그래서 나에겐 능력이란, 그저 평범하게 여행의 용도로만 사용했다. 동료에게 추천받은 여행지를 단숨에 갈 수 있었고, 또 내 마음이 좋지 않을 땐,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마음을 다스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정말 평범하게 사용했다. 아니, 사실 난 지긋지긋한 일이 연속인 이 세상으로부터 나의 능력을 그저 숨기고 싶었다. 전쟁, 아픔 이건 마주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능력이 발현되기 전엔 마법과 같은 능력과 능력자들의 존재, 모두를 믿지 않았다. 실제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고 자랐음에도. 비로소 내게 능력이 발현된 이후에서야 난 현실을 깨달았다. 처음 나는 내 능력에 당황스러웠지만, 무척 신기했다. 가고 싶은 곳은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이 특별함에 나는 무척 신이 났다. 그렇지만 역시나 이 능력은 오로지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만일 이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나는 전장으로 끌려가겠지? 어린 시절이었지만, 나는 깨달았다. 이 능력을 숨겨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들통이 나버렸다. 그래, 별별 능력이 있을 테니까. 내가 아무리 잘 숨어다녀도 들통나는 건 당연할까? 그저 이동 목적으로만 사용했지만, 나는 전장 속에서 여러 방면으로 사용하였다.

난 어린 시절 내 능력에 대해 하나둘 알아가던 때에 이게 가능할까? 싶던 것을 전장 속에서 펼쳐보기도 하였다. 어설펐지만, 결과는 나름 쓸만하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내가 생각했던 것 전부를 보이면 안 되겠지? 그렇게 난 내 능력의 일부를 보여주며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능력에 한계가 있단 작은 거짓도 그들은 믿어주었다. 아니, 믿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겠지. 언제부터였더라? 그들의 눈빛 속에 내 비위를 생각해 행동하는 것이 보였던 건… 그래, 다 이 능력 때문이겠지? 내가 훌쩍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손해 보는 것은 그들이기에… 그걸 깨달은 내 마음은 우쭐거렸다. 그저 평범했던 나에게 불현듯 찾아온 나의 능력은 확실히 나와 달리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시간의 큰 제약 없이 어디든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으며, 여러 형태로 활용 가능한 내 능력은 값이 높았겠지.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다른 이는 나와 달리 높은 집안의 소중히 자라온 아이였으니, 쉽게 그 아이에게 다가갈 수 없어, 이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회사원인 내게 찾아와 손길을 뻗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나의 비위를 맞춰가며 심기를 건들이지도 않았던 것이겠지?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우쭐했던 나의 작은 감정은 점점 불편함으로 변화되어 나를 잡아먹었다. 차라리 그들이 내 능력이 직접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해줬으면 하였다. 그렇다면 난 그들의 편은 되지 않은 다하더라도 능력을 빌려주었을 텐데……. 그러나 그 누구도 나에게 능력을 원한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자신들과 함께 뜻을 해주길 원했다. 어째서 그렇게 편을 나누는 걸까? 행하고자 하는 일이 한가지면 어느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안 될까? 난 그저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찾아가 도와주며, 그저 소속 없이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나의 바람이고 현실이 아니었다. 그래 현실이 이렇기에 또 나는 내 나름으로 그들을 피하고 다녔지만, 어째서일까? 단 한 사람의 부탁만큼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릭, 또 무슨 생각하는 것이지?”

또 어딜 다녀온 것일까? 한동안 자리를 비웠던 그가 돌아왔다. 나에게 처음으로 기대를 품게 만든,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 속에 숨겨진 강인함을 지닌 벨져 홀든.

“달이 아름다워서 잠시 감상하고 있었어.”

“또 달 이야기인가, 달이 그렇게 좋은가?”

“응, 난 달이 참 좋아… 태양과 달리 마주할 수 있으니.”

“태양 덕분에 달이 빛나는 것 아닌가? 스스로 빛조차 낼 수 없는 돌덩이엔 관심 없다.”

정말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얄미운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 온 오렌지를 보며 얄미움을 녹이기까지 하는 벨져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와의 첫 만남은 몇 달 전, 그는 처음 본 내게 부탁했다. 루사노 수도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난 그의 손길을 거두고 싶었다. 벨져 홀든… 분명 어디서 들었다. 그래, 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그날에 있었던 자와의 혈육 관계. 인연은 또 이렇게 이어지는 것일까? 난 이 세상 일과 정말로 뿌리칠 수 없는 것일까? 여러 복잡함이 가득 찬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앞에 보이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 이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 이후로 난 어색한 공기의 흐름 속에 그와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의 대답은 겨울의 바람처럼 너무나도 차가웠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냥 답변을 기대하지 않고 내 말만 뱉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상상 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이들의 전투를 보았다. 이것이 현실인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두 사람의 전투는 치열했다. 물론 난 그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다. 방심한 틈에 생긴 어깨의 부상으로 난 이대로 죽는 것일까? 싶었다. 그러나, 점점 뿌옇게 흩어지는 시야 속에서 은빛을 반짝이는 그의 모습은 무척 선명했다. 그래 이렇게 죽어도 난 괜찮으나, 저 어린 도련님에게 작은 도움은 되어보자는 생각에 난 그를 도왔다. 전투가 점점 사그라졌을 때 그때부터 나의 기억 또한 사라졌다. 얼핏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밀려오는 아픔과 감겨오는 눈꺼풀에 나는 더 이상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천국도 지옥도 아닌 나는 어딘지 모를 방에 누워있었다. 살아있단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통증으로 인해 일어설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아픔 속에 누군가 불러보지, 싶었지만,, 막상 생각나는 이가 없었다. 난 아무도 없단 생각에 이 부상의 원인이 된 그자의 이름을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런데 이건 실수였을까? 아니면 잘한 선택이었을까?

“젠장- 벨져 홀든.”

“불렀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째서 그가 여기에 있지? 깜짝 놀란 나는 눈을 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머리를 한 방향으로 곱게 묶은 채, 우아하게 앉아 차를 마시며 즐기는 벨져 홀든이 보였다. 낡아 보이는 방 안임에도 그가 이렇게 앉아 있으니,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보던 귀족 집의 티 룸 같았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모습이겠지?

“아니, 그게… 음, 차향이 좋군.”

“평범한 곳에서 사 온 것이지만, 나쁘지 않더군.”

“그대도 참 너무하군. 이렇게 아픈 사람 앞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니.”

“티타임 시간이여서 가졌을 뿐이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흠- 이상하다. 그대와 함께한 건 하루뿐이었지만, 분명 티타임은 가지지 않았잖소.”

“임무는 임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휴식 시간을 가진 것뿐.”

“휴식이라… 역시, 도련님이라 할 일은 누군가에게 시키면 그만인가? 그래 그대는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건가?”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다. 내 잘못에 사과하였지만, 벨져는 어째서 사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단 듯한 표정으로 그저 날 바라볼 뿐이었다. 괜스레 그 모습에 화가 나, 나는 그에게 내가 가진 응어리들을 하나둘 풀어내 버렸다. 왜지? 어째서일까? 내 눈앞에 날카롭게 서있는 벨져 홀든 또한 다른 이들과 다름없이 그저 좋게 헤어지고 두 번 다시 안 만나면 그만일 텐데, 난 왜 그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내는 것이지? 이 커다란 아픔에 대한 불평일까? 그게 아니면…….

“그렇군, 다 먹고 버릴 찻잎처럼 쓸데없는 네 생각은 잘 들었다. 몸이 회복되거든 네가 살던 고향으로 당장 떠나라. 네 녀석에게 밀알만큼의 기대를 품었던 내가 한심스럽군.”

“이 생각은 절대 쓸데없지 않소. 이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갖게 될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네 녀석은 대체 그걸 왜 나에게 풀어놓은 것이지?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님, 부탁이라도? 그것도 아님 그냥인 것인가?

그의 독 사과와 같은 말 속에 나는 그저 말문이 턱하고 막힐 뿐이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삼켜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하나? 아냐, 아냐… 그래, 독 사과는 입에 닿으면 안 되는 것이야. 나는 평범하게 그저 평범하게 사과를 건네자, 그래 내 불평을 쏟아낸 것일 뿐이라며, 그렇게 넘어가자…

”하- 네 꼴을 보아하니, 네 녀석은 지금 품은 생각조차 잘 모르는 것 같군. 네겐 그 생각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잘 들어라 릭 톰슨. 네가 나에게 풀어낸 그 모든 말들은 그저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다. 다시는 내 앞에서 쓸데없는 생각은 풀어놓지 마라.”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러 붙잡아 보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뒷모습에 나는 통증조차 잊은 채, 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결국엔 통증에 사로잡혀 다시 침대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는 왠지모르게 화가 났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어본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 가득… 그 뒤로의 나는 우선 끓고 있던 속의 화를 다스려보았다. 그랬더니, 나는 내가 부끄러워졌고, 한심스러웠다. 벨져 홀든, 생각해보니 내가 화를 내고 불평을 준 그는 나보다 7살 어린 청년이였다. 나는 그의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더라? 한참 사회생활과 청춘을 즐기며, 나름의 고민도 하다가 또 그것이 쌓이면 훌쩍 여행을 떠나는 그런 평범하면서도 남들과 다른 청년이었지……. 그러나,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정확히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과 단단히 얽혀있었다. 물론 그의 성격상 분명 자신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위치에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그처럼 자신의 일을 행했을까? 아님 지금의 나처럼 행동 했을 까? 쌓여간다. 또 여러가지의 복잡한 생각들이… 이로서, 나는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젠장, 아직 능력도 못쓰는데, 복잡함만 더 쌓여갔어. 망할 홀든-”

그래, 이 기회에 나도 타인에게 제대로 화 좀 내어보자, 저 망할 벨져 홀든에게…

“이렇게 부려먹어도 이상하게 친절하네?”

“뭐, 그저 네 녀석에게 빚 따위 지고 싶지 않아서.”

“빚이라… 그래, 그대 덕분에 깨끗했던 내 어깨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지.”

“내 예상대로의 대답이 나와 헛웃음만 나오는군.”

“그대 말대로 회복되면 떠날 거야. 그대가 내 능력을 필요하다고 말해도 절대 빌려주지 않겠소.”

“넌, 이제 막 말을 뗀 아이인가?”

“그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소. 내가 떠나가도 날 기억하게 만들어버리겠어.”

“네 녀석이? 재미있군.”

“아, 이번에 이걸 원하오. 나름 그래도 한 손에 들고 올 수 있을 만큼 적었어.”

나는 곱게 접은 쪽지 한 장을 벨져에게 건네주었다. 쪽지 내용을 확인한 벨져는 또 어디론가 나갔다. 분명 돌아오면 내가 부탁한 것들을 전부를 사 오겠지. 그래 나는 조금 유치하다 생각했지만, 내 생애 있어 도련님에게,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이라 생각에 더더욱 투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이때의 유치한 여유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벨져에 대해도 알아 갈 수 있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오만했던 벨져 또한 내면에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달랐다. 기본적으로 그의 성격이 한몫하였지만, 그에겐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상처가 이제 거의 아물어가는군.”

“으음… 아니, 아직이오. 겉은 이래도 아직 능력이…….”

“그놈의 능력… 네 녀석은 능력이 없을 땐, 집에서만 있었나?”

“여긴 내가 살던 고향과 멀어. 그대도 알잖소.”

벨져는 더 이상 무어라 말도 없이 그저 제가 부탁한 것들을 건네주고 또 어디론가 나갔다. 정말 이상하였다. 이상하게도 벨져는 내 투정 전부를 들어주었다. 어째서일까? 날 두고 떠나도 이상 할 것 없는 자일 텐데……. 그 뒤로 나는 몸을 겨우 겨눌 수 있게 되자, 벨져는 나에게 전문 의료인을 붙여주었다. 치료와 함께 재활을 받았다. 손을 딛고 일어나기까진 보름이 지났고, 이리저리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그동안 벨져는 여전히 나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임무 이외의 시간에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참 이상하오. 그대는 왜 내 곁을 떠나지 않소?”

“내가 왜 떠나야 하지?”

“그야, 그대와 나는 모르는 사이니까. 이대로 두고 찾아오지 않아도 되잖소.”

“내가 말했을 텐데, 그저 내 인생에 헛점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헛점?”

“죽을 수도 있었음에도 네 녀석이 살아났으니, 난 그저 다시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돌려놓을 것이다.”

“아, 완벽한 그대의 여정에 내가 함께했는데, 그 결과 이렇게 크게 다쳐서 그런 것인가?”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말이 통해?”

“생각할 여유를 되찾은 것인가? 그래, 그럼 더 이상 볼 필요는 없을 테니. 작별이다. 여행자”

“뭐? 갑자기?”

“왜 놀라는 것이지? 치료가 끝나면 떠난다고 하지 않았나? 네 치료는 진작에 끝이 났고, 그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조만간 너 혼자서 게이트를 열고 돌아갈 수 있을 터. 그러니 난 가겠단 뜻이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어째서이지?

“그대는 내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나?”

“네 능력은 탐나긴 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뭐?”

“널 만나기 전에도 난 나 스스로 길을 찾아갔지. 그렇기에 네가 없어도 난 상관없다.”

발걸음 소리조차차 울리지 않게 돌아가는 벨져를 바라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능력으로 붙잡았다.

“역시, 능력을 다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군.”

“미안하오. 하지만 숨길 생각은 아니었어…”

나는 그 이후에 또다시 벨져에게 변명 아닌 변명만 늘어놓았다. 누가 보아도 너무나도 유치한 변명이었지만, 하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니까… 난 그래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었다. 내 변명은 물론 그때 당시 나로선 최선의 선택이었고, 벨져에겐 너무나도 시시말들뿐이었겠지?

“그러니까… 아프니까 능력을 숨겼다는 것인가?”

“결론은 그렇소.”

벨져는 내 말에 어떠한 말도 비웃음도 주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떠나려고 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어째서? 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놔라, 이 한심한 녀석.”

“그, 그게… 그대에게 부탁이 있소.”

“내가 왜 네 녀석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그야… 그대에겐 내 능력이 필요하지 않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네 녀석의 능력 따위, 내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 편리하고 또 체력 소모도 덜하잖소.”

“호오. 네가 늘 말하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협상 하는 건가?”

“으음… 협상이라면 협상이겠지? 그대에게 내 능력을 마음껏 빌려줄 테니, 대신 나 그대에게 부탁이 있어.”

“재미있군. 어디 한번 들어보지. 내게 부탁 할 것이 무엇이지?”

이 순간 나는 벨져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날카롭고 무서웠던 이미지는 어느 순간 어두움을 밝혀주는 달빛처럼 차갑지만 부드러웠다.

“난 그대처럼 강인한 사람은 처음 보았소. 그러니까 난 어쩌면 그대에게 기대하고 있어. 그대가 이 지긋지긋한 세상일을 끝내고 나에게 평범한 일상을 돌려줄 수 있단 것을… 그러니까, 그대가 향하고 있는 그 길에 내 능력이 필요하다면, 최우선으로 빌려주겠소. 그러니 그대는 꼭 내게 돌려주시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나의 평범한 일상을…….”

다소 긴장감이 맴돌아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잠깐의 고요함이 흐른 이후, 벨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입꼬리를 한쪽으로 치켜세우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릭 톰슨. 넌 생긴 것과 다르게 뻔뻔하면서도 재미있군. 그래, 평범한 너의 협상은 성공이다.”

“고맙소… 그대도 나름 좋은 인연이라면, 좋은 인연이오.”

“대신 너에게 조건 하나를 걸겠다.”

“조건? 뭐, 힘든 것이 아니라면, 난 괜찮소.”

“내가 반드시 네가 원하는 것 전부를 되돌려줄테니, 넌 그저 내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내가 네게 주는 조건이다.”

“뒤만 따라간다라… 뭐, 알겠소. 어렵지 않겠구려.”

그 이후로부터 나는 벨져가 준 조건에 따라 열심히 그의 뒤따라 움직였다. 생각보다 섬광이 가는 길은 무척 힘든 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려면 먼저 체력이 필요하다 생각되었고, 종종 벨져에게 도움을 받아 기초 체력 수련 및 호신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훈련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벨져는 나름대로 내 위치에 맞게 훈련의 강도 조율을 해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나는 계속 벨져에게 투정하고 불평했다. 그의 기준은 너무 높았기에 낮춤이 필요했다. 그의 주변은 아무래도 기사들과 능력자 투성이였으니 나 같은 평범한 자는 만날 일이 없어 모르는 건 당연했다.

“하아- 도넛 먹고 싶소.”

“릭. 지금은 훈련 중이다.”

“그렇지만- 이제 체력이 한계야. 지금 난 당이 무척 필요하오. 딱 한 개, 아니 반쪽이라도 먹고싶어… 초콜릿 코팅이 되어있는 것도 좋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설탕을 잔뜩 바른도넛이 먹고싶다. 아니, 아니다. 간만에 상큼한 딸기 크림이 한 가득 담긴 것도 좋겠군.”

“시끄럽다. 이번 훈련이 끝나면 먹게 해줄 테니, 집중해-”

“으… 알겠소. 정말, 내가 부탁한 것이지만 조금… 쉬운 것부터 하면 안 되겠소?”

“흐음. 전장에서 도움 될 만큼의 체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한 건 누구였지?”

“물론 나였지… 하지만, 그건 그대가 섹스할 때 조절만 잘해준다면 문제없지 않을까?”

“평소에도 네게는 필요하지 않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네 체력도 점점 갉아 먹히고 있지 않나?”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벨져의 말은 쓰디쓰고 아픈 구석이 있지만, 견딜만 했다. 그리고 벨져 또한 본인은 모르겠지만, 전과 달리 조금은 유순해졌다. 음, 이건 나름 우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 한정으로 유순해졌다. 연인의 특권이라 해야 하나?

“이번 훈련만 끝나면 먹게 해주지. 네가 원하는 만큼.”

“정말이오?”

“물론 먹은 만큼 다음 훈련이 힘들어지겠지만.”

“으… 너무하오.”

“며칠 전, 네가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정도는 견뎌라.”

벨져의 말속에 아픔이 있어 조금 억울하지만, 이제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선에서 벨져에게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기에 견뎌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마음가짐을 다시 잡은 이후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물론 나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불안함이 나를 잡아먹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땐 난 내 기준으로 절대 평범하지 않은 벨져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면, 불안했던 마음은 편안해졌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조금 유치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성장 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특히 내 능력으로 인해 생길 미래의 불안함은 벨져에게 주자. 그가 원했던 능력이었으니까.

“표정이 많이 좋아졌군.”

“그대도 많이 유순해졌어.”

이런 말을 대놓고 해도 될까? 싶었지만, 역시 벨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제 앞에 서서 여전히 나를 비웃으며, 앞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벨져의 뒤를 따라갔다. 불안함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내 곁에는 이 불안함을 뛰어넘을 만큼 강인한 자가 버티고 있었기에 나는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의 동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연성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져서 쓰다만 글들을 살펴보던 중에 따지고 보면 하나로 추려지기에 이렇게 합쳐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릭은 태생이 다정하고 자라온 환경이 평범했던 사람이기에 벨져보다 연상임에도 제아무리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더라도 불안함이 점점 커져 심적으로 크든 작든 무너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하며, 그렇기에 흔들림 없는 벨져를 보고 다시 일어서는 것도 써보고 싶었어요.

또한 벨져도 릭의 능력이 무척 편하기에 능력을 탐내고 있지만, 당연히 벨져 홀든은 릭의 능력이 없어도 스스로 잘 해내고도 남을 사람이라 생각해 이것 또한 써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릭이 다정하고평범하지만, 여우 같은 면도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

조금 여우 같은 면도 보고 싶었어요. 근데 잘 묻어나지 않은 거 같아 아쉽다…

진중하면서 가벼운걸 쓰고 싶어서 조금 가볍게 써봤어요-

그치만 간만에 재활겸 글을 써보니까 연성이 다시 즐거워졌어요. 종종 쓰다 만 것들 고쳐쓰기 해야겠습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벨져릭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