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화 [바스마르]

기년월 (幾年月)

https://youtu.be/Ohdc6Kt3XRI?si=s8V7fcQHKQY1zkuG

  • 본래 사이퍼즈 세계관이 아닌, 다른 AU의 바스마르 입니다.


“아버지, 저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마르티나는 생전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에 반항했다. 그다음으로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내가 아닌, 나의 여동생의 이름이었다. 네가 하지 않겠다면, 그레타라도 보내겠다며 언성을 높였으나 우리 자매는 굳건하게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략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게 우리 가족에게 분명한 득을 가져온다면 더더욱 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이 정략결혼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서두르는 감이 있었다. 

정략결혼의 상대가 이제 막 높은 신분을 얻어 번성하고 있는 가문이었고, 그런 가문이 우리에게 모든 조건을 맞추어 손해 보는 정략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것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가문의 주인이라는 사람은 중요한 일으로 정략결혼을 상의하는 자리에 대리인만 보냈을 뿐, 실제 가주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멍청한 가문이라며 좋아했으나 나는 그것이 미끼고 커다란 함정 같아서 의심과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 성급함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리가 없음을 의심하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정원의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사용인들은 친절하게도 마음이 안정되는 따스한 차와 간식들을 내어주었다. 찻잔을 매만지며 비치는 내 심각한 표정에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검은 그림자가 찻잔에 보였다.

“마르티나, 걱정이 큰가 봐?”

정원 일을 해주는 바스티안이었다. 그의 말에 다시 큰 한 숨을 쉬고 불안한 마음에 엄지 손가락으로는 계속 찻잔을 문질렀다. 그와 나는 신분의 차이가 있어 마주 앉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기 에그 모습에 가만히 옆에 서있으며 나름의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원래라면 나의 이름도 제대로 부를 수 없었지만 내가 그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기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허락했다. 그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정원의 손질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정원을 둘러보며 가지치기를 했기에 깔끔한 푸르름이 좋았고, 색을 구분하지 않고 심어둔 화려한 장미 꽃밭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엉망이라며 폄훼했지만 나는 그 꽃밭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 형형 색깔의 장미는 구분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그것이 화려함이라는 해석이 될 수 있다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즈음, 바스티안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입거리의 쿠키를 손으로 집어 나의 입술에 대었다. 나도 모르게 그것을 반사적으로 입으로 넣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의 손이 살짝 들어와 쿠키를 넣어주고 빠지면 나는 그것을 우물거리며 씹는다. 향긋한 버터의 향기와 텁텁한 단맛을 느끼다가 조금 식은 차를 한 모금 머금으면 깔끔하게 중화된다. 그러면서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중화되어 차분해졌다.

그는 풀린 나의 표정에 제 손에 묻은 쿠키 가루를 핥아내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 덕분에 조금 나아졌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너를 위해서라면 다른 것도 할 수 있는걸.” 

“그건 어디까지나 정원사로서 말하는 거지?” 

그는 나의 질문에 오랜 시간 침묵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입술은 달싹였지만 끝내 말을 하지 못한 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 그렇지.’라며 작게 대답했다. 

“내일이면···, 이런 위로도 못 받겠네.” 

“걱정 마, 보러 올게.”

그는 몸이 좋지 않은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정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것이 내심 아쉬워서 풀이 죽으면 그는 또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을 해준다. 이런 위로를 받기 위해 정원에 자주 들락거렸던 나의 일상도 분명 바뀔 것임을 확신하며 그에게 부모님을 더 많이 챙겨드리라고, 그러다가 문뜩 생각이 나면 그때 와달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다음 날의 그는 정원을 정리했다는 흔적만을 남긴 채, 저택에서 사라졌다. 상실은 컸으나 해결할 일 투성이다. 정략결혼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원사를 구하는 것도, 나의 또 다른 안식처를 모색하는 것도 나의 할 일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그 정략 결혼의 가주가 직접 나와 만나 이야기를 하는 날이었다. 어떤 사람이 앉아있든 침착하게 그 사람을 파악을 해야한다며, 이 결혼을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 사람이 있는 손님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방에 앉아있는 것은 바스티안, 그였다. 그가 나의 정략 상대의 가주임을 알았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과 심지어는 굴욕감까지 들었다. 어째서 신분을 속이고 우리 가문에서 일을 했는지, 어째서 내게 그런 위로를 해주었던 건지. 어째서 그런···.

그와 마주 앉으니 평소에 보아왔던 옆에서 섰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그가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갔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은 내가 알던 바스티안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이런 정략결혼을 하고 싶어 해?”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고작 그거 하나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정원사 일을 한 건 아니지? 알고 있어.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거.” 

“마르티나, 너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문제야. 그럼에도 이 결혼은 할 수밖에 없을 거야.”

“··· 소브차크 씨, 저는 이 결혼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가문의 사람을 알아보세요.”

“마르티나, 꼭 그런 이름으로 불러야겠어?”

“저는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으니 용건은 끝났어요. 돌아가주세요, 소브차크 씨.”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님방의 문이 닫힐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이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가 정략결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력자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서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다른 가문을 수소문하여 다른 정략결혼을 진행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뜻대로 되질 않았다. 어느 조건도 부족하지 않았던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성사시키자마자, 유일한 아들이었던 나의 결혼 상대가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그가 한 짓이라면, 그렇겠지.

그는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 가문을 고발하여 가문이 해체되기 직전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정략결혼으로 이루려고 했던 그의 원초적 목적이었을 것이었다. 나와 그레타는 이전부터 이런 일에 대비해 준비해둔 자료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 우리는 미리 만들어 두었던 독립적인 가문에 둘이서 단란하게 있을 수 있을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언제 그가 무너뜨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원초적 목적을 달성했기에 더는 내게 관심을 두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 이어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전과는 다른 손님방에서 마주한 그는 어쩌면 초췌하고, 어쩌면 조금 기뻐보기 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소브차크 씨, 당신의 목적은 끝나지 않았나요?” 

“마르티나, 그럴 리가. 내 목적은 두 개였어.” 

“하나는 가문을 망하게 하는 것. 또 하나는···.” 

“너를 소유하는 것.”

그가 말하는 것에 미간을 좁혔다. 그가 말한 단어, 의도, 모든 것들이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소유’한다는 것도, 나를 소유 싶어한다는 ‘마음’도. 큰 소리를 내어가며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불쾌하고 무례하네요. 저는 누군가에게 소유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 돌아가세요.”

“하지만 이런 작은 가문에서 네가 뭘 할 수 있지? 고작 저 멍청한 여동생 하나만 데리고.”

그레타를 비하하는 말에 이미 차게 식어버린 찻잔을 보다가 그에게 엎었다. 정확하게 얼굴에 뿌려진 차에 순간 기분이 나 빠보였지만 이내 그는 뺨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혀를 내어 훔쳐 입안으로 가져가더니 웃었다. 소름 돋을 정도로 기뻐 보이는 웃음에 속이 매스꺼워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달달 떨리는 손을 겨우 맞잡고 침착한 척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란한 기분이면 항상 이 차를 마셨었지, 마르티나?” 

“제 동생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대화할 가치도 없는 것 같으니 일어날게요.” 

“마르티나, 이 작은 가문을 망하게 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야. 지나간 네 가문의 일을 다시 끌어올려 네 동생에게 죄를 묻는 것도 쉬운 일이지. 그래, 벌은 사형으로 하자. 고작 그것뿐이겠어? 이 조그마한 저택마저도 잃게 되고, 너는 늘 혼자 굶주릴 거고, 그러다가는 결국···” 

“그만해, 바스티안.” 

“마르티나, 그러니 나와 결혼하자. 너를 위한 가문이고, 너를 위한 재산이고, 너를 위한 결혼이야. 네가 좋아했던 정원도 그대로 만들어 두었으니까. 나와 결혼하자. 아니? 결혼해야만 해.”

하나부터 열까지 손해 보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 그와 결혼하면 분명 그레타의 삶이 풍족해질 것이고, 내가 사랑했던 장미 꽃밭을 다시 볼 수 있고,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달랬던 위로마저 돌아온다. 심지어는 신분이라는 벽 없이 서로를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고, 가슴 한편에 두었던 감정을 꺼내어 정략결혼이 아닌 진짜 감정이 담길 수도 있겠지. 

매일 같이 불안에 떠는 삶보다, 누군가에게 종속되고 소유되며 사는 삶은 이미 한 번 겪어보았으니 두 번째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눈을 감고 인내하며 결국 그와의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모두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드레스부터, 장신구까지 그 어느 것도 고급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의 저택으로 옮기고 나서도 그런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감시와 감금이라는 목적 하에 별관을 전부 사용하며 과분한 보호를 받았고, 그가 가꾼 드넓은 정원을 대부분 홀로 즐겼으며, 항상 부족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외부에서는 그가 애처가라는 소식이 돌며 사교계에서는 그를 다시 보는 인물도 많았고 아쉬워하는 이도 많았으나 실체는 집착과 구속임을 모르는 듯싶었다. 

“이제 밖이 추워, 마르티나.” 

그가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려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주며 말했다. 천천히 손을 내려 나의 팔을 문지르며 체온을 올려주고 고개를 내려 나의 이마에 작은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지만 나는 여전히 무미건조하게 정원을 바라보았다.

“온실을 만들기로 했어, 너를 위해서. 온실에서 기를 특별한 새도 구했고.”

“그렇게 까지 해줄 필요 없어, 정원으로 만족해.”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마르티나.”

“다음에는 그러지 마.”

그에게 경고하듯 무심하게 말을 던지고 그를 지나쳐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얼마나 사람들 닦달하고 돈을 들였는지 온실을 만드는 대에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 온실에서 하루종일 그 안에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봤다. 나는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언제나 막힌 하늘만을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는 Mili - Ikutoshitsuki 라는 곡을 들으며 썼던 글입니다.

기년월의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아버지에 의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살다가 수개월 후에 우연히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원사 바스티안으로 설정, 다른 남자를 가주가 된 바스티안으로 설정했습니다. 사랑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은 했는데.. 마르티나가 사랑했던 정원사 바스티안의 모습을 수개월 후에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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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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