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Y] 전쟁이 끝날 때

벨져+릭(논컾)

*적폐캐해. 뭔가 이상한 게 있다면 당신이 옳은 겁니다.

*클리브 인터뷰(공식 만화) 이후의 시점

*걍 둘이 대화만 함



익숙하게 트와일라잇으로 들어온 벨져는 올곧은 자세로 눈만 움직여 그 장소를 흘겨보았다. 여러 명의 능력자가 무리 지어 있는가 하면, 몇몇 능력자는 마치 다른 세계에 빠져든 것처럼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 하는 짓은 다양했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을 벨져는 마음에 들지 않다.

너무나도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그는 평소처럼 트와일라잇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카페의 근처에 섰다. 정확히는 그 근처 벽에 자리 잡고 섰다.

“벨져?”

그는 명상이라도 즐기려 한 찰나,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곳에는 카페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 릭이 있었다.

“세상에. 정말로 벨져로군. 벨져와 이곳에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야.”

“무슨 소리지? 전에도 전장에서 만나지 않았나.”

“음? 그랬소?”

그리고는 얌전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살짝 허탈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그 모습도 ‘릭 톰슨’의 모습이라고 벨져는 무심코 생각했다. 그의 어딘가 허한 표정은 벨져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건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벨져가 생각에 빠져있을 동안, 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벨져의 시간을 생각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관심에서 나오는 행동에 가까웠다. 물론 이는 릭이 벨져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벨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걸 기다리다가, 컵을 손에서 놓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하긴, 여기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지?”

그는 생각보다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약속 때문이지. 일이 끝나고 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버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소. 그런데….”

그는 말을 줄이더니 저 멀리 보이는 여럿 능력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 광경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혹은 바다에 일어난 물보라처럼 구경하였다.

“괜히 온 것 같기도 하오.”

릭의 한탄을 벨져는 이해하였다. 릭의 성격을 알고 있기도 했고, 그 자신도 공감하는 바였다. 아마 두 사람은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닌, 그저 하나의 ‘버릇’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벨져는 떠들썩한 능력자를 뒤로하고 다시 릭을 보았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가는 건 어때. 네 능력이라면 금방 도착하잖나.”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군. 벨져의 능력이라면 원하는 곳에 빠르게 도착하지 않소?”

“너보단 덜하지.”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지 그래. 그의 말에 릭은 보기 좋게 웃었다.

“내가 집으로 가지 않는 이유 정도는 알고 있지 않소.”

그의 웃음 안에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평상시의 벨져였다면 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무언가가 벨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라도 한 것일까? 벨져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모르겠군. 너는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해도 된다. 릭 톰슨 너는 이 일에 책임감을 느낌 필요가 없어.”

“도망치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는 소리요?”

“…그래.”

릭이 알고 있는 벨져와 많이 다른데도 그는 놀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벨져의 답에 대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대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난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나에게는 책임이 있소.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그저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이고. 지금은 책임을 즐길 줄 알게 되었지.”

“그러니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가.”

“그런 이유도 있고,”

릭은 잠깐 말을 쉬었다.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털어놓기로 마음먹기라도 했는지 마주치지 않던 벨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이미 어떤 기자에게도 말했지만, 돌아가면 다시는 떠나기 싫을 것 같소.”

그의 말은 흔들렸지만, 그만큼 확신에 차 있었다.릭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 짧은 여행 동안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랬음에도 벨져는 여전히 그와는 다른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돌아가도 괜찮다. 고작 그 말이,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릭은 자신의 왼쪽 손목을 보았다. 수많은 시계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컵을 들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런,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보냈군. 말동무에 어울려줘서 고맙소. 짧지만 즐거웠소.”

“가는 건가?”

“집은 아니고, 약속이 있으니.”

그의 우스갯소리에 황당했다. 벨져는 그곳에 서서 릭이 트와일라잇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 급하게 가는 것인지 게이트를 열어 한 손을 게이트에 넣을 때였다.

“벨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릭 쪽으로 돌렸다. 그는 후련한 얼굴로 벨져에게 말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대가 날 집으로 보내주시오.”

그는 손을 살짝 흔들고 게이트를 넘었다. 벨져는 둥글게 눈을 뜨고 게이트가 있던 흔적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보내달라는 말이 이상하리만큼 당연하고 무겁게 들렸다. 그의 말은 절대 집으로 질질 끌어서라도 돌려보내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을 원한다는 소리였다. 벨져는 그 말을 단숨에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자마자, 벨져는 다른 사실도 알아챘다. 왜 그가 ‘떠나기 싫을 것 같다’고 했을 때 목소리가 흔들렸는지. 후회와 그리움이 깊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떠난 릭의 모습이 벨져의 눈앞에 잔상처럼 나타났다. 그 환상을 보고 벨져는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때가 된다면.”

중얼거리는 소리는 그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고, 소란스러운 트와일라잇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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