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싫은 후일담
간밤에 꾸었던 꿈을 되새긴다. 일어난 지 오 분도 되지 않았건만, 멀쩡하게 떠오르는 파편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얼굴만 아는 사람의 얼굴. 조금 웃긴 어구라고 생각했지만, 말 그대로 그의 얼굴 뿐이 뇌리에 부상했다. 그가 나와서 무슨 짓을 벌였더라...... 백그라운드도, 스토리도, 키워드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 몸을 감싼 푹신한 이불을 껴안았다. 애인과 동거하게 되었을 때 새로 장만한 이불인데, 솔직히 그는 동거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한다. 뿌연 젤라틴으로 막을 친 듯한 기억. 기억해내려 용을 쓴다면 분명 막 안으로 손을 뻗을 수야 있겠지만, 그 뒤로 이어질 자각과 연쇄 따위가 막연히 두려웠던 탓에, 그는 부러 시작의 기억을 애써 무시했다.
아무튼 그 이불에 깊게 몸을 묻어선 제 얼굴 위로 휴대전화를 쥐어들었다. 바탕화면의 우리은하가 느릿하게 회전한다.
인터넷 뉴스를 볼까. 그다지 명확한 의지는 아니었다.
애당초 자신에게 뚜렷한 의지라는, 허울 좋은 개념이 존재하던가?
삶의 의지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있다고 대답하겠지. 그건 대다수의 생명체에게는 당연한 일일 건데. 어째서 있냐고 물으면 나는, 그를 목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를 만나기 이전에는 목적이랄 것이 없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를 만난 것으로 이번 삶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이야기해도 될까?
재미없는 사고가 가지를 쳤다. 그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했다.
[홋카이도 천문관에서 연쇄 살인 사건 발생]
이런 기사 제목 한 줄이 제 눈동자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열린 동공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남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자신의 내면을 천천히 죽여가던, 결국에는 구원도 받지 못하고 끝끝내 파멸해 버린 그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댔다.
죄책감이라기엔 가벼운 감정. 마음 한구석이 불편할 정도의, 작은 크기의 우주 쓰레기와 비슷한 감각. 신도 쥬조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그리 좋은 사인은 아니다. 괜히 발을 들였나. 책임을 나눠 질 생각은 없었는데.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었는데...... 때늦은 후회 탓에 입안이 쓰다.
그 한국인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구원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연옥에 빠뜨린 장본인. 그는 지금까지 몇 명의 손가락을 짓밟으며 살아왔을까? 몇 명의 절박함을 꺼뜨렸을까. 지독한 자기애가 아닌, 지독한 이성에서 우러나온 판단. 분명, 그도 깨나 재미있고 무서운 인간일 테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들었거든......"
문득 튀어나온 혼잣말. 신도 쥬조는 그 의미를 자의로 되새기다가,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잘린 머리카락을 내려다봤다. 어깨를 살짝 덮을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이었다. 숭덩숭덩 잘린 단백질 덩어리들은 무기력하게 석재 바닥을 뒤덮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얼룩말의 무늬와 꼭 닮았다. 저도 모르게 잠시 웃음을 머금는다. 일차원적인 링크는 무한하게 그 뿌리를 뻗곤 했다. 마지막으로 손이 닿은 관념은 두부.
집 근처의 이용원은 십 칠 년 째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주인은 저보다 적어도 열 살은 많아 보였다. 언제나 무뚝뚝하게 머리카락을 깎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돌이나 나무를 깎는 기술자라고 하는 편이 어울렸다.
하여튼 그는 말이 없어서 좋았다.
값을 치르고 문지방을 넘었다. 허공은 눈이 아릴 정도로 푸르다.
무심코 뒷덜미를 쓰다듬으니 까끌까끌한 감촉이 제 손가락을 훑는다. 그 감각이 의외로 나쁘지 않아서, 몇 번을 더 만져댔다.
올해는 연구를 쉬기로 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최초의 안식년이었다.
연구 없는 1년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남들의 논문이나 읽으며 수동적인 사고실험을 지속해야 하는 걸까.
족쇄와 같은 휴식이었다.
안식년에는 안식을 해야 하니까.
안식이라는 말의 어감은 좋지 못하다. 영원한 따위의 수식이 우선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일곱 명이 영면했다. 그것은 나 때문인가?
직접과 간접의 차이를 생각한다. 자신을 응시하던 새까만 동공을 떠올린다.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와 다를 것 없었던 간절한 얼굴을 떠올린다.
결국 그는 그 시점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내가 왜 당신의 이정표가 되어야 했지? 너무나 제멋대로이지 않나.
나는 이기적인가?
나에게 타인을 도울 의무가 있나?
도덕?
파란 머리의 남자가 물었다.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당신의 미필적 고의가요.
내가 그에게 살인이라도 사주했다는 이야기인가?
결과는 그와 비슷하게 산출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의는 아니었으므로.
나는 단지......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가 점멸했다. 여보세요, 하고 받으니 들리는 목소리는 아는 이의 것.
"뉴스 봤어요?"
"봤습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궁금해서 전화번호까지 찾아봤어."
"그냥."
"네에."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웠나요?"
"머리카락이 거슬려서 잘랐습니다."
"젊어 보이겠네요."
"앞머리가 길어서 시야를 조금 가렸습니다."
"그랬죠."
"닮았었죠."
"응."
"그래서, 잘랐습니다."
"하하하."
"재밌습니까."
"재밌네. 재밌고, 의외야."
"그렇습니까."
"나이가 들면 멍청해지니까. 당신도 그런 것 같아서 마음이 놓여. 적어도 인간이라는 얘기 아냐."
"멍청해졌나."
"나도, 당신도."
"하아."
"끊을래. 이제 데이트하러 나가야 되니까."
"오와리, 던가."
"쓸모없는 기억은 좀 잊어 줘."
전파 너머의 음성이 끊겼다.
테니스공을 삼킨 듯한 감각으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므로, 공원 벤치에 앉아 추스리기로 했다.
끝끝내 꼴사나운 피드백이 이루어졌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축축한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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