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우타-아는 남자애
고죠 사토루는 인기가 많은 남자다. 하지만 나에게 고죠 사토루는 아는 남자보단 아는 남자애에 가깝다. 그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한 점이 없다. 그 아이가 5살이 좀 넘었을 무렵인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애를 보러간 적이 있다. 어머니가 고죠의 어머니와 학교 선후배사이라서 생긴 친분이었다. 8살 무렵의 일은 웬만히 충격적이지 않으면 기억에 남기 힘들다. 그러니 내가 고죠와의 첫만남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음은 그 날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우타히메, 인사해. 사토루군이래."
"안녕.."
나는 어머니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때의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 그날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 애를 만나러 갔던 것이었다.
"사토루. 너도 인사해야지. 누나가 인사했잖아."
그 애는 팔짱을 낀 채로 별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애의 육안은 아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애 눈 안에 내가 비치는 게 괜스레 무서워져서 어머니 뒤로 숨었다. 그 애는 그런 내가 우스운지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고 있었다. 언제 생각해도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 자식, 이 일로 아직까지 놀려 먹고 있다. 어머니는 그런 내 어깨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감싸 어머니 앞으로 끄집어냈다. 우타히메, 사토루군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렴.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만남은 어머니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였던 것 같다. 복잡한 이해관계 없이 순수하게 주술계 집안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었으면 했던 모양이다.
그 후 나는 고죠와 단둘이 어머니들이 계신 방 옆방에 있게 되었다. 옆방에선 그간 못 나눴던 웃음을 나누는 소리가 소란하게 이어졌지만 나는 입을 꾹 닫은 채로 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여간, 어른들은 또래면 다 친하게 지내는 줄 안다니까, 그런 종류의 투정을 부르며 인상을 잔뜩 꾸겼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직전, 내게 그 애가 말을 걸었다. 정확히는 시비.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것 마냥 웃으며 말이다.
“저기, 울어?”
“안 울어!”
나는 곧장 눈에 고인 눈물을 주먹을 쥔 손으로 털어냈다. 그 애는 내 손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겨우 5살이 그런 모습이었다는 거잖아. 하여간 그 녀석은.
“울고 있잖아.”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누나야! 반말 하지 마!”
그 뒤로 우리는 한참을 옥신각신 싸웠다. 그 애한텐 싸움보단 유치한 장난 정도였겠지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큰 소리로 웃는 게 얄미워서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그 애를 잡으러 가는 날 피해 그 애가 도망쳤다. 방 밖의 마당으로 도망을 쳐서 우리는 맨발로 그 땅바닥을 잔뜩 헤집었다. 어른들 눈엔 그게 재밌게 노는 걸로 보였던 것 같다. 평소의 어머니라면 남의 집에서 예의 없게 굴면 안 된다며 꾸중을 하셨을 텐데 그날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풀린 내 머리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시며 재밌었냐고 물어보셨다.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 뒤로 자주는 아니지만 꼬박꼬박 그 애를 보러 갔다. 우린 만날 때마다 싸웠다. 별 같잖은 이유로 그 애가 시비를 걸었고 나는 꼬박꼬박 반응했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러다 1년에 한 번 갈까,말까 하게 된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였다. 중학생이 된 이후부턴 공부며 친구며 새롭고 복잡해진 것들 때문에 학교생활이 바빠졌고, 그 애와 내가 3살 차이라는 것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특유의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 애가 내가 다니고 있던 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면서였다.
“우타히메. 오랜만?”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약한 우타히메가 내가 없어서 울고 있을까봐 구경하러 왔어~”
“누가 울어? 아니, 그보다 난 약하지 않아!”
고죠가가 있는 교토에도 학교는 있다. 굳이 먼 곳까지 올 필요가 없는데 그 애는 도쿄까지 왔다. 제대로 얼굴을 본 건 거의 6년 만이었는데 그 애는 처음 만났던 5살 사토루군에 머물러 있었다. 키도, 덩치도 모두 커졌지만 내게 당연한 듯 시비를 걸어오는 그 애는 여전히 아는 남자애였다.
“매정해, 우타히메~ 간만에 본 아끼는 동생이잖아?”
“누가 아끼는 동생이야!”
소란한 1년이었다. 내가 졸업을 하고 그 애가 졸업을 할 때까지 우리에겐 다시 간격이 생겼다. 그 간격 동안 그 애에게 있었던 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교사로 사는 것을 결심한 것까지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 애도, 나도 나름의 사정으로 바쁘게 사느라 다시 얼굴을 보게 된 건 3년 만이었다. 나는 교토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는지 그 애는 자취방 문에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춥지도 않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타히메.”
“고죠. 여기서 뭐하는 거야?”
“3년 만인데 냉담하네~ 사토루군, 안 보고 싶었어?”
“시끄러. 문 앞에 서있지 말고 나와. 추워. 집에 들어갈 거야.”
“응. 나도 추웠어.”
문 앞에 멀대같은 남자를 치우고 구멍에 열쇠를 넣어 돌려 문을 열었다. 멋대로 들어 오지마,라고 하기 전에 그 애는 현관으로 나보다 먼저 발을 들이밀었다. 우타히메처럼 아담한 방이네~, 그 애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나는 기가 찼지만 그날따라 그 애가 차분해보여서 그 애가 하고 싶은 대로 놔뒀다. 그러지 말았어야 된다고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그 애는 그 뒤로 교토에 올 일이 생기면 우리 집에 왔다. 본가가 버젓이 있고 우리 집보다 더 좋은 호텔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면서 우리 집에 왔다.
“너네 집으로 가!”
“그치만 거긴 너무 커. 우타히메 집이 딱 아담해서 포근해.”
“남의 집 욕하지 마!”
하하, 그 애는 타격이 없는지 또 멋대로 남의 집 소파에 긴 다리를 뻗고 누웠다. 나는 그 애 다리를 신경질적으로 밀어 접어 소파에 앉았다. 올 때마다 맥주랑 먹을거리를 사들고 와서 내쫓기도 그랬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바닥에 누웠다.
“우타히메, 술 적당히 마셔~ 요절해.”
“너나 단 거 그만 먹어. 당뇨 와.”
“나는 누구랑 다르게 최강이라서 괜찮아.”
“그거랑은 다르거든?”
우리 사이에 별 말은 오고가지 않았다. 나는 야구를 봤고 걔는 아무 말 없이 그런 나를 보다가 야구, 재밌는 이유를 모르겠어, 따위를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럼 그 애는 다시 아무 말이 없거나 가끔은 만화책을 읽고 게임을 했다.
“우타히메. 시계 배터리 좀 갈아. 아, 키 안 돼서 못 가는 거야?”
“아니거든? 별로 의미 없잖아. 어차피 핸드폰 있고. 장식이야.”
“시계군 불쌍해~”
“무생물에게 감정 따위 있을 까봐.”
혹은 그 애는 내 집안에 수리할 것들을 찾아내 고쳤다. 뭐, 그 애가 오는 일은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런 식이었다. 그 애한테 여분 열쇠를 준 진 오래 되었었다. 내가 올 때까지 문 밖에 서있는 걔가 불쌍해 보인 건 아니고 단지 이웃들 눈에 띄기 싫어서였다. 언젠가부터 장을 볼 때 그 애가 좋아하는 단 음식을 하나 둘 담았다. 나는 절대 먹지 않을 그 단 것들이 찬장에 쌓였다. 쌓인 단 음식들은 그 애가 집에 오면 사라졌다. 그럼 나는 다시 차곡차곡 빈 공간을 채워 넣었다.
“우타히메도 하나 먹을래?”
“됐어, 맛없어.”
그 애가 건넨 초콜릿 한 조각을 거절했었다. 그 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자기 입으로 초콜릿을 가져갔다. 단 걸 그렇게나 먹는 데도 말랐다니, 그런 감상을 하고 마시던 맥주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평소보다 씁쓸하게 뒷 맛이 남아서 그 애가 초콜릿을 받을 걸 후회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었나, 그 애가 남기고 간 초콜릿이 눈에 보였다. 눈길도 주지 않을 초콜릿이었는데 그날따라 무심코 입에 넣어 버렸다.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었다. 한 조각을 똑 부러뜨려 입에 넣었다. 억지로 씹지 않고 자연스레 입 안에서 녹게 두었다. 나는 단 음식은 전부 싫어한다. 그 중 가장 싫어하는 게 초콜릿이다. 녹으면서 초콜릿이 온 입 안에 남는 것이 짜증나고 퍼지는 냄새도 기분이 나쁘다. 먹고 나면 어떤 걸 먹어도 맛이 약하게 느껴지는 게 싫다. 무엇보다도 먹고 난 후의 텁텁함이 싫다. 애매하게 사라지지 않고 한참을 머물다 사라지는 텁텁함이 나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나만 뭔가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고죠가 좋다..”
왜, 어째서,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나도 알고 싶다고 답한다. 그 애는 소문도 없이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되었다. 그 애가 제멋대로 헤집어 머물고 간 자리는 유독 따뜻해서 그 애가 없는 집의 찬기가 숨 막히게 시렸다. 온 집안에 그 애가 닿지 않았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고 싶지 않은데, 혹시 오늘은 그 애가 집에 있을까봐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 애에게 고백을 하고 싶다거나, 그 애와 연인이 되고 싶다거나 같은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 애가 돌아가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내 집이라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었다. 우리가 만나지 않는 날이 길어지더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만날 것임은 확실했으면 좋겠다. 그런 태평한 생각을 했다.
도쿄 외곽의 신사의 주령을 퇴치해달라는 2급 안건을 받았다. 같이 일을 나간 동료는 이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누고 진입해 순조롭게 일을 마무리 하던 참이었다. 내 앞에 검은 형체가 불쑥 나타났다. 이오리씨! 함께 일을 나간 동료 술사가 날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내 얼굴에 뜨거운 것이 흘렀다. 이오리씨, 괜찮아요? 이오리씨! 그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며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눈을 뜬 곳은 익숙한 의무실이었다. 한 손은 차가운데 다른 한 손은 온기가 느껴졌다. 천천히 시선을 올리니 그 애가, 고죠 사토루가 있었다.
“우타히메?”
“고죠..?”
“쇼코! 우타히메가 일어났어!”
고죠는 처음 듣는 다급한 목소리로 쇼코를 부르러 내 손을 놓으려고 했다. 나는 고죠의 손을 꽉 잡았다. 고죠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내 쪽을 보았다. 놀란 눈치였다. 내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고죠의 목소리를 들은 쇼코가 들어왔고, 고죠를 밖으로 내보냈다. 한참이 지나서 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생겼다. 아프지 않았고 별 감흥도 없었다. 주술사에게 상처는 영광에 가까웠으니까. 고죠는 거울을 보며 흉터를 더듬는 나에게 평소처럼 시비를 걸었다.
“역시 약해, 우타히메는.”
하지만 그건 시비가 아니었다. 탄식에 가까웠다. 고죠가 나에게 우냐고 묻는 일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없었다. 내가 울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흉터가 생긴 지금도 나는 생판 모르는 남이 다친 것처럼 굴었다. 다치기 전까지 더 이상 겁먹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줄곧 겁먹고 있었다. 고죠에게 돌아가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고죠가 있는 곳에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엔 살았지만 다음엔 죽을지도 모른다. 이어지지 못해도, 괜찮다.
“고죠. 나 고죠가 좋아.”
“..어?”
“줄곧 고죠가 좋았어.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쉽게 집에 들이는 여자는 없어. 네가 집에 오는 게 좋았어. 네가 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어. 나는, 고죠를 계속-.”
내 다음 말은 고죠가 삼켜버렸다. 고죠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다. 이건 봤던 얼굴이다. 고죠는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아, 처음 만났을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고죠 눈 안에 또 나만 보이잖아. 줄곧 아는 남자애야.
“우타히메, 좋아하지 않는 여자 집에 시간을 쪼개서 찾아가는 남자는 없어. 나는 우타히메에게서 그 말이 듣고 싶었어.”
단 음식은 여전히 싫다. 그래도 초콜릿은 조금 먹을 수 있다.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 퍼지는 단 내음도, 그것이 가시고 찾아오는 텁텁함도 전부 즐기게 되었다. 내가 아는 남자애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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