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새끼. 잇새로 토해낸 단어에는 공포와 경멸이라는 양가감정이 뒤섞인 채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은 새삼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다. 아닌 밤중에 복면의 암살자를 마주한 일곱 살 고죠 사토루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실패했으면 배우는 게 있어야지. 새파란 육안이 가느스름하게 빛났다. 건장한 체격의 암살자는 흙바닥을 긁으며 신음했다.
사흘 전, 후시구로 메구미가 사라진 날은 그의 학급 주번일이었다. 일찍이 동생의 주번일을 확인해 두었던 츠미키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같은 날 주번이었던 아이는 교문을 통과하던 후시구로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주번 일을 마친 아이가 느지막하게 하교했다손 치더라도 교직원의 퇴근 전일 터. 기껏해야
*** 불행의 전조란 무엇일까. 건드리지 않은 선반의 장식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놓친 컵을 깨거나. 영화나 소설에 으레 등장하는 장면, 그 대부분은 자질구레한 사고다. 등장인물은 그처럼 작은 사고로부터 닥쳐올 불행을 직감한다. 당연히 이야기 속 불행은 안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도 뭐,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고죠는 트뤼프 초콜릿 세 알을 한
* 아고물 어두운 밤 골목 집 앞에 누군가 쪼그려 앉아있다. 이 추운 겨울, 딱 봐도 겉옷 하나 없이 교복 바람으로 나온 것을 보아하니 근처에 사는 고등학생이 가출이랍시고 집을 튀쳐나온 모양이다. 근데 그게 왜 하필 우리 집 앞일까. "저기 학생?" 고죠의 목소리에 검은 머리통이 고개를 들었다. 꽤 오랜 시간 추위에 떨고 있던 건지 얼굴이 창백했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까운 곳에서 고함이 터졌다. 고죠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형태였다. 문으로부터 가까운 자리가 말석, 먼 곳이 상석. 소리친 남자는 벽을 따라 앉은 이들의 중간에 위치했다.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창백한 낯빛에 날카로운 인상. 노여움 탓인지 불그스름하게 변한 남자의 얼굴에 여러 쌍의 시선
잠에서 깨자 깨끗하고 높은 천장이 보였다.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 좀체 가시지 않는 잠기운에 마른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아…. 내는 목소리는 끝이 갈라진 채였다. 양팔과 목덜미에 닿는 베개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가슴을 덮은 이불은 도톰한 두께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볍고 푹신했다. 젖은 솜처럼 축축 늘어져 몸을 누르는 기숙사의 오래된 침구와는 비교도 할
주술고전의 수업은 일반 고등학교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놀랍게도) 국가의 인증을 받은 기관이니만큼 정규 교과과목을 채택하고는 있었지만, 여타 특성화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않는 식이었다. 고전의 수업은 일반고등학교와 다른 독자적 커리큘럼으로 이루어졌다. 수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주령을 상대하기 위한 이론과 실전훈련이
“불편한 곳은?” “딱히….” 한참 그의 얼굴을 살피던 이에이리가 허리를 폈다. 후시구로는 어색하게 목덜미를 쓸었다. “이런 건 내 전문 분야가 아닌데.” 열감 없이 싸늘한 음성이었다. 맞은편 소파에 늘어져 있던 고죠가 고개를 들었다. 후시구로의 상태를 보아 달라며 이에이리에게 그를 내던진 고죠는 내내 스마트폰을 쥐고 씨름을 하던 참이었다. 그는 먼저로 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다. 후시구로는 한때 산책로였을 길을 침범한 나뭇가지를 걷어냈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관목과 울창한 나무들이 방향감각을 흩트려놓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억센 풀줄기가 팔을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