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는 날개 달린 염소의 꿈을 꾼다
오르토 슈라우드 드림
* 오르토 생일 기념 연성. 단챠로 나와주는 효자 휴머노이드 실존...
8월 14일 새벽 1시 12분. 학생 대부분이 잠든 늦은 시간, 휴식 모드로 전환 후 오늘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던 오르토는 제게 도착한 영상통화를 확인하고 눈을 떴다.
“……응? 누구지?”
이런 늦은 시간 제게 올 연락이 있던가. 빠르게 추려낸 후보가 몇 명 떠오르긴 하지만, 그들 중 누구일지 까지는 추리해 낼 수 없다. 사람과 달라 활동 모드로 전환이 빠른 그는 꼭 필요한 기능들만 우선 활성화한 후 걸려온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르토 도련님.」
화면에 비치는 건 약한 조명에 비치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르토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엉성한 조명과 주변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 그리고 상대 뒤로 보이는 밋밋한 무늬의 천을 확인하고 상대가 이불 속에서 무드등을 켠 채 제게 통화를 걸었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레르네가 재학 중인 학교의 기숙사도 한 방에 여러 학생이 지내니까, 룸메이트들이 깨지 않게 하려고 최소한의 조치를 한 거겠지. 형이 만들어 준 뛰어난 프로그래밍으로 상황을 분석해 낸 오르토는 이렇게까지 해서 제게 연락해 준 레르네를 명랑하게 반겼다.
“레르네! 안녕, 늦은 시간인데 아직 깨어있는 거야? 졸리지 않아?”
「저는 원래 늦게 자니까, 이 시간은 늦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걸요.」
“하긴. 레르네랑 르니안은 옛날부터 늦게 잤지. 레르네는 그래서 키가 안 큰 거 아냐?”
「그렇게 치면 오빠가 큰 게 설명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도련님보다는 제가 크다고요.」
그래봐야 2cm 정도 차이지 않던가. 하지만 어쩌면 레르네는 몇 년 정도 더 클 수도 있겠지. 자신은 휴머노이드지만, 레르네는 인간이지 않은가. 자신과 달리 성장하고 상처 입고 늙는 몸을 가진 인간 말이다.
오르토는 자신은 느낄 수 없는 감각, ‘졸림’의 공격을 받느라 계속해서 눈을 비비는 레르네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옛날에 함께 탄식의 섬에서 지낼 때는 새벽 3시까지도 깨어있곤 했던 레르네지만, 보아하니 기숙사에 들어간 후엔 수면시간도 꽤 앞당겨져 이 시간에도 졸려지는 모양이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원래는 12시가 되자마자 연락드리고 싶었는데, 오빠가 ‘정각엔 오히려 다들 축하하느라 바쁠 거다’라고 해서 지금 연락드렸어요.」
“그랬구나! 고마워, 레르네!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요?」
기다렸다는 말이 기분 좋은 걸까. 무뚝뚝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굳이 거짓말까지 하며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레르네는 화면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압축파일 하나를 전송해왔다.
「저, 이거 선물이에요.」
아무리 방계 가문 출신 약혼녀가 보낸 선물이라고 해도 바이러스 체크는 필수다. 오르토는 제게 전송된 파일을 빠르게 스캔한 후, 내용물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물었다.
“지금 열어봐도 돼?”
「예.」
“와아!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접촉하고 실존하는 선물도 싫지 않지만, 역시 자신 같은 휴머노이드는 이런 데이터로 된 선물 쪽이 더 좋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고, 메모리 칩에 잘 저장해두면 기어를 바꾸더라도 계속 가지고 다닐 수 있지 않나.
파일 내용물을 뜯어본 오르토는 폴더별로 정리된 파일의 확장자들을 쭉 확인하더니, 금방 선물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이거, 미니게임이구나! 그림은 레르네 씨가 그린 거네?”
「네.」
“나랑 형이 주인공이라니, 흥미로워! 나중에 형이랑 같이 해봐도 돼?”
「물론이에요. 그렇게 잘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좋아해 주시니 기뻐요.」
“잘 만든 게임이 아니라니? 그런 건 직접 플레이해보고 판단할 거야. 나나 형은 직접 플레이하고 나서야 평을 내리는 타입인 거 알잖아?”
「퀄리티 적인 부분을 말한 거지만……. 하긴, 게임은 그래픽이나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긴 하죠.」
레르네 또한 게임에는 조예가 깊기 때문일까. 오르토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듯 금방 의견을 바꾸곤 볼을 긁적였다. 수줍어하는 레르네를 뻔히 화면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세부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걸 멈추지 않는 오르토는 주인공과 NPC의 도트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그런데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 혹시 용사 느낌으로 그린 거야?”
「알아봐 주셨군요! 네, 맞아요! 어느 특정 작품의 용사가 떠오르지 않게, 하지만 보편적인 용사 복장에 맞게 그려보았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요!」
방금까지 수줍어한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오르토가 자신이 신경 쓴 디테일을 알아보자 금방 들떠 목소리가 커진 레르네는 열정적으로 기획 의도와 디자인 디테일에 관해 떠들어댔다.
누군가는 참으로 수다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르토는 레르네의 이런 면모가 싫지 않았다. 제 형도 이런 타입이다 보니 상황에 익숙하기도 했고, 기획자의 의도를 들을 좋은 기회를 어찌 싫어하겠나? 그리고 레르네가 신이 난 걸 보는 것도 좋으니, 오르토로서는 오히려 득인 셈이었다.
「맞다, 거기 나오는 펫은 옛날에 제가 도련님에게 그려드린 그림을 기반으로 한 건데…….」
‘아차.’ 그때.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펫에 대해 설명하던 레르네가 말을 뚝 멈추었다.
제가 이 그림을 그린 건 오르토와 자신, 단둘이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오르토를 제작한 이데아는 이런 추억을 모를 테고, 당연히 휴머노이드 ‘ORTHO’는 이 그림을 기억하지 못할 텐데. 이런 말실수를 해버리다니.
「그,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그래요. 예.」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백지장처럼 된 레르네는 급히 말을 수습했다.
그러나 오르토는 잠깐 눈을 감고, 이제는 누구도 덮어씌울 수 없어도 태초엔 형이 입력해 주었던 데이터베이스 너머, ‘그’가 깃들었던 메모리 칩을 열심히 검색하더니……. 황금빛 두 눈을 번쩍 떴다.
“기억하고 있어.”
「예?」
“우리가 6살 즈음, 레르네가 하늘을 나는 말의 친구로 날개 달린 염소가 있다면 이런 생김새지 않을까 상상하며 그린 괴물 아냐? 그때보다 더 비주얼이 업그레이드되어서 귀엽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레르네는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삼켰다.
오르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다. 자신도 그 난리 속에, 오라비인 르니안과 함께 S.T.Y.X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지 않나. 핏줄과 자란 환경 탓에 마법사임에도 과학을 중요시하는 레르네는 몰아치는 생각과 감정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르토는 상대가 이리도 놀란 이유를 모르는지, 태연하게 디테일을 지적해왔다.
“어라, 그런데 원래는 뿔이 하늘색이지 않았어? 왜 갈색이 된 거야?”
「……염소 뿔은 원래 갈색이잖아요.」
“으음. 그렇게 치면 염소는 원래 날개가 없는걸.”
「그건……. 그렇죠.」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온다. 오르토는 그 객관적인 변화만큼은 확실하게 캐치하고, 깜짝 놀라 물었다.
“레르네, 울어?”
대체 언제 조명을 끈 걸까. 어두워진 화면 속 레르네의 얼굴은 윤곽만 흐릿하게 보일 뿐,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핏덩이 같은 새빨간 눈을 느리게 깜빡거린 그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늦게까지 모니터를 봤더니 눈이 뻑뻑해져서 그래요.」
“정말이야?”
「그럼요. 그러니까 저는 잘래요. 낮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음……. 알았어! 잘자, 레르네!”
아무리 봐도 이건 거짓말 같지만, 바이탈 사인을 체크 할 수 없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오르토는 화상 통화가 종료된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선물 받은 파일을 열어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화면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한 거라면,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제 마음속 무언가는 이미 결론을 내렸지만, 그걸 레르네에게 티 내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제 제작자를 닮아 묘하게 섬세한 구석이 있는 그는 다시 모든 기능을 휴식 모드로 돌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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