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싫] 필링필링

외전3. 그 사람의 휴일

다정의 다정

망상요람 by Z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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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다.

타냐는 안 그래도 그 때문에 비싼 비행기 표를 예매한 참이었다. 그나마 이번엔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지···. 예전 같았으면 비행기 사고가 날까 봐 무서워서 차를 타던가, 이동 특기자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아예 본가를 오가는 일을 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타냐는 오랜만에 끊은 모바일 탑승권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오는 내내 주변이 바글거리는 것이 영 낯설었지만, 명절이니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수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새로웠다!

“저··· 혹시, 히어로 타냐 맞으신 가요?”

“네? 네, 맞는데요.”

“와아, TV에 나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때, 타냐의 정체를 물어본 사람을 기점으로 아예 타냐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체 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다. 타냐는 제법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는 히어로인데다가, 최근 제법 진지한 사건이 있지 않았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와 의심의 눈빛으로 타냐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장본인은 방송이나 뉴스에서 히어로의 얼굴로 종종 등장하는 것에 비해 외출은 없으니 인지도를 실감할 일이 없었다.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니는 타냐를 찾아 함께 사진을 찍어 올리는 챌린지마저 있을 정도였는데, 뭐…. 그걸 눈치채지 못한 타냐 탓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타냐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 했고,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잘 봤어요. 어린데 고생 많았네.”

“언니 예뻐요!”

“네, 감사합니, ···뭐라고요?”

결국 타냐 주변에는 결계라도 친 듯, 동그란 원이 형성되었다. 이런 시선을 예상했다면 차라리 전용기나 경호를 부탁했을 텐데. 타냐는 뒤늦게 잔뜩 후회하며 꾸역꾸역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움직일 때마다 양해를 구해야 했다.

“저, 저 잠깐 화장실 좀···.”

“근데, 저 언니 진짜 25살이래?”

“동갑인데 무슨 언니야, 내숭 떠냐?”

“원래 예쁘면 다 언니랬어.”

으아아, 정신없어!

타냐는 오수를 비롯한 지인에게 있는 대로 연락을 넣었다. 비행기 표를 취소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대로라면 비행기에 타서도 따끔따끔한 시선에 고통받을 것 같아···. 설마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내 탓이었나?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에 타냐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 말은, 다시 인파에 파묻혔다는 소리다···.

“타냐 님, 모시러 왔습니다! ···타냐 님?”

“사, 살려줘요···.”

결국 타냐는 반쯤 건어물이 되어서야 전용기를 타고 본가로 향할 수 있었다.


“이건 메이 씨, 이건 오수 씨, 서장님, 그리고 베일리 씨···.”

“뭐하냐?”

본가, 타냐의 방- 방이라기엔 살풍경한 곳에서 타냐는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열 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개수였다. 타냐의 오빠, 오디는 그런 타냐를 발로 툭툭 건들며 뭘 하는지 물었다.

“아, 그러지 마. 나 지금 선물 준비해야 한단 말이야.”

“선물?”

“서장님이랑, 평소 연락하던 내담자분, 친한 지인···.”

“그래서 몇 명?”

“···서른 명 정도?”

“에바야.”

니가 자선사업가냐? 오디가 영 못마땅하다는 듯 다시 타냐의 등을 퍽, 쳤다. 타냐는 한숨을 푹 쉬고 그 발을 치우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챙겨줘도 그 이상을 받으니까 괜찮아.”

“뭐래, 네가 뭘 한다고.”

“TV도 안 봐?”

“어, 안 봐.”

결국 타냐는 오빠와 아웅다웅 말싸움을 시작했다.

“오빠 사회 부적응자야?”

“뭐랬냐.”

“아니, 평소에 다른 사람이랑 소통한다면 내가 뭘 하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너 그것도 연예인 병이다, 고쳐. 아니 진짜야!

“···”

타냐에게 귤을 주러 왔던 타냐의 아버지, 로디는 그런 남매의 모습을 쓱, 보고선 다시 돌아갔다. 오랜만에 재회한 남매의 시간을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정작 타냐와 오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싫다는 얘기밖에 못 해?”

“싫어.”

“아니, 말을 해줘 제발···.”

“싫어 싫어.”

“하···.”


“벌써 간다고?”

“싫어.”

“네, 촬영 일정이 있어서···.”

“무슨 휴일에 촬영을 한다는 건지, 쯧.”

설 다음 날, 타냐는 다시 공터 앞에 서 있었다. 바로 돌아가 봐야 방송 촬영일에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냐는 영 불만이 있어 보이는 아버지와 오빠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괜히 미안한 얼굴이었다.

슉-

“타냐 선배?”

“아, 나가 군.”

“얘가 네 후배라는···? 영 어려 보이는데.”

“네, 나가 군이에요. 나가 군, 이쪽은 제 아버지랑 오빠.”

“아, 안녕하세요···.”

나가는 그런 장면을 보며 도착했다. 그렇게 마주친 타냐의 가족에 대한 첫 감상은 ‘와, 하나도 안 닮았다.’였다. 부자가 똑같이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을 하고 있는 데다, 무심해 보이는 눈매는 타냐에게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거, 꽤 어색하네.

어찌 보면 선배의 부모님을 보는 자리 아닌가. 남들은 해보지 못했을 이런 귀한 경험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나가는 괜히 손을 꼼지락거리며 타냐 뒤에서 대기했다.

“이동 관련 특기자랬지? 타냐를 잘 부탁하네.”

“네···.”

“그럼 가 볼게요. 나가 군, 갈까요?”

그렇게 낯을 가리던 나가에겐 다행히도, 불편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위기를 눈치챈 타냐가 나가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나가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후련한 마음으로 타냐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괜히 가족의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한창 텔레포트를 하다가 갑자기 눈치를 보는 나가를 알아챈 타냐는 먼저 그를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요. 저도 부담스러웠는걸요. 아버지도 참···.”

“아···.”

“조금 유난이셔서요. 차라리 전용기를 타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는지.”

전용기? 나가는 타냐의 입에서 전용기라는 단어가 쉽게 나오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다. 타냐의 평소 모습도 그렇고, 타냐의 가족 역시도 전용기를 가질 정도로 풍족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겉모습만 보고 이렇게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어쨌든 나가가 보기엔 그랬다.

“전용기가 있으셨나요?”

“네? 제가요? 그럴 리가요. 다 지인들께 부탁하는 거죠. 그것도 한 번이면 됐지, 돌아가는 길까지 부탁하고 싶진 않아서···.”

“일반 비행기는 못 타세요?”

“음, 예전에는 사건 체질 때문에요. 지금은, 이렇게 말하면 좀 부끄럽지만, 제가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많이들 알아보네요.”

“아···.”

나가는 한 번에 이해했다. 요즘 TV에서는 타냐가 줄기차게 나오고 있었다. 뭐 연예계나 이런 곳에서 나오는 건 당연히 아니고, 교양이나 갱생 예능, 그리고 뉴스 인터뷰에서 종종 나오는 것이다. 타냐의 얘기를 몇 번씩 우려먹는 채널도 있었다. 게다가 요즘은 타 분야 예능 게스트로 모시기도 한다는데, TV를 잘 보지 않는 나가로선 잘 모르는 얘기다.

“근데 전용기가 있는 지인이 있으신가 봐요. 신기하다.”

“아, 어쩌다 보니 여유가 있으신 분들의 자제분들을 맡은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 자주 연락하고 있어요.”

망나니들의 갱생을 맡았다는 소리다. 타냐가 나오는 갱생 예능을 봤던 나가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식을 갱생시켜준 선생님께 답례를 하는 학부모···. 그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뭔가 신기하네요···. 그런 분들이 많으면 뭐가 좋나요?”

“지금처럼 나가 군에게 선물할 선물 세트를 받기도 하고, 이런저런 분들을 소개받기도 해요. 도움이 필요할 때 유용하죠?”

“오···.”

나가는 그제야 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잡담을 하다 보니 벌써 스푼의 사원 숙소가 코앞이었다. 타냐는 종이봉투와 스팸 선물 세트를 꺼내 나가에게 건네주며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나가 군.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런 걸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타냐 선배.”

그것을 받아 든 나가는 곧 다시 날아올랐다. 타냐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나가는 타냐가 나오는 오락 예능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반 공인이시구나···.


연휴가 끝나가는 밤의 바로 그 시각, 타냐는 택배 상자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게 다 머야···?”

“아, 사사 씨. 돌아오셨네요. ···하하, 명절 선물들이요.”

“그게··· 이러케··· 마니?”

“그러게요. 일부는 본가에 갔는데도 이러면···.”

각종 과일 등의 먹을 것은 본가로 갔다. 지금 도착해 있는 것은 드레스나 정장 등의 공적인 의상과 건강식품, 손 편지, 그리고 각자 특색에 맞는 선물용 상품들이었다. 첫 명절 선물이라며, 다들 힘을 실은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 보내지 않는 사람의 경우가 제일 불안한데. 무슨 문서를 줄지 몰라서.

“그런데 대체 남자 정장은 왜···?”

사사 씨, 혹시 필요해요? 아니.

타냐는 결국 울상을 지으며 그것을 도로 상자에 집어넣었다. 수선은 언제나 환영이라는 메모가 붙어있었지만, 이걸 쓸 일은 영원히 요원해 보였다. 그래도 시계 같은 건 유용하긴 하다. 이미 두어 번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누가 저써?”

“음, 전 내담자들이 주로 보냈고···. 가끔 그 가족분이시네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가족분들이 소개해주신 다른 분들도 조금 보내주셨어요.”

“진자 인맥 넙구나.”

“에이, 그 정도는···. 그냥 건너건너 연락하는 정도죠.”

사사는 그게 넓은 거 아닌가, 하는 듯한 눈길로 타냐를 바라봤지만 타냐는 진심이었다. 아직은 건너건너 아는 사이니···. 제대로 연락하고 지내려면 자신도 선물을 보내고 연락을 해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스푼 내에서도 특별히 무력한 히어로인, 평범한 일반인에 가까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감사하며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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