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패러디] 나쁜 주술사의 꿈 7

“나 안 일어나면 5시 전에만 깨워 줘요.”

점심 때가 되어 돌아온 희령은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평소 잘 들어가지 않는 방으로 곧장 직진했다. 뭐라도 먹고 자라며 잡아 세우는 토우지가 아니었다면 분명 그리했을 테다. 평소 같으면 한 번 만 봐달라며 그냥 들어갔을 텐데 어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 나 어쩔 수 없이 테이블에 앉아 남다른 사이즈의 유리잔에 담은 선식을 얌전히 건네받았다. 한 모금 까지 넘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 토우지는 달걀말이를 집다 말고 의아한 듯 물었다.

“일찍 왔다? 저녁 다 돼서 올 줄 알았더니.”

꿀꺽꿀꺽. 1리터짜리 한 컵을 금방 비운 희령은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으며 진절머리 난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 꼬맹이 말 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천재예요. 가만뒀어도 몇 년이면 알아서 터득했을걸요?”

켁. 토우지 또한 대놓고 싫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정도였냐. 이야기를 마친 희령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새벽까지 고생한 나오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한 낮임에도 빛 한 점 들지 않는 깜깜한 방. 희령은 이리저리 늘어진 책과 문서들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아가 그 안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침대에 풀썩 누워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정도가 지나 희령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불 켜진 방. 걱정스러운 표정의 나오야. 멍하니 그 얼굴을 보다 희령은 자신의 눈가가 촉촉한 상태임을 깨닫고 무슨 상황인지 바로 파악했다. 또 그랬구나. 희령은 부스스 몸을 일으켜 덜 깬 상태로 나오야를 안고 천천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 괜찮아, 나오야 걱정했구나.”

희령의 방에는 특이한 주술 하나가 걸려 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모두 차단하지만,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바깥에 더욱 크게 들리는. 전자는 희령이 방에 들어갈 때는 무언가에 집중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후자는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잠버릇 때문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희령은 때때로 자면서 울거나 누군가와 싸우는 듯 괴로운 비명을 지를 때가 있었다. 이는 희령 자신도 모르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새벽에 깨어난 메구미가 우연히 듣고 나서 집안 사람 모두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악몽 정도로 치부했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자 토우지는 천역모까지 사용해서 강제로 문을 뜯어내 희령을 깨웠다. (당시에는 바깥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옵션도 추가 되어 있었다)

수면 클리닉이나 정신과 같은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도 원인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집안 남자 일동은 희령이 이상행동을 보일 때 마다 바로바로 깨우는 방법으로 합의했다. 그렇게 한 번 깨어나 다시 잠들면 잠버릇이 다시 발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늘은 우는 쪽이었나보다.

뜬금없이 머리를 빗겨 주겠다며 빗을 찾으러 나가는 나오야를 희령은 말리지 않았다. 이 집안 남자들의 우울한 얼굴은 사람 심란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금방 나무 빗을 들고 나타난 나오야는 희령이 툭툭 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마트에서 파는 아무 샴푸나 쓰는데도 결이 좋은 희령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정리해 나갔다.

“토우지씨는?”

“메구미 데리러 갔다.”

어쩐지, 그래서 나오야가 왔구나. 토우지는 웬만해서 아이들에게 희령을 깨우는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본인이 가장 잘 듣는 탓도 있었지만 혹시나 먼저 발견해도 자신에게 알리고 집에 없을 때가 아니면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까지 줬다. 희령은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토우지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애들한테 보여주기는 영 안 좋은 꼴이겠구나 싶어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누나야.”

“왜?”

불러 놓고 말이 없던 나오야는 머리를 정리하던 손까지 멈추더니, 수줍은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그 고죠가 놈이 나보다 더 잘하더나.”

마지막에는 거의 기어들어 갈 정도로 작은 목소리에 희령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목적어가 없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깜찍한 질투에 희령은 낮에 한 소리를 지금까지 담아두고 있던 나오야가 귀여워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정리하다 말고 이 귀여운 녀석 하며 귓가에 몇 번이나 입을 맞춘 희령은 빨개진 얼굴의 나오야를 뒤로 하고  다시 머리를 맡겼다.

“네가 이겨.”

“진짜?”

“어.”

아직까지는. 솔직히 육안이 성장한 다음 승률은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나오야가 질 거다) 적어도 아직 우세한 쪽은 나오야였다. 고죠 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만만찮은 천재다. 가르치던 두 사람이 중간중간 헛웃음을 뱉을 정도였으니. 문득 어떤 생각이 난 희령은 머리 정리를 마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나오야를 돌아보며 물었다.

“궁금하면, 같이 가 볼래?”

고전으로. 따로 허가 같은 거 받지 않아도 고삼가 직계 정도면 출입 정도야 프리패스일테고, 슬슬 나오야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시기가 됐다. 사실 실습 전 대련 과정이 귀찮았던 마음이 가장 크기는 했지만, 다행히 이쪽도 싫은 눈치는 아니다.

“생각해 볼게.”

“좋은 대답이야.”

나오야의 정리 덕분에 한결 차분해진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녁에 미역국 할 건데 소고기가 좋아, 조개가 좋아? 조개. 좋았어. 나오야의 시원스러운 대답으로 오늘 저녁밥은 바지락 미역국과 제육볶음으로 결정 났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희령은 부엌으로 가 쌀을 씻었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

“오늘부터 젠인 나오야가 보조 교사로 함께 할 거다.”

연무장에 모인 인원은 어제와 같았다. 고죠, 게토, 쇼코. 세 명.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복 차림이었던 게토가 오늘은 편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는 점 정도. 그리고 언제나처럼 가장 반응이 좋은 사람은 고죠 사토루였다.

“갑자기 걔가 여기서 왜 튀어나와? 둘이 무슨 사인데?”

희령은 나오야의 어깨에 턱, 하고 손을 얹었다.

“내 동생.”

고죠는 희령에게 진지한 태도로 젠인가 사생아였냐고 물었다가 수업 전에 괜한 꿀밤만 얻어맞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독 오른 복어처럼 노려보는 기세는 무섭기는커녕 길고양이가 연상될 정도로 귀여운 정도였지만 단기간에 고죠 사토루라는 인간을 정확히 파악한 희령은 저대로 두면 높은 확률로 피곤해질 거라는 생각에 대답 대신 감싸고 있는 나오야의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나 갑작스럽게 또래 특급 술사 둘을 만나 기라도 죽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다. 타고난 천성 덕도 있지만 희령과 토우지 사이에서 지내며 그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깡을 지니게 된 나오야는 자신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죠에게 발끈하기는커녕 웃음을 흘리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니, 반전술식이 안 된다믄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 큰 소리로 나불거리는데 안 듣기면 귀에 문제 있는 기다.”

나오야의 말 그대로 어제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희령은 고죠의 전화를 받았다. 회선 넘어 고죠는 말 그대로 우렁차게 포효했다.

-희령!!!!! 나 반전술식이 안 돼!!!! 그때는 분명히 됐는데? 이거 일회용이야?!!!!!

가뜩이나 청력이 좋은 희령과 토우지는 인상을 찌푸렸고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메구미와 나오야조차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볼 정도로 고죠의 목청은 엄청났다. 토우지가 그 자식 목소리에 주력 담은 거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때 희령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끊으라며 단호하게 통화를 종료했다. 내용을 들은 나오야는 속으로 조용히 기뻐했다. 그래 아무리 천재라도 몇 시간 만에 완벽하게 익혔을 리가 없지. 그래서 오늘 아침 희령을 따라나섰다. 호승심 같은 하찮은 게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서.

“웃기지 않나? 내도 하는 걸 네가 왜 몬하는데?”

뭐? 고죠가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하자 희령은 칭찬의 의미로 나오야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렸다. 나오야가 한 말의 의미는 명확했다. 희령이 반전술식을 가르친 사람은 고죠가 처음이 아니었다.

“나오야는 내가 가르친 첫 번째 반전술식 사용자야.”

설마 희령이 무작정 고죠에게 그런 제안을 던졌을까.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제안한 거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일렀다. 희령은 정확히 유일하게 교복을 입고 벤치에 앉아 있는 쇼코를 지목하며 이어 말했다.

“반년 만에 타인을 치료하는 방법까지 터득한 천재다.”

고죠 너는 얼마나 걸릴까? 타인을 대상으로 한 반전술식은 반전술식 사용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다. 주력 자체는 평범한 쇼코가 특급 둘보다 더욱 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점도 거기에 있었다. 그런 쇼코와 동급의 반전술식이 가능한 고삼가의 주술사. 세 명의 동급생이 동시에 충격받은 얼굴을 보며 나오야는 가슴 깊이 차오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질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르다. 나오야는 이곳에 증명하러 왔다. 희령의 반전술식은 완벽하다는걸. 자신이 바로 그 증인이자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니 주로(:주력 회로)는 뚫렸다켔지? 그 담부턴 니 영역이다. 희령이한테 아무리 졸라 본들 니가 깨닫지 못하면 의미가 없단 말이다.”

고죠는 여전히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시선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나오야를 노려보긴 했지만, 마냥 싫다고 억지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여태껏 자신이 봐 온 바로 희령은 거짓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었다. 방금 한 말도 믿을 수 없다고 하면 텐겐 앞에서 선보였던 속박을 걸고 똑같이 말해줄 미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니 젠인가 녀석을 데려온 점에도 분명 이유가 있는 거겠지. 고죠는 세찬 손길로 머리를 흐트러뜨린 후 퉁명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 내가 뭐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오야는 주먹을 쥐고 자기 가슴을 쳤다.

“내랑 대련하자.”

제대로 정신 나간 소리였다.

나오야와 고죠가 나름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떨어진 곳에서 감상하던 희령은 쇼코는 저 멀리 두고 홀로 다가오는 게토를 시선으로 훑었다. 고전 교복이 아닌 평범한 운동복 바지에 티셔츠. 그 모습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갔지만 희령은 어른의 입장으로서 예의상 물었다.

“무슨 일이니?”

“아, 그 젠인…군한테도 선생님과 비슷한 능력이 있는 건가요?”

주력의 핵을 본다거나, 흐름을 읽는 다거나, 임의로 조종할 수 있는 그런. 희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게토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약간은 멍청해 보이는 태도로 물었다.

“그럼 왜 데려오신 거예요?”

“젊은 혈기끼리 쌈박질시키려고.”

네? 게토는 그제야 고죠가 한 말을 이해했다. 희령 그 사람이랑 얘기할 때는 말인지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냥 머리를 비워. 모든 말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란 말이야. 그때는 그런 말이 고죠의 입에서 나온다는 게 웃긴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상대해 보니 알겠다. 사토루랑 비슷한 과구나. 차이는 그쪽은 안하무인이라는 점과 이쪽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

오랜만에 대면하는 진짜 어른 앞에서 게토는 왜인지 모르게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치료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때 맞은 기억이 뼈에 새겨져 그런가, 하지만 그때 게토를 두들겨 팬 건 희령이 아닌 다른 쪽…. 게토는 딴 곳으로 흐르는 생각을 고개를 저어 떨쳐냈다. 이상한 기분이다. 어제부터 계속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진정되지 않는 느낌. 고죠는 웃는 얼굴을 몇 번인가 봤다고 했는데, 게토는 아니기 때문일까 여전히 날카롭게만 보이는 눈에 시선을 두자 희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 용건은?”

알고 있었구나. 일찍이 간파당했다는 걸 깨달은 게토는 웃는 얼굴로 조금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반전 술식을, 배우고 싶은데요.”

괜찮으시다면요.

반쯤은 질러본 말이지만 사실은 간절한 마음이 더 컸다. 게토도 주술사다. 당연히 반전술식이라는 강한 능력을 원했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을 접기는 했지만 바로 어제, 눈앞에서 기적을 봤다. 아무리 고죠가 천재라지만 처음부터 지켜본 게토는 알 수 있었다. 희령이 무언가 해냈다는 걸. 그리고 오늘 또 한 명의 희령이 키워낸 반전술식 사용자를 만났다. 심지어 그쪽은 쇼코와 같은 급의 최상위 능력자. 희령이라면 가능하다. 다른 말로 지금이 아니라면 게토는 평생 반전술식을 익힐 수 없을 거다. 사람은 간절한 만큼 초조해진다. 한껏 작아진 게토 앞에 이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희령이 보였다. 게토보다 살짝 작지만 비슷한 키. 같은 고동색의 눈동자가 시선을 맞추며 물어왔다.

“조건은?”

게토는 처음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가 아닌 조건?

"사토루 꼬맹이는 나한테 육안을 빌려줬어. 주령조종사 너는 뭘 줄 수 있지?”

아하. 희령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한 게토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내밀 수 있는 카드 중에 가장 좋은 패를 떠올리던 게토는 고민할 새도 없는 조커를 내밀었다.

“아드님이 있으시죠?”

정확히 제 아들은 아니었으나 희령은 굳이 정정하지 않은 채 게토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저번에 들어보니까 아직 어린 거 같던데, 혼자 두거나 멀리 보낼 때 걱정되지 않으세요?”

“계속해 봐.”

“저한테 호위로 붙일 수 있는 주령이 몇 있는데….”

요. 게토의 말은 희령의 발소리에 묻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발을 한 번 굴렀을 뿐인데 돌로 된 바닥에 금이 갔다. 무식한 힘에 숨을 삼킨 게토는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다시 한번 머리를 굴렸다. 보호자한테는 아이 얘기가 제일 잘 먹힐 줄 알았는데, 역효과였나?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었나? 어느 쪽이든 게토의 선택이 잘 못 됐다면 아마 오늘 멀쩡한 몸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기는 힘들 거다. 죽이지는 않겠지만 반쯤 죽을 정도를 각오한 그때.

희령은 처음 보는 화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새끼, 거래 좀 할 줄 아는 놈이었구나?”

@_HANK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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