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패러디] 나쁜 주술사의 꿈 6
“미리 말하지만, 나는 반전술식 같은 거 쓸 줄 모른다!”
*
고죠 사토루는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은 넓고 자신보다 미친놈은 있다.
희령은 본인을 비술사라 칭하지만 그 누구보다 주술사의 어울리는 재목이었다. 함께 온 두 사람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지금쯤 쇼코는 고죠 사토루의 주변에는 왜 다 저런 미친놈만 모이는 거냐며 속으로 경멸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고죠 사토루 본인 만큼 당황하지는 못했을 거다. 배우기로 했던 반전술식이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니다. 느리기야 하겠지만 언젠가 고죠는 반드시 반전술식을 터득한다. 자아도취가 아닌 확신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아니면 고전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사기꾼이었음을 당당히 선포하는 저 천여주박에게 화가 났기 때문에? 그 또한 아니다. 고죠는 이미 희령이 그보다 더 한 사기도 칠 수 있는 또라이임을 안다. 그렇다면 과연 고죠 사토루를 이토록 동요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고죠는 온몸에 주력을 실어 정면으로 내달렸다. 빛의 속도로 도달한 지점은 희령의 바로 앞. 그 자리에서 고죠 사토루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희령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구라로 속박을 걸어 이 미친 사람아!”
그래 이 모든 동요는 그 망할 놈의 속박 때문이었다. 고죠 사토루가 반전술식을 익히지 못할 경우, 희령은 죽는다. 사인은 예측할 수 없지만 심장마비로 죽든 사지가 터져 죽든 아무튼 무조건 죽는다. 그런데 대체 뭘 믿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었는지. 무하한을 돌리는 중도 아닌데 머리를 하도 굴리느라 뇌가 타버릴 거 같다. 그러다 불현듯 고죠의 머릿속에 고려하지 않았던 속박의 허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희령이 고죠에게 반전술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된다.
속박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희령에게 반전술식을 배우는 고죠를 대상으로 한 전제. 처음부터 그 전제 자체를 없는 걸로 만들어 버린다면? 역시, 자신은 천재다. 고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희령에게 방금 생각한 내용은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에 고죠는 마치 자신을 상대할 때의 야가처럼 목덜미를 잡고 쓰러져야 했다.
“그건 곤란하겠는데, 내가 너한테 술식을 쓴 순간부터 속박은 그걸 가르침으로 인식해 버렸거든.”
이거 봐. 그 말을 증명하듯 희령이 팔목을 걸어 보여 준 자리에는 선명한 붉은색으로 속(束)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글자를 육안으로 훑어낸 고죠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주력이었지만 분명 속박의 기운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흐름이 잠잠하지 않고 요동치고 있는 게 희령의 말마따나 이미 반쯤 진행된 정도로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고죠의 속박 또한 이런 식으로 진행됐을 거다. 이행 전에는 잠잠하다 내용이 시작되면 분출하는 형식으로. 다만 이쪽의 이행 내용이 너무나 간단했고 빨리 끝나버려 몰랐을 뿐. 어떡하지, 이제 정말 방법이 없다. 무슨 수를 쓰든 반전술식을 터득하지 못하면 희령은 죽는다. 희령의 가르침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꼼수를 부릴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속박을 걸 때 따로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는 점. 당장은 실패해도 언젠가 깨우치기만 한다면 된다. 이론만 알려줘도 가르치는 건 가르치는 거니까. 좋아, 나머지는 어떻게든 기합으로 해낸다. 고죠는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걱정 마, 희령. 내가 어떻게든 죽게 두지 않을게.”
이런 생각을 한 스스로가 뿌듯할 정도로 멋있는 말이었다. 분명 감동 받았겠지? 그러나 한껏 기대를 품고 올려다본 희령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구겨져 있었다.
“이 꼬맹이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이어지는 딱밤 한 방에 고죠의 몸이 잠깐 붕 떴다 가라앉았다. 연달아 찾아오는 두개골을 쪼개는 고통은 덤이었다. 천여주박에게 제대로 맞아본 적 없는 고죠 사토루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픔에 자기 머리가 제대로 달린 건 맞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번 목과 얼굴의 접합부를 매만졌다. 이 정도면 최소 멍, 아니 피멍 확정이다. 그쯤 되니 화가 났다. 딱 봐도 안 될 거 같은 사기를 친 사기꾼에게 돌을 던지진 않을망정 구해주겠다는 정의로운 말도 해줬건만 대체 뭐가 문제람! 얼얼한 이마를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게 무슨 짓이냐 항의하기 위해 아주 반항적인 태도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고죠 사토루는 태양을 녹인 듯 선명하게 빛을 내며 일렁이는 금안을 마주했다.
“구라 아니야. 너랑 같지는 않겠지만, 나한테도 보이거든.”
고죠의 육안과 희령의 금안이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마치 공명이라도 하듯 반응한 육안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쉴 새 없이 술식에 대한 정보를 읽어 내렸다. 그 속도를 버티지 못한 고죠는 결국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짚은 채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돼먹은 술식이야 그거.”
아직도 머리가 윙윙거린다. 고작 술식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더군다나 육안으로 분명 술식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리를 이해하지 못 한 경우도 처음이다. 개념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점들로 투성이다. 애초에 이게 술식이 맞기는 한가?
“남의 주력에 인위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니. 어떻게 가능한 건데?”
“오, 제대로 읽었네.”
지금 누구 놀리나. 제대로 읽기는 무슨 그 많은 정보 중에 그나마 건져 낸 게 이거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희령도 고죠를 놀린 건 아니었다. 정말 그거 하나면 충분했으니까. 사실 나머지는 희령도 잘 몰랐다. 그냥 본인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대충 뭉뚱그렸을 뿐.
“그럼, 지금부터 수업을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희령은 한 손으로 고죠를 들어 연무장 바닥을 향해 내던졌다. 그리고 고죠가 땅에 닿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다가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고죠는 습관적으로 무하한을 켰으나, 주먹이 코 앞에 다가온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맞다. 이 사람한테 무하한 안 통하지. 빠악, 하고 울리는 청명한 소리가 연무장 하늘 아래를 가득 채웠다.
*
이에이리 쇼코는 깨달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영화 보면서 그렇게 팝콘을 찾는 거였구나.
이 진기한 광경을 가만히 앉아 보고 있기만 하자니 좀이 쑤셨다. 이미 심심해 꺼내 물었던 담배는 이미 뺏겼다. 시원스레 고죠를 패는 와중에도 귀신같이 그 모습을 포착하고 순식간에 다가온 저 여자, 희령에 의해서.
“흡연은 안 좋은 거야, 미성년자한테는 더욱더.”
분명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얼굴에 틘 핏자국이나 눈앞에 서 있었을 때 묘한 위압감에 의해서 쇼코는 자기도 모르게 네에, 하고 대답하며 순순히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뱃갑과 라이터를 반납했다. 신기했다. 아무리 동급생이라지만 최강이라 불리는 저 두 녀석에게도 이런 박력을 느껴보지는 못했는데. 쇼코는 담배 대신 희령이 건네준 누룽지 맛이 나는 사탕을 입에서 굴리며 그 고죠 사토루가 일방적으로 처맞는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마찬가지로 옆을 지키는 게토 스구루도 똑같은 사탕을 우물거리며 알 수 없는 앓는 소리를 냈다.
“저 사람…. 술식만 강한 게 아니었구나.”
1대1로 붙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게토 한 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실시간으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처맞는 사람 신세가 된 고죠 사토루는 솔직히 말해 체술로만 겨룬다면 가능성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희령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식이 주술사에게 취약하다고는 하나 고죠는 주술만 믿고 깝치는 그런 멍청이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어제 함께 있던 토우지라는 사람이 너무나 심각하게 규격 외로 강했을 뿐. 그런 사람이 둘이나 있을 리 없다고 함부로 단정 지은 게 고죠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그도 그럴 게 단순히 감추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희령에게는 살상이 가능한 술식이 없다. 또한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힘이 강하다고는 하나 그 정도는 고죠도 주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아예 술식이 없는 토우지와 달리 희령은 술식을 지니고 있으니 그 점에서 어느 정도 능력 차이가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고죠는 희령이 창고형 주구에서 장난감 칼을 꺼낸 시점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고죠를 상대해야 하니 이름 모를 특급 주구라도 꺼낸 건가 해서 자세히 들여봤건만 의심할 여지 없는 백 프로 비술사 어린이를 대상으로 나온 평범한 장난감 칼이었다. 자신을 완전히 얕보고 있다는 도발에 완전히 말려들어 더욱 호기롭게 덤볐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포기! 포기할게!”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춘 희령이 주구 안으로 장난감 칼을 넣는 모습을 확인하고 고죠는 그 자리에 대자로 누웠다. 거짓말이지, 세상에 고릴라가 둘이라니. 한 명은 진짜 고릴라처럼 생기기라도 했지 이건 완전 반칙 아니냐고. 이럴 거면 주술이 왜 필요한 건데 무하한이고 육안이고 다 필요 없어, 천여주박이 짱이야. 고삼가 주술사들이 듣는다면 뒷 목 잡고 쓰러질 소리를 아무렇게나 해대며 땅바닥에 굴러 툴툴거리는 고죠에게 제 것이 아닌 피가 조금 튀었을 뿐 처음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희령은 일어서려는 고죠를 제지하며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사전 준비는 충분히 했으니까 이어서는 이론 수업이다.”
사전 준비? 이게 사전 준비라고? 묻고 싶은 건 많았으나 지금부터 완벽한 학생의 입장이 된 고죠는 툴툴거리면서도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희령과 마주 앉았다. 이론 수업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아빠 다리를 하며 편하게 자리를 잡은 희령은 말 그대로 반전 술식에 이론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조사해 본 바로 반전술식은 체내에 있는 주력 에너지를 둘로 쪼개서 더한 다음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야. 거기서 발생하는 정(正)의 주력을 활용하는 게 반전술식의 기본이고 맞지?”
고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고죠도 아는 내용이다. 너무 잘 알고 있는 데에 비해 실행이 안 돼서 그렇지. 그러나 이어지는 희령의 말은 기존 상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쪼개는 과정을 뺄 거다.”
“안 쪼개면 어떻게 더할 건데?”
“역류하게 할 거야. 주력이 흐르는 방향 자체를 반대로 바꿔 버리는 거지.”
희령이 말한 방식은 그 어떤 반전술식 관련 문서에도 적혀 있지 않던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다. 애초에 주력을 반대로 한다는 게 무슨 의미지? 희령이 말한 내용대로라면 마치 몸 안에 주력이 탄생하는 다른 기관이라도 있는 거 마냥…. 실마리를 잡은 고죠가 번쩍 머리를 치켜들자 희령은 손가락으로 고죠의 명치를 지그시 눌렀다.
“모든 주술사에게는 주력이 생성되는 핵이 있어.”
참고로 핵이라는 건 자신이 임의로 지은 이름이지 정식 명칭은 아니라며,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주술사들이 말하는 주력이라는 건 그 핵에서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순환해. 그래서 비술사들에게도 핵은 존재해. 주력이 몸을 순환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거지. 가끔 주술사는 아니지만 보이지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잖아? 그 이유도 비슷해 주력이 몸에 퍼지긴 하지만 순환하지 못하고 빠져나가 버리니까 그런 거야. 이건 수업과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나는 이 이유에 뇌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어.”
전부 켄자쿠 때문에 시작한 생각이었다. 뇌? 흥미로운 주제에 고죠는 눈을 반짝였으나 미리 말한 대로 이건 반전술식과는 전혀 상관도 없으며 반쯤은 충동적으로 던진 말이었기 때문에 희령은 고죠의 반응을 무시함으로써 귀찮음의 싹을 잘라버리고 다시 제대로 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 핵이야. 핵은 주력을 발생시키는 만큼 그 자체로 부정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 그럼, 그 핵에 주력을 다시 흘려 넣을 수만 있다면?”
“부정의 부정이 더해져 정의 에너지가 되겠지.”
완벽했다. 완벽한 반전술식이었다. 이게 가능만 하다면 기존의 반전술식보다 훨씬 높은 효율성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주력을 쪼개는 행위 또한 주력 사용의 일환이었으니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면 에너지를 그만큼 더 축적할 수 있는 셈이었으니까. 게다가 근본적인 에너지 자체를 정으로 변환시키는 방식이니 쓸데없는 누출 또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 핵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데?”
고죠는 핵의 위치를 몰랐다. 애초에 개념 자체도 오늘 처음 알게 된 걸 무슨 수로 떡하니 찾아낸다는 말인가. 그렇게 주력을 펑펑 써대며 살았는데 여태까지 핵의 존재는 눈치도 못 챘다. 묘한 사짜 냄새에 눈을 흘기자 무슨 생각 하는지 뻔히 알겠다는 듯 코웃음을 친 희령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말했잖아, 보인다니까.”
백 번 말 하는 거보다 한 번 몸으로 경험해 보는 게 낫다며 희령은 다짜고짜 고죠의 손을 잡았다.
“눈 감아.”
시키는 대로 눈을 감자 고죠가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고죠의 주력이 스스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고죠가 육안으로 읽어낸 희령의 술식이었다. 미리 알고 있어 놀라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 더 느낌이 이상하다. 불쾌한 건 아닌데 어딘가 간지러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느낌. 집중해. 귀신 같은 관찰력에 고죠는 바로 딴생각을 그만두었다.
“주술사의 핵은 사람마다 위치가 다 달라. 육안은 술식을 읽어낼 수 있지 주력에 대한 이해도도 높을 거야. 하지만 주력, 그 자체를 읽어내지는 못해. 술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너는 상대방의 주력이 어느 정도 인지 자연적으로는 얼마나 회복될 수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지라도 그 주력이 어떤 식으로 몸에서 빠져나가는지, 어떤 식으로 머무르고 움직이는지는 알지 못할 거야. 반대로 내 눈에는 오직 그것만 보여. 술식 같은 건 어떤지 전혀 모르겠지만.”
고죠는 보지 못했지만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희령의 눈은 완연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에 선명히 보이는 고죠의 핵을 향해서 희령은 어린 신체가 놀라지 않도록 조금씩 몸 안에 흐르고 있던 고죠의 주력을 스며들게 했다. 그렇게 천천히 고죠의 핵을 역류하는 주력에 완전히 익숙해지게 만든 다음에는 조금 더 강하고 빠르게 주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고죠의 핵이 처음 순환되던 방향과 반대로 정의 에너지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 양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희령은 이론에서 몇 번이나 읽은 술식을 발동했다.
“거짓말….”
고죠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다시 눈을 떴을 때 몸 위에 존재하던 모든 상처는 사라진 상태였다. 희령의 술식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주력으로 시행한 완벽한 반전술식이었다. 고동색으로 돌아온 희령의 눈동자는 혼란으로 가득한 어린 육안을 바라보며 호선을 그렸다.
“구라 아니라니까.”
이후 두 사람은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대련하고, 역순환 시키고, 대련하고, 역순환 시키기의 반복. 몇 번의 과정을 거치자 고죠는 이제 본인 핵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했다. 핵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도 어느 정도는 감이 잡혔다. 그때부터는 홀로 역순환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희령은 좋은 자세라고 칭찬하더니 성공하면 깨우라는 말과 함께 연무장 안에 있는 벤치로 걸어가더니 팔을 베고 정말 본격적으로 자기 시작했다. 고죠는 어이가 없는 한 편 차라리 이편이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천천히 본인의 주력을 역으로 제어하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희령이 움직이던 주력의 감각을 복기하자. 부드럽게, 혹여나 놀란 핵이 폭주하지 않도록 천천히.
*
“-령! 희령!”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억지로 흔들어 깨우는 감각에 희령은 자연스럽게 메구미 아니면 나오야라고 생각하며 대충 머리카락이 있을 지점을 손으로 어림잡으며 나중에 놀아주겠다고 웅얼거리며 살살 달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알겠다고 돌아갔을 텐데 오늘은 유독 끈덕지다. 그리고 머리카락의 느낌이…. 나오야의 머리카락은 이렇게 푹신한 느낌이 아니고 메구미치고는 모발이 굵다. 이거 우리 애들 머리카락이 아닌데?
희령은 본능적으로 낯선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졸린 눈을 억지로 떴다.
“아파! 아파악!”
거기에는 두 손으로 희령의 손을 떼어놓으려 아등바등하는 고죠 사토루가 있었다. 다행히 얼굴을 보자마자 놔 주긴 했지만 깨우래서 깨웠더니 졸지에 머리채를 잡힌 고죠는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바닥에는 이미 머리카락 몇 가닥이 떨어져 있다. 이거 땜빵 생기는 거 아니야? 머리카락도 반전술식으로 복구할 수 있나? 희령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만약 진짜 생겼으면 고쳐 달라고 해야지. 고죠가 홀로 우스운 상상을 하고 있을 때 희령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얼굴로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성공하면 깨우라니까 왜 벌써 깨웠어?”
그 말에 고죠는 하, 크게 코웃음 쳤다. 보란 듯이 당당한 저 태도. 고죠는 갑자기 희령 앞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이리저리 돌리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얼굴 자랑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희령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고죠의 얼굴을 관찰했다. 어려서 그런지 뽀송뽀송한 피부와 묘하게 더 빛이 나는 듯한 푸른 육안. 어딜 봐도 평소처럼 멀끔한 고죠 사토루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잘난 얼굴은 점점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또 왜 기분이 안 좋아진 건지 잠시 고민하던 희령은 뒤늦게 고죠가 전달하고자 한 바를 이해했다.
“상처가 없네?”
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봐도, 손목이나 셔츠를 걷어 올려봐도 붉은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브이까지 그려가며 씩 웃어 보이는 고죠의 머리카락을 희령은 마구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칭찬의 의미였다. 인정한다 이 녀석은 천재가 맞다.
고죠 사토루가 처음으로 반전술식에 성공했다.
몇 주도, 며칠도 아닌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_HANK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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