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이젤] 너 같은 사람은

보물상자 by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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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말이 통하지를 않는군."

"누가 할 소리를."

두 사람은 서로를 매서운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빛의 전사. 나는 저런 여자와는 일분일초도 같이 못 있겠으니 되도록 마주칠 일 없도록 해 주길 바란다."

"마찬가지다. 저런 사내와 일초라도 더 같이 있다가는 영봉의 산기슭에 가기도 전에 눈밭에서 익사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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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지."

은발의 청년이 다부진 팔로 제 머리를 벅벅 헤집었다.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귀가 그의 심정을 열렬히 대변 중이었다. 그 모습에 푸른 은발 미인의 입꼬리가 자연스러운 호선을 그었다.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으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내용과는 달리 부드럽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질문을 던졌고 단단한 목소리가 빠르게 받아쳤다. 누가 들어도 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만이라는 듯, 그는 한걸음에 그녀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그러안았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그녀가 당황한 듯 몸을 앞으로 세우려 했으나 단단한 팔은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농담이었는데."

"농담이라도 싫다."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리는 목소리. 여자는 읽던 책을 한 손으로 잡고 몸에서 힘을 뺐다.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구보다 서로에게 익숙한 편안함과 다정한 손길이었다.

"네가 잘 못 한 거야. 이젤."

"억지를 부리는구나."

"좀 그러면 어떻다고. 그러니 감히 청하건대 그런 먹물 묻은 종이에서 그만 눈 떼고 이쪽을 봐줬으면 합니다만. 친애하는 나의 얼음 여왕 폐하."

소녀 같은 웃음이 터졌다. 입을 가리고 까르르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의 입에도 슬 웃음이 걸렸다.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마침내 그에게로 고개가 돌아갔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자연스럽게 볼에 입 맞추고 여상히 말했다.

"계속 여기에 있을 건가?"

"내가 이 자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줄 알았는데. 에스티니앙."

"나보다?"

"그 푸른 용기사가 이렇게 애정에 굶주렸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게다."

"그야 나의 여왕께서 하사하는 애정이니 그렇지. 그 누가 들어도 귀하다고 할 걸."

다시 한 번 그가 그녀의 눈꺼풀에 입 맞추자 이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책을 덮고 일어났다. 그녀의 손 아래 크고 거친 그의 손이 있었다. 단단하고 우직한 그의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그가 이끄는 대로 나긋한 발걸음이 가볍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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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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