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7
2차 드림
“N 씨.”
간드러지지만, 나직하게 자신을 부르는 고용주의 목소리에 N은 다시 현실에 집중했다. 고개를 돌아보니, ‘고용주‘ M은 자신을 보며 꽤 수상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사실, 조용하지만 어째서인지 ‘후후’라는 효과음이 붙을 것 같은 미소를 입에 걸고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M은 평소와 같았다. 그의 단정한 옷매무새는 옷 관리에 식견이 없는 N이 봐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고 짐작될 정도였다. 머리는 항상 대충 넘겨 왁스를 바르는 것 같았지만, 남의 변화에 눈치가 빠른 N은 매일매일 그 각도가 같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안경이 투명할 정도로 깨끗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M은 완벽하도록 기숙사장다운 남자였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지금,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N에게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N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성찰했다. 아까까지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느라 손이 멈춘 것 때문일까? N은 다시 손에 든 대걸레로 식당의 바닥을 반질반질하게 만들려 노력했다. 열심히도 움직이는 N에게 돌아온 것은, M의 웃음이었다.
“책망하려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네?”
“저는 단지…, N 씨가 어떤 생각에 잠겼는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나의 생각? 상대가 궁금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일순간 N은 당황했다. 시간을 대충 보내기 위한 잡다한 생각이라, M과의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내용이 생각 안 날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정말 M이 궁금해할까? 저도 모르게 N은 눈이 가늘어졌다. 여전히 상대는 꽤나 비릿해 보이지만, 본인 입장에선 최대한 상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왜…, 궁금하신 거죠?”
“제 취미잖습니까. 타인의 비밀 및 약점 수집. 저도 N 씨에게 제 약점을 쥐여줬는데, 아무래도 주고받는 게 있어야지요.”
“네?”
“후후, 농담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이 궁금하단 건 진짜였답니다.”
“별 생각 안 했어요. 시답잖은 내용이라…, 들으셔도 분명 실망하실걸요.”
“흠…, 그렇습니까. 사실, ‘고향’에 대해 생각하시나 했습니다.”
고향이라. 괜히 숨길 사실도 아닌데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실, 그러고보니 M은 N이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임을 알고 있을텐데도 말이다.
M의 말 덕분에 비로소 오랜만에 ‘고향’에 대해 떠올리게 된 N은 잠깐 미간을 좁혔다. 어느덧 기억 속 풍경이 점점 흐릿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흔치 않게 눈에 ‘호기심’이란 빛을 띄고 있는 M에게 무언가를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재미없는 곳이에요. 거긴 마법도 없으니까….”
“마법이 없다고 재미없는 건 아닙니다. N 씨도 그렇고요.”
“그…, 그런가요. 아무튼 그저 그런 곳이에요.”
근데 방금, M이 나에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돌려 말한 건가?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대화의 턴은 M에게 넘어간 상황이었고, N은 감히 M의 발언권을 뺏어올 대범함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M은 좋은 품질의 가죽 장갑을 낀 두 손을 마주 대고 비볐다. 사업 얘기를 할 때 종종 취하곤 하는 행동이었다. 그 빈도가 매우 낮았지만, 어쨌든 타인을 세심하게 눈여겨보는 N이었기에 아는 사실이었다.
“N 씨 고향의 유행을 참고한 물건을 팔면 그것도 꽤 비즈니스적으로 먹힐지, 혹시 모르죠.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그런가요. 근데 제가 유행에 민감한 편도 아니라….”
“그럴 것 같긴 했습니다.”
확실히 패션도 무난하고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그야말로 흐릿한 인간인 자신이 M에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뭔가 움츠러드는 느낌에 N은 시선을 피했다. M이 ‘전 그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제법 따뜻한 말을 했다. 아까부터 얘 왜 이러지. N은 생각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법 낯설긴 했다.
“뭐, 비즈니스도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N 씨가 포인트를 다 모으면 고향에 대해 상담할지도 궁금했습니다.”
“음, 저는 포인트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일손을 돕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랬나요? 항상 대가를 바라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성인군자의 마음이군요. 뭐, 혹시 압니까?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법을 걸어줄지.”
“그런 게 가능하세요?”
“아뇨. 못합니다.”
찌릿, 처음으로 N이 M에게 불만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M은 오히려 햇빛을 받은 식물처럼 그 시선이 즐거운 듯했다. 아까까지의 웃음은 꽤 가식이 섞여 있어 보였다면, 이번에 M의 입꼬리에 걸린 웃음은 정말 순수하게 재밌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못하는 건 맞지만…, 만약 할 줄 알았어도 안 해 줬을 겁니다.”
“…왜요?”
“N 씨에게 이제 흥미가 생겼는데, 이렇게 순순히 보내진 않을 거라서요.”
그렇게 말한 뒤,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M은 우아하게 빙글, 하고 돌았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확히 반 바퀴였다. 다시 영업 전인 식당의 홀에 N을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M의 발걸음이 왜인지 모르게 경쾌했다.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고용주를, N은 빤히 쳐다보았다. 단순히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진심인지 헷갈렸다. 말투는 꽤 가벼웠지만, 그 뒤에 실린 상대방의 진심까지 무거운지 가늠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깐 M의 말에 사로잡혀, 이번엔 사소하지 않은 생각을 하던 N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손에 든 대걸레가 다시 움직였다. 그새 바닥에 쌓인 먼지가 대걸레에 휘말려 사라지며, 아까의 대화도 곧 N의 머리에서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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