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사랑에 빠진 뇌

쟈밀 바이퍼 드림


* 24년도 쟈밀 생일 기념 연성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건 어째서 그리도 즐거운 것인가. 놀라는 걸 좋아하는 이는 극히 드문데 놀라게 하려는 이는 이리도 많은 걸 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악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쟈밀은 오늘 하루 받은 축하를 곱씹어보며 한숨 쉬었다.

 

 ‘챙겨주는 건 고맙지만, 정신이 없군.’

 

 몰래 숨어있다가 튀어나와서 폭죽을 터뜨리질 않나, 깜짝 퍼레이드를 준비하질 않나. 제가 눈치가 빨라 먼저 눈치채기도 했고 심장도 약하지 않은 덕에 웃고 넘어갈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어쩔려고 그런 건지 모르겠다.

이왕이면 좀 얌전히 축하해 주면 좋으련만. 기쁨과 감동을 증폭시키기 위해 놀라게 하려는 건 알겠다만, 종일 놀라고 나니 오히려 피곤하기만 하다.

 

 “응?”

 

 동아리 활동을 끝낸 후. 부원들에게 받은 선물을 들고 기숙사로 향하던 쟈밀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

갈림길의 한쪽 구석. 무슨 일인지 방에서 나와 있는 이데아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는 학교 유일의 비마법사인 감독생이었다.

 

 “솔직히 졸자가 보기에는 이쪽이 더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만.”

“그래요? 하지만 막상 경기해보기 전까진 모르지 않아요? 작년에도 반전인 결과가 나왔잖아요. 전 이 팀의 가능성을 믿어요.”

“……아이렌 씨, 작년에 직접 경기를 본 것도 아닐 텐데 그런 말을 하는군요.”

“어라, 저희 세계에서도 리그가 있었다고요. 예측 밖 상황이라면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인걸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취미생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갈 길이 바쁘지 않은 그는 두 사람을 지나쳐가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평소엔 보기 힘든 조합인 만큼, 두 사람의 분위기를 좀 더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데아 선배랑도 저렇게 사이좋게 대화하는구나.’

 

 뭐, 좋아하는 주제가 겹치니 당연히 즐겁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이가 좋았나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괜히 기분이 묘해진 그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럼, 경기 날 보도록 하지요. 아이렌 씨. 혹시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가져와도 좋소이다.”

“음. 그러면 다 같이 나눠 먹게 과자라도 잔뜩 사갈까요?”

“누후훗. 좋은 마음가짐이지만, 모이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금전적으로 힘들 것 같은데.”

“괜찮아요. 대용량 과자는 싸니까. 그리고 저 말고 다들 뭔가 가져오니까 모자라진 않겠죠.”

 

 대체 어디서 몇 명이 모이는 걸까.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당사자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약속에 쟈밀의 미간이 점점 구겨진다. 애꿎은 선물만 만지작거리는 그는 불합리한 불평을 하며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다들 요란하게 제 생일을 축하해 주던 오늘. 아이렌은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점심시간 때 식당에서 잠깐 마주치긴 했지만, 간단한 축하 인사만 한 후에 반 친구들과 함께 가버렸지.

선물을 전해주지 않아서 서운한 건 아니다. 어차피 제 사람을 잘 챙기는 아이렌이라면 나중에라도 뭔가 전해주겠지.

그렇다면 왜 자신은, 지금 이렇게나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진 않았는데, 다른 이들과 웃고 떠들고 있는 게 기분이 나쁜 걸까?

 

“어, 선배!”

 

쟈밀이 제 불쾌함의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대화를 끝내고 자리를 뜨려던 아이렌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반사적으로 상대를 바라본 쟈밀은 눈동자만 굴려 아이렌의 뒤를 확인했다. 볼일이 끝나자마자 뛰어가기라도 한 걸까. 이데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생일 축하해요. 여기서 만나서 다행이네요.”

 

제 속을 알 리 없는 아이렌은 들뜬 눈으로 생긋 웃어 보인다.

악의도 짓궂음도 없는 순수한 반가움에 할 말을 잃은 그는 대꾸해야 하는 것도 잊고 상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쟈밀 선배?”

“응? 아, 어어. 그래. 고마워.”

 

 아이렌이 한 번 더 자신을 부르자 겨우 정신이 든 그는 어색하게 대꾸한다.

누가 보아도 평소와 다른 반응에 이상하다는 듯 눈을 느리게 깜빡인 아이렌은 슬쩍 그가 들고 있는 선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시끌벅적하더라고요. 다들 선배를 축하해 주느라 분주했잖아요?”

“그랬던가?”

“예. 에이스랑 플로이드 선배가 깜짝 놀라게 했다면서요? 농구부 애들한테 들었어요. 게다가 메인 스트리트에서도 기숙사생들이…….”

 

 오늘 자신을 따로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표정을 펴지 못하고 있던 쟈밀은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다 보고 있었어?”

“예?”

“잘 알고 있길래.”

 

 딱히 따져 물으려는 건 아니다. 아이렌은 늘 제게 관심이 있었고, 자신 또한 그걸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자신은 궁금할 뿐이다. 그리도 관심이 많으면서, 평소에는 마주치면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더 걸고 가면서, 오늘은 왜 그렇게 담백하게 거리를 유지한 건지 말이다.

 

 “그, 제가 괜한 소릴 했나요?”

 

평소보다 딱딱한 표정과 짧은 대답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던 걸까. 어느새 미소를 잃은 아이렌이 슬쩍 고개를 숙인다. 누가 보아도 기가 죽은 모습에 아차 싶어진 쟈밀은 고개를 저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가 얄미운 것과 별개로, 상대를 다그칠 생각은 없는 그였다.

 

 “아니.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거야……, 선배 생일 선물 주려고 부른 거죠.”

 

언제든 선물을 줄 수 있게 미리 챙겨둔 건지 아이렌은 들고 다니던 작은 가방에 손을 넣고 내부를 뒤적거린다. 이것저것 많이 든 내부에서 힘겹게 물건을 찾아낸 그는 손을 꺼내려다가, 여전히 무언가 어색한 분위기가 신경 쓰이는지 팔을 멈추었다.

 

“그, 혹시 손이 모자라면 제가 나중에 찾아갈게요.”

 

저건 정말 제 손이 무거울까 봐 묻는 게 아니라, 지금 대화할 기분이 아니면 나중에 만나자는 뜻으로 말한 거겠지. 예리한 쟈밀은 아이렌의 의도를 눈치챘지만, 그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냐, 들 수 있어. 줘.”

“다행이네요, 그럼…….”

“애초에, 왜 그렇게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는데.”

“예?”

 

 아. 이렇게까지 말할 건 없었는데.

자신답지 않게 기분에 따라 툭툭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말에 자신이 더 놀란 쟈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기분이나 생각을 감추는 것도,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몸에 완전히 익은 자신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닌, 아이렌에게 말이다.

 

 “아냐, 그냥 편하게 전해줘도 된다는 뜻이야.”

 

제가 생각해도 형편없는 변명을 한 쟈밀은 억지로 미소 지어 보이며 빈손을 내민다.

그의 수습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물을 꺼내지 못한 아이렌은 고민 끝에 쟈밀의 손에 제 손을 살며시 겹쳤다.

 

 “저, 너무 재미없게 축하해 줬나요?”

 

참으로 대답하기 묘한 물음이다. 제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쩐지 심심한 축하 때문이긴 하지만, 그건 ‘재미’랑은 관계없는 문제였으니까.

쟈밀은 어렴풋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낸 상대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자꾸만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꾸역꾸역 삼킨 그는 아이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는 중요하지 않아. 여기저기서 놀라게 하려고 해서 좀 피곤하기도 했고.”

“그런가요, 하하…….”

“하지만.”

 

 애매하게 신경 쓰이게 구는 짓을 하고 싶진 않다. 좋아하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못난 짓이니까. 상대도 삐딱하게 굴고 있다면 모를까, 아이렌은 지금 제 눈치를 잔뜩 보고 있지 않나.

복잡한 제 심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잠깐 말을 멈추었던 그는, 결국 세련되게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는 대신 날것의 감상을 내뱉었다.

 

“너라면 좀 유난을 떨어 줬으면 하고 바란 거 같기도 해.”

 

그래. 제가 이리도 서운한 건 가장 소란을 피워주었으면 하는 이가 조용해서였을 거다. 아무리 다른 이들이 요란법석을 떨어도 채워지지 않는. 평소에도 제 앞에서는 유독 조잘거리는 이의 축하.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채 소란만 계속되었으니 신경이 사나워진 거겠지.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 아이렌이 엉뚱한 이와 사이좋게 대화하는 걸 봤으니 반응이 날카로워진 거 아니겠나.

웃기기도 하지. 차분히 정리해보니 참으로 유치하지 않나. 심지어 이데아는 여자친구도 따로 있는 걸로 아는데, 뭘 질투하고 난리인지.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온 쟈밀은 비어있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어쨌든, 네가 잘못한 건 없어. 축하해 줘서 고마워.”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되돌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고 싶지만, 제겐 그런 마법을 부릴 힘 같은 건 없다. 결국 최대한 좋게 말하는 걸로 상황을 수습한 쟈밀은 민망함에 슬쩍 시선을 피했지만, 아이렌은 그가 도망치도록 두지 않았다.

 

 “윽!”

 

 그의 눈동자가 허공을 향한 순간. 아이렌이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냅다 그에게 달려들 듯 안긴다.

품에 쏙 들어오는 온기에 당황한 쟈밀은 자연스럽게 다시 상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아이렌?”

“생일 축하해요, 선배. 생일 축하곡이라도 불러드릴까요?”

“뭐? 됐어. 아니, 네 노래가 싫은 건 아니고. 여긴 밖인데…….”

“그럼 뽀뽀해 줄까요? 아니, 생일이니까 뽀뽀보다는…….”

“그만, 그만!”

 

 하여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될 걸 굳이 기대에 부응하려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쟈밀은 당장이라도 제게 입 맞출 것 같은 아이렌의 볼을 가볍게 잡아 고개를 고정했다. ‘쿡쿡’ 격렬한 반응에 소리 죽여 웃은 아이렌은 그의 손에서 살짝 빠져나왔다.

 

 “미안해요. 저는 항상 제가 귀찮게 구니까, 오늘이라도 차분하게 축하해 줄까 한 건데.”

 

그러니까, 자기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요란 떨지 않은 거란 뜻인가.

애초에 악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쟈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게 굴기는. 넌 진짜 귀찮게 구는 게 뭔지 몰라.”

“그런가요?”

“그래. 애초에 싫었으면 말했겠지. 그렇게 다 받아줄 리가.”

 

소란스럽게 구는 건 카림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아이렌은 카림에 비하면 수도승 수준으로 조용한데. 뭘 저리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도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소란스러워졌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원래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 아니던가.

쟈밀은 이 모든 걸 그저 해프닝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품 안의 몸을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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