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끔따끔
루크 헌트 드림
“아이렌 군, 그 상처는?”
“예?”
“거기. 손등의 상처 말이야.”
루크의 말에 제 양쪽 손등을 살펴본 아이렌은 작게 탄식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오른쪽 손등에 작은 생채기가 생겨있었다.
새빨간 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린 아이렌은 분명 가볍게 손을 쥐었다 펴보았다. 다행스럽게 피는 나지 않았지만, 상처를 의식하니 어쩐지 따끔따끔해서 곤란했다.
“이런 게 언제 생겼지.”
“이런.”
부주의한 후배의 대답에 작게 웃어버린 루크는 슬며시 상처 난 손을 잡았다. 그의 손길은 신사처럼 부드러웠지만, 야무지게 손을 감싼 손가락은 맹수의 발톱처럼 예리했다.
“내게 반창고가 있단다. 가만히 있으렴.”
비어있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반창고를 꺼내는 루크의 손짓이 익숙했다. ‘아마도 평소 활동적인 루크 선배니까, 자잘하게 상처가 날 일이 많아 의약품도 들고 다니는 걸까.’ 차분하고도 빠른 루크의 동작에 그런 추측을 한 아이렌은 아무 무늬도 없는 평범한 반창고가 제 손등에 붙는 걸 바라보았다.
“치료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가만히 두면 덧날 수도 있으니까.”
“선배는 걱정이 너무 많으시다니 까요.”
“내가 걱정이 많다기 보단, 아이렌 군이 너무 무심한 게 아닐까?”
자신이?
습관적으로 마음속으로 반문한 아이렌은 쉽게 대꾸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흔히 메타인지라고 하던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끝없이 돌아보는 게 일이자 취미인 아이렌은 루크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루크가 제게 의미 없는 말을 하거나 신경을 긁기 위한 거짓말을 할 리 없다. 그가 제게 감정적으로 얼마나 진실한지를 잘 알고 있는 아이렌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다가, 이리 결론내렸다.
“이정도 상처로 호들갑 떨 나이는 아녜요. 아팠다면 진작 눈치채고 양호실로 갔을걸요?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거라 인지하지도 못했고, 대응하지도 않은 거죠. 저는 저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고요.”
“그러니?”
“그럼요. 왜, 연예인들도 이상한 사람들에게서 온 DM은 답장하지 않고, 어디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리지도 않잖아요?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요. 이 상처도 마찬가지예요. 아무것도 아니니 눈치도 못 챈 거죠.”
그렇게 말하는 아이렌은 피부에 밀착한 반창고 위에 제 손가락을 살짝 얹었다.
루크는 그 손가락에 제 손을 겹치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치료를 위해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사실 그도 알고 있다. 아이렌은 은근히 대범한 구석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저 자신에게 무심하진 않다는 걸. 누군가가 제 것을 빼앗으려 들면 단호하게 칼을 뽑을 줄도 알고, 무리하다가 일을 그르칠 것 같아지면 과감하게 쉬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심신을 관리할 줄 아는 어른이었지.
하지만 그런데도 저런 말이 튀어나온 건, 아마 제가 유난스럽게 이 아가씨를 아끼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아이렌이 제가 상대를 아끼는 만큼 자신을 아꼈다면, 이런 상처를 남이 말해주기 전까지 발견도 못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아아. 유난스러운 아이렌도 귀여울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루크는 제가 웃고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아이렌을 마주보다가, 상대의 물음에 정신이 들었다.
“왜 웃으세요?”
“응? 아니. 아이렌 군은 비유법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선배도 좋아하잖아요, 비유법.”
“그렇지. 그래서 네가 좋은 거란다.”
“……아.”
큰 수확을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쏜 위협 사격이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명중한 걸까.
루크는 부끄러움을 참기 위해 입을 우물거리는 아이렌을 보고,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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