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기호지세(騎虎之勢) 외전 : 2

슬리퍼에 대한 고찰

Adore U by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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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시작했다.

선생님과 제자, 집행인과 사형수, 최강 주술사와 스쿠나의 그릇. 예사롭지 않은 관계성에 박차를 가하듯 하나를 더하게 되었다. 연인, 연인. 같은 음절을 계속 반복하며 입안에서 도록 굴린다.

그런 사이가 된 거구나. 선생님이랑 내가.

현관을 들어서면 바닥에 다닥 놓인 슬리퍼 두 켤레, 손을 씻으러 향한 욕실 세면대에 자리한 알록한 칫솔 두 개. 기숙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 동거라 하기엔 어렵고, 손님이라 하기엔 입주민에 가까운 반 동거와 다름없는 생활이 연애와 함께 시작되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할아버지가 입원한 후로 줄곧 혼자 살아왔던 탓에 약간은 어색하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즈음.

“무슨 생각해, 유우지?”

“음- 슬리퍼의 사용감이 좋다는 생각.”

고요한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손만 잡고 있기를 한참, 빤히 발을 들여다보는 자신이 의아했는지 물음이 톡 날아 들어왔다. 그에 가벼이 대꾸해주자 물음표를 띄우듯 사내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유우지는 후후, 하고 자그마한 웃음만 흘렸다.

연애와 더불어 이지치의 무수한 업무들 가운데 하나가 더 늘었다. 두 사람의 휴일을 최대한 맞추는 것. 무조건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토루에게 이지치는 송글히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톡톡 찍어내며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사토루도 알고 있을 것이다. 주술사란 직업의 특수성과 자신의 위치가 있으니 열이면 열 전부는 맞출 수 없단 걸. 물론 무조건 맞추라는 말은 진심이었겠지만. 정해진 휴일도 따로 없이 불규칙하고, 그마저도 쉴 수 있는 날이 적어 유우지가 예닐곱 번을 쉴 때 겨우 한 번 쉴 법한 사람이다.

그렇게 매일을 바삐 보내고 있으니 휴일엔 집에서 편안히 늘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사토루는 유우지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잘도 돌아다녔다. 경험이 부족한 유우지의 식견을 넓히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저를 위해 노력해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쉬어야 하지 않냐는 제 말에 사토루는 이게 쉬고있는 거라 말했다. 유우지랑 같이 있는게 에너지 드링크보다 백배는 효과가 좋다나. 실없는 농에 못 이기고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아무래도 그에게 부담이라던가 무리는 아닌 듯해 우선은 순순히 이끌려 다녀보기로 했다.

도쿄에 올라오기 전 센다이에서만 머물렀던 탓에, 유우지가 어딘가를 가본 기억이라곤 수학여행 때 한 번 가본 교토가 전부. 유원지라던가 관광 명소를 가본 기억도 그다지 없고, 무언가 논 기억이라고는 시내를 적당히 돌아다녔던 것뿐이다. 옆의 사내와 손아귀에 잡힌 츠카모토에 신경을 쏟느라, 지금은 작품의 배경이 교토였던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보며 했던 이야기. 그걸 잘도 기억해준 것이다.

저번 휴일에는 한참을 벼르던 디즈니랜드를 다녀왔다. 입구 앞 기념품 샵에 들어가 알록 달록 빛깔을 자랑하는 굿즈들을 보고 있을 때, 사라졌던 사토루가 머리띠 두 개를 손에 쥔 채 도로 나타났다. 이런 델 오면 역시 이런 걸 써줘야 한다나. 동그란 귀가 네 개, 퐁실하니 큼작한 리본이 하나. 군말 없이 미키마우스를 집어 들자 사토루는 자신이 미니냐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직접 씌워주고 싶단 제 말에 바로 고개를 숙여오는 사내의 머리에 장식을 얹어주었다.

‘나 예뻐?’

그리 말하며 말아쥔 양 주먹을 뺨에 댄 채 눈을 초롱대는 사내는 그의 말마따나 예뻤다. 이리 건장하고 체격도 좋으면서 리본이 잘 어울리는 게 신기하다고 할까. 역시 얼굴이 예뻐서인가. 1,200엔짜리 머리띠 하나에 사내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곱씹었다.

산속 같은 배경에서 통나무 보트를 타고 물 위도 건너보고, 광산열차를 타고 폐광 황야를 내달리고, 사내의 영역을 떠올리게 하는 우주 속도 질주했다. 이런 데에 오면 핸드폰 말고 안내 지도를 봐줘야 한다는 사토루의 지론을 토대로, 종이를 팔락이며 다음에 탈 어트랙션을 고르고 있던 참이었다. 토독, 종이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스며들어 동그란 흔적을 남겼다. 그 뒤를 따르듯 두 방울, 세 방울이 연신 내려앉으며 환하던 하늘이 차츰차츰 어둠에 좀먹혔다.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겠지 하고 넘겼던 예상과는 달리 빗줄기가 점차 굵어져 결국 우비를 사서 사이좋게 나눠 입었다. 비닐 위로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늘어진 앞머리 끝에서 앞다투어 하나 둘 떨어지던 방울 방울. 말 그대로 물에 쫄딱 젖은 생쥐 신세가 됐다며 빗물에 축 처진 머리를 한 채 마주 보고 깔깔댔다. 기대에 부풀었던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비가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다는 소규모의 퍼레이드도 충분히 즐거웠다. 곳곳에 맺힌 빗방울들이 조명에 반사되어 발광하는 자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퍼레이드 엄청 멋졌어! 반짝반짝 조명 대단했지!’

‘글쎄- 그랬던가.’

‘어라, 제대로 안봤어?’

‘응. 대신 신기해하는 유우지를 구경했지. 귀여웠어.’

사토루는 이런 식으로 종종 낯간지러운 말을 불쑥 던져 제 입을 꾹 다물리곤 한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린 채 창밖만 연신 바라봤던가. 목적지는 사토루의 맨션. 한 사람분의 낮은 웃음소리가 밤길을 내달리는 고요한 차 안을 메웠다. 운전하는 내내 이쪽은 언제 봐줄 거냐고 샐샐대는 사내가 얄미우면서도 좋았다.

‘앞으로 더 재밌는 거 많이 보여줄게.’

그러면서 운전대를 잡지 않은 왼손으로 제 손을 그러쥐는 온기가, 당연스레 나중을 약속하며 넘겨받은 확언이 고마웠다.

평일의 밤. 하루를 마치고 쉴 곳으로 돌아가기 바쁜 차들을 구경하면서, 맨션으로 돌아가자던 종전의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돌아가자는 별거 아닌 말이 왜 이리 좋은 건지. 지극히 사내 혼자만의 공간이던 맨션이 이제는 함께 돌아갈 곳이 되었단 생각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사내를 제 범주 안에 넣은 것처럼, 저 또한 그의 범주 안에 들어갔다는 게 느껴져서.

 

강아지 얼굴의 패치가 콕 박힌 면 슬리퍼를 빠안 바라본다. 앞코가 막혀 발가락을 꼼질거려도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하실에서 머물렀을 때, 사토루가 사다 준 속옷과 다른 생필품 사이에 껴있던 슬리퍼. 땡그란 눈의 강아지가 꼭 저 같다고 했던가. 자신을 생각하며 사다 준 거란 생각에 유달리 특별하게 여겨졌다. 본디 실내에서 슬리퍼를 그다지 챙겨 신는 편은 아니었지만, 사토루가 준 선물이니 신경 써가며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사토루가 마련해준 집으로 넘어갈 때도 갖고 가 부지런히 신고, 맨션에 슬리퍼를 사두겠다는 말을 물리고는 야물게 챙겨왔다.

이 미미하게 때가 탄 앞코와 살짜금 헤진 밑창이 좋다. 사토루와 둘만의 공간에서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고 있단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발을 까딱이며 달싹이는 슬리퍼를 들여다보길 한참,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유우지가 가볍게 제 손뼉을 맞부딪혔다. 고요하던 거실에 작은 울림이 너르게 퍼진다. 둘이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영화를 보는 경우가 아니면 TV는 거의 틀어두지 않는다. 떠들썩한 소음보다 서로에게 집중하는 쪽이 좋다는 무언의 상통이다.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

“네에, 유우지 군.”

“그때 왜 집을 따로 마련했던 거야? 지하실도 있는데?”

슬리퍼를 보고 있자니 일전 낯선 공간을 구경해본답시고 돌아다닌 기억이 떠올라, 돌려받지 못한 대답이 다시금 궁금해졌다. 확실히 지하실이 먼지 폴폴 날리고 빛 하나 들지 않는 삭막한 공간이긴 했지만, 머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숨어 있는 입장이기도 했거니와, 자신은 몸 뉘일 곳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부러 복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옮긴 이유가 궁금했다. 제 물음에 사토루는 대답을 회피할 요량인지 새가 모이를 쪼듯 가볍게 키스해왔다. 쪽, 소리와 함께 유우지의 한쪽 눈썹이 씰룩 실그러트려진다. 이렇게 넘겨보겠다 이거지. 사내의 속셈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우선 회답하듯 입맞춤을 되돌려 주었다.

“그래서 왜냐니까?”

“앗, 말 돌리기 실패다.”

“응, 실패. 나 진짜 궁금하거든.”

되면 되는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물 흐르듯 넘기는 마인드를 갖고 살아왔지만, 목전의 사내와 관련되면 말이 달라진다. 전부 알고 싶다. 숨어 지낼 당시에는 하도 자주 들여다보고 살펴주었기에 가늠하지 못했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를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졌다. 어째서 제게 매번 수고로운 일들을 자처했는지, 그 행동들의 본원은 무엇이었는지. 곧바른 시선을 쏘아대길 한참, 뒷머리를 긁적이던 사토루가 풀어낸 말의 첫머리는 상정 외였다.

“그야, 유우지랑 단둘이 있고 싶었으니까.”

설마 그런 이유로 집까지 빌린 거야. 사토루의 격이 다른 씀씀이에 어쩐지 머리가 지근거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잔뜩 늘어진 0의 중간마다 반점이 콕박히는 금액의 셔츠를 입는 사내라지만, 설마 이 정도로 돈을 쉽게 쓸 줄이야. 빠듯이 가계를 꾸려왔던 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이란 게 와닿는다고 할까. 물론 부족한 사람이 과히 쓰는 것도 아니고, 두루 여유로운 사람이니 질책할 만한 일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건 지하실도 그랬잖아?”

“거긴 이지치도 알고 나나미랑 쇼코도 알잖아! 뒤의 두 사람은 올 일 없다 쳐도 이지치는 한 번씩 생필품 갖다주러 왔으니까 싫었는걸.”

“그런 이유로 집까지 빌린 거야….”

나한텐 중요한 문제였다고.

잔뜩 불만 서린 투로 불퉁거리는 사내가 귀엽다. 고맙긴 하지만 제게는 과분한 게 사실이라 한마디 얹으려는데, 눈앞의 입매가 연신 우물쭈물거린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한 눈치다. 그 모습에 유우지는 반쯤 열었던 입을 슬며시 다물었다. 사토루에 관련해서는 한없이 물러지게 된다. 자각은 있다.

“사실은 우리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는데….”

“그런데?”

“아무래도 집으로 데려오는 건 사귀고 난 후에 해야 하지 않나 싶었고….”

“선생님 의외로 건실하네….”

“이래 봬도 나 선생님이야? 거기다 유우지의 담임이고? 그 정돈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사귀기로 한 첫날 바로 키스부터 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언젠가 낯간지럽게, 들뜨게 주고받았던 고백과 그날을 상기한다. 가슴께 어드메가 근질거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 애꿎은 콧잔등만 갉작. 아니,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날 위해 해주는 건 기쁘지만, 다음부턴 미리 상의해주면 좋겠는데.”

“으음, 생각해볼게.”

“확답은 안 해주는 거야?”

“유우지가 내일도 자고 가면 좋겠다.”

“오늘도 안 지났는데? 아니 말을 이렇게 돌리네.”

“나는 늘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니까.”

“네에, 네에.”

어린 애 달래듯 말끝을 늘어트리는 제 어투가 불만이었는지 흘겨보는 눈초리가 매섭다고 할까. 어쨌거나 토라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건 알겠다. 제게 가르침을 줄 때는 그렇게 어른다웠는데. 지금은 심통 난 아이와 다름없는 눈앞의 사내는, 저와 관련된 일이면 분별력이 흐려진다. 하지만 막무가내라고 해도 좋을 행동들의 뿌리가 저를 향한 애정과 지키고자 하는 욕구임을 알고 있다. 그에 기쁜 마음이 드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는 걸까.

“냉장고에 아직 주키니 반 개 남았어.”

“아, 맞다.”

뜬금없이 대화의 주제를 비트는 말에 유우지의 정신이 퍼득 차려졌다. 그러고 보니 일전 살캉거리게 볶아먹고 절반 정도를 남겨놨던가. 근데 왜 갑자기 남은 식재료를 이야기하는 거지.

“그게 왜?”

“냉장고 열 때마다 보이는걸.”

“그랬어? 오늘 먹어 치울까?”

“그 얘기가 아니잖아아….”

말끝을 잔뜩 늘어트리며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 한껏 부빗거리는 움직임을 가만히 관찰한다. 왜일까. 사실 사토루가 냉장고 안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양문을 벌컥 열고 경악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니까. 이게 사람 사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휑했던 냉장고 내부. 너른 공간이 하등 쓸모없게 곱게 진열된 생수 몇 병과 아래 칸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스위츠 몇 개.

혼자 산 시간이 길어 살림을 꾸릴 줄 알고 간단한 요리도 만들 줄은 안다고 했다. 근데 귀찮단다. 미식을 즐기는 편이고 식욕도 있지만, 직접 해먹을 정도로 욕구가 강한 건 아니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밖에서 먹고 들어오거나, 그마저도 귀찮은 날은 스위츠로 때워버렸다고. 먹는 것 하나에도 필요 이상의 수고를 들이기 싫어하는 사내가, 제게는 그리도 수고로운 일들을 자처하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의기양양해지고, 그렇다면 이쪽이 대신 신경 써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로 맨션에 들를 때마다 함께 나가 장을 보고, 자신이 요리를 하면 사토루가 설거지를 도맡는, 말로 낼 필요 없이 알아서 짜임 좋게 움직이는 일련의 루틴이 자리 잡혔다. 물론 주방에 나란히 서서 같이 요리를 하는 날도 있고, 구태여 접시 하나를 나눠 닦으며 깔깔대는 효율성 제로의 설거지를 하는 날도 있다.

“그럼 뭐야?”

은유적인 표현보다는 직구가 좋다. 유우지는 눈치가 나쁘지 않고, 따져본다면 좋은 쪽에 가깝다. 그래서 엉뚱한 대화 주제를 끌어온 이유를 알 것 같아 되물었다. 어림잡아 헤아리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몇 배는 좋으니까.

“물 마시려고 열 때마다 보여서, 그때마다 유우지 생각을 해.”

“그건 좋네.”

“늘 유우지가 보고 싶다고 생각해.”

갑작스러운 고백이 작은 돌이 되어 너른 수면 위에 던져졌다. 잔잔한 파동이 일며 넓게 넓게 퍼져나간다. 나직이 내리깔린 목소리가 수면에 이는 물결처럼 맘을 일렁이게 했다. 사내의 유화한 음성과 그 안에 담긴 애정을 곱씹으면서, 유우지는 조용히 동요했다.

사토루는 가만히 눈을 끔뻑대며, 혼자 있을 때의 풍경을 떠올렸다. 고요한 집 안에 냉장고 여는 작은 소리만이 퍼지고, 별 고민 없이 생수병을 집으려던 찰나 시야에 잡힌 곱게 다물린 밀폐용기.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야무지게 정리해둔 그 식재료가, 다음번 요리에 사용되길 기다리며 한 자리를 차지한 밀폐용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재료가 마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단면에 랩을 두르며, 다음엔 이걸 어디에 사용할까 고심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별수 없이 보고 싶어진다.

매일을 함께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아이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 유우지에게 마음과 더불어 위장과 입맛까지 꽉 사로잡힌 지 오래다. 1인이 48,000엔이 훌쩍 나가는 긴자의 스시코 보다 소박한 가정식 한 끼가 더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보다 둘이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것도, 삭막하단 자각도 없었던 정적인 분위기보다 웃음과 말소리가 흐르는 게 더 즐겁다는 것도. 제 옆에 계속 머물러 다른 것도 더 알려주었으면 하는 욕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고전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누리는 것도 청춘이고, 그때만 만끽할 수 있는 일임을 알고 있다. 제 사리사욕으로 아이가 청춘을 만끽하지 못하는 건 싫다. 청춘을 방해하는 건 누구든 용서할 수 없다. 설령 그게 자신이어도.

“매일 날 생각해준다는 거니까, 그건 솔직히 기쁘네.”

“기쁘면 내일도 여기 있어.”

저보다 높이가 한참 낮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하루 더 머물러주기를 간청한다. 아이의 오늘과 내일을 전부 제게 달라는 투정. 그에 못 말린다는 듯이 작게 터트린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더 듣고 싶다. 이 아이의 얼굴에 웃음만 그득했으면 좋겠다. 어둠이라곤 드리울 일 없이 늘상 밝은 낯만 띄우길 바란다.

쨍하고 푸르른 이 아이의 청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볼 생각이다. 그럴 힘과 장악력이 이제는 제게 있다. 그러니까, 하루 정도는 더 넘겨받고 싶다. 이 정도의 욕심은 봐줬으면 한다.

“그래, 좋아!”

“와!”

확답을 넘겨받음과 동시에 아이를 와락 안아 소파로 함께 몸을 무너트렸다. 아래에 깔린 채로 무겁다며 까르르대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작지 않은 입을 한껏 벌려 시원스레 웃는 아이의 쾌활함을 사랑한다. 지옥에 끌고 들어온 장본인인 주제에 잘도 이런 감상을 한다.

손가락을 전부 삼키라며 주술 계로 데려온 당사자긴 하지만, 사형의 무기한 연기를 얻어 아이의 목숨줄을 붙든 것도 자신이다. 플러스, 마이너스, 도합 제로 베이스인 느낌. 그러니 이 웃음이 좀 더 자주,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 정돈 허락되지 않을까.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 다 써야겠네. 볶음밥을 할까나.”

“다는 쓰지 말고 남겨줘.”

“왜? 오늘 안 먹으면 상할 거야.”

“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냐.”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 실으면서, 부드럽지 않고 단단하기만 한 몸을 만끽했다. 말하자면 다음의 약속 같은 느낌이다. 그때 남겨둔 재료를 써야 하는데 하고 다시 들러주지 않을까 하는. 오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나중의 방문을 다짐받기를 원한다. 우습다는 자각은 있지만 별수 없는 일이다. 이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은 늘 유우지와 둘이던 순간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함께 사는 것은 고전을 졸업하고 난 뒤.

저 혼자만의 독단으로 한 내약이다. 벌써 도쿄 인근의 신축 맨션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면 질린 기색을 표할까. 꼬박 3년은 더 기다려야 하니 그때 가서 새로 찾아보는 게 좋을까. 같이 살자고 하면 분명 기뻐해 주겠지. 아이의 얼굴에 한가득 매달릴 웃음을 벌써부터 고대한다. 해를 세 번이나 꼬박 넘겨야 하는 기다림은 길고 감질나지만 기쁘게 감내해볼 생각이다.

“밥 같이 만들래? 튀김도 할까?”

“좋아!”

 

아이의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사랑을 잔뜩 싣는다.

어차피 지옥일 거라면 즐겁게, 유쾌하게, 나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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