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기호지세(騎虎之勢) 외전 : 1
본편의 사토루 시점 외전
고죠 사토루는 연애에 흥미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없었다’가 맞겠다.
그렇다고 연애를 안 했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죄다 한없이 가벼운 관계이긴 했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연애 횟수 자체는 적지 않다. 성욕 해소 용의 섹스 파트너.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연애에 성실히 임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소비해서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바쁜 몸이니 구태여 일을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임무는 끝도 없이 밀려오고, 상층부는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으며, 썩은 귤들 외에도 신경을 살살 긁어오는 것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사토루에게 연애에 쏟아부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사실 부을 맘도 없었고.
오는 사람 골라잡고, 가겠단 사람은 발꿈치를 쳐서라도 빨리 쫓아낸다. 그렇게 살아왔고 딱히 불만도 없었는데.
“선생님 어서 와! 오늘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나이도 까마득하게 어린 제자한테 흥미가 생겼다. 물론 연애적인 의미로.
사랑만큼 왜곡된 저주는 없을 거란 말을 잘도 내뱉었던 주제에.
정말 지하실에 들를 시간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아무리 짜증을 내도 달라지는 건 없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자신이다. 그런데도 괜히 이지치에게 싫은 소리를 잔뜩 쏘아붙였다. 이런 식으로 종일 임무에 시달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도 화가 나서. 왜?
지하실에 들를 시간을 못 낼 것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어린 애라지만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하루쯤 들여다보지 않아도 문제 될 일은 없는데.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내일은 못 올 것 같다는 말에 순간 시무룩해졌던 유우지가 신경 쓰여서, 정도려나. 사실 이것도 따지고 보자면 제 쪽이 더 큰 일이었다.
내가 유우지를 못 보는 게 힘드니까.
얼굴 한 번 보려고, 드물게 전력을 다해 마치고 왔다고 말하면 무슨 얼굴을 보여줄까. 실은 흥미보다도 더 깊게, 진득한 감정이 뿌리내린 지 오래다. 스스로도 어이없었지만 자각은 빨랐고, 납득은 그보다 더 빨랐다.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행동들을 하니까. 생명이 싹을 틔우는 봄에 태어나서인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며, 다른 이를 보듬을 줄 안다. 한없이 따뜻한 아이라 그 온기가 스며들어온 것 같다고, 반가움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어주는 유우지를 보며 생각했다.
“그랬는데- 유우지 보려고 빨리 끝내버렸어.”
아마 유우지는 농담으로 넘겨버릴 테지만 정말이었다. 예상 퇴근 시간보다 몇 시간이나 앞당겼으니까.
사토루에게는 온전한 휴일이 그다지 없고, 하루의 일정은 빡빡하다. 그런 나날의 반복이기 때문에 임무에 그다지 힘을 쏟지 않는다. 안 그러면 금방 지쳐버리고 마니까. 지친다고 일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알아서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토루가 모처럼 힘을 낸 하루였다. 조기 퇴근에 기분이 좋아진 이지치가 전속력으로 밟아 고전 앞에 내려주고, 성큼성큼 지하실로 향하면서는 우스움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맘에 달리듯이 걸어본 건 처음이라서.
“그럼 더 피곤하지 않아? 얼른 돌아가서 쉬어야….”
정말이지 유우지는 이렇다니까. 사토루는 아이의 걱정이 무색하게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명실상부 최강인 사토루에게 피곤하네 마네, 하는 걱정 어린 말을 건네오는 것은 유우지가 유일하다.
대개 이쪽에서 최강이니 괜찮다고 하면 납득하고 말거나, 그럼 이것도 할 수 있겠다며 다른 것도 떠넘겨오는 게 보통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되던 중에 유우지가 나타났다. 상대가 강한지 약한지를 따지지 않고, 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진심으로 걱정한다. 걱정을 받아본 건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이라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언젠가부터 병기처럼 취급되고 있던 자신을 오롯이 한 사람으로 봐주는 아이다. 최강이니까, 라는 스스로에게 암시하듯 내뱉던 입버릇에도 ‘최강도 힘든 건 마찬가지잖아?’라며 틈을 찔러왔다. 그리 말하고서는 염려된다는 눈빛을 해오던 아이의 다정함을 기억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지도 모른다.
사실은 온기가 그리웠던 자신이 누구보다 따뜻한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몇 달 동안 지켜봐 온 유우지는 알면 알수록 재밌는 아이다.
성격이 둥글어 말랑해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에선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단단한 면이 있다. 또, 마음의 그릇이 넓고 포용 범위가 너른 것 같지만 안되는 건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할 줄 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마냥 웃다가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듯이 꿰뚫어와 놀랄 때가 더러 있다.
그리고 바운더리 내의 사람들을 유독 과하게 챙기는 경향이 있어서, 그 범위 내에 들어가 있음에 안도하게 되고, 내쳐지고 싶지 않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해버리고 만다.
날 계속 네 범주 안에 넣어줘.
날 계속 챙겨줘.
최강을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남아줘.
충전이라는 같잖은 핑계를 들먹이며 끌어안아도 밀어내지 않는다. 외려 한참을 머뭇거리다 곰살맞게 토닥여주기까지 한다. 등에 내려앉는 손은 전혀 가녀리지 않고 투박하지만, 누구보다도 다정하다. 이 따스함이 못 견디게 좋았다. 한참 어린 아이에게 연심을 품은 것도 모자라 위로까지 받고 있다.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야 할 상황인데, 아이의 다정함을 오롯이 차지하고 싶다고 욕심까지 내고 있다. 이런 어른한테 걸려서 큰일이네…. 사토루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한껏 힘을 실어 아이를 품 안에 가두었다. 큰일이긴 하지만 딱히 놔줄 생각은 없다.
더 밀착된 탓인지, 긴장감에 열이 올라 아이의 뺨이 따끈해진 게 느껴진다. 온기만으로도 귀여울 수가 있구나. 아이가 알아채지 못하게 슬몃 웃는다.
유우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안다. 눈치 빠른 사토루가 그것을 알아채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저울에 두고 무게를 잰다면 자신의 쪽이 한없이 내려앉을 것이다. 이쪽은 유우지가 전부 알게 된다면 지레 겁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거운 감정이니까. 이 상태로 마음이 통한다면 언젠가 유우지 쪽에서 떠나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곤란하니까, 조금은 더 기다려볼 생각이다. 깊이깊이 감겨들어서 자신을 좋아하는 것 외의 생각은 못 하게 될 때까지.
이미 자신은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유우지도 여기까지 와주기를 기다린다.
아마도 유우지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일 것이다. 얼른 이쪽까지 건너와서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알아줬으면 한다. 애정 어린 온기는 닿으면 닿을수록 기분이 좋단 것도, 좋아하는 사람과는 끌어안고만 있어도 벅차오른단 것도, 누군갈 좋아한다는 별거 아닌 것 같은 감정이 한없이 무거워지면 버거울 수 있단 것도, 전부 유우지가 알게 해준 것들이니까.
한 번 알아버린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사토루는 외면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아이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언젠가 자신이 말했던 왜곡된 저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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