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고백과동거(1)

거기서거기 by 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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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회전 2차 BL 고죠사토루X이타도리 유지 

-대학생/동거AU

(*) 제 개인적인 캐해에 의한 날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포타에도 올린 글입니다. 테스트 겸 이쪽에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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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라는 말했다.

고죠 사토루를 보고 있으면 신은 공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물론 그렇다기엔 고죠 사토루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신비로운 은색의 머리칼에, 눈처럼 고운 피부, 거기에 햇빛이 반짝이는 호수처럼 푸른 빛을 빛내는 눈동자까지. 지나치는 사람이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며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흔한 일 조차 주변이 "연예인 떴다" 라며 웅성거리게 만드는 얼굴과 더불어 체력이 다져진 몸은 슬랜더한 근육질인데다가 키도 커서 비율이 좋아 뭘 입어도 잘 어울린다. 거기에 손도 크고, 손가락 뼈대도 굉장히 도드라져 의자에 앉아 커피잔을 쥐고 있을 뿐인데도 분위기 있어 보인다. 게다가 웃을 때는 언제나 큰 소리로 웃어서, 어딘가 순수해보이는 면까지 드러나 순식간에 사람이 빠져들고 마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뿐이랴.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일이면 일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었다. 오죽하면 그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인 주술고전에 있는 수상 트로피 중 절반은 고죠 사토루가 가져온 거고, 나머지 절반은 고죠 사토루가 속해 있는 팀이 가져온 거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에 관련된 평은 항상 극과 극을 달렸다. 소름끼치게 완벽한 사람 또는 인간을 최악으로 만들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

그도 그럴게 그는 그 아름다운 외모를 다 죽여버리는 괴멸적인 패션센스에 성격파탄자라 불리울만큼 괴짜인 면모를 지닌 탓에 언제나 고독했던 것이다.

그의 옷장에는 새하얀 머리칼과 정반대인 까만 옷들만 가득 채워져 있었고, 심지어 속옷과 양말까지도 죄다 검은 색 뿐이었다. 이상한 선글라스나 아니면 안대를 사서 쓰고 다니질 않나,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검은 점퍼를 입고, 왁스로 머리를 수직으로 빳빳하게 세우고 오질 않나, 보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옷차림이었다. 그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다. 햇볕을 너무 쬐면 눈이 아프니까, 추울 때 입으면 바람을 막아서 따뜻하니까, 앞머리가 눈을 찔러서 귀찮으니까, 등등. 듣고 있으면 납득은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만 했나 싶어지는 이야기가 된다. 한 마디로 고죠 사토루의 취향이 그렇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그건 고치지도 못해."

아예 단정하듯 말하는 노바라에 후시구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죠 사토루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동의했다.

거기에 그의 입은 한 마디만 내뱉어도 주변 사람들이 홍수처럼 갈라져 피해가게 만드는 끔찍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왜 못해? 너 완전 약하구나!" 하고 천진난만하게 천재의 기세를 내뿜으며 앞서가질 않나,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내가 왜?" 하고 버리고 가질 않나, 그 탓에 남이 화가나서 싸움이 터지게 되면 역으로 실컷 두들겨패고는 "위자료 청구하려면 청구해." 하고 당당하게 집안 변호사 명함을 던지고 가버리는, 양아치 중의 양아치며, 재수없는 자식이었다.

그탓에 고죠 사토루와 같은 검도부 동아리를 다니는 노바라, 후시구로, 이타도리는 어디서나 보이는 고죠 사토루의 기행을 보며 혀를 찼다. 특히 노바라는 가장 분노했는데, 항상 하는 말은 비슷했다.

"그 사람은 글러 먹었어! 얼굴이 잘나봤자 뭐해! 그거 말고는 다 쓸모 없는데!"

그럴만도 한 게 같은 검도 동아리였지만 고죠를 본 건 열 손가락 중 두 세개를 꼽을 만큼 아주 가끔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회 때마다 학교에 1등 트로피를 가져다주는 주니 번번이 그의 기행을 봐주었다. 후배 입장에서는 기막힌 것이다. 후시구로는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매번 뒤에 덧붙였다.

"굉장한 실력이니까 별 수 없지."

"장난해? 난 그 인간 덕분에 내 동아리 생활을 다 망쳤어! 그 인간만 없었어도 1등 트로피는 내가 가져오는 건데!"

"졸업하면 되지 않을까? 선배니까 내년이면 떠나잖아. 그럼 그때가서 네가 가져오면 되지."

결국 노바라가 이길 방법은 없다고 단정하는 후시구로의 무감한 대꾸에 노바라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며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 뜯었다. 아파! 아프다고!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어우러지자 이타도리는 얼른 달려들어 말렸다. 노바라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유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뭘?"

"그 인간 말야! 그 싸가지 밥 말아먹은 잘난 선배! 고죠 사토루!"

이타도리는 뺨을 긁적이다가 말했다.

"좋은...사람이지?"

"뭐어?"

후시구로와 노바라는 둘 다 할 말을 잃고 이타도리를 보았다. 이타도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동아리 올 때마다 우리랑 대련해주잖아."

"하아? 그건 그냥 그 인간이 자기 잘난 맛에 우리 기 죽이려고 하는 거야!"

"그래도 선배들 중에도 그렇게 신경써주는 분은 없는 걸."

이타도리는 나름대로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러자 노바라와 후시구로는 웬일로 뜻을 맞추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넌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아."

"그래. 언제나 그렇게 순수하게 남아다오."

이타도리는 얼떨떨하게 둘의 쓰다듬을 받다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진짜야. 고죠 선배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예전에 날 도와준 적도 있어."

"고죠 사토루가 도와준다고?"

노바라는 "그렇게 거짓말까지 지어내며 그 인간을 착하게 만들어 줄 필요 없다." 며 믿지 않았다. 후시구로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잠깐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죠 선배가 그저 숨쉰 것 뿐인데 어쩌다보니 이타도리한테 좋은 일이 생겼나보다."

둘의 불신에 대해 이타도리는 항변하듯 과거의 일을 꺼냈다. 그것은 이타도리 유지가 전학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전학교에서 이타도리는 수 없이 많은 동아리에 도움을 주고 다녔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예전에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검도를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진 생각이었다. 마침 그가 전학온 주술고전에는 검도부가 있다고 하니 구경해도 괜찮다 싶었고.

그렇지만 학교가 어찌나 넓고 건물이 다 들쭉날쭉 한 지, 동아리 부실을 찾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헤매던 그는 같은 곳을 세 번째 돌던 그때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낮잠 자는데 신경 사납게, 뭘 뽈뽈 거리고 있어?"

올려다보니 웬 나무에 한 남자가 올라타서 누워 있었다. 안대를 쓴 남자는 이타도리를 향해 짜증내듯 물었다. 어떻게 자신을 본 걸까. 의아하면서도 검은 점퍼를 입은 사복 차림이니 선생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타도리는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 검도부 부실이 어디죠?"

"검도부? 왜 검도부를 찾는 거지?"

"그냥...구경이나 할까 싶어서요."

"구경,이라. 구경따위 하라고 있는 동아리가 아닌데."

심상치않은 남자의 말투에 이타도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무시해도 그만이었지만, 상대를 존중하며 살아온 그는 변명하듯 대꾸했다.

"할아버지가 좋아해서, 고민중이었던 거에요."

"할아버지?"

"네."

남자는 팔짱을 끼고서 이타도리를 쪽을 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대를 쓰고 있으니 본 것인지 아닌지 이타도리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리고나서 그는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눈을 가린 채로 발을 허공에 내딛으니 이타도리는 몸을 움찔 거리며 걱정했다. 그렇지만 헛딛은 것도 없이 말끔하게 착지한 남자는 발군의 운동신경을 가진 상대였다

"안내해주면 뭐 해줄 거야?"

"네?"

"하."

두 번 말하기는 귀찮은데. 남자는 중얼거리다가 입을 삐죽이며 다시 물었다.

"내가 안내해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거냐고."

"어...글쎄요. 음료수 마실래요?"

이타도리는 품 안에서 캔을 꺼내들었다. 마침 그날 아침에 할머니 짐을 옮겨드리고 받은, 콘포타주 였다. 남자는 기막혀하며 물었다.

"콘포타주가 음료야?"

"마실 수 있으니까요."

이타도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남자는 그런 이타도리를 빤히 보았다. 이타도리 역시 기어이 안대를 벗지 않는 남자가 신기해서 멀뚱멀뚱 서서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대치하고 있으니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발길을 돌렸다. 

"따라와."

"네?"

그리고는 남자는 바로 옆 건물로 돌아 들어가더니 이타도리를 검도부실 앞까지 바래다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노바라는 괴상쩍은 표정을 짓더니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그 대화의 어디에서 감동을 받아야하는 거야?"

혹시 안내해준 것 하나만으로 감사해야하나? 그러기엔 필시 고죠 사토루일 남자의 태도가 너무나 불량했다. 세상에 이제 전학 온 전학생한테, 그것도 자기보다 후배인 게 빤히 보이는 애한테 그렇게 시비를 거는 바보가 어딨나. 노바라의 신경질 섞인 난폭한 말투에 이타도리는 열심히 손을 저었다.

"아냐, 그게 아니라. 그 뒤에 선배가 말해줬어."

콘포타주라도 없는 것보다는 주는 게 낫다. 고맙다고 말하며 캔을 내미는 이타도리를 보며 고죠는 피식 웃었다. 그는 손을 내젓더니 이타도리를 향해 말했다.

"젊은이에게서 청춘을 빼앗는 건 누구라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 난 네 청춘을 위해 한 것 뿐이야."

그리고 그 어떤 감사인사도 받지 않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고죠는 이타도리를 만날 때마다 그렇게 이유없이 도움을 건네주고, 아무 대가도 받지 않았다. 동아리에서도, 그리고 검도부에서도. 심지어 대련을 할 때는 그에게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비록 말투는 여전히 애매했지만.

"그러니까 선배는, 우리를 위해 대회도, 동아리도 하는 사람이야."

좋은 사람인 거지.

이타도리의 말에 노바라와 후시구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수없는 인간이긴 했지만 그가 동아리에 있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덕분에 이제 막 가입한 신입생인 그들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노바라는 말했다.

"재수없어."

"어?"

"말해도 꼭 그딴 식으로 말하더라. 그냥 도와주려 했다, 그 한 마디면 될 것을."

"옷차림이나 성격은 그대로잖아."

"자기가 이만큼 하면 그럼 너는 뭐 해줄 거야? 하고 묻는 것도 완전히 도련님 그 자체고."

결국 평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타도리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모두가 생각하는 건 저마다 다른 법이지.

그래도 고죠 사토루가 졸업할 때는 노바라가 제일 많이 울었고 그 다음엔 후시구로 였다. 정작 이타도리는 눈물 한 방울 없이 그를 배웅했다. 고죠 사토루는 그런 그를 가만히 보다가 머리에 손을 얹고는 한 번 쓰다듬어주었다.

이별을 한 이후에 이타도리는 고죠 사토루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입시를 끝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도, 이타도리는 고죠 사토루 라는 사내를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은 A대학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노바라에게 건넨 후였다.

"어? 거기, 고죠 선배가 다니는 곳이잖아?"

올해 재수를 하게 된 노바라는 부러워죽겠다는 눈으로 이타도리를 보았다.

"한 번 연락해. 어차피 가면 만날 거 아냐."

"대학이 얼마나 넓은데 가면 무조건 다 만나게?"

"그래도 연락은 해야지. 같은 고등학교인데."

노바라와 후시구로의 대화를 들으며 이타도리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 번호 없는데."

"뭐어?"

"너, 고죠 선배랑 제일 친했으면서, 번호도 없어?"

이타도리는 금시초문이었다. 물론 좋은 선배라고 말한 적도 있고 그를 나름대로 따르긴 했으나 그와 제일 좋은 사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죠 사토루에게도 나름 인간관계가 있을 것 아닌가. 그에게 동아리는 한 학기에 열 번도 가지 않는 곳이었고, 이타도리는 그 중 몇 번을 그와 마주친 게 전부였다. 이타도리는 얼른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노바라가 폰을 꺼내들며 다그쳤다.

"이거 번호니까 꼭 연락해. 안 그러면 선배 삐질 걸? 그 인간, 도련님이라서 삐지면 엄청 귀찮다고."

도대체 노바라에게 고죠 사토루는 어떤 사람인 걸까.

선배가 아니라 애를 다루듯 취급하는 그녀의 태도에 이타도리는 떨떠름해하며 번호를 받았다. 그렇지만 자신의 번호를 알려준 적 없는데 과연 고죠 선배가 제 전화를 받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죠 사토루가 받을 것 같진 않았다. 애당초 전화를 걸어봤자 할 말이 있지도 않았다.

'대학가면 만나겠지.'

그때가서 아는 체 해도 괜찮을 거라 여기며 이타도리는 그대로 전화 거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학에 들어갈 때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 자취하는데는 돈이 들어간다. 부모님의 유산과 할아버지의 보험금이 있긴 했지만 이타도리는 그 돈을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취를 할 저렴한 집을 찾아다녔다. 그렇지만 모든 신입생들이 집을 구하느라 이타도리 역시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도 부동산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응?"

액정에 뜬 번호를 보고 이타도리는 놀랐다. 노바라에게 받아놓기만 하고 전화를 건 적 없었던 고죠 사토루에게서 전화가 온 탓이었다. 이 선배가 나한테 왜 전화를 건 거지? 그전에, 내가 선배한테 번호를 가르쳐준 적이 있었나?

'노바라가 가르쳐줬나보다.'

별 용무 아니겠지. 같은 대학이라니 전화 한 번 건 것일 터이다. 이타도리는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몇 번 되물어도 건너편은 고요했다. 뭐지. 잘 안 들리나? 이타도리가 애꿎은 휴대폰을 손바닥으로 탁, 탁, 내려치며 흔들자 그제야 고죠가 답했다.

"...이타도리 유지."

"네. 고죠 선배."

"너...왜 나한테 전화를 안 했지?"

오랜만에 들려와서 그럴까. 고죠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이타도리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얼른 기운차게 답했다.

"조만간 하려고 했어요."

"....그래?"

"네. 선배, 무슨 일이예요?"

이타도리의 물음에 고죠는 한참동안 또 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하고 이타도리가 다시 묻고 나서야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내가 다니는 곳에 온다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고죠가 '어쩌다보니?'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자신을 향해 한 말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이타도리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네!" 하고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죠는 또 다시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돌연 푸하하하! 하고 한바탕 웃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저녁 사줄테니까 나와라."

이타도리의 일정을 확인도 하지 않고 그는 빠르게 약속장소와 시간을 말했다. 확실히 도련님다운 고압적인 기색이었다. 그렇지만 이타도리가 그 날은 제가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하고 난색을 표하자 고죠는 곧바로 다음날로 약속을 연기해주었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

비록 고죠 사토루에 대해 별다른 감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타도리에게 그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이타도리는 딱히 고죠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를 쫓아서 같은 대학에 간 것도 아닌, 순전히 우연한 상황에 벌어진 우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고죠 사토루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어 다시 만난다는 것은 분명 그에게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타도리는 고죠 사토루와의 저녁 약속에 무심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아무리 만인에게 평등하게 좋은 사람인 이타도리라 할지라도 고죠 사토루에 대해서는 '특별히 외견이 아름답다'는 기억은 있었다. 그렇기에 대학에 들어간 고죠 사토루는 분명히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근처 주점에 들어가 재회를 한 순간 이타도리는 자신이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고죠 사토루는 키가 조금 더 크고, 몸이 살짝 더 좋아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두른 옷차림에, 빳빳하게 올린 머리, 거기에 괴상쩍은 안대까지 풀세트로 착용하고 나타난 모습에 이타도리는 살짝 위압감까지 느꼈다. 아무래도 190이 넘는 거구의 사내가 그런 차림을 하고 있으니 압도되는 것이다.

'노바라가 보면 울겠네.'

그나마 봐줄 건 얼굴 밖에 없다면서 매번 욕했는데. 이제 그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봐도 좋게 보면 음침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도둑놈 같은 위험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고등학교 교내부지에서는 조금 특이한 옷차림이었으나 사회에서 혼자 외따로히 그렇게 서 있으니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그토록 잘생기고, 근사했던 선배는 더더욱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쪽이야."

같은 일행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식탁에 미리 시켜둔 음식이 가득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이타도리는 홀린듯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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