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고백과 동거(2)

거기서거기 by 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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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회전 2차 BL 고죠사토루X이타도리 유지 

-대학생/동거AU

(*) 제 개인적인 캐해에 의한 날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포타에 업로드한 글을 재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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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도 돼.

고죠의 허락에 이타도리는 젓가락을 들었다. 비록 고죠는 수저도 들지않았지만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냄새가 고소해 이타도리의 인내심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간만에 먹는 제대로 된 밥은 위장이 사무치도록 맛있었다. 혼자 살면서 대충 밥에 후리카게만 뿌려 먹거나, 그마저도 귀찮아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때우던 나날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단무지의 단맛을 느끼며 이타도리는 와구와구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고죠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젓가락을 들기는 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고죠였다. 먹을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너무 허겁지겁 먹으니 놀란 건가? 안대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어 이타도리는 눈치를 보기도 어려웠다.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넣다가 그는 주저하며 고죠에게 물었다.

"고죠 선배."

"어?"

"안 드세요?"

고죠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됐어. 너 많이 먹어도 돼."

아니, 밥 먹자고 부른 사람은 그쪽이면서.

이타도리는 이해할 수 없어 고죠를 보았다. 그러자 고죠는 뭐라 생각한 것인지 이타도리와 주변의 빈 그릇을 보더니 턱을 쓸다가 말했다.

"더 먹고 싶으면 더 시켜."

"네? 아니, 그런..."

"원래 선배는 후배를 사주는 게 일이야. 신경쓰지 마."

고죠 사토루가 이렇게 다정한 말도 하는 사람이었나. 이타도리는 움찔거리며 몸을 굳혔다. 그러기도 잠시, 그의 머릿속에 '고죠 선배는 도련님' 이라는 말과 '엄청나게 부자' 라는 말이 아른 거렸다. 그래. 저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는데 뭐 어때. 밥 한 끼 정도는 얻어먹을 수도 있지. 나중에 또 내가 사면 되니까. 괜히 사준다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다 여기며 이타도리는 고죠가 내민 메뉴판을 받아들었다. 다행히도 이른 저녁시간이라 손님은 적었고, 주점은 학교 근처라 그런지 가격대도 꽤 저렴한 식사 메뉴가 많았다. 이타도리는 주의깊게 보며 딱 세 개만 주문했다.

"술은? 아직 안 마셔?"

안마시기는. 이타도리는 할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를 얻어마신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고죠 앞에서 마시기는 꺼려질 뿐더러, 아직 그가 머무는 집이 이곳에서 멀었던 탓에 취하고 싶진 않았다. 그 말에 고죠는 또 다시 의아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내 집에서 자고 가. 이 근처야."

"네? 선배 집이요?"

고죠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준 적이 있던가?

이타도리는 눈을 껌뻑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자기 영역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머리가 좋은데도, 괴짜처럼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피해지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노바라와 후시구로는 '더 미친 놈같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어. 걸어서 10분이면 돼."

아예 취해도 괜찮다는 듯 고죠는 이타도리가 들어본 적 없는 일본주 메뉴를 점원에게 주문했다. 너도 마실 거냐는 표정으로 고죠는 이타도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타도리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고죠의 친절이 당황스럽기도 했으며, 밥도 얻어먹었는데 집까지 신세를 져도 되는 걸까 싶은 망설임이 들었다. 그것은 이타도리가 지금까지 혼자 버텨오면서 감당해온 시선으로 다져진 눈치였다. 부모없이 혼자 사니까 불쌍한 아이. 외로울테니까 잘해줘야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타도리는 남의 도움을 거절하며 외롭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더 웃고, 힘들어도 꿋꿋하게 이겨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런 호의를 받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친한 노바라나 후시구로에게마저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한 그의 속내였다.

"저, 선배. 그건 좀..."

머뭇거리며 거절하려는 이타도리에게 고죠는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물론 안대에 가려져 고죠 사토루의 눈 따위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물었다.

"왜. 싫어?"

어쩐지 그 순간 이타도리는 고죠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노바라와 후시구로에게도 들려줬던 그때. 고죠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이타도리 역시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던 그때말이다. 

이타도리는 생각했다. 비록 고죠가 지금 고압적으로 말하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네' 라고 말하면 바로 물러날 것이라고. 그것이 이타도리가 지금까지 봐 온 선배인 고죠 사토루였다. 동정심에 자신을 먹이고, 집에서 자도 된다고 권유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먹이고 싶고, 집에서 재우고 싶어서 하는 부탁이었다. 마치 자신이 검도부에 가고 싶어서 고죠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고죠는 '부탁'이라는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저렇게 구는 것이다.

'진짜 좋은 사람 맞다니까.'

세상에 누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서 부탁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특이하면서도 다정한, 고죠 선배뿐일 것이다. 이타도리는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죠의 서툰 부분을 눈치채게 되고 말아 기분이 이상했다.

'부탁을 거절할 필요는 없지.'

언제나 남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여기던 이타도리였다. 고죠의 부탁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고죠는 검도부 길을 알려달라는 말을 들어준 적도 있었다. 그 값을 갚는다는 기분으로 이타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근데 전 술에 대해 잘 모르는데요."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라며 고죠는 점원에게 나머지 주문을 시켰다. 그리고나서야 고죠는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한 점 집어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이타도리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정말 특이한 선배였다. 왜 이렇게 서툰 사람인 건지. 그렇지만 면전에 대고 웃기엔 고죠 사토루는 자존심도, 자아도 강한 사내였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되지 못했다. 애써 웃음을 참느라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아주 우아하게 젓가락을 움직여 소리 없이 조용히 고기를 우물거리던 고죠가 덤덤히 물었다.

"먹기 싫으면 억지로 먹지 마."

자신이 위압적이라는 건 의식하고 있나보다.

그것도 의외였다. 단 둘이서 밥을 먹으니 별별 모습을 다 보게 된다고 여기며 이타도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선배는 여전하구나 싶어서요."

"무슨 뜻이냐?"

"건강한 모습이라 안심이 되었어요."

고죠의 안대가 구겨졌다. 아마도 미간을 구기고 있나보다. 이타도리는 고죠가 추궁하기 전에 얼른 말을 돌렸다.

"대학은...어떠세요?"

"어떠냐니?"

"다닐 만 하다거나, 뭐, 공부가 어렵다거나."

가볍게 꺼낸 말에 고죠는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설마 고죠 사토루도 대학에서 첫 좌절을 맛본 것일까? 나중에 노바라와 후시구로를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겠구나 싶어져서 이타도리는 눈을 빛냈다. 그렇지만 정작 고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둘이 질색할 이야기들 뿐이었다.

"바보들 뿐이지."

"네?"

"수준 떨어져서 못 맞춰 주겠다. 교수들도 멍청해서 답답할 지경이지. 그나마 나나밍이 좀 낫긴 한데. 나나밍은 아직 조교수라서."

나나밍?

고죠가 누군가를 긍정하는 것은 처음 들어 이타도리는 눈을 크게 떴지만 고죠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 이상 대학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대학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타도리는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점원이 술을 갖고 온 덕분에 썰렁한 분위기는 알싸한 알코올의 힘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타도리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리에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멍청하다는 평을 계속 듣고 있기엔 그의 성격 상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맛있어요!"

고죠가 추천해준 일본주를 마신 이타도리는 활짝 웃으면서 칭찬했다. 맛 없어도 맛있다고 말했을 이타도리였다. 그런데 정말로 맛있어서 그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고죠는 그 얼굴을 보고 하! 하고 웃었다. 

"당연하지. 이 내가 추천하는 건데. 자, 이것도 마셔봐라."

"이건 뭔가요?"

"긴조슈야. 향이 좋지."

컵에 꼴꼴꼴 따라주는 투명한 액체를 보며 이타도리는 침을 삼켰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비싼 술은 아닌가 하며 걱정했다. 그런 이타도리의 심약한 마음을 눈치챈 듯 고죠는 "어차피 이런 주점에서 팔 정도이니 흔한 술이니까 실컷 마셔라. 이정도면 가볍게 마시는 거다." 하며 잔을 채웠다. 

"선배는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이니까요."

이상한 자기자랑에, 남을 도발하며 놀긴 하지만.

이타도리는 고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들이켰다. 정말로 과일향이 상큼하게 올라왔다. 달작지근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상쾌한 맛에 이타도리는 눈을 깜빡였다.

"우와!"

"맛있지?"

"네!"

더 마시라며 고죠는 계속해서 술을 따라주고, 닭꼬치, 돼지고기 꼬치, 베이컨 토마토 말이 등등 각종 요리를 시켜서 이타도리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타도리가 주문한 음식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지만 취기가 돌기 시작한 이타도리는 그것도 몰랐다. 그저 잔치가 계속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긴장했던 얼굴은 완전히 풀어져 헤헤 웃었고 기분이 좋았다. 그 탓일까. 이타도리는 고죠의 잔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모르고 계속 납죽납죽 잘도 받아먹었다. 

식탁 위의 병들이 모두 빈 뒤에야 이타도리의 잔은 멈추었다. 그는 식탁에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았다. 고죠는 그런 이타도리를 빤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먼저 계산을 했다. 그리고 돌아와 이타도리를 불렀다.

"이타도리."

"....응."

이타도리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찬 주점은 언제까지고 두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물론 가게 전 메뉴를 석패하다시피 주문한 둘을 보며 점주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고죠는 이 웅성거리는 분위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빨리 나가고 싶어서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타도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이타도리. 일어나. 나가야지."

그러나 이타도리는 고죠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피로와 취기가 겹쳐 잠의 수마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는 일어날 줄 몰랐다. 고죠는 작게 한숨을 쉬다가 이타도리의 겉옷을 챙겨들고는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이번엔 이타도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일어나. 이타도리. 일어나라고. 이타도리는 머리를 앞 뒤로 거칠게 휘둘렀지만 "으어..."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게 전부였다.

"택시 불러드릴까요?"

지나가던 알바생이 묻자 고죠는 "아니." 하고 대꾸했다. 이타도리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태도에 알바생은 민망해하며 자리를 피했다. 둘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지자 그제야 고죠는 이타도리를 가만히 내려보더니 작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유우지."

소란스러운 주점에서는 들리지도 않을만큼 작은 속삭임이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이타도리는 감기던 눈꺼풀을 느리게 떴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고죠를 향해 바라보았다. 그리고 늘 보이던 잇몸과 목젖이 보일정도로 우렁차게 웃던 큰 웃음이 아닌, 입술만 샐쭉 올려 헤죽 웃더니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고죠의 팔에 이마를 대고는 비비며 앓는 소리를 냈다.

"으응..."

더 잘래, 하고 응석부리는 듯한 그의 태도에 고죠는 굳은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내 이타도리의 눈꺼풀은 다시 순식간에 잠겼지만 고죠는 한참동안 이타도리를 빤히 내려보았다.

***

이타도리는 자신의 몸이 위 아래로 천천히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따뜻하고 안락한 것이 자신을 감싸안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병실에서 차가워져가는 할아버지의 몸을 끌어안은 것 이후로 누군가와 접촉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그때처럼 슬프거나 울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타도리는 그 품이 누구의 것인지 머리로 인식하지 못하고서, 기분 좋음에 매달려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상대는 멈칫, 하고 몸을 멈추다가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띠, 디디, 디디딕.

뭔가 전자음이 빠르게 눌려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띠리리릭, 하는 노래와 함께 덜컹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온 건지 주변에 들려오던 취객들의 웃음소리나 오토바이의 엔진음, 차가 굴러가는 자질구레한 소음이 일제히 고요하게 잠겼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전부였다. 이타도리는 흐릿한 정신을 깨어보려고 했지만 그를 감싸안은 상대는 오히려 이타도리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그를 끌어안고 움직였다. 그 규칙적인 움직임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곳에 닿자 멈춰섰다. 그것이 이불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 이불은 이렇게 부드럽지 않는데. 거기에 이런 좋은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이타도리는 킁킁 거리며 이상함을 눈치챘다.

'누군가가 날 도와주는 걸까?'

그럼 일어나야 돼.

이렇게, 민폐를 끼치면 안 돼.

뭉그적거리며 술기운에도 움직이려는 그였으나 그런 반항은 이불만큼이나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다시 눕혀졌다. 거기에 상대는 달콤한 목소리로 이타도리에게 속삭였다.

"자. 오늘 하루는 길었을 테니까."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잘 대해주는 거야?

혹시, 엄마야?

이타도리가 묻자 상대는 "하!"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아니다. 엄마는 저렇게 기분 나쁜 웃음을 낸 적은 없다. 이타도리는 시무룩해져서 훌쩍훌쩍거렸다.

"가관이네."

상대는 그렇게 독한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이타도리의 얼굴을 붙잡고 다시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만 울고 자라."

그 손길이 너무나 따뜻해서, 이타도리는 일어나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스라히 흩어지는 의식을 주워모으지 못했다. 그의 흐릿한 시야는 다시 암흑 속에 잠겨갔다. 이타도리가 할 수 있는거라곤 상대의 따듯한 품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그의 옷깃을 꽉 붙잡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자 상대는 알았다는 듯이 이타도리와 함께 이불 위에 누웠다. 묵직한 무게감이 주는 안정감에 이타도리는 헤헤 웃으며 품 안에 비비며 들어갔다.

"손도 많이 가는 녀석이라니까."

그렇게 밉살맞은 말을 하면서도 상대는 이타도리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이타도리는 그 온기에 행복해하며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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